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파베의 말에, 왈라이카는 두말할 것 없이 워프 게이트부터 열었다.
어지간한 방문자에 스승이 이리 반응할 리는 없었다. 아니, 그전에. 그저 그런 방문자였다면 라니아가 스승에게 직접 전령새를 보내는 일도 없었겠지.
파베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며 상황을 설명했다.
“방금 라니아가 보낸 전보에 따르면 크로슈의 잡것들이 쿠프룸 저택까지 쳐들어왔다는구나.”
“뭐? 크로슈 놈들이 내 저택을 공격했다고?”
“아니, 그건 아니고.”
파베가 얼른 제자의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거다. 네가 그간 크로슈의 마법새를 모두 무시했었잖느냐.”
“아아.”
“그리고…….”
어느새 다시 열린 게이트의 균열로 걸어간 그녀가 이었다.
“그놈들이 귀찮은 사람을 한 명 대동했다고 한다.”
“엥? 웬 귀찮은 사람?”
“일단 나가자. 라니아가 혼자 고생하는 모양이니.”
어느새 워프 게이트 밖은 쿠프룸 저택 내부였다.
몇 초 만에 도시 간의 먼 거리를 건너뛴 왈라이카는 곧장 새 마법을 펼쳤다. 근방에 있을 라니아의 위치를 탐색한 다음 마나를 움직였다.
다음 순간, 둘은 바깥에 있던 라니아 옆에 서 있었다.
저녁이었으나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두운 시각은 아니었다. 마법 조명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왈라이카와 파베가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자 우르르 몰려와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파베는 몰려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위나델의 기억을 전해 받은 그녀로서는 대부분 아는 얼굴이었다.
‘크로슈의 일원들.’
조금 뜻밖인 것은, 위나델의 가족들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억류되어 있는 아르카스토를 대신해 가모인 시큐엘라가 올 줄 알았는데.
어쨌든 아이를 학대하던 자들을 보니 위나델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파베는 내면을 관조하며 아이의 기분을 살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꼬마 위나델 아냐?”
“닮긴 닮았는데 눈 색이 아예 달라. 게다가 아무 쓸모도 없어서 가문에서 쫓겨난 애잖아. 그런 애가 왜 여기 있겠어?”
‘아무 쓸모도 없어서’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이상 막말을 내뱉는 이는 없었다.
파베는 불만을 내리누르며 시선을 돌렸다. 가문의 머저리들 근처에 처음 보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진한 금발에 푸른 눈, 살짝 휜 매부리코. 잘생긴 외양이나 성마른 인상이 더욱 강한 남자.
‘저놈이 전령새로 전달받았던 그놈이로구나.’
때마침 라니아도 무표정한 얼굴로 소개했다.
“왕국의 제1왕자인 데쿠스 레그나토르 우미눔 전하십니다, 수장님.”
“호오.”
왈라이카의 입술 사이로 휘파람에 가까운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래, 간도 크게 왈라이카의 저택까지 크로슈들과 함께 찾아온 이 남자는 왕국의 1왕자였다.
아까 위나델한테 왕국을 설명할 때 언급된 이.
왕세자 자리를 빼앗기고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난 왕의 첫째 아들.
‘왕가의 인물이 여기는 어쩐 일이지?’
쿠프룸이 제3 위성도시로 왕가의 영향권 아래 있다지만 이곳은 하프 드래곤 왈라이카의 영역이었다.
150년 만에 깨어난 파베는 이번 대 왕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왕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게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 1왕자 전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왈라이카가 드디어 왕자에게 인사했다.
말투는 다소 가벼웠으나 형식만은 예의를 갖춘 언사.
긴장하고 있던 왕자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오만한 낯빛으로 턱을 치켜든 그가 말했다.
“이리 만나 반갑소, 왈라이카 경. 듣던 대로 용의 혈족다운 위엄이 넘치는군.”
무례하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하프 드래곤이 예를 갖추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제 딴엔 칭찬인 듯한 말을 건넨 왕자가 쓸데없이 사교적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왈라이카는 그런 허례허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어 마디 대충 들어 넘기다 말을 끊었다.
“아까도 물었습니다만 전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크흠!”
헛기침에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렇게 감정 갈무리를 못 해서야. 파베는 저놈이 왜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듣자 하니, 사흘 전 경이 주최한 연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는군.”
왕자가 딱딱해진 표정으로 본론을 시작했다.
“연회를 벌이던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사람이 몇 실종되었다 들었소.”
“그랬던가?”
고개를 기울인 왈라이카가 은근슬쩍 반말로 중얼거렸다.
내용도, 태도도 상대를 존중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입매가 더욱 불퉁해진 왕자가 일렀다.
“그 실종된 인원 중 카텐디움의 귀족인 크로슈의 가주와 그의 아들이 있다는군.”
설마 했던 가정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파베는 이어지는 왕자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실소했다.
‘정말 크로슈의 청탁 때문에 예까지 온 건가?’
“알다시피 왕족은 왕국 귀족들의 분란이나 곤란을 중재하고 보살필 의무가 있소.”
‘그래, 유명무실한 옛 법이 있긴 하지.’
“그 의무를 이행하고자 크로슈 공이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던 장소의 주인인 왈라이카 경을 찾아온 것이니, 중재에 협조적으로 응하여 줬으면 하는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왕자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자세를 갖추었다.
말에 따르지 않으면 실력 행사에 들어가겠다는 압박.
여러모로 황당한 일이었다.
구태의연한 성문(成文)을 들어 의무 운운하는 행동도, 기사 여남은 명으로 왈라이카를 겁박하는 태도도.
‘설마, 진심으로.’
저 몇 기 안 되는 기사로 제자를 압박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용의 피가 흐르는 대마법사 왈라이카를?
왕자의 표정을 힐끗한 파베가 고개를 돌렸다. 왕자 뒤에 얌전히 선 크로슈의 후손들을 살폈다.
긴장 어린 낯으로 왕자와 제자를 주시하는 모양이 정말 이 상황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아가의 가족들이 왜 안 왔는지 알 만하구나.’
왕가를 끌어들여 유리한 고지를 점해 보겠다는 멍청한 발상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
끌어들이려면 좀 쓸만한 놈으로 고를 것이지. 하기야, 왕이나 왕세자가 이런 일에 낄 만큼 어리석진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파베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왕자를 쳐다보기만 하고 있는 제자를 흘깃했다가 내면으로 침잠했다.
고요하게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위나델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야.’
-네, 파베 님.
‘어떻게 해 줄까?’
잘못을 빌러 와도 용서해 줄까 말까 하는 판국에, 왕가의 힘을 업고 이쪽을 압박하려 든 괘씸한 종자들이다.
더군다나 달포 전까지만 해도 위나델을 학대하기까지 했던 것들. 너그럽게 넘어가 줄 이유가 없었다.
‘저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으면 좋겠니?’
-…….
‘뭐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위나델은 새삼스레 시조님의 눈을 통해 밖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어린 위나델을 조롱하고 비웃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를 가문에서 쫓아내라고 거수했던 사람들.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도 편들어 주는 이 없이 가문에서 내쳐지던 순간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큼 괴롭고 슬펐던 기억이었으니까.
두 달도 지나지 않은 기억을 곱씹던 위나델이 눈을 감았다 떴다. 내면에서 구현된 입술을 열었다.
-저는…….
파베가 아이의 입술이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위나델의 말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으려던 그때에.
“긴박한 중에 잠깐만 실례하겠다, 왈라이카 공.”
아무도 없던 오른편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베는 위나델의 말에 집중하느라 잠시 주변 감지를 소홀히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녀와 다르게 상대의 접근을 알고 있었을 왈라이카의 입술은 흥미롭다는 듯 가늘게 휘어 있었다.
‘흐음?’
끼어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파베가 조금 의아하게 고개를 갸울이는 순간, 저 앞에서 경악 어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너, 네가 왜 여기……!”
1왕자가 상대의 얼굴을 보며 더듬더듬 외쳤다.
“이렇게 아무 언질도 없이 수도 바깥까지 나가면 어찌할까, 형님.”
1왕자를 형님이라 칭한 남자가 미소 짓자, 남자를 따라온 기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금세 1왕자의 양옆을 점거했다.
당황한 1왕자가 제 곁을 보위하던 기사들에게 자신을 지키라 명령했으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새로 온 남자가 눈길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왕자의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으니까.
1왕자의 양팔을 쥔 기사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어떻게든 팔을 빼내려 몸을 비틀었으나 헛수고였다.
기사들이 왕자를 제 앞에 대령시키자, 서늘한 벽안으로 제 형을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큰 실수를 하셨어.”
“호, 혼! 잠깐만, 잠시 내 말 좀 듣고……!”
“이미 폐하께서 개입하지 않겠다 결론 내린 문제에 대고.”
“나는 그저, 왕실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1왕자는 제 변명을 끝맺지 못했다. 왕자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기사들이 그의 어깨를 세게 내리눌렀으니까.
반항하던 왕자는 곧 굴욕적인 자세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런 형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던 왕세자가 고개를 돌렸다. 왈라이카와 파베를 돌아보며 살갑게 말했다.
“기다려 주어 감사하네, 왈라이카 공.”
제 형을 바라보던 것과는 딴판으로 환하게 웃는 눈이 잔망스러웠다. 반가운 이를 만난 것처럼 활짝 미소 지은 그가 마저 이었다.
“가문 내부의 일로 다른 분들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이제 가문의 일은 일단락된 듯하니, 공께서는 공의 볼일을 마저 보셔도 될 듯해.”
그다음 한마디 더.
“마침 형님이 무릎을 꿇고 있으니, 볼일을 보기에도 더 수월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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