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21
420화
-영령의 후계자(1)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황충 길드.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고용 조건은 딱히 좋지 않기로 유명했고 헌터가 아닌 일반 직원은 상황이 더 나빴다.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상사에게 된통 깨진 데스크의 여직원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퇴근하고 싶다.’
오늘도 퇴근할 시간만 기다리던 그녀는 길드 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한껏 꾸민 미소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황충 길드입니다. 어떤 용무를 도와드릴까요?”
“길드 마스터랑 만나고 싶습니다.”
“네?”
올해의 황충 미소 상도 받은 적 있던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그대로 충격으로 굳어 버렸다.
‘이 남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대뜸 길드 하우스로 찾아와 길드 마스터를 만나고 싶다니.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묻는 자신의 말에 눈앞의 남자는 덤덤하게 다시 말했다.
“성이경 마스터를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왔다고 전해주세요.”
“혹시 따로 약속된 게 있으신가요?”
“아니요.”
처음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재차 마스터를 만나겠다는 남자의 말에 직원은 얼굴을 경련시켰다.
‘하, 아침부터 정신 나간 진상 고객이 걸렸네.’
길드 마스터가 누군가.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의 마스터이자 한국 S급 랭킹 1위였다.
그런 사람을 눈앞의 남자는 마치 옆집 사람 찾듯이 불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데스크의 여직원은 구겨지는 얼굴을 간신히 참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말이죠. 길드 마스터께서는…….”
“미스틱 길드의 도이현이 왔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예의 건에 대해서 상의드릴 게 있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꿀꺽.
남자의 입에서 도이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여직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난 한 달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초신성 S급 헌터.
그의 이름을 그녀가 왜 모르겠는가.
‘아씨, 뉴스에 나온 얼굴이 너무 흐릿해서 못 알아봤잖아.’
언론과의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았고 예린처럼 헌터 카드를 출시한 것도 아니기에 이현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 중계 카메라에 살짝 스친 얼굴이 전부.
그래서 여직원은 눈앞의 남자와 무혈의 도이현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서둘러 비서실로 연락을 넣은 여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현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히 도이현 헌터를 몰라보고……!”
매일같이 때려치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직장이었지만, 진짜 잘리게 된다면 당장 살길이 막막해지는 그녀였다.
‘아니, 잘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S급 헌터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길드에 불이익을 준다면?
황충 길드 마스터의 성격상 손해 배상은 물론이고 불법적인 위협까지 들어올지도 몰랐다.
“정말 죄송합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이는 여직원을 보며 이현은 당황해서 볼을 긁적였다.
“어…… 괜찮습니다.”
사실 이현은 왜 그녀가 사과하는지도 몰랐다.
지구-2의 S급 헌터들은 스타 연예인 아니, 그 이상의 대우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이현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가까운 S급 헌터라고 해봐야 설예린 헌터뿐이었다.
예린의 인기를 본 적이 있는 이현이었지만, 그녀는 진짜 연예인이었으니 그러려니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죄를 지었다는 듯 거듭 사과하는 여직원의 태도에 이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하세요.”
이현이 당황하고 있을 때 싸늘한 목소리 하나가 로비에 퍼졌다.
그러자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얼어붙은 듯 딱 멈췄다.
“도이현 헌터가 곤란해하고 있지 않나요? 사과도 과하면 민폐입니다. 아시겠어요?”
또각또각 데스크로 걸어오는 여성.
걷기만 해도 주변으로 위압을 내뿜는 듯한 그녀는 바로 성이경이었다.
‘기, 길드 마스터가 직접 내려오시다니?!’
로비에서 근무하던 모든 직원이 성이경의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누구인가. 대한민국 헌터계의 일인자였다.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 하더라도 그녀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누구를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에서 직접 행차하다니.
황충 길드가 세워진 이래로 전무후무한 사건에 모두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굳어 버린 황충 길드의 다른 직원들을 무시하곤 곧바로 이현에게로 다가왔다.
“미리 연락하시고 오셨으면 이런 일이 없으셨을 텐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연락처가 없어서요.”
“이런, 제가 연락처를 드리지 않는 실수를 범했네요. 후훗.”
성이경의 입가에 미소가 띄워지자 로비가 다시 한 차례 술렁였다.
이번에는 로비의 직원들뿐만 아니라 성이경을 수행하던 비서실의 직원들까지도 충격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모든 일에 냉랭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성이경이 웃다니?
언론들이 알았다면 당장 1면 기사로 낼 정도의 특종이었다.
“일단은 제 집무실로 가실까요?”
“그러죠.”
모두가 충격에 빠진 와중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두 사람이 성이경의 집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성이경이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말을 건넸다.
“도이현 헌터는 저를 상당히 꺼리시는군요.”
“제가 그랬나요? 기분 탓이겠죠.”
이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얼버무렸지만, 성이경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제가 감각이 좀 예민하니 기분 탓만은 아닌 거 같네요.”
“…….”
이현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정곡을 찌른 탓이었다.
“왜 저를 경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경의 얼굴 위로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발악하던 지구-1의 성이경의 얼굴이 겹쳤다.
하지만 그녀에게 지구-1에서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해줄 수는 없는 노릇.
이현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다른 이유를 가져다 댔다.
“……성이경 마스터도 아실 텐데요? 저에게 황충 길드의 첫인상이 좋지 않다는 걸.”
굳이 입으로 이름을 꺼내지 않았지만, 이진웅 스카우터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성이경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제가 사과드리죠. 저희 길드의 스카우터가 좀 과한 면이 있어요.”
천하의 성이경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라니.
엘리베이터에 둘 외에는 아무도 없어서 그렇지, 이 또한 알려진다면 대서특필될 특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현의 불쾌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불쾌함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조금 과하다구요? 스킬을 사용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세뇌하는 게?”
‘역시 성이경은 성이경인가. 여기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똑같네.’
이현은 성이경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거기다 그뿐만이 아니더군요. 차마 말할 수 없는 범죄들을 저지르셨더군요. 틀립니까?”
성이경은 황충 길드의 명령에 불복하거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헌터들을 이진웅을 시켜 처리해왔다.
방법은 간단했다. 세뇌를 걸어 던전에 넣은 다음, 던전 안에서 죽인다.
그 후, 던전 공략 중에 사망했다고 발표하면 그만이었다.
이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여온 성이경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스틱 길드에서 이진웅의 신병을 맡고 있습니다. 당장은 우리가 협조해야 하니 터뜨리지 않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을 겁니다.”
즉, 서로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이진웅의 신병을 헌터 협회로 넘길 거라는 이현의 협박이었다.
그 협박에도 성이경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진웅 그자가 자기 입에 맞는 말만 했나 보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이경의 말에 이현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헌터 협회에 알리셔도 큰 문제는 안 될 거예요. 그쪽도 이미 다 아는 사안이니까.”
“한패입니까?”
“전략적 협력 관계라고 해두죠.”
헌터 협회가 살인을 방조해왔다는 이경의 말에 이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이현의 모습에 성이경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때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자세한 건 사무실에서 설명해 드리죠. 따라오세요.”
성이경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직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직접 손수 차를 타서 이현에게 내왔다.
“드세요. 이런 걸 자주 해보진 않아서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네요.”
이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건드리지도 않자, 성이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처리한 헌터들은 모두 블랙 헌터 즉, 범죄를 저지른 헌터였어요.”
“……블랙 헌터요?”
이현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자 성이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르고 있었네요. 하긴, 도이현 헌터는 이제 헌터가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테니.”
성이경은 자신의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인상을 썼다.
“맛없네. 안 마시길 잘했어요.”
다시 차를 내려놓은 성이경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설명을 요구하는 이현을 보며 짧게 웃었다.
남들은 평생 보기도 힘든 미소를 이현은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보는 것이었다.
“헌터는 각성하자마자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 힘을 가지게 돼요. 그리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그 힘은 천문학적으로 커지죠. S급인 도이현 헌터도 그건 잘 알 거예요.”
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2에 와서 목격한 헌터의 힘은 이현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현이 싸워 온 사도나 괴물들과 비교하면 조금 손색이 있을지 몰라도 일반인에게는 신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성이경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과 같은 능력이죠. 하지만 헌터들은 정의와 희생정신을 갖춘 영웅들과는 달랐어요.”
던전 사태가 일어나고 헌터들이 생기기 시작한 지 15년.
1세대 헌터들은 던전에 맞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던전 공략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2세대 헌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 부작용이 터져 나왔다.
“힘을 가졌지만,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자들이 늘어났죠. 우린 그들을 블랙 헌터라고 불러요.”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이 나라엔 법이 있고 경찰이 있었을 텐데요?”
“있기야 하죠.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이현의 물음에 이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경찰은 헌터를 잡을 수 없어요. 헌터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헌터 요원들로는 그 많은 헌터들을 감당하기 힘들구요. 거기다….”
이경이 비릿한 미소를 띠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강 건너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윗분들은 헌터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걸 밝히기 꺼리시더군요.”
던전 사태가 일어나고 난 뒤로 헌터는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안전 보장 수단이었다.
그런 헌터에게 인격적인 문제가 있다면?
당장 시민들이 던전을 공략할 헌터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질 터였다.
“그래서 황충 길드와 헌터 협회, 그리고 여의도가 타협을 했죠.”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가 그들의 족쇄가 되겠다구요.”
“족쇄요?”
“세뇌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진웅 혼자일까요? 장담하건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뇌 능력 헌터를 보유한 길드가 우리 황충일 거예요.”
이현은 그제야 성이경이 말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헌터 협회는 헌터의 범죄를 막고 싶었고, 높으신 분들은 국가의 혼란을 막고 싶었다.
그리고 황충 길드에는 세뇌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대신, 국가의 지원을 독차지했죠. 그런 이야기에요.”
황충 길드는 일종의 감옥이었다.
블랙 헌터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들이 원칙에 어긋나는 짓을 다시 저지를 때 그들을 처벌하는 감옥.
그 감옥의 간수장이 이현의 눈앞에 있는 성이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