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4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26화
로즈 타임 (2)
“흐아~ 일단 이 정도면 대충 끝났나?”
차연주의 사무실.
산처럼 쌓여 있던 서류 더미를 내용에 맞게 깔끔히 정리한 강우는 기지개를 켰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와아.”
차연주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강우가 일을 도와주니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던 서류 더미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너, 너 원래 이런 일 잘했어?”
“어느 정도는.”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제까지 피하고 있었을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리리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일 처리가 가능했다.
‘이젠 통찰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통찰의 권능은 적의 특징이나 움직임, 약점 등을 파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권능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이렇게 서류 분석, 정리와 같은 일에도 써먹을 수 있었다.
통찰의 권능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복잡하게 뒤얽힌 정보를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빠른 것도 빠른 거지만, 네가 너무 느려터진 게 더 컸던 것 같은데.”
“윽….”
정곡을 찔렸다는 듯 차연주는 움찔 몸을 떨었다.
전장에서는 굶주린 암사자처럼 날뛰던 그녀였지만, 이런 세심함과 꼼꼼함이 필요한 서류 작업 앞에서는 복날이 가까워진 똥개처럼 움츠러들었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봤던 것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느라 작업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던 것.
“…혹시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하면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밖에 안 돼.”
“다, 닥쳐! 나도 알거든!”
“알면 좀 잘하세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손등으로 쳤다.
“슬슬 퇴근해도 되는 거 아냐?”
“어?”
차연주의 눈의 휘둥그레졌다.
“…퇴, 근?”
퇴근, 퇴근이라니!
단 두 글자만으로 이토록 짜릿한 전율을 줄 수 있는 단어가 세상 어디 또 있을까!
“어, 어어? 자, 잠시만.”
그녀는 오늘 결재한 서류들을 더듬더듬 살폈다.
“토지 매입은… 다 끝났고, 건설사랑도 얘기가 끝났고… 그리고….”
없다.
“…허업!”
차연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전쟁과 같았던 서울 토지 매입 작전이 드디어 끝을 맺은 것이다.
물론, 이 이후로도 자잘한 일이 더 남아 있긴 했지만.
“끄, 끝났다아아아아아아!!”
두 손을 번쩍 든 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서울이라는 노른자 땅에 무려 두 구(區)를 레드 로즈 길드 소유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서울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로 인해 발생할 예상 이득은 낮게 잡아도 조(兆) 단위.
아니,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토지란 일종의 권력이다.
심지어 그 땅이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서울이라면, 레드 로즈 길드는 단숨에 세계에서 가디언즈 다음가는 힘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야, 야야야! 오강우!! 드디어 이 빌어 처먹을 일이 끝났다고!!”
차연주는 환호성을 지르며 강우의 손을 잡았다.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까지 기른 붉은 머리칼이 춤췄다.
“애들아아아아!”
콰앙!
차연주는 사무실의 문을 시원하게 걷어차며 뛰쳐나갔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퇴근이다 씨바아아아아알!!”
“허억!”
“퇴, 퇴근?!”
“거, 거짓말! 내 인생에 퇴근이 있을 리가 없어!!”
“지, 진짜 퇴근인가요?!”
퇴근이라는 말에 반쯤 죽어 있던 레드 로즈 길드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차연주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검토와 결재가 다 끝난 이상, 더 이상 길드에 처박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서울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그래, 퇴근이다!”
“아, 아아아아!”
“신이시여… 이게 꿈은 아니겠죠?”
“끼요오오오옷!!”
한 달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했던 길드원들은 발작을 일으키며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게임 출시를 앞두고 기나긴 야근 끝에 개발을 완료한 게임사를 보는 듯한 광경.
“히, 히히히!!”
“드, 드디어 퇴, 퇴근이야…!”
“꺼흐으윽! 이제, 이제 쉴 수 있어!”
반사회적 집단의 광적인 집회를 연상케 할 정도로 광기에 찬 웃음을 흘리던 길드원들은 비틀거리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제가 얼마 안 남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길드원들을 들들 볶던 박현우 또한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폈다.
“그나저나 이렇게 초대형 프로젝트도 끝났는데 회식이라도….”
“워터 캐논!”
“커흡!”
촤아아아악!
허공에서 만들어진 물벼락이 박현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 이게 무슨!”
한순간에 물벼락을 뒤집어쓰게 된 박현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잔뜩 성난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는 최은비의 모습이 보였다.
“하여튼! 누가 노총각 아니랄까 봐 눈치도 없이!”
“노, 노총각?”
커헉.
스플뎀 무엇.
“회식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이쪽으로 와요! 그렇게 회식이 하고 싶으면 나랑 둘이서 하든지!”
“어, 어어어?”
박현우의 등을 밀어 밖으로 내보낸 최은비는 히죽, 웃음을 흘리며 차연주에게 다가왔다.
“자, 언니. 잊지 말고 챙겨요. 중요한 거니까.”
찡긋.
귀엽게 윙크를 한 그녀는 차연주의 품속에 네모난 상자 하나를 넣었다.
“이건 또 뭔데?”
차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은비가 건넨 네모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얇은 상자의 안에는,
“이, 이 미친년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히히히!! 저 먼저 가 볼게요, 언니! 좋은 시간 되세요!!”
어느새 멀찍이 도망간 최은비는 혀를 살짝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저 건방진 꼬맹이가 진짜…!”
씩씩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누가 볼세라 네모난 상자를 다급히 주머니 안에 숨겼다.
“뭐야 그건?”
“아, 아아아아무것도 아냐!”
뒤늦게 사무실 밖으로 나온 강우를 향해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보다 일도 끝났는데, 뭐라도 먹으러 갈래?”
“그, 그럴까?”
차연주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그럼 근처에 김치찌개….”
“아니, 김치찌개 말고.”
“헉, 왜, 왜! 김치찌개가 뭐 어때서!”
“맨날 먹으면서 안 질리냐. 오늘은 다른 거 먹으러 가자.”
그렇게 말하며 차연주는 강우의 옷을 질질 잡아끌었다.
그녀가 끌고 간 곳은,
“생활 맥주?”
“크으! 여기 핫 후라이드가 진짜 끝내준다고! 맥주도 개시원하고!”
“아니, 이 정신머리 없는 여자야. 내 몸을 봐라, 술집이 되겠냐?”
“히히히, 그럼 넌 얌전히 치킨이나 뜯으시든가~?”
차연주는 낄낄 그를 비웃으며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저년이….”
강우는 잠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의태(擬態)를 사용해 원래의 몸으로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러면 신체의 감각이 옅어져 미각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먹는 의미가 없었다.
-벌컥벌컥!
“하으으으으~! 그래! 이 맛이지!”
생맥주 한 잔을 시켜 오자마자 단숨에 비워 버린 차연주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빈 술잔을 뺨에 비볐다.
“여기요~! 생맥 한 잔 더 추가요!”
손을 들어 추가로 맥주를 주문한 그녀는 치킨이 오기 전 기본으로 나온 과자 안주를 깨작깨작 씹어먹고 있는 강우를 향해 으스대듯 턱을 높였다.
“헤헹~ 부럽지? 너도 한 모금 줄까?”
“어차피 취하지도 못하는 거 뭐하러 마셔.”
강우는 쯧, 혀를 차며 물었다.
이제 자신의 신체는 피륙이 아닌 마해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알코올을 아무리 섭취한다고 해도 취하지 않았다.
“그보다 너 취할 수는 있는 거냐?”
자신이 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연주 또한 ‘취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너무도 초인적인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마력을 억제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어느 정도는? 사실 반쯤은 기분으로 마시는 거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더니 이내 그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물었다.
“그보다 요즘 뭐 하며 지냈냐? 몸은 별 이상 없고?”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짙은 걱정과 불안이 느껴졌다.
“엉. 멀쩡하다.”
“…그래?”
차연주는 크흠, 헛기침하며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가를 가렸다.
“흥. 어차피 뭐, 별로 걱정도 안 했어. 보나 마나 매일 설아하고 인디언 기우제 지내는 것마냥 뒹굴고 있겠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아랑은… 좀 어때?”
“임자랑은 항상 똑같지 뭐.”
“…그래?”
차연주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새로 주문한 생맥주잔을 슬슬 쓰다듬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사이가 안 좋다거나, 싸운다거나 하는 일은 없고?”
“있겠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적어도 자신과 임자 사이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
차연주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꾸욱 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헹 입가를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어딘가 기뻐하면서도 씁쓸해하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웃음.
“다행이네. 뭔 일이라도 있었으면 네 새끼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버리려고 했는데 말야.”
그녀에게 있어 한설아는 강우의 연인이기 전에 소중한 친구였다.
그런 소중한 친구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
‘기뻐… 야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슬쩍 돌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뭔 일이 하나 있긴 했지.”
“…엉? 뭔 일인데?”
“어쩌다 보니 리리스랑도 같이 사귀게 됐다.”
“뭐?!”
쿵!
차연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두 눈을 부릅떴다.
“자, 잠깐만. 리리스랑도 사귄다니? 그, 그러면 양다리를 걸쳤단 말이야?”
“설아의 허락은 받았어.”
강우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또 무슨….”
차연주는 입을 쩍 벌리며 털썩 앉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에게 있어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두 명 동시에, 라고?”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은 숨길 수 없는 환희에 물들어 있었다.
‘두 명과 같이 사귈 수 있다면.’
어쩌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씨발!!”
발작을 일으키듯 붉은 머리칼을 헝클였다.
이내 씨익씨익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이, 이 변태 새끼! 개새끼! 씹새끼!”
“커헉! 그, 그만해 이년아!”
퍼억! 퍽!
차연주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강우는 몸을 웅크린 채 죽는소리를 흘렸다.
-웅성웅성.
“…아.”
호프집에서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을 발로 걷어차며 욕을 쏟아붓는 여자의 모습은 주변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차연주는 끄응, 신음을 흘리며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
“…….”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핫 후라이드랑 스팸 튀김이요~”
머지않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치킨이 나왔다.
차연주는 강우에게 앞접시를 준 후, 집게로 먹음직스러운 닭 다리를 들어 강우의 앞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여기 맛있으니까 맘껏 먹어.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시키고.”
“오키. 잘 먹을게.”
“그… 술은 진짜 괜찮아? 필요하면 여기 사장한테 내가 한마디 하면 괜찮을 텐데.”
그녀는 무려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길드장이다.
미성년자(실제로는 아니지만)에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만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됐다. 말했잖아, 마셔도 안 취한다고.”
강우는 피식 웃으며 같이 주문한 콜라를 들었다.
“난 이거면 괜찮아.”
“…….”
짠.
두 사람의 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 * *
“꺼윽. 어흐… 죽겠다.”
그렇게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몇 시간을 내리 마시니, 어느새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까지 마셔버리고 말았다.
차연주는 살짝 취기가 오른 표정으로 강우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나저나 내가 없는 사이에 그런 위험한 곳까지 갔다 오다니, 진즉에 연락했어야 했을 거 아냐!”
“위키 홀릭에게 잡혀갔는데 무슨 수로 연락해.”
“어떻게든!”
버럭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강우는 피식 웃었다.
띠링, 띠링.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서 맑은 알림음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하니 한설아에게서 온 카톡이 수백 개가 쌓여 있었다.
[임자♥]임자♥ : 강우 씨 오늘 연주 만나러 나가신 거 아닌가요?
임자♥ : 조금 늦으시는 거 같은데….
임자♥ : 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시죠?
임자♥ : 그렇죠?
임자♥ : 빨리 답장해 주세요.
임자♥ : 강우 씨.
임자♥ :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임자♥ : 지금 리리스 언니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요.
임자♥ : 빨리 오시면… 기분 좋은 일 잔뜩 해드릴게요.
“…….”
카톡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메시지는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들어갈게.]짧게 카톡으로 답장한 강우는 차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난 슬슬 가 봐야겠다.”
“…어? 가, 간다고?”
차연주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벌써 새벽 1시인데 가야지.”
“아…. 그, 그렇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간만에 얼굴 봐서 좋았고, 일 마무리 잘해라.”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어차피 차연주랑은 층만 다를 뿐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이 가도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날아가는 게 좋았다.
창공의 권능도 이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
저벅, 저벅.
소년의 몸이 점점 멀어진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아….”
차연주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끝인 건가?’
그토록, 그토록 간절하게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허무하게, 허전하게.
아무런 일조차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보고하듯 서로의 근황만을 얘기하고 끝나는 건가.
“…….”
차연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파르르 어깨를 떨며, 멀어지는 소년을 향해 달려갔다.
“엉?”
강우가 몸을 돌렸다.
“왜?”
“…….”
아무런 대답도 없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강우의 옷깃을 붙잡았다.
이내,
기어들어 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