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한편 프린츠, 레이윈, 힐데가 한데 묶인 쪽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나?”
“네? 아, 네……!”
모범적인 기사답게 프린츠와 레이윈은 힐데부터 챙겼다.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에게 양쪽에서 정중한 손이 내밀어졌다.
“괘, 괜찮아요…….”
고개를 푹 숙인 힐데는 누구의 손도 붙잡지 않고 스스로 일어났다. 그녀는 그게 익숙했다.
프린츠와 레이윈은 크게 개의치 않으며 손을 거두었다. 당장은 주변 탐색이 더 중요했다.
“큰일이군요. 상당히 위층으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위층으로 갈수록 방에서 나오는 마족들이 강해질 텐데.”
그들이 위치한 곳은 복도 한복판이었다.
로미나 쪽처럼 다짜고짜 중보스 룸에 처박히진 않았다.
프린츠가 제안했다.
“중보스 룸에 들어가지 않고 통로에서 아군과의 합류를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레이윈 경과 백마법사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게 좋겠어, 프린츠 경.”
“찬성이에요…….”
그러나 사람의 일은, 특히나 던전에 입장한 사람의 일은 마음처럼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법이었다.
드드드득!
거울의 성은 손님이 통로에 오래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벽이 그들을 향해 좁혀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몸이 납작하게 눌려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레이윈이 낭패스러운 음성으로 내뱉었다.
“던전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달려요, 백마법사님!”
“네, 네!”
프린츠와 레이윈이 힐데를 챙겨서 달리기 시작했다.
좌우에서 벽이 육박해 왔다. 복도 전체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안전한 곳을 찾아 계속 달리다보니, 어느덧 세 사람은 통로 끝에 다다랐다.
드르르륵!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리며 그들을 삼켰다.
“헉, 헉…….”
체력이 약한 힐데가 기진맥진하여 주저앉았다.
터질 것 같은 심장 부근을 움켜쥐고 호흡을 고르는데, 돌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짐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프린츠와 레이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선 것이 보였다.
“기사님들……?”
어느 틈엔가 검을 빼 든 채 정면을 보고 있는 두 청년. 그들의 곧은 등에서 긴장이 전해져 왔다.
그제야 힐데는 그들이 피신해 온 곳이 중보스 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다니. 귀찮은 것들.”
얼음 비수처럼 고막을 차갑게 파고드는 여성의 음성.
힐데는 두려움에 떨며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육감적인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는 검은 가죽옷을 입은 적발의 여인.
그녀의 머리 양쪽에 달린 산양의 뿔과 등 뒤의 박쥐 날개, 그리고 악마 꼬리가 정체를 짐작하게 한다.
“나는 서큐버스 여왕, 릴리트.”
쉬이익!
거대한 검은 낫이 허공에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낸다.
릴리트는 제 몸보다도 더 큰 무기를 한 손으로 쥐고서 세 사람을 겨누었다. 그리고 냉랭하게 선언했다.
“이 이상 아낙시아 님께 접근하도록 두지 않겠다.”
릴리트가 뿜어내는 위세에 프린츠와 레이윈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두 사람이 전방을 주시한 채로 나직이 대화했다.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군.”
솔직히 승패의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적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그들에게도 후회되는 것은 있었다.
“이런 중대한 전투를 함께할 줄 알았으면 미리 합을 많이 맞춰둘 것을 그랬습니다.”
“그렇군, 6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어.”
두 사람이 쓰게 웃었다.
궁지에 몰린 인간들답지 않게 훈훈한 모습이 악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릴리트가 턱을 치켜올리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유언은 거기까지.”
쾅!
가죽 부츠에 감싸인 릴리트의 두 다리가 바닥을 폭발적으로 박찼다.
저런 속도에 낫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완력을 가진 적이라니.
‘어지간한 탱커는 버티지 못한다!’
동시에 판단을 내린 레이윈과 프린츠가 다투기 시작했다.
“위험하니 내가 전위에 서겠다!”
“아닙니다. 제가!”
“내가 하겠대도!”
“이런 건 수석이 하는 게 맞습니다!”
“…….”
레이윈이 잠깐 움찔한 사이 프린츠의 검이 릴리트의 낫을 받아냈다.
콰지지직!
“크윽!”
저릿함이 프린츠의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검과 거대한 낫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릴리트가 목을 길게 뺐다.
그녀의 눈이 전투에 대한 흥분과 광기로 번뜩였다.
“나한테 관심받고 싶어? 그럼 어디 도발해 보시든가!”
릴리트가 낫을 매섭게 휘둘렀다.
프린츠의 동체 시력으로 겨우 볼 수 있는 빠르기였다.
속도뿐만 아니라 힘의 격차도 확연했다. 프린츠는 점차 뒤로 밀려났다. 공격을 받아내는 데만도 버겁기 그지없었다.
“이래 갖고 내 흥미를 끌 수나 있겠어? 앙?!”
프린츠가 낭패감으로 이를 악물었다.
“재미없어서 안 되겠네. 네 친구들이랑 놀아야겠다!”
“……!”
크게 휘둘러진 낫에 프린츠가 뒤로 쭉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릴리트가 몸의 방향을 빠르게 틀었다.
타다닷, 소름 돋게 빠른 이동 소리가 바닥을 훑는다. 릴리트가 빠르게 접근하는 곳에 있는 사람은…….
“레이윈 경!”
프린츠가 다급히 외친 그 순간.
카아아앙!
“크으흡.”
레이윈은 가까스로 릴리트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팔은 근육이 파열될 듯한 충격 때문에 마구 떨리고 있었다.
“기, 기사님!”
힐데가 재빠르게 힐을 주었으나 검 끝의 떨림은 멎지 않았다.
“뭐야? 이것도 못 버티는 거야? 그러고도 검사야?!”
릴리트가 히죽 웃었다.
“검을 들 자격이 없는 팔 같은데? 내가 으스러뜨려줄게!”
“……!”
거대한 낫에 실리는 릴리트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압살할 듯한 기운이 레이윈을 짓눌렀다.
콰득콰득, 그가 딛고 선 바닥이 넓게 침식되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로 릴리트의 힘을 받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이대로는……!’
릴리트의 말대로, 검을 쥔 팔이 부서져 버릴 것이다. 레이윈이 직감한 그때였다.
캉!
짓뭉갤 듯한 압박감이 불시에 멀어졌다.
“괜찮으십니까, 레이윈 경?”
어느새 레이윈의 곁에 다가와 서 있는 프린츠. 그가 릴리트의 낫을 후려쳐 준 덕분이었다.
“고, 고마워, 프린츠 군.”
레이윈은 힐데의 치료를 받고서 검을 고쳐 쥐었다.
“둘이 같이 덤비게? 난 상관없어.”
눈앞에서는 릴리트가 거대한 낫을 머리 위에서 두 팔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프린츠와 레이윈이 나직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합을 맞춰야겠습니다.”
“그래, 저 녀석의 완력을 혼자 감당하는 건 무리야.”
릴리트가 턱을 치켜들었다.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탓!
릴리트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위치는 두 사람의 코앞이었다.
카아아앙!
프린츠와 레이윈은 함께 검을 들어 릴리트의 낫을 막아냈다. 무자비한 완력은 두 검에 배분되고서도 손목에 저릿함을 남겼다.
릴리트는 엄청난 속도로 낫을 휘둘러 두 사람을 몰아붙였다.
요란한 스파크와 날카로운 쇳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정신없는 연속 공격이었다.
프린츠와 레이윈은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전우처럼 움직이며 같이 릴리트의 공격을 받아냈다.
각자 상대방의 기대대로 움직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릴리트조차 내심 감탄할 정도의 페어였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릴리트가 광기 어린 비웃음을 쏟아냈다.
“하하하! 2대 1이면 뭐해? 반격은? 반격은 안 할 거야?”
“큭.”
“흡.”
“둘인데도 이것밖에 안 돼? 언제까지 막기만 할 건데? 앙?!”
뭐라 대꾸할 겨를도 없었다. 프린츠와 레이윈의 얼굴에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일방적인 공세에 릴리트의 흥분이 더해진다.
이에 따라 낫을 휘두르는 궤적이 커지며 공격에 실리는 힘도 강해져만 갔다.
일격, 일격이 버거워진다.
가차 없이 몰아붙여지는 두 사람은 곧 한계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프린츠가 힐데에게 힐끗 시선을 보냈다.
‘아.’
힐데가 신호를 알아들은 그 순간이었다.
“시시한 것들! 죽어!”
쉬이이익!
릴리트가 낫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모든 것을 쪼개버릴 듯한 위력을 아낌없이 담아.
카아앙!
두개골마저 저릿해지는 울림.
바르르, 낫대를 통해 두 인간들의 팔이 꼴사납게 경련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릴리트는 고작 힘을 좀 더했다고 부들대는 두 인간놈들을 비웃으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부릅떠야 했다.
“뭐야?!”
그녀의 낫을 막고 있는 검은 한 자루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검집. 그리고 그것을 쥔 팔의 주인은 검의 주인과 동일했다.
프린츠가 혼자서 검과 검집으로 릴리트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릴리트가 눈치챈 순간.
“레이윈!”
프린츠가 목청을 있는 힘껏 울렸다.
부름받은 이는 즉시 반응했다. 레이윈은 낫 밑으로 미끄러지듯 빠져 릴리트에게로 파고들었다.
“너……!”
현재 릴리트는 프린츠와 대치 중인 터라 무방비해진 상태.
레이윈의 검이 릴리트를 전력으로 베었다.
콰아아앙!
폭발적인 오러에 의해 릴리트가 멀찍이 벽에 처박혔다.
무너진 벽의 잔해가 만들어낸 먼지구름이 방의 절반을 뒤덮었다.
조금 전의 합공으로 힘을 다한 프린츠와 레이윈이 헉헉거리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먹혔나?’
직격으로 들어간 기습이었다.
프린츠와 레이윈뿐만 아니라 탱커에게 힐을 집중해 준 힐데까지, 세 사람이 각자 전력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 이거 어쩌지?”
“……!”
먼지구름이 흩어짐에 따라 실루엣의 어둠이 벗겨진다.
낫대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킨 릴리트.
그녀는 긴 적발을 여유롭게 뒤로 넘기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나 멀쩡한데.”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