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5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31화
파란의 데이트 (2)
“뭐부터 타볼까요, 강우 씨?”
한설아가 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신장 차이 때문에 꽤나 어색한 자세가 나왔으나,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음, 글쎄.”
강우는 입구에서 나눠준 지도를 펼치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절규 계열은 타봤자 별 의미가 없단 말이지.’
음속도 넘는 속도로 주파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것이 두 사람이었다.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처럼 비명을 쥐어 짜내는 놀이기구를 타봤자 자극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여길 고른 거긴 하지만.’
고개를 돌려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주변을 살폈다.
그곳에는 각종 영화의 테마에 맞춰 건물의 외관을 꾸미거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사실 롤러코스터와 같은 탈 것들에서 큰 자극을 얻기가 힘드니 차라리 볼 거라도 많은 곳으로 오자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 바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였다.
문제는,
“뭐, 아는 영화가 없네.”
“아… 그건 저도 그래요.”
둘 다 영화를 본 적이 손에 꼽는다는 것.
에키드나가 보는 애니메이션을 따라본 적은 있었어도 영화를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영화의 테마에 맞춰 아무리 잘 꾸몄다고 해도 공감을 하며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냥 잘 꾸며진 정원을 보는 정도의 느낌인가.’
데이트 장소로 놀이공원을 고른 것이 잘못된 선택이지 않았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헤헤. 괜찮아요, 강우 씨.”
한설아는 강우의 팔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강우 씨랑 둘이서 있는 것만 해도 전 만족하는걸요?”
“임자가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볼 게 없고 놀 게 없으면 어떤가.
임자가 이렇게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차연주와 같이 술을 마시고 게임을 했을 때도 좋았지만, 역시 임자와 같이 있는 시간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한설아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임자.”
“예?”
“사랑해.”
“……!”
한설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아, 으.”
부르르 몸을 떨던 그녀는 왠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오줌이 마렵기라도 한 것처럼 두 다리를 베베 꼬았다.
“저, 정말! 밖에서는 조심해주세요, 강우 씨!”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어쨌든! 밖에서 그런 말 하는 건 금지에요!”
눈에 띄게 얼굴을 붉힌 한설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어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럼 일단 저쪽으로….”
“…저도, 사랑해요.”
몸을 돌린 강우의 팔을 살며시 잡은 한설아의 입에서 기어들어갈 것 같은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는 입가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일단 저쪽으로 가볼까?”
“예!”
한설아가 눈을 반짝이며 앞서 걸었다.
-웅성, 웅성.
“헤이! 저 중국인 여자 좀 봐!”
“홀리 쉣! 케로베로스!”
그녀와 함께 놀이공원을 거닐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세심하게 조각한 듯한 섬세한 이목구비에, 비단 같은 흑발.
외국인들에게도 전혀 꿀리지 않는 미드와 대체 어떻게 저 미드를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느다란 허리.
비현실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외모와 몸매에 사방에서 탄성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양인만 보면 일단 중국인이라고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강우는 한설아와 팔짱을 낀 팔에 힘을 더해 그녀를 밀착시켰다.
날카로운 눈으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것들이, 어디서 내 임자한테 눈길을 줘?”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노려보니 바로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머머, 저 아이 좀 봐!”
“호호호. 누나랑 아주 찰싹 달라붙어 있네!”
“살짝 건방져 보이는 눈매가 너무 귀여워!”
“하앙~ 내 동생도 저런 귀여운 애면 얼마나 좋을까!”
강우의 의도와는 달리 정작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온 것은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었다.
“제길.”
끄응, 침음을 삼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몸이 이러다 보니 아무리 사납게 노려보아도 위협은커녕 귀여움만 받을 뿐이었다.
‘공포의 권능을 써버릴까.’
잠시 고민하던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들에게 권능 같은 걸 사용하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차라리 플레이어였다면 좋았을 텐데.’
적당히 딱딱한 공보다 만지기만 해도 터져 버리는 비눗방울이 훨씬 다루기 어려운 것처럼,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까득, 까드득.
“저것들이… 감히, 감히, 감히 강우 씨한테 추파를 던져…?”
한설아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깨물며 꺅꺅거리던 여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섬뜩한 살기가 맴도는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강우 씨, 저 잠깐 저 싸가지없는 년들 좀 손보고 올게요.”
“이, 임자! 멈춰!”
여인들을 향해 다가가려는 한설아를 다급히 붙잡았다.
강우에게 붙잡힌 한설아가 굶주린 야수처럼 몸을 비틀었다.
“놔요! 강우 씨! 저년들을 손봐줄 수가 없잖아요!”
“지, 진정하라니까!”
날뛰는 한설아를 붙잡고 다급히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니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좀 줄어들었다.
“임자,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을 상대로 그러면 안 되지.”
“…죄송해요.”
악마가 천사에게 일반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졌다.
물론 그런 두 사람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고, 두 사람은 어디를 가던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던 한설아도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주변의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뭐, 동물원 원숭이 보는 것마냥 지켜보기만 하지 말을 걸거나 하는 사람은 없네.’
레이라가 즐겨보는 만화였다면 벌써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흑인들이 한설아에게 추근거렸을 테지만 실제론 직접적인 추파를 던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 강우 씨! 저 영화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게 여유롭게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내부를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이내 밀림처럼 꾸며진 구역에서 발을 멈췄다.
한설아가 눈을 반짝이며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난폭하게 입을 벌린 공룡의 두상과 함께 ‘Jurassic Park’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아, 쥬라기 공원. 저건 나도 알지.”
아무리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쥬라기 공원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골에 사골까지 우려먹었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였으니까.
“저거 한 번 타보실래요?”
“응, 좋지.”
손을 잡아끄는 한설아에게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놀이기구가 심심하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놀이공원까지 와서 주변만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것도 좀 그랬다.
“…대기 줄이 좀 기네요.”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구매해둔 티켓을 꺼냈다.
추가적인 돈을 지불하면 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프리미엄 티켓이었다.
물론 입장권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하는 값비싼 티켓이지만,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치니까.’
고층 아파트 전체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강우였다.
이 정도 티켓 정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하하하! 평생 거기서 줄이나 서라, 이 자본주의의 패배자들아!”
남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프리미엄 티켓을 통해 앞지르는 기분은 극도의 우월감과 함께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던 강우는 한설아의 손을 붙잡고 놀이기구를 향해 걸어갔다.
“와아, 저 롤러코스터는 태어나서 처음 타봐요!”
한설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놀이공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 기대한 것만큼 재밌지는 않을 거야.”
“호호, 괜찮아요. 이렇게 강우 씨랑 같이 놀이기구를 타다니… 뭔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드르르르륵.
두 사람을 태운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새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쥬라기 공원의 입구가 열렸다.
-끄오오오오옹!
“와아….”
“뭐야 이거, 생각보다 진짜 잘 만들었네?”
나무로 만든 거대한 문이 열리자 한설아와 강우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문의 안쪽에는 공룡들이 풀을 뜯거나, 사냥을 하는 거대한 모형이 늘어서 있었다.
밀림 같은 주변 배경과 어우러져 진짜 쥬라기 공원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맨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만 보다가 이렇게 어색한 모형을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
“네, 너무 멋져요.”
두 사람은 롤러코스터가 아닌 느긋하게 움직이는 관람차에 탄 것처럼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롤러코스터가 속도를 붙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어, 저것도 잘 만들었네.”
“저 공룡도 예전에 본 적 있어요.”
두 사람은 평온한 표정으로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음속의 영역을 넘은 전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둘의 입장에서 롤러코스터란 살짝 속도 빠른 관람차에 불과했다.
“후우, 그래도 꽤 재밌었다.”
“내부를 잘 꾸며놔서 보는 맛이 있었어요.”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한설아와 강우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럼 이젠 어딜 가볼까.”
강우는 지도를 펼치며 다음에 갈 장소를 골랐다.
“여긴 갈만 하겠다.”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어머, 유령의 집인가요?”
“엉. 롤러코스터보다는 차라리 이런 게 더 자극적이니까.”
“…흐음, 유령의 집이요?”
턱을 만지며 무언가를 고민하던 한설아는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훙훙 끄덕였다.
“예! 그럼 다음은 유령의 집으로 가요!”
한설아는 왠지 모르게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의외로 유령을 무서워했던 리리스와는 달리, 꽤나 적극적인 태도였다.
‘임자는 유령의 집 같은 건 별로 안 무서워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꺄아아아아아아악!!”
유령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한설아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강우에게 엉겨 붙기 시작했다.
“너, 너무 무서워요, 강우 씨….”
“어, 응.”
눈을 빛내며 유령의 집을 가자고 했던 것과는 달리 시작부터 비명을 지르며 엉겨 붙는 그녀의 모습에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우는 엉겨 붙은 한설아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꺄아아악! 유, 유령이에요!”
“꺄악. 저 시체들 좀 봐요, 강우 씨.”
“하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요.”
“하아, 하아. 후후훗. 여긴 어두워서 좋네요, 강우 씨. 그렇죠?”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령의 집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달라붙었던 한설아는,
점차 유령이 정면에서 튀어나와도 대충 비명을 지르는 시늉만 하며 끌어안은 강우의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는 것에 집중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그녀의 행동은 점점 더 거침이 없어졌다.
“…임자, 솔직히 하나도 안 무섭지.”
“…헛!”
한설아는 움찔 몸을 떨며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유령을 얼마나 무서워하는데요!”
“그런 것 치고는 방금 전에 유령이 튀어나왔을 때 하나도 안 놀라던데.”
“그거야… 그, 어, 어차피 분장한 직원들이니까 그랬죠!”
“아니 그건 유령의 집의 존재 의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건데.”
“어쨌든요! 전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강우 씨를 끌어안고 있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고개를 훙훙 저으며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여기서는 잠깐 어울려줘도 상관없으리라.
“알았어. 그렇게 무서우면 어쩔 수 없지.”
“그렇죠? 어쩔 수 없는 거죠?”
한설아는 꿀꺽 침을 삼키며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더듬어지며(?) 유령의 집을 빠져나왔을 때─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가, 강우 씨. 다음은 저, 저거. 저걸로 가요!”
“어, 엉?”
한설아가 다급히 손을 잡고 끌어당긴 곳에는 놀이공원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관람차가 있었다.
“아직 대낮인데 벌써부터 관람차는 좀 그렇….”
“나중에 밤에 또 오면 되니까 괜찮아요!”
“어억!”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막무가내로 강우를 잡아끌었다.
“하아, 하아. 탑승 시간이 11분 20초….”
한설아의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두 주먹을 꽉 쥐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
“아니.”
대체 뭐가 충분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