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옥티엔스는 어디에 있지?
두 번째의 질문에 네 번째가 대답했다.
-확인해 볼 게 있다면서 처음 온 지역으로 갔다.
-확인? 시체밖에 없는 곳에서 무슨 확인을 한다는 거지?
두 번째가 입술을 비틀며 이죽거렸다.
서열 2위 이테룸(Iterum)은 마인들 중에서 가장 마력을 잘 다루고, 성질이 포악한 존재였다.
네번째 마인 ‘콰르툼’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옥티엔스는 생각이 너무 깊어서 문제야. 생긴 대로 단순 무식하게 가면 좋을 텐데. 생각이 많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야. 테르티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낄낄.
그러자 퀴스케가 볼을 부풀렸다.
-테르티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
제멋대로인 이테룸이었지만 퀴스케만큼은 그도 어쩌지 못했다.
이테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티엔스가 도작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헤헤. 괜찮아요.
퀴스케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물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게 뭐예요?
-훼방꾼의 흔적입니다.
옥티엔스의 말에 모든 마인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스스스…….
들끓어오르는 증오가 암흑 물질로 이어져 마인들의 몸 밖으로 산화했다.
‘훼방꾼’이란 단어만으로 이런 반응이라니.
포이즈너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퀴스케는 별다른 말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찾았나요?
-네. 메루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이테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헛소리!
유독 이테룸의 몸 주변에서 암흑 물질이 불길처럼 크게 일렁였다.
그만큼 컨트롤할 수있는 암흑 물질의 양이 많다는 이야기였고, 그만큼 분노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현장에 인간이라는 인간은 전부 다 잡아 죽였다. 작은 날짐승이나 들짐승까지도 싸그리! 메루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우리의 눈에 안 들어왔을 리 없어!
하늘에 떠 있는 암흑 물질.
그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죽었다.
적어도 어둠이 비추는 곳은 모두 퀴스케의 영역이라 불러도 좋았다.
모두가 이테룸처럼 소리를 지른 것은 아니지만,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퀴스케의 영역 안에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의 이질적인 기운이 모든 마인들에게 똑똑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루스를 느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옆에서 난리를 치건 말건, 옥티엔스는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대답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간인은 물론이요, 그들에게 저항했던 북한의 헌터들은 대부분 약했다.
만약 메루스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면 몰라봤을 리 없을 터.
그러나 현장에 헌터들을 모두 죽이는 동안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을 죽인 흔적은 있는데, 죽인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니…….
퀴스케가 작은 손을 턱에 괴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 일이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인간이 아니라 유령이라 할지라도 여기서는 우릴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퀴스케가 한 팔을 휘휘 저으며 앞장서 걸었다.
옥티엔스도 더는 고민을 품지 않고 그를 따라 걸었다.
퀴스케의 말이 옳다.
더 이상 이곳 인간계에는 차원 간섭 따위 느껴지지 않는다.
마계와 동일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퀴스케를 이길 상대는 없다.
그는 이미 한 세계의 에너지를 몽땅 수탈해 간 다른 차원의 존재였으니까.
‘설령 숨어 있다 한들, 언젠가는 밖으로 나올 테지.’
걸음을 옮기고 난 뒤부터, 옥티엔스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이야.”
사일리아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천해선에게 보여 주었다.
“암흑 물질이 군사 경계선을 넘었어. 이제는 한국이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녀의 말마따나, 이제 마인들이 침범한 영역은 ‘남한’에도 적용이 되었다.
“너네도 참 징하다니까. 어떻게 몬스터가 나타나는 시기에도 분단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천해선은 쓰게 웃으며 핸드폰을 넘겼다.
“글쎄. 어쨌거나 더는 그쪽 입장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북한의 모든 국민이 죽음을 맞이한 마당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이 영토를 넘어온다 한들 항의할 사람이 없었다.
“승산이 얼마나 된다고 봐?”
다른 헌터들이 각자의 장비를 챙기는 사이, 사일리아가 낮게 속삭였다.
“그걸 총재가 물어보면 어떻게 해?”
“원래 리더는 사람만 잘 부리면 장땡이야. 대가리까지 좋을 필요는 없어.”
천해선이 코웃음을 한번 친 뒤 나직이 말했다.
“10프로?”
“그것밖에 안 돼?”
사일리아의 귀티 나는 눈매가 휘둥그레졌다.
“불확실한 게 너무 많아. 마인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그동안 차원 간섭 때문에 편하게 싸워 왔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리고?”
“……아냐.”
그러자 사일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천해선. 화장실에서 일 보는데 누가 억지로 일으키면 어떨 것 같아?”
“엿 같겠지.”
“내 기분이 지금 그래.”
“하하.”
천해선은 한차례 웃은 뒤 여왕님의 고귀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인류의 리더라면 알아야 할 권리가 있겠지.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망설였던 말을 꺼냈다.
“키릴도 중요한 변수가 될 거야.”
“키…… 읍.”
사일리아의 목소리가 커지자 천해선이 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음. 쏘리.”
사일리아는 순순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뒤 자세를 낮게 숙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키릴이 온대?”
“오는지 안 오는지는 몰라. 근데 높은 확률로 오겠지. 어쩌면 이미 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키릴은 나의 힘을 빼앗을 생각을 가지고 있어.”
“……!”
너무 기가 막히다 보면 오히려 덤덤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사일리아의 휘둥그레진 눈이 본래의 아리따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재주가 있네.”
“그렇지?”
천해선은 간략하게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과연……. 직접 겪어 봤으니까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배신자’가 되는 거 아니겠어?”
“나한테는 배신이지만 인류에게는 배신이 아니겠지.”
“허…….”
“만약 그럴 때가 오면 잘 생각해.”
“잘 생각하라니?”
“넌 인류의 리더야 사일리아.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승산이 있는 쪽을 택하라는 거야.”
“……!”
사일리아의 눈매가 갑자기 험악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네가 뒤지는 게 낫다고 판단되면 키릴을 말리지 말라는 건가?”
천해선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일리아의 험악한 눈은 한층 더 매섭게 변했다.
“하. 날 뭘로 보는 거야? 네 뜻대로 해 주지. 키릴의 편에 서는 쪽이 이기는 길이라면 내 카테나로 직접 네놈의 목을 베어 버리겠어.”
“오케이.”
천해선이 싱긋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의 정면에는 바라만 봐도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지평선을 따라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내 말 잘 들어!”
천해선과의 대화에 화가 난 것인지, 사일리아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울려 퍼졌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알아들었나?”
활활 타오르는 그녀의 에테르에 헌터들이 감복한 듯 대답했다.
“네!”
“주제넘게 마인에게 덤비는 놈들은 내 카테나에 먼저 죽을 것이다. 마인 말고도 처치해야 하는 마물들은 넘치도록 많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놈들을 제거한다!”
“네!”
“이 땅의 모든 헌터들!”
꿀꺽.
수많은 헌터들이 침을 삼켰다.
앞으로 다가올 신호 하나에, 인류의 생존을 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부우웅.
천해선의 몸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곧, 도약할 자세를 취했다.
천해선의 동작을 확인한 사일리아가 들어 올린 팔을 힘껏 휘둘렀다.
“돌겨어억!!”
“으아아아아!!”
태양을 막아선 검은 구름에 대항이라도 하듯, 헌터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곧, 천해선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파바바바박.
레벨 3의 ‘독보’.
‘스카이워크’를 발동시킨 천해선은 뒤따라오는 헌터들이 무색하게 거리를 벌렸다.
황금색 투기가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헌터들의 시야에 똑똑하게 각인되었다.
‘어마어마하구나.’
하늘에서 본 마물 군단의 세력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많았다.
대충 추산해 보아도 수십만, 아니 수백만은 되어 보일 것 같은 규모였다.
천해선은 이 장면을 자신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담력이 없다면, 지금의 규모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고오오…….
인상적인 장면이 또 하나 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둥둥 떠 있는 것 같은데, 검은 구름의 한가운데에 가늘고 기다란 줄이 있었다.
고깔처럼 천천히 가늘어진 줄은, 저 멀리 보이는 누군가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인치고는 아주 작은, 그러나 끔찍한 기운을 담고 있는 존재.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세한 모습을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기분 탓일까.
천해선은 왠지 놈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놈이 퀴스케인가.’
타깃을 확인한 천해선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놈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릴 좋은 선물을 떠올린 것이다.
‘적독사…… 아니, 이제는 ‘금(金)독사’라고 불러야겠지.’
하늘을 달리는 와중에, 천해선이 오른손 손가락을 퉁겼다.
딱.
그러자 귀청을 때리는 포효와 함께 검은 구름의 한쪽에 균열이 생겼다
-키야아아아아아악!!
비늘은 황금색으로 변했지만, 위압감은 여전했다.
어지간한 드래곤보다 커다란 독사가 암흑 구름을 뚫어 버리고 마물들을 향해 하강했다.
쾅!!!!!!!!!!!!!!!!!!
“윽……!”
달려오던 헌터들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적독사가 들이받은 곳은 운석이 떨어진 듯한 구덩이를 남겼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마물들 수백 마리가 쥐포 모양이 된 채 절명해 버렸다.
“……사일리아.”
“왜, 잉센.”
“진짜 괴물은 사실 저 친구가 아닐까?”
잉센의 질문에 사일리아가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천해선의 무식한, 그러나 무지막지한 공격은 헌터들의 사기를 올려놓는 데에 충분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C랭크부터 S랭크까지, 모든 티어의 헌터들이 목이 부서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 그들의 앞에 바로 그 ‘괴물’이 하강했다.
텅.
천해선은 내려오기가 무섭게 손바닥의 아지랑이에서 금색 기운을 뽑아내었다.
‘독무.’
슈우우…….
손바닥을 펼친 한쪽 영역으로부터 안개 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빨라……!’
일전에 천해선에게서 ‘테스트’를 받았던 헌터들은, 다른 의미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금색 안개가 공기를 타고 퍼지는 속도와 규모가, 이전 테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테스트를 받았던 헌터들과 달리, 눈앞의 존재들은 손속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키아아아악!
-케헥.
겁도 없이 ‘독무’의 영역에 발을 들이던 앞선 마물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지성이 없는 하급 마물이라지만 눈은 달려 있을 터.
마물들의 진격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에스퍼!”
사일리아의 명령에 모든 에스퍼들이 스킬을 뽑아 들었다.
그들의 과녁이 어디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천해선의 독무를 피해 한쪽으로 모여든 마물들.
촘촘히 밀집되어 있는 무리들을 향해 종류도 다양한 에테르 스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륵.
번쩍.
-캬아아아아!
천해선이 독무로 저지한 지역은 전체의 1/3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물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옆으로 가자니 ‘독무’ 지대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별의별 스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천해선을 위시한 헌터들은 전략적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의 앞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는.
텅.
이제껏 봐 온 마물들중에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에스퍼들의 앞을 막아섰다.
옥티엔스.
그가 가장 앞에 있는 에스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죽음을 직감한 듯, 에스퍼가 눈을 감았다.
쿵!!!!!!!!!
둔탁한 소리가 대지를 울리고, 격돌만으로 풍압이 일었다.
평범한 에스퍼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 그의 주먹을 힘으로 막은 것이다.
-……나는 옥티엔스. 너는 누구냐.
눈을 감았던 에스퍼가 눈을 떴을 때, 빛나는 건틀렛을 장착한 중년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포이즌 던전의 청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