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디링디링…….
디링디링…….
디링디링…….
도통 답이 없는 신호음에 장리라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아잇, 싯팔!”
쾅.
그는 가느다란 손으로 키보드를 향해 샷건을 날렸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이 시간에, ‘그들’이 신호를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다 알고 일부러 안 받는 거 아냐?”
글로리 길드의 상황 통제실.
정수민 팀장의 명령을 받은 장리라는 매뉴얼에 쓰여 있는 대로 그들에게 무전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다.
“씨……. 이대로 그냥 보고할 수도 없고.”
전투 중인 정수민에게 ‘얘네 안 받는데요?’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그 안에 결코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욕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니.
어쩌면 정수민은 두 번 다시 보고를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3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제발 받아…… 받으라고, 개자식들아……!”
이미 서울에 인접한 글로리 길드원들에게 비상 연락을 취한 상황.
하지만 장리라는 ‘이들’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한, 사건의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키메라를 제압한 경험이 있는 집단이니까.
“받아! 받으라고! 쉬발 놈들아!”
장리라가 거칠게 욕설을 뱉으며 마우스를 광클 했다.
디링 디링…….
디링 디링…….
“야, 이레귤러 이 엿 같은 노…….”
-여보세요?
“뉨들아!”
급하게 놈들을 님들로 바꾼 탓에 기괴한 발음이 새어 나왔다.
상황이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장리라는 무전을 받은 여성이 어디서부터 들었을지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엥? 여보세요?
다행히 여성에게서 화난 기색은 없어 보였다.
장리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편,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천해선이 받지 않는 거지?’
매뉴얼대로라면 이레귤러에게 ‘원조 요청’을 했을 시, 천해선이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천상 말괄량이 아가씨의 음성이었다.
장리라는 정신을 바짝 세운 뒤 상대방에게 물었다.
“이, 이레귤러. 맞죠?”
-네, 맞아요. 누구세요?
“여기는 글로리 길드 본사 상황 통제실입니다. 저는 통제실 과장, 장리라라고 합니다.”
-읭? 저희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철완 삼촌.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스피커폰인가?
-맞다. 꼭 필요할 때에만 아저씨 대신 삼촌이라고 하는구나.
여성은 좀처럼 통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장리라는 분통이 터졌지만, 꾹 참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헌터 협회에서 제공한 이레귤러 전용 비상 연락망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천해선 헌터님을 바꿔 주시겠습니까?”
-비상 연락망? 우리 그런 것도 있었어?
-관할 구역 없이 깡패처럼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겠지.
-야, 첸. 깡패가 뭐냐 깡패가.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태평하게 농담 따 먹기나 하고 있는 대화를 듣자니 장리라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이 자식들아!”
-어머.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잔말 말고 천해선 바꾸라고! 지금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알아?”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성별이 모호한 음성의 퉁명스러운 대꾸뿐이었다.
-우린 별로 안 급한데.
장리라는 다시 한번 키보드로 샷건을 날려야만 했다.
“아잇. 씻팔!”
-어머머. 와. 명문 글로리 길드에 저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있네. 마리아 언니. 통제실이 원래 저랬어요?
-…….
모르는 건지 부끄러운 건지 마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반면 ‘마리아’라는 이름을 들은 장리라는 구원자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물었다.
“마리아 헌터님! 거기 계십니까?”
-……네.
마리아가 마지못해 작게 대답했다.
-욕은……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평판을 신경 쓰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마리아는 글로리 길드에 애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비수’에게서 경우 없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리아는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은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급하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글로리 길드는 ‘이레귤러’에 정식으로 원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지역은 서울 방배동. 좌표는 별도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상대해야 할 대상은…….”
-키메라죠?
“?! 흡, 켁켁.”
장리라는 숨이 넘어가다 못해 격한 기침을 토해 내야 했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희 나름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기절할 만큼 놀랐지만, 지금은 그 방법에 관해 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지금 바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헤드셋을 통해 따스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미 지금 그쪽으로 향하는 중이에요. 5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아…….”
과연.
장리라는 마리아가 왜 ‘성모’라 불리는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레귤러가 이미 사건 현장으로 가고 있다는 정보.
거기에 따듯한 마리아의 음성이 더해지자 장리라는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불행하게도, 그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아. 어쩐지. 해선이 놈이 대체 수신자를 철완 아저씨가 아니라 나로 해 놨네. 이 기계치 새끼.
-그나마 우리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마터면 협회에서 항의를 받을 뻔했다. 비상 연락망을 왜 무시했냐고 말이다. 비수 네가 이 정도로 기계를 못 다룰 줄은…….
-잘못 지정한 건 해선이 놈인데, 왜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스피커폰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건지, 이레귤러는 자기들끼리 떠들고 화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통제실 직원답게, 장리라는 그들의 시시껄렁한 대화 속에서 석연치 않은 내용을 감지할 수 있었다.
“대체 수신자라면…… 지금 천해선 헌터는 거기 없다는 말씀입니까?”
-네. 지금 비행기 안에 있는데요?
“!!!!”
마리아를 통해 얻었던 구원의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미치겠네. 이제 어떡하지?’
도움 요청을 ‘이레귤러’에게 보낸 것은 맞지만, 천해선이 없는 이레귤러는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헌터들도 대부분 S급 헌터들이나, 그 정도 수준은 글로리 길드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장리라는 그런 생각에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휴…….”
-휴? 지금 한숨 쉰 거예요?
무전을 받았던 여성이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움을 요청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키메라를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견적 안 나온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니까.
“…….”
그 터무니없는 대답에 장리라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자들에게 그런 초법적인 권한을 줬단 말이야?’
구조 요청에도 설렁설렁 임하더니, 안 될 것 같으면 도망을 친다고?
장리라는 이레귤러라는 집단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장리라가 잠시 침묵하자, 마리아가 눈치를 챈 듯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아요. 천해선 헌터님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저희 나름대로 대응책이 있어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남아서 현장을 지킬 거예요. 리라 씨도 다른 글로리 길드원들에게 계속해서 파견 요청을 보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리라는 그렇게 말한 뒤 무전을 끊었다.
이레귤러라는 집단을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 속한 마리아는 그녀가 동경하다시피 하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한 입을 가지고 두말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방배동을 담당하는 3팀은 팀장을 비롯해 길드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백업을 가는 6팀의 생사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난리 통에 장리라는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마리아가 이야기한 대로 바쁘게 손을 놀리며 지원 요청을 보냈다.
‘부탁드립니다. 마리아 님……!’
마음 한켠에 간절한 바람을 품은 채로.
* * *
현장에 도착한 정수민이 처음 한 행동은, 동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진승…….”
그의 눈앞에는 성인의 두 배쯤 커 보이는 키메라가 서 있었다.
터질 듯이 솟아오른 근육과 비대칭하게 자라 버린 신체 기관을 보면 결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수민은 눈앞의 존재가 이진승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관자놀이의 흉터가 또렷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너…… 진승이 맞지?”
이진승은 나이트치고 꽤나 지적으로 생긴 헌터였다.
얼핏 보면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보였지만, 흉터를 비롯해 얼굴 곳곳에 이진승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크르르…….
그러나 키메라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사냥감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뿐.
쾅.
도약을 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와 함께 키메라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
아이러니하게도, 정수민은 하늘로 솟구친 키메라를 보며 녀석이 이진승이라고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상대보다 높은 포지션에서 기다란 칼로 공격하는 게 녀석의 전투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투 본능이 남아 있는 건가.’
정수민은 그렇게 생각한 뒤 자신의 쌍검을 출수했다.
이전처럼 이진승의 손에 칼이 달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몸집이 커진 탓에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사정거리가 길어진 상태였다.
쾅!!
“큭……!!”
정수민은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니, 양다리가 지면에 파묻혀 버렸으니 절반 정도는 맞는 표현이었다.
‘무지막지하다…….’
이진승의 공격은 매끄럽지만 파워가 부족한 편이었다.
정수민은 과거 대련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 내었고, 이내 이진승의 달라진 파워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크으워.
키메라가 남은 한쪽 팔로 정수민의 머리 쪽을 후려쳤다.
정수민은 요가를 하듯 허리를 뒤로 눕혀 간신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부웅!
정수민은 파공음에 식은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땅속에 박힌 발을 빼냈다.
“흐아압!”
그리고는 첫 공격 만에 자신의 정수, ‘네 개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그동안의 전투 경험과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대련이었지만, 이진승은 정수민의 스킬을 전혀 파악해 내지 못했었다.
이진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헌터들이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가진 쌍검에 환영을 만들어 검날을 두 개 더 추가하는 성명절기.
지금까지 이 스킬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단 두 명이었다.
유효타를 먹여도 딱히 대미지를 입지 않았던 구건이.
그리고 랭킹전 당시 ‘네 개의 칼날’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천해선.
‘네 개의 칼날’이 천해선에게 완파 당한 이후, 정수민은 더욱더 실력을 갈고닦아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시켰다.
그러나.
캉!!!
“?!”
세 번째.
키메라가 된 이진승은 정수민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세 번째 존재가 되었다.
‘전혀 타격이 없다……!’
나이트치고 물렁물렁했던 신체가 아니었다.
최상위 탱커였던 구건이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한 강성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이익……!”
인정하기 싫다는 듯 정수민이 연이어 ‘네 개의 칼날’을 펼쳐 들었다.
하나 이번에는 한 차원 더 절망적인 결과가 나타나 버렸다.
덥석.
키메라가 두 개의 허상을 완벽히 꿰뚫고 ‘진짜 칼날’ 두 개를 양손으로 쥐어 잡았기 때문이다.
“……!”
몸은 몸대로 단단하고, ‘네 개의 칼날’을 꿰뚫어 볼 만큼 감각이 탁월하다.
마치 구건이와 천해선을 합쳐 놓은 존재 같았다.
“이익……!”
잡힌 칼날을 빼내려 정수민이 갖은 애를 썼으나, 돌아온 건 키메라의 두꺼운 발이었다.
퍼억!!!!!
가슴뼈가 으스러지는 감각과 함께, 정수민은 수백 미터를 럭비공처럼 굴렀다.
몸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고,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만신창이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 진입한 정수민.
바닥에 누워 흐릿해져 가는 그의 의식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게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