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8
정도마신 87화
그것은 현종과 똑같은 대력금강장이었다.
키 작은 노승은 현종이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소림사에서 대력금강장을 가장 깊게 수련한 사람이었다.
하니 그 위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사완악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갯불을 보면서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내력을 소진한 사완악은 소림사의 원로가 아니라 동자승이 다가와 주먹을 뻗어도 반항하지 못할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 키 작은 노승과 사완악의 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꽝!
폭음과 함께 키 작은 노승의 장력이 상쇄되고, 사완악의 앞에는 현종이 서 있었다.
하지만 노승과 사완악이 놀란 이유는 현종이 노승을 막아서가 아니었다.
노승이 기습적으로 장력을 펼쳤지만, 현종의 경신술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으니 찰나에 공격을 막은 것 또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완악은 처음부터 현종을 믿고 있었다.
사완악은 나한들의 공격에 내상을 입었기에, 싸움이 길어진다면 두 노승 중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현종은 사완악을 지키며 두 노승을 상대해야 할 것이고, 십팔나한들도 다시 정비하여 도우러 온다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모든 공력을 사용해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해 보이는 키 큰 노승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현종이 키 작은 노승 한 사람을 상대로 자신을 데리고 도망치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상황은 키 작은 노승이나 사완악이나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던 일.
그럼에도 두 사람이 깜짝 놀랐던 이유는 현종이 사용한 무공 때문이었다.
“너, 너……! 방금 그 무공은 무엇이더냐!”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현종 본인이었다.
현종은 키 작은 노승의 손이 금빛으로 물드는 순간, 이미 전력을 다해 신법을 전개했다.
사완악이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현종은 사승의 대력금강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백보신권을 펼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현종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키 작은 노승의 공격이 생각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현종은 자칫하면 사완악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은 다급해졌다.
그 순간, 현종의 머릿속에 한 가지 영감이 스쳐 갔다.
백보신권은 웅혼한 무게감으로 내지르는 권법이지만, 내공의 흐름과 몇 가지의 자세를 바꾸어 더 빠르고 간결하게 초식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른 것이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이 같은 생각은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번쩍 떠오른 것이었고, 사완악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현종의 몸은 이미 저절로 머릿속의 생각을 따라가고 있었다.
권(拳)을 장(掌)으로 바꾸고, 천지의 기운을 모으는 사전 동작을 간결하게 바꾸며, 내공의 흐름을 응축시키지 않고 더 빠르게 내질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백보신권과는 미묘하게 다른 하나의 장법이 탄생했다.
더 간결하고 더 빠르며, 어느 정도의 강맹함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장법이 키 작은 노승의 대력금강장과 격돌했고, 그 위력은 머릿속 예상보다 더 뛰어났다.
하지만 현종은 자신의 손에서 그 장법이 펼쳐진 후,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장법은…….’
키 작은 노승의 분노한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네가 어찌 저 녀석의 장법을 사용한단 말이냐!”
현종이 사용한 장법.
그것은 다름 아닌 파신마장의 마룡일효 초식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사완악의 눈에도 틀림없는 마룡일효의 초식이었다.
현종은 당황스러웠지만, 조금의 과장이나 덜함도 없이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백보신권을 빠르게 펼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라서 강구했을 뿐인데…… 이 장법이 펼쳐졌습니다.”
“백보신권을 빠르게 펼쳤는데 그 죽일 놈이 만든 무공이 펼쳐졌다?”
키 작은 노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더냐?”
이때 사완악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키 작은 노승과 달리 사완악은 현종의 말을 믿었다.
염라대사 영환의 파신마장은 소림칠십이예에서 파생된 것이고, 그중 첫 번째 초식인 마룡일효는 백보신권을 변형한 것이라 했다.
현종은 사완악이 펼치는 마룡일효를 몇 번 보았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 머릿속에서 백보신권을 마룡일효의 초식을 바꾸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쩌면 키 작은 노승 역시 평소라면 현종의 말을 믿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부를 죽인 염라대사의 무공을,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는 현종이 사용했다는 사실에 평정심을 잃어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감히 어떻게 그 무공을 사용한단 말이냐!”
현종은 노승의 오해를 풀고 싶었으나, 지나치게 흥분한 그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승님, 저는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소림사로 돌아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기다려라! 누구 마음대로 그 녀석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냐! 그놈은 영환, 그 때려죽일 놈의 제자란 말이다!”
현종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키 작은 노승을 바라봤다.
그가 아는 노승은 강직하기는 해도 언제나 불자(佛子)의 모습을 잃지 않는 어른이었다.
하지만 스승을 죽인 사형제, 염라대사 영환을 떠올리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영도 사승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한마디를 남긴 현종은 사완악을 어깨에 둘러메고,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했다!”
노승의 손에서 금빛 장력이 급류의 물줄기처럼 뿜어져 나와 현종을 향해 날아갔다.
쾅!
땅에 깊은 구멍이 뚫리며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흙먼지가 다시 가라앉았을 때, 현종과 사완악은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현종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노승은 충격과 흥분의 상태에서 너무 많은 내력을 급하게 소진한 탓인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질렀다.
“어서 저놈들을 쫓아……!”
하지만 노승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쭉쭉 치고 나아가는 현종의 신형.
현종은 십팔나한진을 뚫고 또 노승의 대력금강장을 받아 내고도, 남은 내력이 충만한 듯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십여 장을 날아가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때 키 큰 노승이 힘겹게 걸어와 말했다.
“사형, 그만하십시오. 이 아이들을 보낸다 해도…… 현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지 않소? 현종이 소림사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그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키 작은 노승은 현종의 뒷모습이 까만 점이 되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너는 이번 일에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니라.”
* * *
현종은 인적이 드문 방향을 골라 약 한 시진가량 경공을 펼쳤다.
질풍같이 빠른 경신술로 쉼 없이 달린 현종과 사완악은 태산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질 수 있었다. 현종은 사람이 아무도 찾지 않을 듯한 작은 동산 하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곳으로 올라가 사완악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젠 나도 한계다.”
현종은 십팔나한진과 노승의 공격을 뚫고 이곳까지 쉼 없이 경공을 펼치면서도, 단 한 번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고 흔들리는 기색 또한 없었다.
하지만 사실 현종은 온 기력을 다해 달려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림사의 노승과 십팔나한, 그리고 사완악을 추적하며 태산에서 내려오는 무인들을 떨쳐 내기 위해 무리하게 경공을 펼쳤고, 그 이후에는 한번 쉬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여기 정도면 누가 쉽게 따라오진 못하겠지.”
“몰라. 따라오든 말든 일단 쉬자.”
사완악은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벌렁 누워 대(大) 자로 뻗어 버렸다.
현종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내공을 모두 소모한 것은 물론, 그야말로 진이 모두 빠져서 이제는 누가 때려죽인다 해도 이 자리에서 꿈쩍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두 눈을 감고 동산을 스쳐 가는 바람을 전신으로 느꼈다.
그것은 마치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기쁨과 생동감을 만끽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완악이 상체를 일으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제대로 좀 막아 주지, 아파 죽겠다. 속도 울렁거리고.”
사완악은 십팔나한들에게 얻어맞은 등과 어깨가 아직도 욱신거리는지 앓는 소리를 하다가, 문득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재밌었다.”
그 순간.
현종의 입가에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재밌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군.”
그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완악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천기자의 계획에 휘말렸고,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무림인들의 추적을 받으면서 도망을 쳐야만 했다.
또한 십팔나한진의 숨 막히는 공세에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고, 키 작은 노승의 공격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현종은 사완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원로들에게 큰 실망과 배신을 안겨 주었고, 같은 소림사의 식구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완왁과 현종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무공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서부터 절정의 고수들에게 무공을 배우고 끊임없이 수련을 해 왔다.
또래의 사형제는 아무도 없었고, 사부들이 바라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외롭고 괴로운 수련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재적인 재능과 뛰어난 사부들, 그리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마침내 경지에 올랐으나…….
강호로 나왔을 때는 이미 자신들의 적수가 없었고, 그런 압도적인 강함은 오히려 깊은 고독함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완악과 현종 모두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부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산에서 목숨의 위기를 느낀 것도, 십팔나한진법을 상대할 때의 암담함도, 마침내 그곳을 뚫고 빠져나왔을 때의 쾌감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모든 싸움을 혼자만의 외로운 고군분투가 아니라,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와 함께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너 소림사로 돌아가면 맞아 죽는 거 아니겠지?”
현종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원로분들은 크게 화를 내시겠지만…… 방장 사형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현종이 사완악을 보며 물었다.
“너야말로 이제 어쩔 생각이지?”
그렇게 물은 현종은 다시 빠르게 말했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실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맹주의 일도 그렇고, 너의 사부님들과 관련된 일이나 앞으로의 너의 계획도. 하지만 내가 소림으로 돌아가면 원로원에서 틀림없이 너에 대해 물으실 거고…… 나는 그분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해도 문제될 것이 없겠지.”
“음, 과연 현종 너다운 생각이군.”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현종이 다시 말했다.
“너에게 한 가지 말해 줄 일이 있다.”
“말해 줄 일?”
“설린 문주에 관한 것이다.”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현종을 바라봤다.
“설린 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