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9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95화
Lose Octopus (2)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강우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며칠간 차연주, 가이아, 천무진과 모여 밤을 새며 가디언즈의 내부규율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뜬금없이 리리스가 사라졌다니, 자연스럽게 욕설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릎 꿇은 발록이 깊게 머리를 숙였다.
“전에 마왕님께서 리리스에게 서울에 나타난 마기의 흔적을 찾아 제거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마기의 흔적을 추적하러 간 이후…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잠깐 기다려.”
강우는 리리스가 지니고 있는 통신용 수정 구슬에 연락을 걸었다.
발록의 말대로, 리리스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늘게 눈을 뜬 채, 정신을 집중했다.
리리스는 그의 권속. 김시훈처럼 종속의 권능으로 묶인 사이는 아니지만 영혼 단계에서 이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눈을 감고 자신의 영혼의 흔적을 찾았다.
주시자의 권능까지 사용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리리스가 마물에게 당했다고?’
정황상 생각하면 그게 맞다.
마물이 할키온처럼 고대마물급의 존재였고, 리리스가 상대하지 못하고 패배했을 가능성.
“리리스는….”
발록이 말끝을 흐렸다.
그도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지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죽은, 겁니까?”
“아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면 리리스에게 섞인 내 영혼이 돌아와야 해.”
리리스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영혼의 연결이 끊어진 감각은 없다.
“살아 있어.”
강우는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발록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리리스가 살아 있다.
하지만 어떤 연락도,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말은.’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하나는 리리스 쪽에서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었을 가능성.’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리리스가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었을 가능성은 드물었다.
아니,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가정은 하나밖에 없다.
“리리스가… 납치된 것 같다.”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발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그는 리리스를 안다.
가진 바 무력은 자신의 몇 단계 아래지만, 그녀는 여러 환혹 마법으로 잠입과 탈출에 특화되어 있었다.
색욕의 대공 아스모데우스의 구애를 피해 도망 다녔을 정도로 용의주도한 그녀가 위급신호조차 보내지 못하고 당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발록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굳게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손등과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쿠구구궁.
건물 전체가 지진이 난 듯 진동했다.
혼란에 빠져있던 발록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왕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쨍그랑!
테이블에 올려진 커피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방바닥에 커피와 유리 파편이 퍼졌다.
“강우 씨?”
“강우, 무슨 일 있어?”
끼익.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에 한설아와 에키드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 사이에 할키온도 고개를 빼꼼 내민 채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헙.”
“가, 강우님?”
숨이 막힐 듯 농밀한 마기.
전신을 압박하는 거대한 힘에 에키드나와 한설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할키온이 다급히 앞으로 나서 손을 뻗었다. 새하얀 머리칼이 강렬한 마기의 압박에 휘날렸다.
강우에게서 뿜어지는 마기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발록이 강우의 어깨에 올린 손을 흔들었다.
“정신 차리십쇼, 마왕님!!”
“아.”
발록의 필사적인 외침에 강우는 정신을 차렸다.
초토화가 된 방 안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리리스를 납치했을 정도면 최소한 대공급 이상이야.”
리리스가 의도적으로 잡힌 게 아닌 이상, 대공급이 아니라면 그녀를 납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대 마물일 가능성도 낮아.”
리리스가 죽은 게 아니라면, 지금 그녀를 추적할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다른 누군가가 마법으로 추적을 방해하고 있어.’
고대 마물은 압도적인 육체 스펙을 바탕으로 싸우는 존재.
아무리 지능이 있다고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이 할키온처럼 괴물 같은 육체 스펙으로 적을 찍어 누른다.
“그렇다면 대공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아직 모든 대공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대공은 넷.
그 중 셋을 죽였으니 아직 나타나지 않은 대공까지 합치면 넷이나 남아 있다.
“그 중 레비아탄은 제외. 놈은 마법을 못 쓴다.”
“얼마 전에 라파엘에게 들은 악의 성좌, 라는 존재도 있지 않습니까?”
“가능성은 낮아. 설사 봉인이 풀려 놈들이 지구에 왔다고 해도 리리스를 납치할 이유가 없어.”
“그럼 일단 대공이라는 전제 하에 조사를 시작해야겠군요.”
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훈도 불러.”
“김시훈은 지금 미국 쪽에….”
“불러.”
단호한 목소리.
발록은 끄응, 침음을 삼키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강우의 이런 모습을 지옥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한 번 이 상태가 되시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무엇으로도 왕을 막을 수 없었다.
이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던 천 년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에도 저런 모습이었으니까.
“그럼.”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낮게 말했다.
“움직이자.”
강우는 몸을 돌렸다.
이쪽을 바라보는 할키온과 에키드나, 한설아의 시선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감히.’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리리스가 납치됐다고 해도, 언제든 죽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를 일은 없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분노라기 보단 짜증에 가까울 것이다.
‘내 걸 건드려?’
그녀는 자신의 것이다.
충실한 부하이자, 유능한 부하다.
리리스가 지닌 정보력은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
사용가치만 놓고 본다면 김시훈보다 오히려 위다.
‘그런데.’
자신이 손에 쥔 것을, 그를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해야 할 부하를 누군가 빼앗아갔다.
단순히 그녀를 납치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자신을 향한 도발이자, 선포였다.
“제길.”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리리스가 납치된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그녀 또한 김시훈처럼 사용하기 편리한, 배신할 걱정이 없는 ‘패’에 불과했다.
“씨발.”
으드득. 이가 갈렸다.
어째서인지 밝게 미소 짓는 리리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평소라면 트라우마에 가까운 그 모습이, 흘러나온 고름에서 뿜어지는 악취가, 끔찍한 촉수로 뒤덮인 그 외모가.
“씨발, 씨발, 씨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고 싶다.
“강우, 무슨 일이야?”
사정을 듣지 못했던 에키드나가 강우에게 다가갔다.
옷자락을 잡으려던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강우…?”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검은자위에 금빛 눈동자, 가로로 찢어진 동공.
이제까지 그녀가 알던 강우가 맞은 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광폭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아, 으.”
에키드나의 몸이 벌벌 떨렸다.
한설아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끌어안더니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지금 강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
-달칵.
강우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제야 방 안의 분위기가 풀렸다.
“후아.”
할키온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한설아가 발록에게 다가갔다.
“저… 발록씨. 대체 무슨 일이에요? 리리스 씨가 납치… 됐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말 그대로다. 리리스가 서울에서 나타난 마기의 흔적을 쫓는 도중 연락이 끊겼다. 지금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납치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그, 그런….”
한설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리리스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납치됐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몸을 구속당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그게 걱정이다.”
발록이 그녀의 표정을 읽었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께서는 굳이 언급을 피하신 것 같지만… 리리스는 지나치게 아름다워. 솔직히, 네가 상상하는 일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
한설아는 끔찍한 상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도 리리스 씨를 찾는 걸 도울게요!”
마기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도, 어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리리스 씨.’
그녀 덕분에 강우와 이어질 수 있었다. 용기를 내서 고백할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자신이 모르는 강우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를 나누며 상당히 친해졌다.
리리스가 끔찍한 일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고맙군.”
발록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그 작은 도움이라도 절실했다.
그때였다.
“아.”
한설아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무슨 일인가.”
“그,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현관 앞에 수신인이 적히지 않은 박스가 놓여 있었어요.”
“뭐라고?”
“잘못 배달 온 물건인 것 같아서 경비실에 맡겼는데… 자, 잠시만요!”
한설아가 다급히 방문을 열고 나섰다.
중간에 강우와 마주친 그녀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말한 뒤 경비실에 맡겨둔 박스를 들고 왔다.
“이건….”
강우는 그 박스를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리리스와 연락이 두절되자마자 온 수신인 불명의 박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부욱!
강우는 다급히 박스를 찢었다.
박스 안에는 검은색 수정 구슬이 들어있었다.
“통신용 수정 구슬….”
마석을 가공해 만든 수정 구슬로 딱히 전기가 필요 없다는 장점 때문에 일상생활에도 자주 쓰이는 수정 구슬이었다.
강우는 수정 구슬을 들어올렸다.
“후우.”
긴장에 찬 숨이 토해졌다.
“잠시… 다들 나가있어.”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예상할 수 없었다.
만약.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자신 혼자 보는 것이 맞다.
“…….”
한설아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에키드나와 할키온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발록 또한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리리스.’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우는 수정 구슬을 작동시켰다.
마치 홀로그램이 떠오르듯, 허공에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 속.
검은 어둠에 결박당한 채 묶여 있는 리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리리스…!”
강우는 비장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예상대로, 그녀는 누군가의 손에 납치당했다.
-마왕, 님….
리리스의 애달픈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아직 리리스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아! 마왕님!!!
영상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지, 강우의 얼굴을 확인한 리리스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죄송합니다. 죄송… 합니다, 마왕님.
그녀가 뚝뚝 눈물을 흘렸다.
어찌나 슬픈지, 눈물 대신 노란 고름이 흘러내렸다.
“…….”
-괜찮아요! 마왕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조금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꾸물꾸물. 무수한 촉수가 그녀의 몸에서 증식했다.
‘아니.’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비장했던 분위기.
히로인이 납치된 상황에 주인공이 분노하는 클리셰적인 장면이,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아아, 마왕님!
리리스의 눈에서 노란 고름이 흘러나왔다.
18개의 붉은 눈이 강우를 응시했다.
‘잠깐만, 씨바.’
강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장한 분위기를 필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머릿속에 끓어오르는 어떤 생각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리리스가 호응하듯, 애절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설사 제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아니.’
증식한 촉수들이 기괴하게 몸을 비틀었다.
-설사 제 몸이… 능욕당한다고 해도!!
‘그만해.’
보랏빛 피부에 곰팡이처럼 피어난 붉은 구멍이 점점 퍼져나간다.
‘제발….’
-저는! 이 리리스의 마음만큼은!
리리스가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절대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파악!
증식한 촉수 끝이 터지며 노란 고름이 분수처럼 폭발했다.
수정 구슬에 튄 노란 고름에 영상이 흐릿해졌다.
“아.”
강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씨발…. 왜 그러는 거야 대체.”
강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점점 더 구하기 싫어지잖아.’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