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9
62화 진실 (1)
“줘아~ 마셔, 마셔~!!”
“…….”
석두는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의구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있는 여성, 레이나.
겉으로는 아리따운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정체는 드래곤이다.
그녀 스스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설마 술에 취하겠나.
절대로 취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밥 먹듯이 해온 레이나였으나…….
“너, 취한 거 같다.”
석두의 말이 핵심을 찌른다.
잔뜩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그리고 혀가 꼬여서 발음도 이상하게 굴러 나온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레이나는 석두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한다.
“눼가? 그럴 뤼가 있나!”
“아니, 누가 봐도 명백하게 취했어. 이제 슬슬 술판 접고 집으로 들어가라. 평범한 사람의 술버릇은 감당할 수 있겠지만, 너의 술버릇은 인류 모두가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재미없는 남자구만.”
그의 말 때문일까.
술맛이 뚝 떨어진 모양인지 레이나가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석두가 그녀를 부축해 주려고 하는 순간.
“…한 가지 물어보마.”
난데없이 질문을 던지는 레이나 덕분에 석두의 행동이 일시적으로 정지된다.
이 순간만큼은 술에 취했다고 보기 힘든 멀쩡한 상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뭐지?”
“넌…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건가?”
“…….”
“지금까지 너의 전임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나를 배신해 왔지. 물론 루틴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 덕분에 나는 없던 인간불신에 걸려 버렸어. 어떻게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보이는지 원…….”
“먼저 배신을 했기에 목숨을 빼앗은 건가?”
“그들이 죽임을 당한 건… 힘이 생겼다고 기고만장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 힘이 본인의 것이 아님을 망각했기에 벌어진 참극이지. 결코 내 잘못이 아니야.”
“…….”
“힘을 주는 대신, 그들은 날 위해 봉사해야 했다. 물론 그건 너도 마찬가지. 드래곤의 보물을 찾을 때까지 나를 대신해 움직여 주면 돼.”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한 가지 물어보지.”
그동안 물어보지 못했던 석두의 질문.
하지만 이 자리라면, 왠지 레이나로부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도난당한 너의 물건은… 너 정도의 능력과 힘이라면 스스로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인간을 통해 찾아오게끔 하려는 거지?”
잠시 입을 굳게 닫은 레이나.
석두의 예상이 틀린 걸까.
좀처럼 속내를 보여주지 않은 그녀이기 때문에 이번 질문에서도 명쾌한 해답을 듣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 시작하던 석두였으나.
“처음에는… 단순히 오락이었다.”
“오락?”
“그래. 내가 직접 찾으면 물론 손쉬워질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너처럼 조직을 구성하고 정보를 습득한 뒤 괴도라는 행태를 선보이며 물건만 쏙 빼오거나 하는 그런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은 못 해. 오로지 힘으로 놈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지.”
“그렇긴 하겠군.”
“나 역시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다. 나의 숨결 한 번에 인류의 문명 하나가 멸망했을 정도니까.”
“…….”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를 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락을 겸해서, 그리고 내 스스로 자제를 한다는 측면에서 인간 용병을 고용했지.”
“그 결과는… 실패였겠군.”
만약 첫 번째 전임자가 슬레이어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아 레이나를 도아서 드래곤의 보물을 찾는 일을 계속 해왔다면, 적어도 레이나로부터 ‘신뢰’라는 것을 얻었을 가능성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꿰매지게 될 경우.
뒤의 단추들 역시 어긋나는 법이다.
“그 뒤부터는… 인간이란 존재를 믿고 싶다는 나의 고집 때문에 계속해서 너와 같은 괴도들을 만들어왔다.”
“믿고 싶다라…….”
“단 한 명만이라도 좋으니까 나를 믿어주고 곁에서 함께 해줄 인간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오기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하고 있지. 하지만 모두 실패했어. 아마 너 역시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언젠가는 나를 배신하겠지.”
“…….”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난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하려고 들 테니까.”
“너의 시험을 통과하는 인간이 나온다면…… 넌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거지?”
“…글쎄.”
레이나의 눈빛이 변한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당찬 자신감이 아닌…….
어딘지 모를 슬픔이란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히는 듯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마도 텔레포트를 통해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추정된다.
“역시 드래곤이란 제멋대로인 생물이군.”
홀로 자리에 앉은 채 다시 술잔을 비워내기 시작하는 석두.
드래곤을 또 다른 자연재해로 취급하고 있는 조직, 그곳이 바로 슬레이어다.
그리고 인류에게 있어서 잠재적인 위험으로 작용하는 존재가 드래곤이다.
두 존재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 김석두가 서 있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 * *
계속해서 이어지는 어둠의 통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노인, 노 회장은 어둠이 익숙한 듯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복도의 끝에 다다른다.
이윽고 손을 뻗어 두꺼운 강철로 제조된 문 위에 손을 얹자, 보라색의 원형 마법진이 빛을 뽐내며 생성된다.
드르륵!
양쪽의 철문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복도 위에서 조금씩 흙가루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며 철문의 안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노 회장.
좁은 복도를 지나 거대한 빈 공간이 노 회장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등장하자, 갑자기 공간 위에 구슬 다수가 번쩍이며 강한 빛을 발현한다.
“늦었습니다, 노 회장님.”
“허허… 나이를 먹다 보니 준비하는 게 좀 오래 걸려서 말이야.”
“앉으시지요.”
“고맙네.”
젊은 남성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 노 회장.
주변에는 이미 노 회장과 같이 검은 정장 차림을 갖춘 채 앉아 있는 11명의 사람이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노 회장이 앉음으로써 인해 비어 있던 의자가 채워지게 되자, 원형 형태로 되어 있는 탁자를 중심으로 둥글게 앉은 이들을 향해 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전원 다 모인 거 같으니… 슬슬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어흠…….”
“…….”
쑥덕거리던 자들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이야기를 주도해 가는 한 노인을 바라본다.
슬레이어의 수장을 맡고 있는 노인, 웨이틀.
겉으로 보기에는 노 회장과 얼핏 연령이 비슷해 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물론 여기 모인 이들 대다수의 연령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드래곤 사냥꾼 집단, 슬레이어를 이끌어가는 장로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우리를 굳이 이 자리에 모이게 만든 이유부터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참가 멤버 중 한 노인이 손을 슬며시 들고서 웨이틀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장로들이 전원 출석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집의 의미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단하오.”
웨이틀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다른 장로들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루틴이 레이나에 의해 죽었소.”
“저런…….”
“쯧쯧.”
루틴의 죽음.
꽤 예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소식통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내고 있는 장로들도 몇몇 있다 보니 이제야 루틴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실시간으로 루틴의 죽음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있던 장로들이 대다수다.
그의 죽음을 몰랐던 이는 한두 명 정도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루틴은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재였다.
“드래곤의 심장을 지닌 인재를 겨우 우리 쪽 세력으로 돌렸다 싶었는데…… 곧바로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젊은 나이었지.”
“너무 지나치게 호기를 부렸어. 적당히 사릴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것이 젊은이들의 특권이지요.”
여기저기서 장로들의 말이 새어나온다.
루틴의 죽음을 두고 각자 다른 시선으로 그를 평가하는 듯한 그런 말들이 회의실 공간을 채워간다.
그러는 사이에.
“조용.”
웨이틀의 한마디에 장로들이 일순간 입을 닫는다.
그는 장로들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다.
슬레이어 내부에서 웨이틀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
노 회장 역시 이들을 예의주시한다.
그는 지금까지 루틴의 죽음이 발표된 이후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들을 관찰하고 있을 뿐.
그런 노 회장의 제3자 같은 시선이 신경 쓰였던 것일까.
“노 회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한테 무엇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군?”
“루틴의 죽음에 대해서지. 그자는 노 회장, 당신이 데려온 인재였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죽음으로 몰아갔던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그자의 쓸데없는 고집과 오기, 그리고 안달감이 그의 목숨을 앗아 갔을 뿐.”
“…….”
어찌 보면 웨이틀은 노 회장에게 루틴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빌미로 트집을 잡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 회장은 루틴의 죽음이 자신의 권한 바깥에서 벌어진 일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난 어디까지나 루틴을 회유하고 이곳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했을 뿐, 그 이후에 드래곤의 보물을 파는 상인으로서 일을 시키고, 다른 역할을 배정한 건 웨이틀, 당신 아닌가.”
“…….”
“나에게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데…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난 이곳에 심문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드래곤을 놔두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을 뿐이네. 만약 이곳이 나의 책임을 묻는 장소가 된다고 한다면… 곧장 떠나는 수밖에 없지.”
“크흠…….”
웨이틀이 헛기침을 내뱉기 시작한다.
노 회장은 슬레이어라는 집단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나중에 합류한 장로이면서도 동시에 능력 또한 탁월하다.
드래곤의 심장을 지니고 있던 루틴은 사실 슬레이어의 주력 중 하나였다. 루틴을 회유함으로써 적의 세력을 반감시킴과 동시에 슬레이어의 힘을 강화시킨 건 오로지 노 회장만의 공로임에는 틀림없다.
애초에 루틴은 슬레이어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이 슬레이어에게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루틴이 합류하기 전인 본래의 슬레이어로 돌아왔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알겠네. 그 점에 대해서는 내 사과하도록 하지.”
웨이틀이 솔직하게 노 회장한테 사과의 말을 건넨다.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집의 방향성과 맞지 않게 추궁의 의미가 가득한 발언을 내뱉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신경 쓰지 말게. 나도 신경 안 쓸 테니.”
“…고맙군.”
두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이 회의장 내부에 감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