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4
42화. 길드 스카우트 (3)
“어쨌든 감정 결과를 알려 드릴게요.”
모두가 놀란 채로 굳을 때쯤.
김기려는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큰 의미가 있을지? 여러분 조사가 맞거든요.”
“예?”
“이건 그냥 마력을 흡수할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검이에요. 그게 전부인데.”
숨겨진 조건이나 능력은 없다.
그가 이렇게 밝히니 곽병기가 당혹스러워했다.
“아니, 그럼 검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죠? A급 헌터도 순식간에 쓰러졌는걸요.”
기려는 이에 답했다.
“버텨야죠.”
“버텨요?”
“딱, 참으면 되잖아요? 검이 필요 이상으로 마나를 빨아가지 않게.”
곽병기는 입을 떡 벌렸다.
알아서 참으라니.
이건 또 무슨 천재들이나 할 법한 양심 없는 개소리지.
“음?”
그들이 일제히 침묵하자 기려도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심각한 얼굴이 됐다.
“설마 여기 사람들은 그게…. 안 되나요?”
이 문장은 곽병기에게 이렇게 들렸다.
-한국의 양대산맥이라던 길드가 고작 이 정도였냐?
등골이 서늘했다.
자신이 김기려를 의뢰로 꼬드긴 이유는, 마탑의 능력을 과시해 이만한 길드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분석실에 가득 널려있는 아이템들도 계획의 일부였다.
감정사라면 이 물건들의 가치를 모를 리 없으니까.
중소길드에서는 1개도 구하기 힘든 상급 장비가 발에 채는 모습을 보면, 그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거로 생각했지.
“아, 아뇨. 그게.”
하지만 이대로 가면 업계 최고라는 인상은커녕 쪽박만 차게 된다.
곽병기는 다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저주받은 검은 주력 공략자들이 아니라. 예비 3팀의 헌터에게 줄 생각이어서요.”
“그래요?”
“하하. 신입이 많은 팀이라. 아직 미숙한 티가 납니다.”
기려는 대충 상황을 이해한 것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걸 다룰 만큼 훈련된 각성자는 드문가 보네요.”
그는 중얼거리며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강창호? 음, 그래. 강창호 수준 정도면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만났던 지구인 중에 가장 마력을 세밀하게 다뤘던 인물.
기려는 무심코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어디까지나, 이 검을 다루려면 그 정도의 제어는 필요하다는 의미의 예제였다.
“강창호요?”
하지만 이 문장은 곽병기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S급 헌터쯤은 되어야 검을 다룰 수 있다니. 그럼 자기도 그 S급에 근접한다는 소리잖아?’
곽병기는 상대의 발언이 강창호의 각성치 자체를 가리켰다고 생각했으니까.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S급이 일반인 같은 꼴을 하고 있지?!’
곽병기는 체력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이처럼 몸이 우락부락하고.
김기려는 이와 반대로 썩 건강해 보이지 않는 날렵한 실루엣을 지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싸우게 되면 피를 보는 건 곽병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엔 전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숨겨진 각성치를 생각해봤을 때.
아마 저 남자는 사람 두개골쯤은 달걀 껍데기 부수듯 할 수 있을 터.
“곽병기 과장님, 왜 그러세요?”
그는 돌연 위기감이 들었다.
저것이 흡사 사람의 탈을 쓴 맹수처럼 느껴져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어어, 그게…….”
그런데 그때.
우당탕! 큰소리와 함께 분석실의 하얀 문이 벌컥 열렸다.
동시에 곽병기는 화색을 띠었다.
저 사람이 있으면 어떤 각성자도 마냥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대표님!”
“뭐야, 오늘따라 날 왜 이리 반겨줘?”
진짜 S급 헌터!
서에스더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기려 씨가 방문했다는 소리를 듣고 잠깐 와봤어요.”
안광이 비치지 않는 삼백안의 남성은, 그녀를 차분히 돌아봤다.
***
‘이야~ 지금부터 실수하면 X된다~’
아니, 가서 일이나 하시지 왜 나오셨담.
대뜸 에스더가 등장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인사부터 받을까?
“반갑습니다.”
“어때요? 일은 잘되고 있어요?”
“방금 막 끝냈어요.”
“오, 그렇군요. 결과나 좀 들려줘 봐요!”
저주술사님의 말씀인데 아무렴 따라야지.
나는 마도구의 정보를 곧장 풀어놓았다.
그러자 에스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딱히 숨겨진 위험한 점은 없다 이거죠?”
휙-.
에스더는 옆에 놓여있던 마검을 가볍게 손에 들었다.
“난 또,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있을까 봐 그동안 손도 못 댔지.”
역시 S급쯤 되면 마나 드레인도 잘 버티네.
나는 별생각 없이 에스더가 칼을 돌리는 걸 구경했는데, 어쩐지 주변 직원들의 반응이 묘했다.
‘뭐지?’
왠지 몹시 겁에 질린 얼굴로 이쪽을 주시하는 직원들.
혹시 대표가 검을 가지고 장난치다 손이 베일까 봐 걱정하는 걸까?
“에스더 헌터, 일을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해보고 싶어요. 검을 이쪽으로 주실래요?”
“오케이~”
에스더는 순순히 마검을 건네줬다.
그러나, 위험한 검을 회수했음에도 직원들은 여전히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놀란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에휴, 됐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다.
저런 곳에 신경 쓸 바에 일이나 하는 게 낫지. 나는 묵묵히 마도구를 재점검했다.
“기려 씨! 혹시 그 검이 마음에 들어요?”
“예?”
하지만 이 순간.
에스더가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였다.
“어차피 우리 길드에는 간절히 필요한 사람도 없겠다, 말만 잘하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고개가 절로 기울여진다.
일단 저주술사에게 함부로 은혜를 입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썩 탐나는 마도구는 아니었으니까.
“글쎄요. 이건 제가 쓰기에는 급이 좀…….”
나는 살피던 흑검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이건 F급이 쓰기에는 과분한 장비다.
어차피 마력이 쥐꼬리만 해서 능력도 활용 못 하는데 뭘.
“당신이 쓰기엔 수준이 너무 낮다는 건가요?”
그런데 그때. 에스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덧붙였다.
나는 이게 지구인 특유의 반어법인가 싶어 대충 어깨만 으쓱해줬다.
‘마음 같아선 농담에 한바탕 웃어주면서 호감을 사두고 싶지만.’
선우연의 그 싸늘한 얼굴을 본 뒤로는 도무지 웃을 엄두가 안 난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죠.”
에스더는 그런 나의 반응을 살피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다음 마디를 꺼내려 했는데.
-삐이이이이이이익!
-위우우우우웅.
갑작스러운 굉음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높은 데시벨의 경보음.
그리고 진동 소리…….
‘재난 메시지?’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다.
나는 호주머니의 휴대폰을 반사적으로 꺼내 들었다.
에스더도 맞은 편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쪽은 이 와중에 전화라도 왔나.
“여보세요? 아! 네네. 그쪽에 게이트가요?”
에스더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누군가와 바삐 통화하는가 싶더니.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하여간 세상이 나를 가만두질 않네! 이 대낮에 A급 레드 게이트가 생겼대요.”
“A급인데 왜 대표님께 직통으로 연락이 와요?”
“레드 게이트 한 쌍이 떴으니까!”
어, 진짜다. 이제 보니 경보 문자도 1개가 아니라 2개로군.
“A급 2체가 동시에?”
말을 얹어볼 시간도 없었다.
그 직후 한국마탑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기려 씨,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도 커피나 한잔 같이 하려 했는데, 일이 생겨서요.”
“괜찮아요. 커피 같은 건…….”
그런데 잠깐.
“아아, 맞다. 게이트가 복수라 전리품이 많이 나올 텐데 분석팀에서도 2명 정도 따라오시죠?”
“네, 대표님.”
이거 아무리 봐도 S급 헌터가 몸소 현장에 나선다는 이야기 같은데.
나는 출동 준비 중인 에스더를 향해 말했다.
“잠시만요. 실례지만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예?”
“데려가 주시면 마정석 분류 같은 걸 도울게요.”
다소 느닷없는 요청이다.
“저야 별 상관은 없긴 한데, 현장은 가서 뭐 하게요?”
에스더는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한 얼굴로 의도를 물었다.
거창한 이유도 아니었으니 설명은 한두 마디로 충분했지.
“당신 싸움을 직접 보고 싶어서요. 예전부터 S급의 저주 실력이 궁금했거든요.”
쉽게 말해 스킬 구경 좀 하자는 거다.
솔직히 지구와 알파우리의 저주 마법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분석해두고 싶었거든.
“에스더 씨는 이렇게 마력도 많으시니 분명 능력이 출중하시겠죠?”
틈을 타서 적당히 아부도 해두자.
그럼 상대도 기분이 들떠서 부탁을 쉽게 들어줄 테고.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차로 같이 이동하시죠.”
아니나 다를까.
에스더는 미소로 화답하며 나의 동행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방금 발언은 틀림없이 점수를 땄겠지!’
역시 저주 계열을 대할 때에는 칭찬만 한 게 없는 법.
옳지. 앞으로도 이렇게만 나가자.
그럼 S급 저주사라는 무시무시한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희망찬 미래 계획을 세우며 건물을 나섰다.
***
타박, 타박, 타박.
‘김기려, 이 자식…….’
마탑의 하얀 복도.
행렬의 맨 앞을 걷고 있던 에스더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를 갈았다.
‘사람을 물 먹이고 자빠졌어!’
뭐? S급의 저주 실력이 어떤지 궁금해?
자신이 발동한 스킬을 눈앞에서 무효로 했던 놈이 저런 말을 꺼내면 심히 다른 뜻으로 읽힐 뿐이다.
-내 털끝도 못 건드리던 실력으로 어디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볼까?
아마 이런 의미의 선전포고겠지.
그리 생각하면 뒤이은 발언도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에스더 씨는 이렇게 마력도 많으시니 분명 능력이 출중하시겠죠……?
이건 완전 조롱이잖아!
에스더는 모종의 확신을 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각성자 중에서도 선택받은 옥석이라고 불리는 S급.
그런데 그들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깔보는 남자가 있을 줄은.
‘허.’
불쾌하고 흥미롭다.
본인 능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으니 저런 도발도 툭툭 내뱉는 거 아닌가?
에스더는 이 상황이 김기려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F급은 저런 거만함을 갖출 수 없었으니까.
“협회에서 도로 통제해뒀대. 시원하게 밟아!”
“안전띠나 매세요. 대표님.”
“사고 나면 내가 죽니? 너희가 죽지?”
현장으로 향하는 차에 오른 에스더는 조수석에 기대앉아 생각했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도발을 하는 이유가 뭐야?’
기려가 갑자기 공격적인 태도로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설마.’
경고.
순간 그 차가운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김기려는 이쪽의 저주 수준을 뻔히 알면서 비꼬듯이 성질을 긁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건, 자신이 다시 한번 각성 능력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행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이 가벼운 도발 때문에 저주를 걸 경우…….
‘저번처럼 그냥 넘어가 주진 않겠다 이거야?’
백미러로 누군가의 상이 비친다.
길드의 온 정보망을 사용했음에도, 끝내 눈에 띄는 과거의 흔적을 찾지 못한 의문의 헌터.
그 이름 없는 각성자가 지금 자신을 꾀어내려 하고 있다.
‘생긴 거랑 다르게 기 싸움을 좀 거칠게 하시네?’
에스더는 옅은 긴장감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