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9
정도마신 128화
“천기자…….”
뜻밖의 말에 사완악은 그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일군이라면 천기자의 첫 번째 제자일 텐데, 천기자라니?
또한 사완악의 기억 속에는 천기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선풍도골의 노인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완악의 의문을 백신형이 간단하게 풀어 주었다.
“천기자란 천의문의 문주에게 주어지는 호칭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천기자는, 제 사부님이시지요.”
사완악은 그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말이 되는군. 아니, 잠깐…… 그럼 당신이 현재 천의문의 문주라는 건?”
백신형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었…… 다고?”
사완악은 망치로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자신을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든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준비했던 세월이 얼마이던가?
그런데 이미 죽었다니?
그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스으으으!
사완악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군 연비려와 천의문주 백신형의 안색이 크게 굳어졌다.
사완악의 진심에서 일어나는 사존의 기운은 마치 죽음의 기운을 마주한 것만 같았고, 본능적인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제멋대로 나를 악인으로 만들겠다고 설친 늙은이가…… 뭐? 오래전에 죽었어?”
백신형은 담담한 눈빛으로 내공을 일으켜 사완악의 기운을 해소하며 말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사부님께서 돌아가신 원인은 당신을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은 제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나 때문에 죽었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
사완악의 그런 반응에 백신형은 차분히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지요. 천의문이 탄생하고 존재하는 이유부터 말입니다.”
사완악은 수십 가지의 궁금증이 동시에 일어났지만 일단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 보지.”
백신형은 진법으로 만들어진 험준한 산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과거, 하늘은 이 땅에 능력을 베풀기 위해 한 명의 신인(神人)을 보냈습니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음양천자(陰陽天子)?”
백신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것을 안다는 건, 사존의 힘을 완전히 얻었다는 뜻이군요.”
“그래서?”
“음양천자에게는 열두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강한 것은 산신과 마선이었지요. 물론 강하다는 건 무언가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당신이 얻은 주선의 능력이 결코 그들의 힘보다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선과 마찬가지로, 조금 다른 종류의 힘을 얻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천의문을 만드신 천기(天機)입니다.”
사완악은 조용히 백신형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가 지금 말하는 비사는 사령문의 기록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천기께서는 하늘의 계획을 읽는 능력을 얻으셨습니다. 하늘이 안배한 사항들을 읽고,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 대비할 수 있게 말입니다. 천기누설이라는 말은 그에서 비롯되었지요.”
사완악은 천기자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도 백신형의 말이 사뭇 흥미롭게 느껴졌다.
“천기께서는 천의문을 세우시고, 제자를 길렀습니다. 천의문은 하늘을 읽고, 세상에 복이 있으면 그 효율을 높이고, 재난이 있으면 대비하여 피해를 축소했지요. 그리고 다음 대를 위한 천기자를 육성하는 것까지가, 천의문의 의무였습니다.”
백신형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정파로 흘러간 산신의 힘과, 마교로 이어진 마선의 힘, 독자적인 힘을 탄생시킨 주선의 힘이 그러하듯, 시간이 흐를수록 천기의 힘도 그 본질을 조금씩 잃어 갔습니다.”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기의 힘은 하늘을 읽는 능력인데, 다른 힘들과 달리 약해질 일이 있나?”
백신형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하늘이 변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별들이 생겨났고, 천기께서 설명하지 않았던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천의문 내에서는 하늘을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유파가 갈라졌지요. 하지만 유파가 생겨난 이후 천의문은 더 발전했습니다. 천기를 읽는 다양한 방법이 생기고, 다시 토론을 거쳐 완벽한 길로 정립해 갔습니다. 그리고 갈라졌던 유파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이 삼백 년 전, 전대의 영겁사령존이 나타났을 때입니다. 당시 선대 중 비교할 바 없이 가장 뛰어나셨던 십이대(十二代) 천기자께서 큰 깨달음을 얻어 영겁사령존을 봉인하고, 유파들의 이론을 하나로 합쳐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사완악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천하를 지배할 뻔했던 전대의 영겁사령존을 천의문에서 제압했다는 뜻이었다.
얼추 시간도 맞고, 이야기의 흐름도 맞았다.
‘그렇다면 천의문에서 사령문의 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나의 섭혼술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고, 영겁사령존의 영혼이 봉인된 영겁사령환을 갖고 있다가 사부들에게 주어 나에게 심게 만든 것도 아귀가 맞는구나.’
앞뒤가 맞아 떨어지니 백신형의 말들에 신뢰가 생겼다.
사완악이 묵묵히 기다리자, 백신형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천의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수호성과 천살성이었습니다.”
사완악은 무적검천 사도준이 자신에게 수호성을 타고 났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잘 모르기에 그것부터 물었다.
“수호성과 천살성이 뭐지?”
“수호성은 자미성이라고도 하고,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성좌입니다. 천살성은 반대로 하늘에서 가장 흉악한 흉성(兇星)이지요. 수호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천살성은 나타날 때도 있고,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자비롭다고 하는 것이지요. 선은 언제나 존재하고, 악은 사라지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세상에는 이 별들의 기운을 받아 탄생한 영웅들이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림사를 세운 달마 조사와 무당파를 세운 장삼봉 조사,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본문의 십이 대 장문인은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 난 분들이었지요. 반대로 오백 년 전 혈겁을 일으켰던 마교의 삼대 교주와, 당신도 알고 있을 전대의 영겁사령존은 천살성의 기운 아래 태어난 자들이었습니다.”
사완악은 백신형의 말에 점점 빠져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천의문은 천살성에 대해 어느 정도 대비만 할 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지?”
“천살성이 아무리 빛나던 시기라도, 수호성의 빛을 이긴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강한 천살성이 나타나면 수호성은 그보다 더 밝게 빛나며 세상에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천의문은 뒤에서 수호성의 영웅들을 조금씩 도울 뿐, 굳이 전면으로 나설 필요는 없었습니다.”
백신형은 그 말을 마치고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십 년 전, 하늘에는 전례 없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설마 천살성의 기운이 수호성의 기운을 이긴 건가?”
“당신은 역시 눈치가 빠르군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매우 압도적인 기세였습니다. 수호성의 빛이 꺼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요. 그리고 그 기운을 받아 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사완악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 난 아이가…….”
백신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완악을 가리켰다.
“예. 사완악, 바로 당신입니다.”
사완악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그 침묵을 깨고 백신형이 입을 열었다.
“그 천기를 읽으신 분이 저의 사부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은 천의문의 오래된 문헌에서 육대(六代) 천기자께서 남기신 하나의 예언을 찾으셨습니다. 천살성의 기운이 수호성을 덮치는 날, 악마와 영웅을 잡아먹고 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
사완악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아니,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한 가지 매우 괴이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괴이하다고 여겼던 그 가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재 천의문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사완악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그게 나를 악인으로 만들려는 이유였나?”
백신형은 새삼 다시 한번 놀랐다.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전혀 몰랐던 사실들일 텐데, 순식간에 그것들을 이해한 것이다.
“당신은 정말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군요. 맞습니다. 사부님은 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천의문의 고서들을 보며 연구를 거듭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결론?”
“예. 수호성과 천살성은 빛과 그림자이며, 음양의 이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수호성이 밝게 빛날 때, 천살성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천살성이 수호성을 덮친다는 건, 음이 양을 멸한다는 뜻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늘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사부님은 생각했습니다. 수호성과 천살성이 음양의 이치를 따른다면, 만약 수호성이 악(惡)이 된다면, 천살성은 선(善)의 기운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세상에는 유례없이 뛰어난 선이 현현할 것이며, 세상은 멸망하는 대신 큰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사완악은 황당하면서도 그럴듯한 말에 멍하니 백신형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백신형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수호성을 악으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사대악인은 천살성 다음으로 흉악한 성좌를 타고난 자들이었고, 그들에게 당신을 맡겼습니다. 또한 당신의 수호성을 봉인하고, 전대 영겁사령존의 영혼을 심어 넣었습니다. 당신은 역사상 가장 희미한 수호성이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가능할 거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당신이 악인으로 자라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 평화스러웠지요. 사파는 자멸하고, 정도 무림은 꽃을 피웠으며, 나라는 태평성대였습니다.”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는 물었다.
“그런데 내가 강호로 나와 당신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였군.”
백신형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떠올랐고,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오히려 협행을 시작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행동이었지요. 당신이 협행을 하면 할수록, 천살성의 숨은 기질이 깨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음모를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