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48화
끝나지 않은 위협 (1)
-카앙!!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검을 쥔 손을 타고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김시훈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바닥을 디딘 발이 대지에 깊게 박혔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소리.
검 자루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루드비히….”
고개를 들었다.
루드비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넘실거리는 마기와 몸을 휘감고 있는 역겨운 녹색 촉수.
그의 기억 속 루드비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
“제길.”
김시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떨렸다. 전신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사탄의 공격으로 두 번째 산사태가 일어난 후.
그를 막기 위해 너무도 많은 내공을 쏟아 부었다.
‘안 돼.’
김시훈은 흐릿해지는 의식의 끈을 잡았다.
‘아직 쓰러지면 안 돼.’
타락한 루드비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드비히의 공허한 눈빛에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상태로,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그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끝내야 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끝내지 못한 일이다.
그가 매듭을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쉰다.
단전을 쥐어짜내며 내공을 끌어올린다.
“크, 아으.”
“…….”
괴물처럼 괴성을 흘리고 있는 루드비히.
B급 좀비 영화에서 친구가 좀비가 됐을 때와 비슷한 상황일까.
‘너무 흔해 빠진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는가.
타락한 루드비히의 모습은 김시훈의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크아아아아!!”
루드비히가 돌진했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검을 쥐었다.
성검 루드비히. 그의 친구의 이름과 같은 검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창룡난무.’
성검에서 쏟아진 새하얀 검기가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루드비히는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대검을 든 채 검기의 폭풍에 몸을 던졌다.
-까가가가가가강!!!
불꽃이 튀었다.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일초에도 수십 번 이상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
쿵. 거칠게 진각을 밟은 루드비히가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특별한 기술도, 복잡한 묘리도 없다.
그냥 압도적인 파워를 이용한 공격.
“크읏!”
고개를 낮춰 공격을 피했다. 머리칼이 흔들리며 루드비히의 검이 스쳐 지나간다.
검을 따라 휘몰아치는 풍압만으로도 피부가 벌어지며 피가 흘렀다.
김시훈은 발을 박차 거리를 벌렸다.
‘정면 대결은 답이 없어.’
힘도, 스피드도 루드비히 쪽이 압도적.
마기 특유의 파괴적인 기운을 쉬지 않고 뿌려댔다.
이 상황에서 정면 대결은 자살 행위였다.
“…….”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숨을 들이쉬었다.
검사인 그에게 정면 대결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
‘이기어검.’
손을 든다.
전장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무기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바닥을 보이던 내공이 빠른 속도로 닳아갔다.
“크, 아으.”
비틀. 김시훈의 몸이 휘청거렸다.
머리가 뜨겁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띠링.
[경고.] [내공이 부족합니다. 더 이상의 내공은 운용하면 ‘주화입마’ 상태에 돌입합니다.]“크윽….”
시야가 일그러진다.
손끝이 떨리며 무력감이 전신을 짓누른다.
‘어쩌, 라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든다.
주화입마고 나발이고 지금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카앙! 캉! 카아앙!
총을 쏘듯 검을 쏘아 보낸다.
공중에 떠오른 수십 개의 무기가 루드비히를 향해 쏟아졌다.
“크아아아아!!”
루드비히가 대검을 휘둘렀다.
난폭한 짐승이 날뛰는 것처럼 본능에만 의지한, 막무가내 공격.
카앙. 쏟아지는 창이 대검에 맞는다. 박살 났다.
철퇴가, 낫이, 도끼가.
박살났다.
쪼개지고, 비틀리고, 잘려나간다.
“쿨럭.”
김시훈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내공을 쥐어짜낸 탓에 주화입마가 시작됐다.
속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
뜨거운 용암이 혈관을 돌며 전신을 태우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 으.”
손을 뻗었다.
바닥에 떨어진 성검을 쥐려고 했다.
-땡그랑.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아귀가 성검을 놓쳤다.
“…….”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몬에게 양팔이 사라진 후, 검을 쥐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기억.
두려움이 밀려왔다.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혀, 형.”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애타게 찾았다.
‘항상 이럴 때는….’
이제는 피가 이어진 가족보다도, 더욱 소중한 사람이 된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랬다.
언제나 이럴 때는, 강우가 나타나 그를 도왔다.
사탄이 심어둔 씨앗으로 타락했을 때도.
마몬에게 두 팔을 잃고 쓰러졌을 때도.
루시퍼의 권속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도.
그리고.
‘처음, 김영훈에게 당했을 때부터.’
강우는 언제나 가장 위급할 때, 가장 절실할 때 나타나 그를 도왔다.
“하, 하하.”
웃음이 흘러나왔다.
김시훈은 고개를 숙였다. 허탈한 웃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진짜… 병신 새끼.”
한심한 쓰레기.
겁 많은 머저리.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깨닫고 있었다.
외면했을 뿐이다.
보기 싫은 것에서 눈을 돌렸을 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어서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그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의 재능도, 노력도, 신념과 의지도.
강우가 없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
김시훈은 다시 손을 뻗었다.
성검을 움켜쥐었다.
‘일어서.’
검을 지팡이처럼 땅에 박아 넣은 채,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단 말인가.
-띠링.
[경고, 경고.] [주화입마 상태에 돌입합니다.]“닥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검을 쥔 채 루드비히를 향해 겨눴다.
‘강우 형.’
강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독하게, 홀로 앞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
그가 걷는 길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짊어진 채,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이젠.”
언제까지 그의 뒤를 따를 것인가.
언제까지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볼 것인가.
김시훈은 후들거리는 두 발에 힘을 주었다.
강우의 도움도, 무신의 도움도 없었다.
처음으로.
정말 지긋지긋한 패배 끝에.
홀로 일어섰다.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아득히 보이는 강우의 뒷모습. 그 뒷모습을 향해, 거칠게 발을 굴렀다.
* * *
“쿨럭! 쿨럭!”
새빨간 선혈이 쏟아졌다.
덜덜 다리가 떨렸다. 당장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았다.
“아, 으, 아.”
“…….”
희미한 의식은 끈을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루드비히가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진 것이 보였다.
그의 심장을 꿰뚫은 새하얀 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과 같은 루드비히였다.
“김, 시훈…?”
순간적으로, 그의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
루드비히는 덜덜 떨리는 손을 그에게 뻗었다.
“놈을, 조심… 모든 일은… 그놈이 벌인….”
루드비히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루드비히의 몸을 땅에 눕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알고 있다. 루드비히.”
“…….”
“사탄은 꼭 내 손으로 처단할게.”
“아, 니… 그게 아니….”
“편히 쉬어라.”
더 이상 루드비히를 고통받게 할 수는 없었다.
김시훈은 망설임 없이 루드비히의 가슴에 박힌 성검을 비틀었다.
루드비히의 몸이 검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크읏….”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주변 전장을 살폈다.
‘거의 끝났나.’
어느새 전쟁은 막바지에 들어서 있었다.
천사들과 빛의 감시자, 가디언즈가 협력한 연합군은 악마교의 세력을 몰아붙였다.
끝까지 질기게 버티던 악마들도 검은 피를 뿌리며 하나둘씩 쓰러졌다.
“…….”
악마교와의 기나긴 싸움도 슬슬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김시훈은 성검에서 손을 뗐다. 성검이 빛의 가루로 흩어져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샤르기엘.
짧은 은발을 지닌 천사가 어딘가로 다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라파엘 님! 정신 차리십쇼 라파엘 님!!”
샤르기엘은 바닥에 쓰러진 라파엘을 부여잡은 채 다급히 외쳤다.
김시훈이 다가가 물었다.
“사탄에게 당한 것 입니까?”
“…예.”
샤르기엘은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훈은 주먹을 움켜쥐며 물었다.
“사탄은 어떻게 됐습니까?”
“검은 균열을 만들어 도주했습니다. 그리고… 영웅신 티리온의 사도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뭐, 뭐라고요?”
김시훈은 두 눈을 부릅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혀, 형님이 혼자서 사탄의 뒤를 쫓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이 노랗게 변하는 듯한 감각.
김시훈의 몸이 떨렸다.
아무리 강우라고 하더라도 홀로 사탄의 뒤를 쫓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제길, 제길!!”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검은 균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검은 균열이 처음 나타난 곳은 어딥니까!”
“이미 균열은 사라졌….”
“어디냐고요!!”
샤르기엘의 멱살을 움켜쥐며 외쳤다.
루드비히와의 싸움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넝마에 가까워졌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구해야 해.’
탈진? 주화입마?
어쩌란 말인가.
강우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몸이 박살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저기서 처음….”
샤르기엘은 절박한 김시훈의 표정을 바라보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쩌적!
유리에 금이 가듯 허공에 검은 균열이 만들어졌다.
김시훈과 샤르기엘, 주변에 있는 천사들과 가디언즈의 시선이 다시 나타난 균열에 몰렸다.
“크읏!”
“아, 아직도 안 끝난 거야?”
천사와 플레이어들의 표정에 절망이 서렸다.
“형님!!”
김시훈은 균열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며 손을 뻗었다.
새하얀 빛이 모여들어 검이 만들어졌다.
초조한 표정으로 검은 균열을 응시했다.
-쩌적!
균열이 크기를 키웠다.
그 속에서….
“쿨럭! 쿨럭!”
“혀, 형님?!”
강우가 나타났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모습.
당장이라도 쓰러질려는 강우를 김시훈이 다급히 부축했다.
샤르기엘 또한 강우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형님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크으…. 괜찮아.”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옷은 넝마가 되었고, 몸 곳곳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샤르기엘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사탄은… 죽이신 겁니까?”
모든 천사와 플레이어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예언의 악마, 사탄.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시끄러운 전장에 침묵이 흘러내렸다.
“사탄은….”
주먹을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도망쳤습니다.”
차마 말을 잇기 힘들다는 듯, 강우는 고개를 떨궜다.
“아, 아아.”
사방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러도.
사탄은 죽지 않았다.
예언의 악마는 살아 있다.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