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63
61화. FLUKE (3)
기려는 둥실둥실 떠다니는 아이템을 떨떠름히 회수했다.
솔직히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아차, 그러고 보니 윤승이 쪽은 어떻게 되고 있지.’
그는 무심결에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
안윤승과 습격자들이, 숨을 멈추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똑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관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보이는 법.
“….”
그렇기에 소위 ‘운발’에 불과한 이 상황도.
어느 관찰자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보스가…….’
안윤승은 전율했다.
기려가 그리드의 이목을 끌어갔을 무렵에는, 틀림없이 그의 규율도 이걸로 깨지겠거니 했는데.
“허.”
정말이지 세련된 사냥 방식이다.
순식간에 그리드의 약점을 간파하고.
괴물의 밸런스가 무너지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한 뒤.
그 찰나에 저렇게 정확한 일격을 가한다라.
‘와…….’
절로 감탄이 나온다.
실로 엄청난 기교였다.
보스의 울부짖음에 멋모르고 고개를 돌렸던 건데, 하마터면 저 대단한 순간을 놓칠 뻔하다니.
안윤승은 자신이 방금 본 장면을 다시금 곱씹었다.
예리한 슬라이딩 킥.
이어진 보스의 낙사.
그의 눈에는 일련의 흐름이 철저히 계산된 일로 보였다.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데에도 스킬이 필요 없단 거야?’
A급 보스도 저 각성자의 손아귀에선 한낱 미련한 짐승일 뿐.
보스의 숨통을 끊은 남자가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안윤승은 그의 실력에 심취하여 싸움마저 잊어버렸다.
물론 얼이 빠진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말도 안 돼. 맨몸으로 그리드를?’
눈을 뗀 그 잠깐 사이에 보스가 당했고. 심지어 목표로 하던 아이템마저 빼앗긴 상황이니까.
나찰사원의 신도들은 안윤승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의 당사자만은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이었고.
“흠.”
그리드를 죽인 보상. 정체불명의 푸른색 코어.
기려는 그것을 손에서 가만히 굴려보더니, 이내 큰소리로 외쳤다.
“안윤승!”
던전의 주인이 죽었다.
그 덕분에 새로운 출구가 이 방에 생성됐다.
그렇다면 저 사이코들을 상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도망치면 그만이지.
“이쪽으로 뛰어!”
김기려는 게이트 앞에서 손짓했다. 물러나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얼음 술사는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안 돼!’
코어를 탈환해야 해!
사이비는 다급하게 스킬을 시전했다.
지금까지는 전투를 위한 페이스 조절을 했지만, 이제 이판사판이다.
후욱.
그는 모든 체내 마나를 긁어모았다.
사용할 스킬은 [서리 폭풍].
얼음 쐐기가 목표물에 명중하면, 연쇄적인 냉기 폭발을 일으키며 일대를 모조리 얼려버리는 강력한 기술이었다.
까드득.
매서운 마력이 허공의 한 점에 모인다.
안윤승도 어느덧 게이트 출구로 성큼 가까워졌지만, 아마 그의 탈출보다 저 마법의 발동이 더 빠를 터.
“에휴.”
“혀, 형님! 제 뒤쪽으로……!”
윤승도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황급히 방패를 치들었는데. 누군가가 이를 막아섰다.
김기려 본인이었다.
“형?”
쉬익! 완성된 얼음 쐐기가 날아들 때쯤.
기려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그 앞에 내밀었다.
그건 다름 아닌.
“이건 쓰고 싶지 않았는데.”
작은 손거울……?
“어?”
반짝.
거울의 유리에 얼음의 끝이 닿았다고 생각될 무렵.
눈을 두 번 정도 깜빡이니 세상의 풍경이 바뀌어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방금까지는 마법이 저들을 향해있었는데.
-쾅!
어느덧 얼음 쐐기의 머리가 반대 방향으로 돌려졌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허, 윽…….”
피할 새는 없었다.
졸지에 서리 폭풍에 휩싸이게 된 시전자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빠른 속도로 얼어붙었다.
이쯤에서 잊혔던 도구가 등장한다.
‘쯧, 역시 실전 테스트는 일렀어.’
헌터 마켓에서 구매했었던 바로 그 아이템. 반사경.
[반사경] [효과 : E급 이하의 공격에 한해, 빛 속성 마법을 시전자에게 되돌림.]원래는 이런 보잘것없는 능력을 지닌 잡템이지만, 기려는 자신의 뛰어난 지식을 기반으로 이를 마개조하기에 이른다.
[반사경] [효과 : A급 이하의 공격에 한해, 마법의 방향을 거꾸로 바꿈.]속성에 상관없이 닿는 마법은 모조리 반사. 뭐 이런 사기템이 다 있나.
하지만 일일이 따져보면 빈틈도 많았다.
우선 마법이 확실한 방향성을 띠고 있어야 하고.
이 작은 손거울에 공격을 맞혀야 하고.
‘자칫하면 무용지물 되기 십상이지. 상대 술사가 마법이 반사되지 않게 범위기만 갈기면 끝장이니까.’
본판이 저급 마도구다 보니 내구성도 썩 좋진 않은지라.
“아이고, 이런.”
쩌적.
그 사이 반사경의 유리가 세 갈래로 쪼개졌다.
그는 망가진 마도구를 씁쓸하게 내려다봤다.
“어쨌든 나가자.”
그리고 기려는 이후 뒤늦게 동행인을 챙겼는데, 안윤승의 표정이 어째 좀.
“형님……!”
그 A급 헌터는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상대의 행동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싸움을 피하려 하시더니, 동생이 위험에 처하자 단박에 실력 행사를 할 줄이야…….
게다가 A급 방어계로 각성한 자신조차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던 스킬을 적에게 되돌려버리는 저 솜씨!
과연, 대단한 사람이다.
‘인품이면 인품. 실력이면 실력.’
김기려에 대한 평가는 점점 숭배 비스름하게 바뀌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는 이를 알 턱이 없고.
기려는 감동에 젖어있는 윤승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묵묵히 게이트를 나갔다.
“휴.”
지옥 같은 황금향을 뒤로하자 드디어 휴대폰도 전파가 잡힌다.
“올해 들어서 경찰만 몇 번 찾는 건지 원.”
“게이트 범죄는 협회로 전화해야 해요. 제가 바로 연락할게요!”
그들은 곧바로 신고를 진행했다.
얼마 안 가 협회에서 여러 직원이 나왔고.
게이트에 남겨졌던 테러리스트들은 얼어붙은 상태 그대로 긴급 체포되었다.
‘얼음 술사들은 날 때부터 냉기 저항도 높으니까. 겉은 저래도 죽진 않았겠지.’
심문이 아니라 확 고문이나 받아버려라.
기려는 연행되는 범죄자들의 뒤통수에 저주를 쏟아부으며, 안윤승이 서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오후 4시.
한국 헌터 협회 본관.
“흐으음.”
긴 생머리를 한 여성은 불안한 듯 복도를 서성거렸다.
“추가 연락은 언제 오는 거지.”
그녀는 다름 아닌 선우연이었다.
왜 이리 안절부절못하고 있느냐 물으면. 그거야 뭐, 방금 막 스틸 범죄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참이니까.
“설마 진압팀에 문제라도 생긴 건…….”
[서쳐] 스킬을 가진 이 헌터는 혹시 모를 범죄자의 도주를 예방하기 위해 대기 중에 있었다.그런데 그때.
위이이잉.
복도 끝의 자동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어떤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
밝은 염색모. 그리고 저 뱀 같은 눈. 익숙한 인상 아닌가.
“어서 오세요. 김기려 헌터.”
이만큼 자주 만나면 미운 얼굴도 정이 드는 법.
선우연은 그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간단한 안부를 물었는데.
“일 보러 오셨어요?”
“아뇨. 잡혀 왔어요.”
자세히 보니 이 F급 헌터. 손목에 뭔가 차고 있다.
쇠고랑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김기려는 허망한 눈으로 중얼거리며 협회 지하층으로 연행되었다.
…당혹스러운 광경이다.
***
배고프다.
그 왜,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보면 이럴 때 형사들이 설렁탕도 시켜주고 그러던데.
‘나도 밥 좀 먹고 하면 안 되나?’
협회 지하 1층.
창문도 없는 방에 강제로 끌려오게 된 나는 반쯤 짜증이 난 상태로 소파에 푹 기대앉았다.
이게 다 안윤승 탓이다.
‘제길!’
협회 직원들에게 사건 정황을 알릴 당시.
안윤승이 살짝 말실수를 했으니까.
-헌터님들. 그나저나 출구가 열려있네요?
-아, 네.
-보스는 누가 잡은 거예요?
-그거야 기려 형이…….
뒤늦게 수습하려 했다만 결과는 보이는 바와 같다.
협회 사람들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나를 순식간에 구속했다.
게이트 입장 미신고.
등급 제한 규정 무시.
무허가 수렵.
이번에 걸린 혐의만 해도 무려 3개라나.
‘망했다!’
앞선 2가지는 벌금으로 끝낼 수 있다지만 문제는 마지막 항목이다.
저건 자칫 잘못하면 정말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변호했다.
“종합하자면, 당신은 일개 운송업자고 황금향의 몬스터는 모두 안윤승이 잡았다는 거죠?”
“네!”
“입장 신고를 빠뜨린 건 정말 실수일 뿐이고?”
“당연하죠!”
그리고 이런 간절함이 먹힌 걸까?
잠시 뒤.
협회 직원들은 꺼림칙한 얼굴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를 풀어주었다.
F급이 A급 보스를 사냥?
그딴 말도 안 되는 혐의는 누구도 입증할 수 없었으니까.
‘고마워, 선우연!’
특히 이전에 진행한 각성 재검사 결과표가 많은 도움이 됐다.
덕분에 나는 게이트 입장 미신고에 대한 경고만 받고 해방됐다.
‘하하핫! 자유다.’
짤그랑.
수갑이 풀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활보한다.
드디어 모든 조사가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아이템 박스에 모아둔 노심을 팔아치워 부자가 되는 것밖에…!
“어.”
그런데 순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잠깐.’
갑자기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게이트 물품을 사고팔 때. 반드시 국가 거래소를 이용해야 한다.
세금 문제 때문에 법으로 그렇게 정해놨다는데. 외계인인 나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때 대략적인 거래 기록이 남는다는 것.
“….”
지금까지는 F급이 높은 등급의 소재를 팔아도 뭐.
딱히 거래소에서 별말 없었지만.
‘나는 지금 황금향의 몬스터를 건드렸다는 의심 아닌 의심을 사고 있는데, 이 와중에 내가 노심을 무더기로 거래하면?’
이런.
‘100% 걸려.’
그리고 역시나.
나와 비슷한 시기에 조사가 끝난 안윤승이 곧바로 연락을 줬다.
-형님, 일단 골렘들은 전부 제가 쓰러트린 거라고 해두긴 했는데요. 조사관님들이 그럼 사냥 증거는 어디에 뒀느냐면서, 막, 세무조사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지금…. 가지고 갈게.”
뚝.
통화가 끝난 뒤.
나는 말 없이 눈물을 삼켰다.
‘내 돈…….’
결론만 말하자면, 골렘 소재는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게 되었다.
업보였다.
***
목요일 아침.
“윤승 씨.”
“아, 선배님!”
안윤승은 협회 인근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선우연 헌터다.
“거래소에서 나오는 길이에요?”
“네네! 골렘 부품 좀 파느라.”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로 인사를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선우연은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상대를 불러세웠다.
“골렘이라면 어제 그 황금향의……?”
“왜요?”
“음,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요.”
그녀의 어조는 조심스러웠다.
“역시 그리드는 김기려 헌터가 죽인 거죠?”
윤승은 그 말이 나오자마자 뻣뻣하게 굳어 입을 떼지 못했다. 누가 봐도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이다.
“어휴.”
“저, 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네.”
이에 선우연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김기려 이 사람. 기어이 A급 보스를 죽여버리다니.
“조심 좀 하고 다녀요.”
“으으.”
“직원들 사이에서 벌써 이런저런 말 나오고 있는 거 알아요?”
사실 김기려는 실시간으로 또 다른 업보를 적립하는 중이었다.
이번 황금향 사건 때문에 드디어 헌터 협회가 김기려라는 각성자를 주시하기 시작했으니까.
지금은 비록 사소한 징계로 끝났을지라도.
게이트 입장 미신고라는 그 기록은 훗날 문제의 기자회견을 촉발하는 원흉이 됐다.
“진짜 마지막 경고예요. 또 F급을 상위 게이트에 빼돌리다 걸리기만 해봐요.”
선우연의 이 조언에 따랐더라면 그 지경까진 가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하여간 김기려 그 양반이 제일 문제야. 실력이 있으니까 안윤승도 안심하고 덥석덥석 A급 게이트에 들이잖아.’
차라리 김기려가 진짜 F급이면, 안윤승이 걱정돼서라도 불법 입장을 제지했을 터.
안 되겠다. 역시 한 마디 해두자.
“갑자기 어디로 전화하세요?”
“당신 짐꾼한테요.”
휙.
선우연은 휴대폰을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통화는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될 뿐이었다.
왠지 김이 새네.
“왜 그러세요? 안 받아요?”
“폰을 꺼놓았나 봐요.”
하지만 사건 당사자가 잠수를 타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그들은 흐지부지 대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