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60
58화. 돈벌이
표나길은 예민한 각성자였다.
협회의 눈을 피해 범죄를 일으키는 무등록자인 만큼 제 발톱을 숨기는 것도 능했으니.
섬세한 각성 컨트롤이 뒷받침되면, 마력 감지 능력은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법.
‘나도 그의 앞에선 C급 정도로 위장하는 게 한계였는데.’
그런데 그런 표나길을 감쪽같이 속였다라.
‘F급이되, 약자가 아닌 각성자.’
수예휘는 김기려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개벽을 앞둔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위험분자는 주의해둬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
나는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가끔은 뷔페도 좋네~’
그사이 선우연이 문자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흥미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테러리스트가 사실 어떤 유사 종교 신자였다느니. 일련의 사건에 재외 인사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느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이쪽은 심드렁히 매실차나 입에 머금었다.
“하여튼 그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스트레스예요.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일망타진도 어렵고. 심지어 이젠 다른 범죄에도 손을 뻗친다니까…….”
“예에.”
“안 그래도 요즘 보스 스틸이 다시 기승을 부리잖아요. 이참에 자기들도 숟가락 얹겠다는 심보겠죠.”
“넵.”
“뭐, 기려 씨 같은 분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후릅.
매실차를 다 마시고 나서는 종이컵을 구겼고.
솔직히 선우연의 말은 귀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배부르니 졸렸거든.
“그럼 저는 가볼게요.”
“아! 네. 들어가세요.”
오늘은 그렇게 무사히 체육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한참 빈둥거리다가…….
좁은 텐트에 누워만 있기도 지루하니, 마법 연습을 하러 살짝 외출했다.
이튿날 오전 7시.
“이런 썩을!”
상쾌하게 시작하는 하루다.
나는 발치에 놓인 사체를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 고생을 해서 샘플을 채집했는데.
“에라이!”
애써 얻은 마수 시체로 실험해본 결과.
망했다. 김기려 같은 쓰레기 육신으로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없었다.
C급, D급, E급, F급. 설마 그 어느 구간에서도 시체조종술이 발동하지 않을 줄이야.
결국 내가 다룰 수 있는 범위는 비둘기나 쥐 따위가 한계인가.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B급 게이트도 안 들어갔지. 대체 난 정하성한테 멱살을 왜 잡혔던 거야?”
팍팍팍.
괜한 F급 몬스터의 사체에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다.
“후우.”
진정하자.
몸을 지킬 방법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한때는 마도구에 의지하는 술사를 한심하다 여긴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역시 당분간은 템빨을 세우는 수밖에……!’
개조한 향로는 정하성에 의해 파괴됐다.
그렇다면 이걸 대체할 공격수단을 갖추는 게 급선무인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있다.
‘잔고가 얼마 남았더라.’
돈이 없다. 돈이.
‘김기려 이 자식. 마나가 없으면 돈이라도 있었어야지.’
자원 부족을 실감할 때마다 몸 주인이 괜히 원망스럽다. 하지만 환생은 이미 엎질러진 물.
‘생각해보면 돈이 필요한 곳이 한둘이 아니야. 거처도 바꾸고 싶고, 해외여행 같은 지구인들의 유희도 즐겨보고 싶어.’
잠시 동안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떠오른 게…….
한 A급 헌터의 얼굴이었다.
“흠.”
솔직히 양심 없는 소리긴 한데.
역시 그 지구인의 등골을 빨아먹는 것만큼 쉽고 편한 방법이 없지 않나.
외부 감정사로 일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만.
솔직히 말하면 납치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그쪽 계열로 이름 날리는 건 영…….
‘좋아. 결정했다. 안윤승을 등쳐먹자.’
나는 곧 마음을 굳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지만 상관없었다. 우주의 섭리란 으레 비정하니까.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결론이 난 뒤에는 망설임 없이 윤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적이 드문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신호는 잘 갔다.
-혀, 형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윤승아.”
저번에는 윤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이유로 야금야금 작은 도둑질을 했지.
하지만 협회 직원에게 부정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아챈 이상.
이제부터는 아예 한탕을 노려야겠어.
“뭐 하고 있어? 밥은 먹었고?”
나는 친절한 인사로 운을 띄웠다.
***
물론 이쪽도 마냥 나쁜 놈인 건 아니다.
안윤승을 슬슬 자기 업무로 복귀시켜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그전에 살~짝 유종의 미를 거두자 이거지.’
저 A급 헌터는 모르리라.
김기려의 이 덤덤한 얼굴 가죽 너머에 싱글벙글 웃는 감정이 담겨있음을.
“헉! 혹시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니.”
“형님은 항상 빨리 나와계시네요.”
나는 약속 장소에 나타난 안윤승을 보고 신중히 말을 골랐다. 그럼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아까 통화로도 말했지만, 오늘은 게이트에 들어갈 생각인데…….”
“네!”
“그전에 네게 말해둘 게 있어. 모르고 들어가면 패닉할 수도 있으니까.”
패닉?
그 말에 안윤승이 눈을 껌뻑인다. 피어싱한 스킨헤드가 그래 봤자 순진해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은 A급 게이트인 ‘황금향’이야. 일반 몬스터로 골렘파수병이 등장하지.”
드디어 안윤승 쪽에서 예상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는 삽시간에 얼굴을 굳혔다.
“골렘……?”
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계획을 나열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내 도움은 기대하지 마. 어디까지나 공략자는 너니까.”
“예?”
“난 이 게이트를 네가 솔로로 클리어하게 할 생각이야.”
그는 내 제안을 듣더니 벌컥 큰소리를 냈다.
“동급의 게이트를 저 같은 초짜가 어떻게요?!”
안윤승이 말대답을 하는 건 드문 일인데.
“게다가 골렘이에요. 골렘. 아시잖아요. 골렘은 같은 급에서도 특히 상대하기 어려운 거!”
나는 그가 할 말을 다 쏟아낼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상대가 호흡을 고를 즘에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경험이 없고서야, 그 트라우마가 자연적으로 사라질까?”
김기려의 육신은 여러모로 하자가 많다.
폐는 망가지고, 마력은 적고.
그러니 마음에 드는 요소는 이것 하나뿐.
“안윤승, 솔직히 말해. 너 지금 눈앞에 골렘 놔두면 대처 못하지?”
김기려의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있었다.
음향은 중대 사항이지. 지구인도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 능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골렘이 두려워?”
안윤승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얼굴색이 안 좋은 걸 보니 예전 사건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공포감은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골렘을 보면 차츰 나아질지도 몰라.”
“형님.”
“난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사실 이런 과격한 방법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큼. 바람이 건조해서인지 목이 잠긴다.
“넌 헌터잖아.”
“…!”
“직업상 언제나 몬스터에 노출돼 있지. 그런데 어느 날 던전 브레이크로 골렘이라도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해봐.”
당황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나는 그렇게 물었다. 안윤승은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어긋난 인지는 교정해야 해.”
공포에 압도되어 제 실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젊은 술사.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가 도와줄게.”
이게 오늘의 계획이었다.
안윤승은 골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나는 A급 몬스터의 소재를 회수하고.
“골렘은 공략법만 알면 누구나 쓰러트릴 수 있어. 쉬워.”
“공략법이요?”
“그래.”
안윤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이 정도면 흥미 유발은 충분했다.
“역시 한번 해볼래?”
“으음.”
“정 확신이 들지 않으면…. 일단 입구 근처에 있는 1마리만 잡아보다 안 될 것 같을 때 바로 나오면 되잖아.”
나는 살살 미끼를 풀었다. 효과는 발군이었다.
“혀,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곧이어 A급 헌터라는 거물이 낚였다.
나는 그가 마음 바뀌기 전에 냉큼 말했다.
“좋아! 당장 게이트 입장 신청하자!”
안윤승은 내 재촉에 얼떨떨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제 협회 어플을 켜 입장 허가를 받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때.
“잠, 잠시만요.”
휴대폰을 조작하던 안윤승이 돌연 멈칫한다. 그리고 질문했다.
“그런데 A급 게이트라면 형님이 동행을 못하시지 않…….”
나는 옆에서 그의 휴대폰을 슬쩍 보고 대신 항목을 터치해줬다.
[정보를 입력하세요.] [공략 인원 : 1인 ■ 2인 □ 3인 □ …] [운송업자 여부 : YES □ NO ■]“자, 됐다.”
“형님?”
“신청해.”
“이거.”
“하라고.”
다시 말하지만 김기려의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뭐 문제 있어?”
“아, 아, 아니요.”
어쩌면 이 차가운 눈초리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안윤승과 나는 어느 게이트에 도착했다.
황금향이라고 이름 붙여진 세계답게, 통로 너머의 풍경은 화려했다.
‘오.’
바르게 깔린 길.
어두운 천장. 길게 뻗은 미궁.
마치 피라미드의 안을 전부 황금으로 뒤덮어둔 것 같군.
“진짜 금일까요?”
“글쎄…….”
하지만 나는 이곳 벽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금괴보다 가치 있는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형!”
눈을 감는다. 감각을 넓힌다.
게이트 내부에서 감지되는 익숙한 마력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선 끝에 걸려드는 것은…….
‘골렘파수병.’
익숙한 물건이다.
마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율경비 흙 인형. 아무리 봐도 고향 땅의 기술력이 느껴진다!
“오호라.”
사실 예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골렘도 골렘이지만. 게이트라는 공간에서는 종종 익숙한 동식물이 발견되곤 했으니까.
친숙한 알파우리의 흔적들.
더불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신물질이 다수 포함된 이계의 공간이라.
“저번보다는 신식이네.”
이것으로 게이트를 만든 이들의 정체도 점점 갈피가 잡힌다.
뭐, 굳이 지금 증명해야 할 문제는 아니니 넘어가고.
“윤승아, 준비는 다 했어?”
다시 안윤승이 있는 던전 입구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네. 혹시 몰라서 포션도 아까 몇 개 더 보충해왔고요. 장비는 뭐 항상 쓰던 건데…….”
“그거는?”
“아, 그거. 그것도 당연히 빌려 왔죠.”
이어서 안윤승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여기요. 레어급 아이템박스예요.”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상자.
간단히 말해 요술가방이다. 게이트에서 발견된 물질이라면 일정 용량 보관하고 다닐 수 있다나.
“진짜 빌려 왔네. 통화로 이야기할 때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형님의 말씀인데 당연히 가져와야죠! 얼마든지 쓰세요!”
후후.
나는 그 상자를 굳게 쥐었다.
이딴 작은 상자가 웬만한 아파트 가격이라니 손이 떨리지만.
“아 참, 교정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노심이랑 마석은 내가 챙긴다. 고급 정보를 알려주는 건데 이 정도는 불만 없지?”
나는 당당히 탐욕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번에 크게 한탕 하고 이 바닥 뜰…….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무튼 안윤승을 이용하는 건 그만둘 생각이라.
“노심이랑 마석…? 어, 공략법을 알려주시는데 고작…? 네, 넵! 뭔가 필요한 게 있다면 전부 가져가세요!”
골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를 요구했는데도 그는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빨리 독립시켜줘야겠군.’
완벽하다.
“따라와.”
“옙!”
우리는 그렇게 골렘 토벌에 나섰다.
마침 첫 먹잇감이 입구 가까이에 놓여있었다.
파수병이라 불리는 이 골렘은 의외로 군용이 아니라 민간 경비용이다. 그리고 비상정지 커맨드는.
‘빛이 사용되네.’
내 고향에서는 소리를 주로 써서 드문 경우긴 한데, 다행히 지구는 빛 신호가 더 중요시되는 세계다.
“이럴 줄 알고 챙겨왔지.”
“네?”
나는 숨겨둔 도구를 꺼냈다.
다○소에서 구매한 레이저 포인터.
“저기 골렘 머리에 박힌 동그란 구슬 같은 거 보여?”
“아, 네네. 파란색이요?”
“저기에 빛을 10초 정도 쐬면 되거든? 정확한 필요 조도까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규칙성이 중요한 거라 이거면 충분하고.”
참고로 레이저 포인트 구매에 쓰인 10,950원은 추후 윤승에게 청구할 것이다.
“자, 공략법 설명은 끝났으니 이제 방어 스킬 준비해.”
“예?”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눌렀다.
“분명 말했다. 10초.”
-쿠구구구구구…….
딸깍.
빛이 감지되자마자, 이상을 느낀 골렘은 수면 모드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