Only I Am a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3
173
59) 제주도, 마굴 공략 – 4
마굴의 문이 열리기 10분 전, 오름 근처에 집결한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자리에 선 채, 최악의 싸움에 대비했다.
“후, 마굴이라······.”
“진짜 끔찍한 것들이던데, 우리 괜찮을까?”
이들은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방송을 통하여 목격한 바 있었다. 강철 방패를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그 정체불명의 괴물을······.
“전원! 전투 준비! 마굴의 문을 향해 모든 공격을 집중한다!”
인호의 고함이 오름 위로 울려 퍼졌다. 그는 이번 작전에서 세계수 진영의 지휘를 맡았다.
“하, 화력은 분명 엄청난데, 충분한 지는 알 수가 없으니······.”
상대의 수준을 모르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그는 전장을 한차례 둘러본 뒤, 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지수 씨, 처음에는 원거리 화력으로 최대한 저지할 겁니다. 하지만 결국 뚫려서, 만약에 난전이 시작된다면······.”
그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마지막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수를 믿는 것,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믿겠습니다.”
마물이란 존재는 평범한 플레이어는 감히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그것을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몇 명 없었는데, 지수는 ‘신격’은 커녕 ‘각성’을 얻기 전에도 하급 마물을 몇 마리를 잡아내는 등,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각성과 신격을 얻은 지금이라면······.
’버텨낼 수 있다. 아니, 버텨내야만 해.’
이제는 성우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너 꽤 강한가 보다?”
지수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복언니, 지민이었다.
“집 안에서는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여기서는 영웅 대접이네?”
지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가족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껄끄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집안의 불청객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실수로 굴러 들어온 집안의 수치였다. 그렇기에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비련의 여주인공에게나 어울릴 법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다.
지민이 철제 너클을 낀 손으로 생수병을 내밀었다.
“······하긴, 이제 네 언니 오빠들 물이랑 수건 챙기며 대회 따라다닐 때는 아니지? 독립한 지도 벌써 4년째인가?”
지수는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새엄마가 극성스레 핍박을 주었지만, 다행히도 이복형제들까지 그랬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무도인 집안의 장남으로서, 꽤 유서 깊은 도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그 딱딱한 배경만큼이나, 자식들에게 체벌을 동반한 정신 교육을 밤낮없이 해댔다.
“아버지가 지금의 널 보면 뿌듯해하시겠는데? 잘난 집구석 박차고 나가서도 알아서 잘살고 있으니······ 뭐, 티는 안 내시겠지만 말이야.”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일까? 이복형제들은 지수를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에서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주워온 것 마냥, 살뜰히 챙겨주는 편에 가까웠다. 애정보단 의무감이었다.
’때로는 내가 불편한 손님이 된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 나쁠 정도로 챙겨줬어. 물론, 그 덕분에 견딜 수 있었지만······.’
지수는 집안에서는 쥐 죽은 듯 지냈고 도장을 도피처로 삼았다. 어린 시절은 그랬다.
그런데 머리가 커지고 사춘기가 오면서 어느 순간 도장마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집과 도장, 모든 곳에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마굴의 문(2층)〉이 열립니다.
* 해당 지역이 봉쇄됩니다. (제주시)
그때, 보랏빛의 포탈이 열렸다. 성우가 스크롤을 사용한 것이었다.
“시, 시작된다!”
“모두 전투 준비해!”
구구구구구一
마굴의 문에서 진동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아, 저게 마굴의 문?”
지민의 얼굴에 긴장이 번져나갔다. 그녀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백여 명의 생존자를 이끌고 이 싸움에 동참했지만, 막상 심상치 않은 전조 현상을 마주하니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지수야······ 지금 이럴 말 할 때가 아니지만, 네가 집을 떠난 이유, 난 이해해.”
지민이 문득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기에 지난 몇 년간 품어온 한 마디를 꺼낸 걸까? 하지만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지수의 이복형제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모두 체육인이 되었다. 지수 역시 그들의 뒤를 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형제들과 비교해서 언제나 초라했던 성적······.
그러던 중 들었다. 젊은 시절, 도 대표 체조 선수였던 새엄마와는 달리, 지수의 친어머니는 너무나 유약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생 병실 신세를 지다가 결국 죽었다고 한다.
‘나보고 병든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했지.’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댔다. 타고 난게 다르기에, 그렇기에 이 집안에 유난히 부족한 녀석이 하나 있는 거라고······.
그러자 이 집안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이루어진, 감옥 같은곳처럼 느껴졌다. 탈출하지 않으면 영영 꿈을 잃고 말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벽들을 빙 돌아 탈출했다.
그 벽 중 하나였던 이복언니, 지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수야, 혹시나 하는 말인데, 운동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증명하려고 하잖아?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잊고 과할 정도로 도전하려고 하는 것 같아.”
“······.“
“그래서 지금 내가 옆에 있다고 괜히 막, 너도 모르게 뭔가를 증명하려고 할까봐, 그래서 혹시 위험해지지 않을까······ 조금 걱정된다. 조심하라는 말이야.”
지민은 지수가 활약해온 과거를 모르기에, 언니로서의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민이 알고 있는 지수는 노력하지만 끝내 증명해내지 못한, 어린 소녀에서 끝나 있을 테니 말이다.
“언니.”
“······응?”
지민이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마굴의 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서 죽지나 마. 죽으면 언니는 나보다 한 수 아래인 거야.”
지수의 말에 지민이 피식 웃었다.
“지수야, 미안하지만, 아직 내가 네 챙김 받을 만큼 나이 먹진 않았어. 네 언니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지수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그녀는 농담을 주고받을 생각이 없었다.
“언니, 미안하지만, 언니는 여기서 죽을수도 있어. 정말이야.”
“······.“
여기는 도장이나 경기장이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이 게임은 타고 난 재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어떤 노력으로 잘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 그러면 뭔데?”
마굴의 문으로부터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끄에에에!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마물이 머리를 내밀었다. 뒤이어 수십 개의 머리통과 그보다 더 많은 팔다리가 뿜어져 나왔다. 지민의 표정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 마굴의 문(2층)에서 ‘1차 침공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지수는 그 메시지를 바라보며 피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그건 나도 몰라. 그런데······.“
정답은 몰랐다.
“······이제, 잘 할 자신이 생겼어.”
다만, 방법을 알았다.
그녀는 이 현상을 겪으며, 예전처럼 넘을 수 없는 벽을 피해 돌아가지 않게 됐다. 수차례 벽을 깨고 지나왔다.
이 현상이 처음 일어난 날, 성우가 당부했던 것처럼, 이제, 이 지옥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린 것이다.
* * *
마굴의 문이 열린 직후, 좀비 괴조 한 마리가 성우의 어깨를 붙잡고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곳에는 메신저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성우는 선루 갑판에 내린 뒤 급히 함교로 들어갔다.
“출발 준비 완료입니다!”
함교로 들어오는 성우를 바라보며, 경수가 소리쳤다. 그는 이번 작전에서 함교 통제를 맡았다.
그 외에 조종을 맡은 승무원들, 그리고 한호, 리웨이, 검은 사자, 백색 늑대까지 이번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총 25명이었다.
“포탈의 크기가 충분히 커졌습니다! 통과 가능합니다!”
성우는 함장 자리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 허공에 열린 보라색 포탈이 요동치며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 구멍은 일대의 공기를 모두 빨아들이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2층은 확실히 다르다.’
2층짜리 마굴은 처음이었다. 그 ‘2층 ’이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마굴보다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 순간, 포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머리통······ 눈과 코가 없이 오로지 흉악한 입만 달린 머리통이었다. 그것들이 수십 개가 연달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나옵니다!”
“시, 시작이다!”
문 너머의 생명체, 마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뚫고 들어가세요!”
구구구구一
성우의 명령과 함께 선체가 통째로 진동했다. 미리 달구어놓은 마나 엔진이 최대 출력을 발휘하며, 이 육중한 거물을 앞으로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마치 짐을 가득 실은 수레처럼, 처음에는 버겁게 움직였지만, 빠르게 가속도가 붙었다.
우우우우!
선수에 걸어둔 깃발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포탈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충돌합니다!”
마물들이 포탈을 비집고 나오기 직전, 메신저호의 선수가 충차(衝車)처럼 달려들어 놈들을 들이받았다.
퍼버버버!
제아무리 무지막지한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비행선과의 정면충돌을 버텨낼 리 만무했다. 놈들은 포탈 안으로 튕겨 들어가 버렸다.
“진입합니다!”
메신저호 역시 그대로 진입을 시도했다.
지이이이一
그 끈적한 포탈을 향해 선수를 들이미는 순간, 뒤로 밀어내려는 것처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저항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법의 힘으로 작동하는 이 육중한 괴물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선수를 시작으로, 선미까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 외부 차원 ‘마굴’에 입장하셨습니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 * *
미지를 탐험하는 일은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유일하게 예상 가능한 현상에 다다르게 된다. 그건 죽음이다.
“젠장!”
마굴 진입 후 약 20분, 메신저호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보여야 뭘하지. 하······.“
시계(視界)가 0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사자가 무언가를 감지해내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거리 내에 무언가 들어오지 않은 듯했다.
쿠구구구一
맹렬하게 몰아치는 모래바람이 메신저호를 뒤흔들어댔다. 흡사 거친 흙탕물 안으로 다이빙한 것처럼,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걸 떠나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뭐 보이는 거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고도계도 먹통이라 우리가 어디쯤 날고 있는지 짐작이 안갑니다.”
승무원들 역시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그저 항속을 최소한으로 낮춘 채 , 무언가 보이기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쿠구구구구一
그러나 마치 노이즈 낀 화면처럼 자글자글하게 요동치는 장면이 반복될 뿐······ 그걸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으니 두통이 일어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더 지속 되면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이런 식이면 방향을 알아도 나아갈 수가 없을 텐데······.“
검은 사자가 방향을 잡아낸다고 한들, 시야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말도 안 되는 게 길을 막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마법사들이 ‘마법 드론’을 띄우고 성우가 ‘스펙터’를 소환해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 내가 말했잖아?”
리웨이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참고로 하루 증 거의 반나절을 이렇 게 몰아 쳐대! 진짜 미친 동네라니까?“
그녀는 마굴에서 한 번 탈출한 경험이 있기에 어찌어찌 메신저호에 동행하게 됐는데, 벌써 후회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어, 어어! 회피 기동!”
승무원 한 명이 소리쳤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래바람 속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젠장! 충돌 대비!”
그건 빌딩이었다. 조타수가 급히 방향을 튼 덕분에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콰가가가가-
우측 선체가 빌딩을 긁고 지나갔다. 그 작은 마찰만으로도 함교가 매섭게 뒤흔들렸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암초에 부딪힌 배처럼 허망하게 추락할 뻔 했다.
함교의 플레이어들은 우측 후방으로 사라지는 거대한 건축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마, 마굴에 빌딩? 방금 그거 빌딩이었지?”
“여기 도대체 뭐야?”
모두가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분명 빌딩이었다.’
성우 역시 그렇게 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창문이 죄다 으스러진 폐허 상태의 빌딩이었다.
심지어 그 안에 널브러진 물건들,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서류철······ 일반적인 사무실의 풍경이 분명했다. 해결할 수 없는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여긴 어디지?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됩니다!”
빌딩을 지나치고 나자 약간의 시계가 회복되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모래바람을 가로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림막의 정체는 간단했다 . 어느새 사방이······ 빌딩 그림자로 가로막혀 있는 것이었다.
메신저호는 지금, 빌딩 숲 사이를 날고 있었다.
“여, 여기 뭐야!”
“······고도 상승!”
빌딩들은 폭풍우 속에서 나타난 암초처럼 위협적이었다. 메신저호는 거대한 장애물 사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급히 고도를 높였고, 이내 마천루 사이를 곡예 하듯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후······ 탈출 성공입니다.”
이들은 긴장을 늦추진 않은 채, 발아래로 멀어지는 빌딩을 살펴보았는데, 그 익숙한 모양새에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 그런데 여기는······ 서울이잖아요?”
한호의 말대로 서울의 풍경과 흡사했다. 그리고 경수가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
“성우 씨, 저기 보세요. 제가 알기로는 파이낸스센터인데, 그럼 여기······ 강남이네요.”
정말로 강남의 도심이었다. 강남역부터 선릉역까지 이어지는 빌딩들이 모래 폭풍 속에서 흐릿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성우는 리웨이를 돌아보았다.
“리웨이, 네가 마굴에 들어갔을 땐 어디였지?”
리웨이 역시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표정이었다.
“음, 그게······ 난 지상에만 있었고 여러모로 정신없어서 자세히는 못 봤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도 상하이였던 것 같아.”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그 풍경을 다시 한번 살폈다.
“······여기가, 지구란 소린가?”
리웨이가 성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글쎄, 나도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 적어도 우리가 아는 지구는 아닐 거야. 내가 아는 진짜 상하이도 이 정도는 아니고 서울도 아직 멀쩡하잖아? 다른 공간인 건 확실해.”
마굴이 지구와 완전히 닮았다니, 그게 뭘 뜻하는 걸까?
하지만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검은 사자가 마침내 무언가를 감지해낸 것이다.
“느껴진다.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고동 소리가 느껴져. 주기적인 진동이 이 세계 전체로 뻗어 나가고 있어.”
“그게 어디지?”
검은 사자가 왼손을 들어 올려 어딘가를 가리켰다.
“서쪽이다.”
주기적인 고동 소리라니, 마굴의 심장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곳으로 가면 뭔가 해답이 나올지도 몰랐다.
“더 높이 상승하면 모래 폭풍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 그나마 다행이네요.”
경수의 말처럼 빌딩보다 높이 솟아오르니 짙은 모래 폭풍 밖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자, 이제 서쪽으로 전속력 기동합니다!”
경수의 명령에 따라 메신저호가 속력을 높였다. 높은 고도 역시 시계가 깨끗한 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시원스레 전진할 수 있었다.
“폭풍 밖으로 벗어났지만, 뭐가 나올 지 모르니 주변 경계에 철저해야 합니다!”
마굴에 진입했지만, 아직 그 어떤 충돌도 없었다. 다행인 일이었지만, 어째서 그것들이 나오지 않는 건지, 좀처럼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성우는 창문 앞에 서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왜 지구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거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모래 폭풍은 모든 곳을 뒤덮고 있지 않았다. 일부 지역이 황량한 민낯을 드러냈는데, 그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한강은 말라비틀어져 모래로 가득 찼으며 어떤 곳은 거대한 구덩이 아래로 사라진 상태였다. 그 위치를 대략 짚어 보건대, 방배동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던 듯, 구멍 주변의 모든 곳이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서쪽으로 움직였을 때였다.
“서쪽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식별되었습니다!”
가장 압권인 건 이들이 향하고 있는 곳, 서쪽에서 드러났다. 한참 전부터 모래 폭풍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는데, 먼지층 때문에 그 윤곽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 엄청나게 큽니다!”
하지만 조금 더 접근하니, 그게 일반적인 빌딩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의 서울에 천장을 드리우고 있을 정도였는데, 정상 부근은 하늘을 찌르고 구름 너머까지 이어졌다.
“선배, 저기 여의도죠? 그리고 저건에······ 세, 세계수죠?”
한호의 말처럼, 여의도에 거대한 세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 수원 마을의 세계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설마 완성 단계의 세계수? 말도 안 돼.’
성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저, 저게 대체 왜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모두가 놀랐다. 여의도에서 자라난 압도적인 크기의 세계수······ 그리고 그것의 밑동에서부터 솟아오른 엄청난 크기의 뿌리가 도시 전역을 머리카락처럼 휘감고 있었다.
멸망의 진원이, 바로 그곳에 있는 듯 했다.
“아니, 여, 여기 대체 뭐예요?”
“그래, 여기는······.”
“응? 뭔가 알 것 같아요?”
성우는 뭔가 알 것 같았다. 이 맥락, 어딘가 익숙했다.
“······배드엔딩이다.”
이건 아주 오래전, 정훈이 보여주었던 예언석, ‘배드엔딩-2’의 한 장면이 었다.
지금,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