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3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39화
닿지 않은 목소리 (2)
‘에이, 설마 그러려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가이아야 지니고 있는 신격이 자애(慈愛)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오딘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 들었다.
강우가 가이아를 통해 발표한 법안은 사실상 모든 신들을 잠재적인 악신으로 몰아가고, 동시에 올림푸스의 권력을 티탄급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법안이다.
오딘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도,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되는 도발.
법안이 공표되자마자 바로 반 가이아파 세력을 규합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자고?
그것도 아들인 토르를 사자(使者)로 보내면서까지?
‘이 새끼 뭔 꿍꿍이가 있는 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 오딘의 빅픽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
‘제발.’
차라리 이것이 가이아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한 오딘의 빅픽처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적당히 속아 넘어가는 척해주다가 이쪽에서 뒤통수를 후리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대화를 하고 싶다고?”
“그렇다.”
토르는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그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이아 님의 뜻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줬을 텐데?”
“흐음.”
토르는 곤란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가이아 님처럼 온순하신 분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토르를 비롯한 신들은 이번 법안이 강우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이아의 권속이었던, 신격을 지닌 지금까지도 권속에 불과한 광휘의 신이 올림푸스 전체의 의지를 이끌고 있다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마 거의 모든 신들이 이번 법안이 가이아나 우라노스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아버지께서는 대화가 먼저라고 말씀하셨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번 법안을 보면 가이아 님께서는 우리가 물질계에 현신했을 때의 혼란을 걱정하시는 것 같더군. 그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충분히 신경 쓰고 계시고 있다. 아스가르드 내부에서도 물질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신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 중이지.”
‘아니.’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올림푸스에 속하지 않은 신들을 모두 물질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악신으로 당정 짓는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셨다.”
‘뭐야, 씨발 진짜 대화로 해결하려는 것 같은데?’
“별의 수호가 사라진 지금, 외계의 침식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라크나로크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
‘아니. 뭐야, 뭔데 이렇게 논리적이야.’
너무 정론이라서 반박할 말도 생각 안 나잖아.
‘제우스가 빡대가리인 거야 아니면 토르랑 오딘이 뛰어난 거야?’
실로 정확한 상황판단이었다.
반 가이아파를 규합하여 일종의 무력시위를 하면서 전면전을 피하고자 회유책을 펼치다니.
가이아가 아닌 자신을 먼저 찾아온 것도 이해가 됐다.
‘가이아가 날 끔찍하게 아낀다는 건 이미 소문이 퍼졌으니까.’
저 극단적인 법안이 가이아의 머릿속에 나온 거라면,
무작정 가이아를 설득시키는 것보다 그 주변부터 설득시키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으리라.
‘오딘 이 새끼.’
좀 마음에 드네.
‘가이아 코인 손절하고 오딘 쪽에 붙을까?’
달콤한 유혹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와서 가이아 코인을 손절하기에는 투자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당히 멍청하고 어수룩한 것이 이용해먹기 좋지 않은가.
‘오딘은 내 입맛대로 움직이기 좀 그래.’
다시 눈물의 똥꼬쇼를 펼치며 신뢰를 쌓을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나? 자네도 지금 가이아 님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는 건 느끼고 있을 텐데.”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사실 지금 가이아 님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이아의 도를 넘어선 과격한 결단.
모든 신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긴, 모든 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셈이지 않은가?”
“가이아 님께서 그만큼 지구의 안전을 신경 쓰고 계시다는 의미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판단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해 처하지 않았는가? 신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지구라고 해서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
“예언의 악마가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신들끼리 협력해야 할 때지. 마신과 싸웠을 때처럼.”
토르는 강렬한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이 법안 자체에 반대하시는 게 아니다. 물질계를 위해서라도 다소 과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계시지.”
‘응?’
토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말에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다만, 가이아 님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다.”
“…….”
호오.
‘이 새끼들 봐라?’
앞에 늘어놓았던 장황한 설명은 바로 이것을 위함이었던 건가.
‘그러니까 뭐 신들의 협력이 중요하고 어쩌고 한 건 그냥 정론이고.’
본심은 올림푸스 세력 혼자서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사이좋게 나눠 가지자는 의미.
‘햐, 머리 잘 썼네.’
그 누구보다 먼저 반 가이아파를 규합한 세력이 속으로는 올림푸스처럼 신들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탐내고 있다니.
혁명을 위해 모인 반군의 수장이 속으로는 정부와 사이좋게 국가를 주무르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짓이다.
‘진짜 오딘 코인으로 바꿀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아니, 아니지.’
처음부터 오딘의 존재를 알았으면 모를까, 이제 와서 갈아타기에는 너무 머나먼 길을 와버렸다.
그리고 언제 외계(外界)의 침식이 본격적으로 시작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렇군요. 확실히 오딘님이 함께 해주신다면 다른 신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이아 님에게 한 번 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고맙군.”
토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나는 이만 돌아가 보마. 나중에 전령을 보낼 테니 상황을 전해주길 바란다.”
토르는 손에 든 망치를 허리춤에 묶으며 손을 내밀었다.
강우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고는,
-푸욱!
있는 힘껏 당겼다.
잉그리움의 검자루를 쥐고 있던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검이 토르의 배를 꿰뚫었다.
“커, 헉.”
토르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강우는 토르의 심장이 있는 쪽으로 잉그리움을 들어 올렸다.
“크윽!”
허리춤에 묶어둔 망치를 꺼낸 토르는 배에 쑤셔 박힌 잉그리움의 검면을 망설임 없이 후려쳤다.
잉그리움의 검날이 옆으로 튕겨 나가며 뱃가죽이 찢어졌다.
-파지지지직!
무시무시한 전하(電荷)가 찢겨진 뱃가죽에서 쏟아졌다.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찢겨나간 뱃가죽이 붙었다.
“쯧, 역시 한 방 컷은 안 되네.”
강우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 이게 무, 무슨 짓이냐!”
토르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신격의 보호를 한 번에 뚫고 검을 박아 넣은 것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갑작스러운 기습이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화를 제안하며 보낸 사자(使者)의 배를 찌르다니.
설사 전쟁을 벌일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금기는 씨발 무슨 금기. 전쟁이 뭐 애들 장난이냐? 어? 자, 이제 내가 한 대 칠 테니까 너는 잘 준비해서 처맞아. 뭐, 이래 줄까?”
강우는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전쟁에 예의가 어디 있어 새끼야.”
화르르륵.
탐식의 불이 타오른다.
잉그리움의 검신을 타고 흐른 불이 토르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천둥을 살라 먹었다.
“네, 노옴…!”
토르는 덥수룩한 수염을 파르르 떨며 벌겋게 얼굴을 붉혔다.
천둥의 신이기에 앞서, 명예로운 전사인 그에게 있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광휘의 신은 비록 인간 출신이지만 명예를 아는 전사라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안 것 같군.”
“어, 응. 네가 잘못 안 거 맞아.”
명예를 아는 전사라니.
듣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네.
“죽고 죽이는데 명예 타령은 씨팔. 그러는 새끼가 이번 기회를 노려서 올림푸스랑 손잡고 권력을 쥐려고 했냐?”
“그건….”
“또 아니라고 해라. 하여튼 씨바 포장은 기가 막히게 잘해요. 세계를 위해서? 외계의 침식을 막아?”
아주 지랄을 해라.
“그러는 놈들이 법안을 공표하자마자 바로 반기를 들 세력을 규합하고, 뒤쪽으로는 서로 권력을 나눠가자고 접근해?”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 쪽에 스사노오인가, 걔도 붙었지? 걔도 이 사실 알고 있냐? 응? 반 가이아파고 뭐고 아스가르드랑 올림푸스랑 손잡고 신들을 주물럭거리자고 한 거 아냐고.”
“…….”
“모르지? 알 리가 있나. 말하면 그 순간 반 가이아파고 나발이고 뒤집어질 텐데.”
캬악, 퉤.
침을 뱉었다.
“박쥐새끼마냥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새끼들이 말은 드럽게 많아요.”
“닥쳐라! 네가 아버지의 깊은 뜻을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뭘 아냐고?”
강우는 낄낄 웃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어쩌면 오딘이 권력을 탐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순순한 마음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손을 내민 걸 수도 있겠지.
실제로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손을 잡으면 신들 사이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데 말이야.”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게 뭐가 중요하지?”
“…뭐?”
초월급 신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신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이아를 반대하며 똘똘 뭉친 신들만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은 없다.
그렇다면.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필요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의를 짓밟고 뒤틀더라도.
손에 쥐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견뎌왔고,
그렇게 ‘승리’해 왔다.
“진실처럼 보이는 것들만이 중요할 뿐이지.”
강우는 짙게 웃었다.
오딘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그는 권력을 탐하는 사악한 야심가이자, 비겁한 기회주의자다.
그것으로 족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