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23
수비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떠들었다.
목격담은 얼마든지 있었다.
첫날에 멍투성이가 된 채로 걸어나 온 것도, 자루를 반도 못 채웠던 것 도.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자루가 점점 부풀어오르고, 돌아가는 걸음이 가벼 워졌던 것도.
그들만큼은 지켜보고 있었다.
수비대의 그 누구보다 앳된 얼굴을
한 모험가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뛰어넘는 나날을.
“어, 나온다!”
그때 였다.
한 사람이 외치기가 무섭게 병사들 은 모두 원위치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들의 낯이 두꺼운 편이라도 당사 자를 눈앞에 둔 채로 노름판을 펴놓 을 순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지하도를 빠져나온 레온이 큼지막한 자루 하나를 쿵 내 려놓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병사 하나가 언제나처럼 경례했다.
레온은 지친 얼굴로 그 인사를 받 으면서 말했다.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 예?”
“〈락 슬라임 토벌〉말입니다. 슬라 임 숫자도 많이 줄었고, 성벽에 인접 한 구역은 깔끔하게 치웠습니다. 당 분간은 토벌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적어도 몇 달간은 내버려둬도 된다.
랫맨처럼 수천 마리를 해치우진 못 했지만, 천 마리가 조금 안 되게 토 벌하긴 했다. 또한, 락 슬라임의 증 식속도는 랫맨에 비해서 엄청나게 느린 편이니, 그 공백을 채우려면 한
참은 더 걸릴 터였다.
이제 의뢰의 마무리를 위해서 길드 에 갈 필요가 있었으나, 레온은 곧장 숙소로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비 대 병사에게 자루를 건네주면서 부 탁했다.
“수비대장님께 전달해주세요. 그리 고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완수했다 는 연락도 좀….”
“아, 예! 대장님께 전해드리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그의 용무는 딱 거기까지였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병사에게 자
루와 보고를 떠넘긴 그는 거침없이 시내로 멀어져갔다.
3주만에 너무 익숙해진 뒷모습이었 다.
“크게 될 녀석이구만.”
“아무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수비대원들 이 미묘한 아쉬움을 담아 떠들어댔 다. 내일이고 모레고 볼 수 있을 것 같더니만, 오늘로 끝나버릴 줄은 몰 랐다.
경계근무의 낙이 한 가지 줄어버린 것이다.
하나 레온이 수비대의 아쉬움을 알
리가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여관 으로 돌아갈 분. 다른 방향으로 샐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보법〉덕분 에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지 않고 있 지만, 한 번 주저앉으면 일어서기 힘 들 정도다.
끼이익.
어떻게든 제 방에 돌아온 레온이 문을 닫았다.
마음 같아서는 침대에 눕고 싶었으 나, 오늘의 할 일은 아직 남아있었 다. 체력을 철저하게 소모하고 온 것 도 그 때문이다. 지금부터 할 일에 체력은 불필요했으니까.
“드디어?”
[그래, 오늘이다.]레온의 한 마디에. 엘시드가 즉답했 다.
오늘이었다.
〈락 슬라임 토벌〉로 축적한 힘을 사용해서, 오러에 첫 발을 들여놓기 로 한 날이! 탈진 직전의 몸 상태로 도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락 슬라임이 마력 기반의
생명체라서 흡수하는 힘이 클 거라 고 예상하기는 했다.
그런데 엘시드의 예상은 좀 부족했 던 것이, 오랫동안 토벌당하지 않은 슬라임들의 마력은 그 이상이었다. 예정이 한 달 가까이 당겨졌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러입문에 필요한 수준의 힘은 달 성했다.
다시 한 번 검토를 마친 엘시드가 말했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라.]레온은 그 지시에 따라서 움직였다.
다른 부분도 그러했지만, 오러연공
법에 있어서 그가 참견할 만한 부분 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온전히 엘시드의 말을 믿고, 따라갈 뿐.
[레온, 네 오러입문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대답하지는 않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명문가의 자손은 날 때부터 ‘세례’ 를 받고, 영약으로 몸을 보양하면서 오러의 기반을 구축한다. 그래서 그 들의 혈맥에는 오러순환에 방해가 되는 불순물이 없고, 뒤늦게 오러를 익힌 자들보다 강대한 출력과 저장
량을 지니게 된다.]
신분의 격차가 곧 실력의 격차로 이어지는, 태생적인 벽의 탄생비화 중 하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 벽 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처럼 들리겠 지만.
엘시드는 하지만, 하고 그 생각을 부정했다.
[유년기에 이루어지는 ‘세례’에는 큰 단점이 있다. 어린애의 혈맥은 연약 하고 부드러운데, 그 통로를 말끔하 게 닦아버리니 강해질 필요가 없어 지는 거다. 그래서 유년기에 ‘세례’를 받은 녀석들은 제대로 된 벽을 뛰어 넘기가 힘들지.]그 벽의 이름이 바로 ‘마스터’다.
마스터로 거듭나려면 막대한 양의 오러를 압축해서 몸 안에 노심(爐心) 을 만들어야하는데, 유년기에 세례를 받은 경우에는 대부분 그 압력을 버 텨내지 못한다.
그래서 일정 수준까지는 귀족 출신 들이 많지만, 마스터까지 올라가고 나면 신분의 분포가 엇비슷하다.
어릴 적의 특혜가 발목을 붙잡아버 리는 셈이다.
[뭐, 진정한 명문이라면 그마저도 알고 대처하지만…. 그런 곳은 드물 지. 아무튼, 혈맥은 일찍 뚫는다고
다 좋은 게 아닌 것만 알아둬라. 노 폐물이 쌓이고, 불순물로 굳어진 혈 맥은 그 강도만큼은 곱게 큰 애송이 들을 월등히 능가한다.]
“•••단점도 있지?”
귀족들도 그냥 바보가 아니다. 눈앞 의 작은 이득만 보고서 미래의 큰 이득을 외면할 리가 있겠는가.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가 있었기 때 문이었다.
[‘세례’를 받지 않고 혈맥을 개척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오러가 소모된 다. 그 성장속도는 ‘세례’를 받은 녀 석들의 2할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 지. 재능이 부족하다면 평생 노력해 도 마스터는커녕 오러의 유형화조차 이뤄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는 쪽을 선택 한다.
미래의 불확실한 대성공에 몸을 내 던지는 것보다, 적당하고 확실한 성 공이 더 좋았으니까. 부족한 것 없이 태어난 자들이 왜 도박을 하겠는가?
그러나 레온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 는 걸 알았다. 엘시드는 지금 ‘하나 의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부터 레온이 뛰어넘어야할 시 련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 불순물로 막힌 혈 맥을 ‘세례’로 뚫으면, 그 반발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죽는다. 막힌 혈관 을 정과 망치로 두들겨서 뚫어낸다 고 생각해라. 어떻게 될까?]
“찢어지거나… 부서진다?”
[정답.]
섬뜩한 소리를 한 엘시드가 단언했 다.
[너 같은 경우에는 내가 있지. 성검
의 힘으로 혈맥을 보호하고, 다치는 것과 동시에 치유할 수 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할 거야. 의식을 놓기라도 하면 ‘세 례’는 실패다. B랭크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100일이 아니라 1년으로 늘 어날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레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 답했다.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 어.”
[•••그래, 넌 그렇지.]그제서야 위협을 멈춘 엘시드가 씩
웃었다.
겁을 준다고 물러나거나 할 놈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설마 1초도 망 설이지 않을 줄이야.
마음에 든다.
레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돌돌 만 수 건을 입에 물었다.
고통 때문에 이빨이 부서지거나, 혓 바닥을 물어뜯는 상황을 피하기 위 해서였다. ■벌’을 경험할 때에 느꼈 다. 고통에 견딜 수 있는 정신력과
별개로, 몸은 반사적으로 수축하고 경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 눈을 감으니 심장소리만 요란하 다.
눈을 감아버린 레온은 볼 수 없는, 그의 왼손등에서 시작된 빛이 곧 여 관방을 가득 채웠다.
[각오해라.]엘시드의 진지한 목소리가 울려퍼 지고.
빛이 폭발했다.
태양과도 같은 황금빛. 성검으로부
터 뿜어져나온 신성력이 검의 형상 으로 레온을 둘러쌌다.
자격 없는 자에게는 보이지도, 들리 지도 않는다.
10자루의 광검.
그중에 한 자루가 비스듬히 세워지 더니, 레온의 등 중심에 푹 박혀들었 다. 출혈은 없다. 살이 갈라진 것도 아니다. 몸속, 오러가 홀러야할 혈맥 을 파고들었을 분.
“—
레온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무시무시한 격통!
수건을 물어뜯는 이빨이 다 비걱거 린다. 실핏줄이 터져나간 안구가 붉 게 물들고, 순간적으로 온몸 근육이 수축하면서 몸 전체가 쪼그라들듯이 경련했다.
달군 송곳을 척추뼈에 쑤셔박는 것 같다.
레온의 눈앞이 새하얗게 타올랐다 가, 이내 불꽃까지 튀면서 깜박거리 기 시작했다. 신경계 전체에 과부하 가 온 거다.
‘그아아……악!’
입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비명을 삼킨다.
호흡은 이미 멈춰있었다.
발버둥치는 근육이 벼를 부러트릴 것처럼 조여대고, 혈액을 땀구멍으로 짜내려는 것처럼 몸을 비튼다. 이전 에 근신경계를 활성화할 때의 통증 도 상당했었지만, 지금의 것과 비교 하자면 갓난아기의 투정 수준이다.
이게 체력을 다 소모하고 시작한 이유였다. 근육에 여력이 남아있으 면, 그 힘이 스스로를 망가트린다.
핏!
레온의 코에서 핏줄기가 붐어져나 왔다. 체내의 압력이 너무 높아져서 점막을 찢은 것이다.
[두 개째.]그러나 엘시드는 무덤덤하게 검을 움직였다.
두 번째의 광검.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검이 레온의 목덜미를 관통했다. 머리와 몸을 연
결해주는 뼈, 경추는 오러연공법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기 관이었다.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힘이 거쳐야 할 관문. 신비학(神秘學)의 관점에서 는 ‘비슈다 차크라’라고 부르기도 한 다.
그와 동시에 레온의 몸이 뻣뻣해졌 다.
의식을 잃어버린 건 아니나, 몸의 통제권을 상실한 탓이다. 중추신경에 스며든 신성력이 몸 전체로 퍼져, 19년이나 흐를 줄 몰랐던 혈맥에 힘
을 불어넣는다.
이것이야말로 ‘세례’의 시작이다.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즉사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작업이 계속 해서 진행되었다.
[다섯 개까지 한꺼번에 간다.]양쪽 쇄골의 윗부분과 상복부를 관 통한다.
세 자루의 광검이 팔로 이어지는 대맥C시M)과 심장과 배를 연결해주 는 대맥을 꿰뚫었다. 혈관에 가득 쌓 여있던 불순물이 그 즉시 녹아내리 며 검붉은 땀으로 홀러나온다.
그때, 레온은 팔이 잘려나간 줄 알
았다.
양팔을 절단하고 배에 꼬챙이를 박 아넣으면 이런 느낌일까? 흘러나온 노폐물의 감촉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기세를 타고 나머지 광검들이 내리꽂혔다.
하복부와 양쪽 고관절.
단전에서 하반신으로 흐르는 대맥 이 뻥 뚫려, 막대한 양의 불순물이 소변처럼 흘렀다. 정화의 빛이 아니 었다면 그 독한 악취에 여관주인이 올라왔을 것이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레온이 몽롱 해졌다.
‘……아.’
팔다리가 다 잘려나가고, 배를 위아 래로 꿰뚫리자 고통마저 희미해지며 의식이 뚝뚝 점멸했다.
벼랑 끝에서 한 걸음을 남겨두고, 겨우 멈췄다.
‘••••••아, 직.’
필사적으로 두 눈을 깜빡인다.
눈꺼풀을 한 번 내려놨다가 들어올 리는데 실신할 것만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아니, 신경계가 뒤집힌 상태
로 그렇게까지 한 것이 오히려 대단 했다.
엘시드 역시 흡족하게 미소짓더니, 남은 두 자루의 광검을 움직여서 발 바닥에 찔러넣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Q ”
레온은 짧게 신음하고서 그대로 실 신해버렸다. 자세를 바꿀 여력조차 없어, 벽에 기대어서 앉은 자세로.
열 자루의 광검을 모두 견뎌냈다.
비록 엘시드가 통상적인 ‘세례’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시행했다고 는 하나, 그 인내력을 폄하할 순 없
었다. 혈관에 피 대신 염산이 흐르 고, 벼 대신에 달군 철봉을 박아넣어 도 그가 경험한 것보다는 편할 터였 다.
[정신력 하나는 이미 마스터급인 가.]엘시드마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다섯 자루를 버텼으면 그냥 기절 해도 괜찮았는데, 설마 열 자루를 다 견뎌내다니. ‘의지’를 각성한 상태라 는 걸 감안해도 상상 이상이로군. 안 그러냐?] [—!] [아, 시끄러. 용사의 교육은 나한테일임한다고 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다 잘됐는데 뭐가 문제야?]
여신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선대용사의 영혼을 품은 성검이 껄 렁하게 말대답했다.
[네 입장에서도 용사는 강할수록 좋은 거잖아. 나 다음으로 뽑았던 놈 들은 전부 기준미달이었고. 그래서 날 성검에 넣는 편법까지 쓴 거 아 니냐?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됐으니 까.] [—–.] [그래. 진정한 의미에서 ‘용사’는 태 어날 때부터 용사거나, 혹독하게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돼. 천부의 재능 을 가졌다면 모를까, 나 말고는 그런 놈 없었잖냐.] [——.]
성왕 로드릭.
그 이름을 거론하자 여신도 할 말 이 없어졌다. 뒷산에 나온 오우거를 열두 살에 때려잡고, 열다섯에 마스 터의 벽을 뚫어, 성인식을 할 쯤에는 드래곤보다 강력했던 게 그였다.
천인(天人).
여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천문학적 인 확률로 태어난 초인이 바로 로드 릭이었다. 성검도 마왕에게 통하는
무기가 없다보니 받았을 분, 그의 강 함에는 성검조차 별 도움이 되지 않 았다.
그게 엘시드가 리안을 선택하지 않 은 이유다. 그 정도의 힘을 목표한다 면, 타고난 재능의 격차 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로드릭처럼 초월적인 수준이 아니라면 리안이나 레온이나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 후계자다. 그러니 그 이상의 참 견은 그만두라고.] [——.]여신은 그 말에 수긍하고서 천상으 로 돌아갔다.
[나 참, 싱겁기는.]여관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상시 처럼 고요해졌다. 여신이 한 번 강림 했던 장소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방 안에 가득히 차올랐던 신위(神 位)가 홑어져간다.
필멸자는 감히 다루기는커녕 느끼 지도 못하는 힘.
그러나 엘시드는 그 힘에 접촉한 순간, 봉인되었던 권능이 잠깐 풀려 나오는 것을 느꼈다. 여신의 배려인 지, 그냥 실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음?]몇 초에 지나지 않는 찰나, 엘시드 는 도시의 한쪽 구석에서 익숙하고 도 불쾌한 힘을 감지했다.
사악의 무리.
300년 전에 헤아릴 수도 없이 죽 였음에도 아직 남아있었나.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었다. 쯧, 하고 거칠게 혀를 찬 엘시드가 레온을 돌아보았 다.
오러에 막 입문했을 분인 그에게는 벅찬 상대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으니, 참 어려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