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6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62화
광기는 더욱 큰 광기 앞에 고개를 숙인다 (2)
“그게 무슨….”
아이리스의 눈빛이 떨렸다.
몸을 잠식한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켰다.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한 감각. 아니, 악몽을 마주한 듯한 감각.
“아, 으.”
의자에 묶인 다리가 격렬하게 떨린다.
하반신의 힘이 풀렸다.
드레스가 축축히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치심에 얼굴을 붉힐 여유조차 없었다.
‘죽을 거야.’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죽음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열두 장의 날개와는 상관없이, 지금 아이리스의 눈앞에 비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더없이 섬뜩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이대로라면,
자신은 죽을 것이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살기였다.
“후훗. 걱정하지 마세요.”
한설아가 짙게 웃었다.
“제가 아이리스 씨를 죽일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아이리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새하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
아이리스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변했다.
한설아의 손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빛에 몸이 잠식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우우우웅!
그에 반항하듯, 아이리스의 몸에서 황금색 빛이 흘러나왔다.
한설아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다.
황금색 빛과 새하얀 빛이 허공에 얽힌다.
“이게… 하이엘프의 힘이군요.”
생각 이상으로 놀라운 힘이다.
하지만.
“그래도…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힘을 더한다.
그때.
-콰아앙!
새하얀 빛으로 보호되고 있던 방문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한설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 강우 씨?”
문을 박살내며 나타난 것은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
그녀가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존재였다.
“…….”
방 안으로 들어온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허공에 얽히고 있는 황금빛과 새하얀 빛을 바라본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멈춰.”
“강우 씨, 저는….”
“멈추라고 했어.”
강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한설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의 표정에 공포가 서린다.
“강우 씨 저는….”
“알고 있어.”
알고 있다.
한설아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세라핌의 힘이 더 커졌어.’
그녀의 안에서 더욱 커진 천사의 힘이, 그 집착이 그녀를 잠식하고 있다.
강우는 한설아에게 다가갔다.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다.
“강우 씨, 제 말을….”
“임자. 일단 가만히 있어.”
급한 불을 끄는 방법은 하나였다.
강우는 한설아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며 입술을 겹쳤다.
혀와 혀가 얽힌다.
“아….”
한설아의 두 눈이 커졌다.
혀를 타고 전해지는 짜릿한 쾌감이 전신에 퍼진다.
그리고.
“어? 제, 제가 뭘….”
한설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던 ‘집착’이 아주 살짝 사그라들었다.
이성이 되돌아왔다.
“가, 강우 씨. 죄, 죄송, 어? 내, 내가 왜.”
혼란에 빠진 목소리.
강우는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진정해.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머릿속을 비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
한설아는 순순히 강우의 말에 따랐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그녀의 등에 돋아났던 열두 장의 날개가 점점 흐릿하게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강우 씨….”
한설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떠올랐다.
덜덜덜.
몸이 떨린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리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걸까.
“괜찮아, 괜찮아.”
강우는 끌어안은 한설아의 등을 쓰다듬었다.
혼란의 빠진 그녀를 몰아붙이는 것은 답이 아니다.
“설아 네 잘못이 아냐.”
실제로, 그녀가 잘 못 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어.’
그녀의 안에 자리잡고 있는 세라핌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집착이 커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착이,
‘억누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천사의 본능이 악마의 욕망과 같다면, 갑작스럽게 세라핌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힘을 받아들인 그녀가 결코 제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참았던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흐윽…. 가, 강우 씨. 무, 무서워요. 저, 저 어떻게 된 거예요?”
한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 소중한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는 감각.
강우 또한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가 처음 악마의 육체를 씹어먹고 마기를 받아들였을 때 느꼈던 공포. 두려움, 초조함.
변해간다는,
끔찍한 감각.
“괜찮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침착하게 그녀를 위로했다.
한설아가 거칠게 몸을 떼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무, 무서워하지 말라뇨! 저는… 저는 아이리스 씨에게 지금….”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아이리스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아이리스는 의식을 잃은 채 고개를 떨구고 기절해 있었다.
그녀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새하얀 쇠사슬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전….”
한설아의 목소리가 떨린다.
공포에 질린 채, 강우를 응시한다.
“미친, 건가요?”
불안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미쳤냐고 묻는다면, 사실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
악마를 죽이고, 그 살점과 피륙을 뜯어먹었던 자신은 어떤가.
미치지 않았나?
‘그럴 리가.’
그는 미쳤다. 어긋났다. 망가지고, 뒤틀렸다.
아득한 과거부터.
처음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되돌아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언제나 그래왔듯.
“임자, 내가 내 예전 얘기를 많이 해준 적 없지?”
“…예?”
“조금만 해줄게.”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과거를 입에 담았다.
처음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
악마의 피륙을 씹어 삼키며, 악마가 되어갔을 때.
“인간의 감각을 가진 채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렇다면….”
한설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저는, 계속 이대로라는 건가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건가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올 수 없어.”
그녀의 몸에서 더 이상 세라핌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미 한 번 천사에 가까워진 육체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가진 채 살아갈 것이다.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런.”
한설아의 몸이 무너졌다.
절망이 그녀를 잠식했다.
강우는 한설아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이대로는 위험하지.’
한설아를 지금처럼 둘 수는 없다.
자신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오래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변했다면, 그녀는 너무도 단시간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당연히 그만큼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주 다행히도.
그녀의 ‘집착’의 경우 해결할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그래도 상관없잖아?”
“…예?”
한설아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강우를 바라봤다.
“지금 이대로도 상관없다고.”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강우 씨?”
“설아 네 집착은 나잖아?”
“…….”
너무도 직설적인 물음에, 한설아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강우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태연히 말했다.
“그렇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지.”
어차피 나는.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 거거든.”
“아.”
짧은 탄성이 흘렀다. 한설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전율이, 전신에 퍼졌다.
“집착의 대상이 나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모든 광기는 결핍에서 온다.
악마든 천사든,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광기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나를 조금만 더 믿어줘. 그걸로 충분해.”
강우는 그녀의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가벼운 생각으로 이걸 준 게 아니잖아?”
“강우 씨….”
한설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입가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덜덜 떨었다.
“강우 씨, 강우 씨. 강우 씨.”
그의 이름을 수없이 반복하며, 끌어안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비볐다.
강우는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조금은 해결됐나.’
악마와 천사의 본능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같다면, 그를 제어하는 방법 또한 같을 것이다.
‘우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지.’
감각의 차이를, 육체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부정하고 배제하려고 하면 더욱 미친 듯이 날뛸 뿐이다.
악마의 본능은 비유하자면 흐르는 물줄기와 같다.
억지로 입구를 틀어막아 버리면 그대로 쌓이고 쌓이다 폭발해 버리고 만다.
지금 한설아가 그랬던 것처럼.
‘막는 게 아니라, 제어해야지.’
물주기가 쏟아져야 할 길을 이곳저곳 만들어두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도 흐르는 물,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충동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한설아의 사과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괜찮아. 뭐…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과는 꽤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
강우는 의식을 잃은 채 기절해 있는 아이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하이엘프의 기운이 전과 몰라볼 정도로 짙어져 있었다.
‘각성한 건가.’
아무래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세라핌이라는 거대한 기운과 마주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 힘을 끌어올린 것.
‘횡재했네.’
아이리스에게서 하이엘프의 힘이 더 짙어지다니.
쌍수를 들고 환호성을 내질러도 좋을 만한 일이다.
이로써 하이엘프와 그녀 사이의 연관성은 더욱 짙어졌다.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엉?”
그럼 왜 사과한 건데?
“미안해요, 강우 씨.”
한설아는 열기를 띤 숨을 토해내며, 강우의 팔을 붙잡았다.
“저,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예?
뭐를요?
“이리 따라오세요.”
“어, 어어?”
한설아는 강우의 옷을 잡아끌었다.
박살 난 방문을 지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임자.”
설마.
그거 아니지?
‘안 되는데.’
전체이용가 개똥으로 보냐면서 한소리들을 텐데.
이럴 거면 노블레스로 꺼지라고 또 뭐라 하실 텐데.
찰칵.
한설아가 손을 튕기자, 방문에 새하얀 결계가 쳐졌다.
방금 전 아이리스가 묶여 있던 방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결계가.
“걱정하지 마세요.”
한설아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침대로 그의 몸을 밀어붙이고는 위에 올라탔다.
“연습은 많이 해뒀으니까요.”
“어? 어어?”
어?
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