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3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34화
뭐야 이 음식물 쓰레기는? (1)
빠른 속도로 바람이 스친다.
에키드나가 비행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자 멀리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가 벨렌인가.’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지구의 문명에 비할 것은 아니었지만, 에르노어 대륙의 문명 수준도 결코 낮지 않았다.
‘적어도 중세 느낌은 아니네.’
거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곳곳에 밤을 밝히는 가로등까지 있었다.
판타지 세계라기보단 시골 지역에 있는 유럽 도시에 방문한 듯한 감각.
“에키드나 도시 근처에서 내려줘.”
[흐응! 알았어!]에키드나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드래곤이 갑자기 도시 근처에 나타났으니 원래라면 큰 소란이 일어나야 하지만 은폐의 권능 덕분에 별다른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우웨에에에엑!”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차연주가 땅을 짚고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토를 하면서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에키드나를 노려보았다.
[흥.]에키드나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들 통역기는 챙겼지?”
“예.”
강우는 멀미약 패치처럼 생긴 스티커를 귀 뒤편에 붙였다.
이것 또한 카드가를 쥐어짜서 만들어 낸 마법 물품 중 하나였다.
“가자.”
강우 일행은 도시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신분패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있습니다.”
강우는 도시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나뭇조각을 내밀었다.
물론, 신분패를 미리 만들어뒀을 리는 없다.
“용병이시군요. 소란이 일어날 시 벨렌 영지의 법도에 따라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경비병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는 그에게 내밀었던 나뭇조각을 다시 받아들며, 맹시의 권능을 해제했다.
“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엘이 빠졌다고는 하나 10명에 달하는 인원에, 파티원들의 외모가 워낙 눈에 띄다 보니 단숨에 시선을 끌었다.
“와… 여, 여신들이야.”
“저, 저저저 남자 좀 봐…! 세상에 어쩜 저리 잘생겼을까!”
“케로베로스! 케로베로스가 나타났다!”
강우는 주변의 소란을 무시하며 벨렌의 내부를 한 번 쭉 둘러보았다.
‘…뭐지.’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시감.
이와 같은 도시를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렌시아.’
남미에 있었던, 부패한 도시.
그때 느꼈던 감각이 느껴졌다.
“형님, 여기….”
김시훈 또한 뭔가 이질감을 느꼈는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도시의 거리를 차분히 바라봤다.
‘확실히 이상해.’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도 이쪽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유심히 보면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값비싼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나머지는.’
처참하다, 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생기가 없다.
부정적이고 음침한 기운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골목길 사이에서는 희미한 시체 썩은 냄새까지 풍겼다.
‘계급 제도가 있는 사회라서 그런가.’
벨렌이 원래부터 이랬는지, 아니면 에르노어 대륙 자체가 이런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움직이자.”
강우는 길게 이어지려는 생각을 끊었다.
벨렌이 빈부격차가 심하건 평민들이 고통받건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이 도시에 온 그의 목적은 하나.
‘하이엘프의 위치랑 같이 에르노어 대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
그 목적에만 집중하면 됐다.
“강우 씨, 우선 돈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겠네.”
한설아의 물음에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밥을 먹건 숙소를 잡건 물건을 사건.
돈은 반드시 필요했다.
‘에르노어 대륙의 화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강우는 미리 챙겨온 막대한 양의 순금을 떠올렸다.
에르노어 대륙에서도 ‘금’이라는 광물이 값비싸게 거래된다는 것은 이미 조사해둔 상태.
“그럼 가져온 금부터 이쪽 화폐로 환전하자.”
다행히 금을 환전할 수 있는 은행 비슷한 기관은 벨렌 영지 내부에도 있었다.
화폐의 단위는 아르난.
대충 물가를 보니 한화랑 큰 차이는 없어서 1원=1아르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해하기 편해서 좋네.’
골드니 실버니 단위가 달라지면 혼선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금전 감각에 혼선이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대충 10억 아르난 정도만 바꿀까.”
한 명 당 1억씩이면 에르노어 대륙에서 돌아다니는데 별다른 제약은 없을 것이다.
강우는 가지고 온 순금 중 극히 일부만 바꿔 현금으로 만들었다.
“더 필요하면 말하고.”
한 명 한 명에게 1억 아르난 씩 배분하며 말했다.
1억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는 것은 당연히 부담됐지만, 다행히 에르노어 대륙에는 은행에서 발급한 화폐를 저장할 수 있는 카드가 존재했다.
‘설마 이세계에 체크카드가 있을 줄이야.’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형 마도구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상상하고 있던 이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화폐 단위가 아르난이네? 이 대륙에는 아르난 제국인가 거기 말고는 다른 나라는 없는 거야?”
차연주가 물었다.
“물론 있긴 합니다만, 아르난 제국의 세력이 가장 강하고 마도 문명도 발달한 만큼 다른 왕국들도 모두 아르난이라는 화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헤에.”
베르나크의 대답에 차연주는 신기하다는 듯 카드를 만졌다.
“그럼 다음은 숙소부터 잡을까요?”
“그러는 게 좋겠지.”
하루 만에 정보를 조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의 숙소를 찾았다.
영주성처럼 보이는 커다란 성 근처에 고급스러운 여관이 있었다.
‘아니지.’
그쪽으로 가려 했던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저었다.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라면 저기보다 다른 곳이 나.’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1층은 술집, 그 위층은 숙소로 운영하는 장소.
저기 보이는 고급 여관에 비하면 당연히 질은 떨어지겠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일수록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가 쉽다는 것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강우는 메인 거리를 벗어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여관을 찾았다.
그가 원했던 대로 1층은 술집으로, 2층부터는 숙소로 운영하는 여관이었다.
“하아. 진짜 미쳐 버리겠어.”
“아이리스 황녀는 요즘 어떻데?”
“그년이야 똑같지 뭐. 제길! 그년만 아니었어도….”
“야 이 양반아, 입 조심해! 아무리 귀족이 없다고 해도 무슨 짓이야!”
“아, 응. 미안해.”
기대했던 대로, 입구의 문을 열기도 전에 흥미로워 보이는 정보가 들려왔다.
‘아르난 제국에 뭔 문제가 있는 것 같군.’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리 구석탱이에 위치한 술집이라고 해도 황족에 대한 뒷담화를 깔 리가 없었다.
‘천천히 알아볼까.’
에르노어 대륙에 온 이상, 현재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해두는 것도 중요했다.
강우는 우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짐을 풀었다.
“조금 낡긴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네요.”
강우와 같은 방을 쓰게 된 한설아가 짐을 풀며 말했다.
“체크 카드 같은 게 있는 것도 그렇고… 이쪽 문명 수준이 꽤나 높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호호, 그래도 적응하는데 얼마 안 걸릴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하긴,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니까.”
강우는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옆에 앉은 한설아가 몸을 기울이며 강우의 팔을 끌어안았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팔을 통해 퍼졌다.
‘케로베로스가 나타났다!’
아까 전 거리에서 들은 외침이 절로 떠올랐다.
한설아는 헤헤헤, 웃으며 말했다.
“전 강우 씨랑 함께라면 여기서 평생 살아도 괜찮아요.”
“…어머니가 우시겠다.”
“읏.”
“하하하. 뭐, 아무리 그래도 여기보단 지구가 낫지.”
한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 씨. 오늘은 그러면 이대로 쉬는 건가요?”
어딘가 야릇한 목소리.
강우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벌써 쉬기는 좀 그렇지.”
“우으.”
한설아가 귀엽게 입술을 삐쭉인다.
강우는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바로 움직이자.”
“네, 강우 씨.”
강우는 짐을 대충 풀고 나온 파티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각자 조를 짜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이쪽에 대한 정보를 모아와 줘. 무슨 정보라도 좋아. 아르난 제국 정세에 관한 거나, 하이엘프에 대한 거면 더 좋고.”
그렇게 말하며 강우는 자신이 직접 조를 나눴다.
자유롭게 조를 짜도록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히 예상이 갔으니까.
“설아랑 연주랑 에키드나, 시훈이랑 레이라씨, 리리스랑 베르나크, 발록과 할키온이 같이 다닐 거야.”
“강우 씨는요?”
“나는 여기 1층에 술집에서 정보를 모을 게.”
입구를 지나며 들었던 아이리스 황녀에 관한 얘기가 좀 걸렸다.
“흐응, 강우님과 같이 다니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르나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서 쓸만한 정보를 모으고 돌아오죠.”
“예, 마담.”
베르나크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외눈 안경에 집사복을 입은 그가 저렇게 말하니 꽤나 모양새가 살았다.
‘본체는 해골이지만.’
분홍색 에이프런을 입은.
* * *
강우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각자 흩어져 조사에 착수했다.
혼자 남은 강우는 1층에 있는 숙소로 걸어 내려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거친 욕설과 하소연이 오간다.
술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디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현재 벨렌의 평민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들어볼까.’
술집에 와서 물만 쭉쭉 마시며 얘기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술을 주문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도 맥주는 판다고 했지.’
시원한 맥주를 생각하니 목에 갈증이 일었다.
에르노어 대륙 행을 준비하느라 최근 몇 개월간 편히 쉰 적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애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이것도 임무의 일환이니 어쩔 수 없지, 라는 편리한 변명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카운터로 향했다.
“맥주랑 아무 안주나 하나.”
테이블에 앉은 강우는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곧이어 미지근한 맥주와 햄 몇 조각이 나왔다.
‘이런 씨바.’
햄을 한 조각 입에 넣은 강우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뭐가 이렇게 짜?’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소금에 절인 수준이었다.
미지근한 맥주야 권능으로 차갑게 식히면 되지만 이건 뭐 방법이 없었다.
‘입맛 버렸네.’
퉤.
입에 머금은 햄을 뱉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자 맥주를 서빙하던 소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 그. 죄, 죄송합니다! 저희 누나가 요리를 워낙 못해서… 입맛에 안 맞으셨으면 다른 안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소년이 다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니, 됐어.”
강우는 손을 저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대신 여기 안에 든 것 좀 냄비에 넣고 데워와 줘.”
강우가 꺼낸 것은 한설아표 김치찌개가 담긴 진공팩이었다.
휴대용으로 간편하게 데워먹을 수 있기에 강우가 애용하는 물건.
“아, 외부 음식은 좀….”
강우가 5만 아르난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어 소년의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지금 바로 뎁혀 오겠습니닷!”
소년은 힘찬 목소리로 답하며 진공팩을 들고 주방으로 뛰어갔다.
강우는 빙결의 권능으로 차갑게 식힌 맥주를 들이켜며 주변을 살폈다.
‘자,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좀 들어볼까.’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으으. 그거 들었어? 내년부터 세금이 또 오른다더군.”
“제길, 벨렌 자작은 미쳤어! 안 그래도 제국 꼴이 말이 아닌데….”
“하아.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여기서 더 세금을 걷다니.”
여기저기서 들리는 하소연.
강우는 김치찌개를 기다리며 대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통해 들려오는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을 때.
-콰아앙!!
“정숙!! 모두 머리에 손을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라!!”
“방금 전 이곳에 숙소를 잡은 아홉 명! 그놈들은 어디 있지!”
문이 박살 나며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술집에 쏟아져 들어왔다.
기사들 사이, 화려한 복장의 뚱뚱한 사내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 베, 벨렌 자작님. 여기는 무, 무슨 일로….”
맥주를 서빙하던 소년이 손에 냄비를 든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벨렌 자작이라 불린 사내가 표정을 팍 구기며 소년을 발로 걷어찬다.
“아악!”
“어디서 감히 평민이 말대답하느냐?”
벨렌 자작은 기분 나쁘다는 듯 쓰러진 소년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응?”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소년이 들고 있던 냄비.
그 안에 들어 있던 붉은색 액체가 바닥에 쏟아져 그의 신발에 튀었다.
“뭐야 이 음식물 쓰레기는?”
역겹다는 듯 벨렌 자작은 신발을 바닥에 비볐다.
“…음식물, 쓰레기라고?”
드륵.
의자가 뒤로 밀리며,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