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꿀꺽.
눈앞의 남자를 보며 육철완이 마른침을 삼킨다.
‘저 남자가 바로…….’
구건이.
대한민국 최고의 집단인 ‘글로리 길드’의 수장.
매스컴을 통해 질릴 만큼 많이 봐 온 남자지만, 이렇게 랭킹전에서 마주하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왠지 답답하군.’
육철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숨 막힐 것 같은 압박감에서 나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뾰족뾰족 치솟은 머리.
둔탁한 사각 턱.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까지.
겉으로 보이는 구건이의 외향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육철완은 생전 처음 보는 긴장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 이질감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천해선의 곁에 있는 ‘특별한 생명체’ 또한 눈에 띄게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꾸르르…….
“어허.”
천해선이 조그맣게 경고의 음성을 보냈음에도, 뽀리는 그로울링을 멈추지 않았다.
통제가 잘되던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
게다가 그 울음소리 또한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매일같이 붙어 다녔던 천해선조차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날이 서 있는 건 처음이네.’
단순히 천해선의 주적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반응이 너무나도 표독스러웠다.
천해선은 어깨를 매만지는 척하며 뽀리를 달래 주었고, 뽀리의 그로울링은 그제야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나, 서슬 퍼런 노란색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구건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레귤러 멤버라지? 네놈도.”
구건이의 말에 육철완의 눈썹이 출렁인다.
격식을 차린 대화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시작부터 이놈 저놈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던 것.
자연스럽게 육철완의 입에서도 메마른 대답이 흘러나왔다.
“왜. 무슨 문제 있소?”
“나는 네놈 같은 타입을 싫어해.”
“타입? 내가 무슨 타입인데.”
“기생충.”
“……!!”
육철완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지만 구건이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 관할 구역에는 네놈처럼 후안무치한 새끼들이 바글바글하지. 도움을 받고 있는 주제에, 그것이 원래부터 누렸던 권리인 양 착각하는 놈들. 우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혔을 놈들 말이다.”
“내가 이레귤러에 들어간 게 기생충 같은 행동이다. 그런 말이오?”
“다른 연놈들과 달리 네놈은 고작해야 B랭크 버러지일 뿐이니까. 본인이 민폐를 끼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육철완의 어깨가 가볍게 진동한다.
구건이의 발언은 그에게 있어 아킬레스건 같은 말이었다.
사실은 매일같이 느끼고 있었다.
네 명의 ‘S’랭커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걸.
천해선이 육철완에게 손을 내민 것부터가, 그의 ‘능력’보다는 ‘인연’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참가를 한 거요.”
“?”
“이레귤러의 멤버로서 한몫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잠시 동안 침묵하던 구건이가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흐흐흐.”
“뭐가 웃기지?”
“어찌어찌 A랭커를 잡아서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자위질도 적당히 해야지.”
“……!”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싸워 이긴 걸로 정당성을 부여하겠다는 건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군. 그런다고 해서 네가 다른 놈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을 텐데. 나이 어린 놈들이 잘했다고 우쭈쭈 해 주면 없던 능력이 생기나?”
연거푸 모욕적인 말을 들은 육철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가 하는 말 중에서 딱히 틀린 말이 없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더욱 후벼 파고 있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최대한 증명해 보이도록 하지.”
고오오오.
육철완의 전신에 희뿌연 빛이 감돈다.
감정이 격해지면 에테르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지만, 베테랑 육철완은 정갈하게 기운을 갈무리했다.
화를 내면 낼수록 손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법 정신력이 강하군.’
구건이가 육철완을 말로 깔아뭉갠 건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가 분기탱천해 자신에게 달려들기를 바랐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일이 편해지거든.
대회에서 헌터를 죽이는 일이 말이다.
두두두두.
둔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육철완이 구건이에게 쇄도한다.
구건이가 한 말에 화가 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뛰쳐나간 것이기도 하다.
구건이를 눈앞에서 상대하자니 투명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
스피드가 빠른 것은 아니나 그 발걸음은 맹렬하기 그지없었다.
화악.
A랭크 에스퍼를 제압했을 때처럼, 근접거리에 다다른 육철완이 커다란 주먹을 구건이의 복부에 꽂아 넣는다.
쾅!!!!
“으…….”
지켜보는 관중들에게서 신음 소리가 먼저 나올 만큼 파괴적인 일격.
A랭크 에스퍼를 한 방에 골로 보냈던 ‘간장 쪼개기’ 기술이었다.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아요……!”
손톱을 깨물며 긴장해 있던 강정현의 표정이 급 밝아진다.
그러나 천해선의 얼굴엔 아주 작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
느낌은 확실했다.
A랭크 에스퍼를 주저앉혔을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한 감각이 주먹을 타고 흐른다.
당장이라도 엎드려서 먹은 것을 다 게워 내야 할 것 같은 일격.
하나 구건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파리가 앉은 것처럼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전부냐?”
“……!!”
‘간장 쪼개기’는 탱커인 육철완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살상 스킬이었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몇 날 며칠을 갈고 닦은 한 수.
가드라도 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공격이 정확히 구건이의 복부에 명중했음에도 아무런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으음……!!”
약이 오른 육철완이 구건이를 향해 연거푸 주먹을 쏟아 낸다.
울끈불끈한 양팔이 쉴 새 없이 구건이의 이곳저곳을 휘몰아친다.
쾅! 쾅! 쾅! 쾅!
누구 하나 말을 열지 않는 적막감 속에서 오직 주먹과 근육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린다.
쾅! 쾅!
“……야……. 뭔가 느낌이 쎄하지 않냐.”
“그러게……. 왜 이렇게 조마조마하지.”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관중들은 되려 육철완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 공격이 다 끝난 다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염려되는 것이다.
“이익……!!”
육철완이 젖먹던 힘을 다해 양손을 모아 구건이의 관자놀이를 가격한다.
쿵, 하는 둔탁한 충격음이 났지만 구건이의 머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정도나 차이가 난단 말인가……!’
그래도 약간의 타격은 입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육철완은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다.
구건이의 티어는 동료들과 같은 ‘S’랭크.
이래 가지고서야 그의 말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되지 않는가.
“……시시해.”
그때.
태산처럼 가만히 서 있던 구건이가 슬쩍 몸을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몸이 흔들려 보일 정도의, 아주 작은 움직임.
그러나 그 움직임의 끝은, 끔찍한 파열음과 닿아 있었다.
우지직!!!!
“크악……!!”
어느새 구건이의 주먹 끝이 육철완의 복부에 꽂혀 있었다.
그가 사용했던 ‘간장 쪼개기’와 비슷한 부위.
그러나 그 여파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우욱…….”
울컥 솟아오르는 핏물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육철완.
그가 두어 발자국 물러나 호흡을 정리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구속구가 아니었다면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육철완의 목 등을 타고 서늘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철완 아저씨!!!”
응원석에서 비수의 간절한 외침이 들린다.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기권을 하라는 것.
스스로의 입으로 기권을 선언하면 대련은 그 즉시 종료가 된다.
다시 한번 구건이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으면 어떻게 될까.
육철완은 모공이 송연해졌지만, 되려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낼 수는 없다.’
구건이가 파워업을 한 건 확실하다.
절반의 힘으로도 이런 파괴력이 나올진대, 이 스튜디오 밖에서의 힘은 추정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주 작은 약점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에 육철완은 다시 자세를 취했다.
구건이는 여전히 처음의 그 자리에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기권을 하거나 다운을 당하고 못 일어날 때 대련이 끝이 나더군.”
“……?”
‘꾸욱’ 하고, 구건이의 몸이 수축한다.
그리고 그 동작에 천해선은 감전이 된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저…… 건…….”
아주 흡사한 동작은 아니다.
집중하지 않고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만한 사소한 움직임.
그러나 천해선은 그 위화감을 놓치지 않았다.
흡사 야생의 동물 같은 날것의 움직임.
그건 바로, 키메라가 된 유지원을 상대할 때 보았던 장면이었다.
“멈춰야 돼!”
천해선이 다급히 대련장 쪽으로 향했으나, 이미 구건이의 손이 육철완에게 닿은 뒤였다.
콰악!!!!!!
“……!!!!”
목을 잡힌 터라 비명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대체 어느 틈에……?”
육철완은 도저히 지금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S랭크 헌터라고는 하나 구건이는 자신과 같은 ‘탱커’ 타입.
재빠른 동작보다는 우직한 힘으로 상대하는 헌터들이다.
하나 방금 구건이는 육철완이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접근해 왔다.
그야말로, 찰나의 타이밍.
구건이가 목을 잡은 손을 위로 들어 올린다.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채로.
자연스럽게 육철완의 두 발은 공중에서 버둥거리게 되었다.
“이러면 기권 선언은 하지 못할 테지.”
“……!!”
착각이었을까.
구건이의 어금니가 사람의 그것보다 더 뾰족하게 보였다.
쾅!!쾅!!쾅!!쾅!!
우지지지직.
곧이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폭력이 시작되었다.
주먹이 닿는 모든 부위의 뼈가 으스러지고, 피부가 찢겨졌다.
“으…… 으아……!!”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이 미친놈들아 당장 중지해!!!”
대련이 아닌 일방적인 폭행의 연속.
관중들이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이미 육철완은 전신이 으깨지고 심지어 얼굴마저 골절이 되어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부풀어 올랐다.
코와 입에서 연신 피가 새어 나왔고, 뒤늦게 사회자의 얼어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번 16강은 구건이 헌터의 승리입니다……!!”
그전의 대결과는 달리 그 어떤 환호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얼어붙은 적막만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울 뿐.
구건이가 고개를 들어 진행석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더없이 사악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
쾅!!!! 쾅!!!!!
다시금 구건이의 커다란 주먹이 육철완의 전신을 때려 부순다.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이상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
그러나 구건이의 기세가 워낙 흉흉한 탓에 누구 하나 제지하려 들지 않았다.
몸도 몸이지만 더 큰 문제는 호흡이었다.
이미 장기간 목을 죄인 육철완은 극심한 산소 부족으로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으…… 으아아아…….”
“저러다 정말 죽겠어……!!!!”
“빨리 누가 좀……!!!”
머리를 감싸 쥔 관중들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반드시 죽는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
파앗!!!!!!
번개 같은 섬광과 함께 검은 칼날이 공기를 가른다.
그와 동시에 구건이는 잡은 손을 뒤로 물렸다.
“아저씨!!!!!!!”
뒤이어 비수와 강정현의 절박한 목소리가 잇따른다.
천해선을 비롯한 이레귤러 멤버들이 직접 경기장에 뛰어든 것이다.
“오랜만이군.”
구건이가 천해선을 보며 이를 드러낸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어금니가 빛을 받아 번뜩인다.
“너…….”
휘오오오오오오오.
천해선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그리고, 블렉 에테르보다 더 위험한 불꽃이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