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3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33화
에르노어 대륙 (1)
푸른색 균열을 지난다.
시야가 어그러지며,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우주에 던져진 듯한 적막감.
차원의 틈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우우웅!
그때와 다른 점은 무한히 이어진 통로가 아닌, 그 끝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것.
푸른빛이 전신을 휘감는 것과 동시에 어그러진 시야가 선명해졌다.
“아으, 어지러워.”
푸른 균열 밖으로 나온 차연주는 비틀거리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여기가 에르노어… 대륙인가?”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게이트가 열린 곳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숲이었다.
‘뭐, 그냥 풍경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식생학에 통달한 것도 아닌데 이게 지구에서 자라는 나무인지 에르노어 대륙에만 있는 나무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어… 음. 강우 씨?”
“응? 왜 그래 임자.”
“저기….”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일단… 지구가 아닌 건 확실하네.”
한설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가 스스로 뿌리를 뽑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얼씨구, 꼴에 입이랑 눈도 있네.”
“어! 저, 저저저저거!”
차연주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마오카이!”
“…뭔데 그건.”
“잘만 크면 세계수가 되는 놈이라고!”
“…….”
아무리 봐도 세계수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어쨌든.’
적어도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나무라는 것은 확실하다.
‘게이트 안에서도 저런 몬스터가 발견된 적은 없으니까.’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쿵, 쿵 걷기 시작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나무는 하나가 아니었다.
뿌리를 뽑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며 도망칠 만큼 섬뜩한 광경이었다.
물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라. 여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발록과 김시훈이 서로를 노려보며 강우의 앞에 나섰다.
마치 칭찬받으려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
강우는 픽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알아서 처리해. 아, 이참에 둘이 누가 많이 죽이나 내기라도 해보던가.”
가볍게 제안했다.
“호오.”
“좋네요.”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는 듯 발록과 김시훈의 눈이 빛난다.
“…건방지군.”
“너야말로.”
두 사람은 나무 괴물이 아닌 서로를 죽일 듯 노려봤다.
“…이기면 형님과 1일 밀착 수련권.”
‘뭐?’
“크흐흐흐, 좋군.”
‘뭐가 좋아 이 새끼야.’
너네가 뭔데 날 상품으로 걸어.
“아니 그게 무슨 개소….”
-콰앙!!
강우가 말리기도 전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나무 괴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우드드득! 콰직!
“키에에에에엑!”
순식간에 나무 괴물의 처량한 비명소리와 함께 나무가 작살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칼을 쥐어뜯다가, 우리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엘 님. 이곳이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음. 아무래도 대륙 남부에 있는 악몽의 숲 같은데.”
“흐음.”
강우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겼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우선은.’
하이엘프를 찾는 것.
“혹시 하이엘프가 대륙 어디쯤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 나도 잘 몰라.”
우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천사들은 원칙적으로는 대륙 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거든. 일반적으로는 산탄젤로라는 요새에서 지내면서 임무를 수행할 때만 움직여.”
“그럼 대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계신다는 겁니까?”
“응. 대충 지리 정도는 알지만… 사실 거의 몰라. 에르노어 대륙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하이엘프가 어디 있는지 이런 것들은.”
“…….”
곤란하게 됐다.
‘이 새끼 너무 쓸모없잖아.’
안 그래도 우리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한설아의 펜던트나 발록, 발자하크가 쓴 인간의 탈 등 온갖 것을 준비하느라 귀찮은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도움조차 별로 되지 않는다.
‘아.’
그때, 강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 그 요새에 가셔서 한 번 하이엘프에 대해 물어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성검 루드비히에 하이엘프의 축복이 깃들어 있었으니 다른 천사가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뭐, 뭐? 산탄젤로로 가라고? 나 혼자?”
천사의 요새, 산탄젤로의 위치는 대륙 최북단 상공에 있다.
남부에 있는 악몽의 숲에서는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는 이곳에 대한 정보가 전무합니다. 천사님들의 도움을 얻고 싶습니다.”
“읏….”
우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우와 떨어지기 싫다는 표정.
그때 한설아가 다가와 강우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강우 씨. 저… 솔직히 좀 무서워요. 갑자기 나무가 움직이면서 공격하기도 하고, 여기가 어딘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고요.”
한설아는 우리엘에게 어서 꺼지라는 듯 눈짓을 주며 강우의 품에 쏙 안겼다.
“이익!”
우리엘은 이를 드러낸 채 한설아를 노려보았지만, 반론하지는 못했다.
사실 지금 막 지구에서 넘어왔을 때 자신도 강우와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강우가 도와준 것처럼 자신이 이곳의 정보를 알려줘야 했다.
“으으. 아! 그러면 강우도 나랑 같이….”
“아뇨. 저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전 지금 이 파티의 리더니까요.”
“큿….”
정론이다.
파티원들을 이끌고 작전을 수행에 필요한 지시를 내려야 할 리더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그, 그러면 통신으로….”
“이번에는 직접 가셔서 저희에 대한 일도 정식으로 보고를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하이엘프에 대한 정보만을 물어보려면 통신을 통해 물어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만, 강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귀찮은 천사를 잠시 떼어내는 것이다.
“…끄응. 알았어. 그러면 일단 산탄젤로에 가서 하이엘프에 대한 정보를 한 번 물어볼게.”
우리엘은 축 처진 어깨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우리엘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이번 작전에 천사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힘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
강우와 손을 맞잡은 우리엘의 뺨이 붉어졌다.
한설아가 도끼눈을 뜨며 우리엘을 노려보았다.
“크흠. 알았어. 그러면 이번에 간 김에 미카엘님에게 정식으로 보고도 올리고, 우리가 지원을 해주도록 요청해 볼게.”
“감사합니다.”
강우가 방긋 웃었다.
우리엘은 날개를 펼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산탄젤로에 도착하면 통신할 테니까 수정구슬 꼭 가지고 있고!”
“예.”
그 말을 끝으로 우리엘이 날아갔다.
우리엘이 사라지자마자.
“크아아아아아아!!”
발록이 기다렸다는 듯 본체로 돌아와 나무 괴물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결코 네놈 따위에게 질 수 없다! 왕과 함께하는 밀착 수련은 나의 것이다!”
인간의 모습일 때는 김시훈에게 밀리고 있었던 모양.
발록은 성난 야수처럼 날뛰며 엄청난 속도로 나무 괴물들을 처리했다.
“하하하…. 확실히 우리엘 님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는 없죠.”
레이라는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강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가이아님에게도 비밀입니다.”
“네. 물론이죠.”
레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그런데 언젠가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이아님도 분명 강우 씨의 사정을 이해해 주실 거예요.”
“일단 지금은 아닙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정식으로 한 번 말씀드려보죠.”
강우가 과거 지옥에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되었고, 사탄에게 패배하기 전까지는 마왕의 자리에 있었던 것.
지금은 영웅신 티리온의 도움으로 마기(魔氣)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었다는 것.
과거 지옥에서 생활하던 시절, 권속으로 있던 악마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는 것까지.
우리엘이라면 몰라도 가이아에게는 언젠가 전해야 하는 일이다.
‘뭐, 이 정도로 신뢰를 쌓았으면 먹힐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헤헷. 건방진 꼬맹이가 사라지니 훨씬 편하네요.”
한설아는 해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아직 우리엘에 대한 적개심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양.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베르나크.”
“예, 강우 님.”
발자하크, 아니 베르나크가 다가왔다.
“너도 하이엘프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나크는 한때 에르노어 대륙에서 ‘마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즉, 이 대륙을 무대로 활개를 치웠었다는 의미.
하이엘프의 위치에 대해 알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하이엘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강우의 기대가 무색하게 베르나크는 고개를 저었다.
“흠.”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에키드나 또한 에르노어 대륙에서 산 경험이 있긴 하지만 태어나 줄곧 레어에 있었으니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이건 좀 골치 아픈데.”
눈살을 찌푸렸다.
마신의 심장을 찾기 위해선 하이엘프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그 하이엘프의 위치조차 알 방법이 없었다.
‘공인인증서냐?’
뭐만 하려고 하면 자꾸 제동을 거는 게 많았다.
‘일단 도시로 내려가서 물어볼 수밖에 없나.’
아직 이곳에 온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당장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르나크, 그럼 악몽의 숲 근처에 대륙인들이 사는 도시는 없어?”
“악몽의 숲 근처에는 없을 겁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면… 음, 이대로 쭉 북쪽으로 가면 벨렌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얼마 정도 걸려?”
“마차를 타면 2주 정도 걸리는 거리일 겁니다. 물론, 악몽의 숲을 빠져나간 이후에요.”
“그래?”
강우는 느긋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마차로 2주.
에르노어 대륙의 마도문명이 꽤나 발달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심지어 이 악몽의 숲이라는 거대한 숲을 빠져나간 이후부터 2주였다.
일반적인 파티였다면 강행군을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에키드나.”
강우에게는 공중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마룡이 권속으로 있었다.
‘혼자서 날아가면 더 빠르겠지만.’
파티원들 전원이 공중을 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는 같이 가는 게 더 나았다.
“응?”
“본체로 변해서 벨렌이란 도시까지 데려다줘.”
“흐응! 흐응! 알았어!”
에키드나는 간만에 자신이 할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강우.”
에키드나의 몸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점차 몸집을 키운 검은빛이 엄청난 크기로 불어났다.
검은빛이 사라진 자리에 보이는 것은 압도적인 위용을 가진 마룡(魔龍).
실로 오랜만에 보는 에키드나의 본모습이었다.
“응? 어째 전보다 더 커진 것 같다?”
[흐응! 강우 덕분이야.]강우의 경지가 아득히 높아지면서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에키드나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몸집이 커져 있었다.
“그럼 출발하자.”
강우 일행은 에키드나의 등 뒤에 올라탄 후 가시처럼 튀어나온 비늘을 꾹 잡았다.
“으….”
차연주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꼬, 꼬맹이. 이번에는 난폭운전하지 마라?”
불안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에키드나를 탔을 때의 악몽이 떠오른 모양.
[나, 꼬맹이 아냐.]에키드나가 발끈하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꺄아아아아아악!!”
차연주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어디 보자.’
강우는 권능을 사용해 에키드나의 몸을 숨긴 후, 고개를 돌려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악몽의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끝없이 펼쳐진 울창한 숲이….
“엥?”
무시무시한 속도로 파괴되고 있었다.
“크읏! 비켜! 형님과 함께 하는 건 나다!”
“왕이시여어어어어어어!!”
“…….”
악몽의 숲 전체를 박살 낼 기세로 날뛰는 김시훈과 발록.
멀리 떨어진 그들에서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아직 안 탔….]“출발해.”
[응?]강우는 숲을 파괴하는 두 남자의 뜨거운 열망을 느끼며 말했다.
“출발하라고.”
버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