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8
정도마신 127화
무적검천(無敵劍天) 사도준!
그 이름은 당금 무림에서 실로 위대하게 여겨지는 대명(大名)이었다.
전대 천하 칠대고수 중에서도 염라대사 영환과 함께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았던 이.
당연히 현재의 팔대고수 중에는 최고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사실상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평가받는 자가 무적검천 사도준이었다.
사완악은 염라대사 영환이 그에 대해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정말 강하다. 십 년 뒤라면 몰라도 당장은 자신이 없다.’
염라대사 영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사도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도준은 염라대사 영환보다 딱 십 년 정도의 무림선배였고, 그렇다는 건 소림사의 백년기재라 불렸던 영환조차 그를 같은 나이에 앞질러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지금 사완악의 눈에 보이는 무적검천의 나이는 불과 불혹 정도에 불과해 보였으니, 실제보다 이십 년은 젊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마저 천기자의 제자라니. 도대체 천기자는 어떻게 생겨 먹은 노친네지?”
무적검천 사도준은 엄숙한 눈으로 사완악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평생 검도를 쫓아 살아온 사람이라 자네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재주가 없네. 하지만 나를 꺾는다면, 천기자를 만나게 될 것이네.”
사완악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적검천 사도준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천기자를 가리켜 ‘사부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사도준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사완악이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그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이 요상한 진법에 천하제일인이라. 재밌겠네.”
사완악은 가볍게 양손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이때, 무적검천 사도준의 얼굴이 굳어지며 감출 수 없는 놀람이 떠올랐다.
그저 미세한 동작의 변화였을 뿐인데, 사완악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도가 완전히 달라졌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천방지축에 장난기 가득한 소년을 보는 듯했다면, 지금은 마치…….
‘아니, 여전히 악동 같은 느낌은 똑같군. 그래서 더 무섭구나.’
무적검천 사도준은 그렇게 느꼈다.
전신이 따끔거리고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사완악의 기도는 엄청났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걸려 있으니 참으로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도준은 알고 있었다.
진정한 힘을 일으킬 때도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무서움을.
무적검천 사도준은 평생을 검도에 매진하며 숱한 고수들을 만났지만……
이토록 젊은 나이에 저런 기도(氣度)를 가진 사람은 강호의 전설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적검천의 얼굴에도 역시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인이란, 그런 사람이었다.
“시작할까.”
사완악은 씩 웃으며 답했다.
“마음대로.”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무적검천 사도준의 신형이 땅을 박찼다.
그의 손에서 장검이 무서운 빛을 발하며 사완악을 향해 덮쳐갔다.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훌륭한 검법……!”
사완악은 그의 검을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검광이 번쩍이는 가운데, 사완악의 파신마장이 권세를 일으키며 펼쳐졌다.
꽈꽝!
천지가 뒤집히는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고 거센 경력(勁力)은 태풍처럼 소용돌이쳐 사방
을 휘감았다.
‘으음!’
무적검천 사도준은 막강한 충격에 신음을 삼켰다.
무적검천의 검법은 강맹한 힘으로 상대를 내리찍듯 압도하는 무공이었고, 사완악의 파신마장은 소림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는 힘 대 힘의 대결.
꽈앙!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초식이 격돌했다.
무적검천 사도준의 검이 파르르 떨렸고, 사완악의 백의장삼은 태풍을 만난 듯 펄럭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내력을 일으켜 부딪쳐 갔다.
꽈앙! 꽈앙!
몇 번의 격돌이 더해졌을 때.
무적검천 사도준의 장대한 체구가 뒤로 한 걸음 밀려났다.
반면에 사완악은 반의 반 걸음 정도 물러섰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의 실력 차이를 보여 주는 듯했다.
“……!”
무적검천 사도준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가 자신의 검술을 완성한 이래, 처음 당해 본 진퇴(震退)였다.
“힘에서 밀려 본 것은 처음이군.”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나도 손목이 아려 오는 건 영환 사부 이후로 처음이야.”
무적검천 사도준이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가슴 높이에서 똑바로 세웠다.
검날은 하늘을 향해 있었는데, 사도준의 전신에서 막대한 내공이 흘러나와 검으로 들어가더니 돌연 검 끝에서 일 장 길이의 내공으로 만들어진 검날이 쑥 솟아올랐다.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검강(劍罡)……!”
내공이 삼 갑자에 이르면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현상.
검강 자체에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쇠로 만들어진 검은 일정 이상의 내공이 실리면 깨지기 마련인데, 검강은 얼마의 내공이든 응축할 수 있으니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었다.
“무적검천. 내 별호이자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를 위한 최후의 초식이네. 받아 보게나.”
다음 순간, 사도준의 신형은 검과 함께 한 줄기 거대한 광채가 되어 사완악을 향해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 빛줄기는 세상을 가로막는 무엇이든 다 파괴해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완악의 입에서 흥미로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과연…….”
어느새, 사완악은 양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원의 가운데에는 강렬한 기운이 구(球)의 형태로 압축되듯 나타났고, 점점 커져 갔다.
이는 사완악이 소림사의 원로 노승을 쓰러뜨리기 위해 펼쳤던 파신마장의 후반부 초식, 파천마군(破天魔君)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이 만들어 낸 구의 크기와 강렬함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사완악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무적검천 사도준을 향해, 압축된 파천마군의 기운을 내질렀다.
꽈르르릉!
두 기운이 격돌한 순간, 주변에는 그야말로 태풍이 일었다.
천지가 개벽할 것 같은 기의 충돌.
그리고…… 뜨드드득!
무적검천 사도준의 검날에 수백 개의 실선이 생겨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대단…… 하군…….”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은 사도준의 입에서는 한 가닥의 선혈이 흘러내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적검천. 무서운 검법이네.”
사도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완악의 찬사가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일대 검호로 살아온 그에게, 그 말이면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악수라도 하고 싶다.”
사도준은 쓰러지는 신형을 간신히 버티며,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도준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 뾰족한 여인의 음성이 사완악의 귓가를 때렸다.
“뒤를 조심해요!”
그것은 한마디였을 뿐이나, 사완악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이 스쳐 갔다.
사완악은 재빨리 손을 거두며 몸을 숙임과 동시에 옆으로 보법을 밟아 직선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쌔애애액!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온 하나의 장검이 간발의 차이로 사완악을 스치고 지나 허공을 갈랐다.
“컥!”
단말마의 비명은 무적검천 사도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완악이 몸을 피하면서 날아온 장검은 그대로 사도준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사완악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적검천 사도준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에 박힌 장검이, 조금 전 산산조각 난 그의 검과 완전히 같은 모양과 문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가 봐도 한 쌍의 쌍검이었다.
무적검천 사도준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최후의 초식이 빗나가고 말았군…….”
사완악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사도준의 무적검천은 처음에 격돌했던 검강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형을 검과 함께 돌진하면서, 다른 하나의 검을 뒤로 돌려 이기어검의 묘리로 사완악의 등 뒤를 노렸던 것이다.
이는 수백 개의 무공을 섭렵한 사완악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한 수법이었다.
사완악은 그제야 사도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를 위한 최후의 초식이네.’
즉,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펼치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필살 초식이었던 것이다.
물론 평소의 사완악이라면 무적검천의 마지막 이기어검술을 알아차렸겠지만, 이군이 펼쳐 놓은 진법에서는 조금의 낌새도 느낄 수 없었다.
무적검천 사도준은 사완악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음성으로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은 후,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이때 한 여인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군!”
그 여인은 바람처럼 달려와 쓰러진 사도준의 신형을 감싸 안았다.
사완악은 그녀가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 오군 연비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사군.”
무적검천 사도준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절명했던 것이다.
사완악은 연비려에게 말했다.
“이해한다고 전해 달라는군.”
연비려는 그것이 무적검천 사도준의 유언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연비려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겹게 말했다.
“이제 그만해요. 저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그것은 사완악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삼십대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평범한 체격과 이목구비에,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다만 그의 눈빛은 잔잔하고 깊은 호수와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비범한 기운이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완악은 그를 보는 순간,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네가 일군이겠군.”
호수 같은 눈빛의 사내, 천의문의 대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확히는 일군이었지요.”
“그 말은?”
사내가 말했다.
“나는 천의문의 십칠대 문주, 천기자 백신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