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4)
4화
시선이 닿자 프린츠는 헤헤 해맑은 웃음을 뿌렸다.
“도련님이 시험문제를 다 틀리셔서. 그래도 오늘은 많이 안 맞았어. 숙제는 내가 대신 해서 냈거든.”
“…….”
이쯤에서 원작에 언급된 우리 집안, 로델라인 가문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부친인 레오날드 로델라인은 연금술사의 탑이라 불리는 ‘황금 상아탑’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엘리트 연금술사였는데 윗분께 밉보여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런 사람을 애 둘 딸린 싱글대디라고 후려쳐서 싸게 고용한 것이 길레트 백작가였다.
아빠…… 음, 아직 쑥스럽네. 연금술사님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노예 계약을 계속 갱신해 가며 백작가에 헌신하는 중이었다.
같이 딸려온 군식구인 프린츠와 아일렛은 자연히 백작가의 사용인으로 자라났다.
프린츠는 망나니 대신 매를 맞는 시종이, 아일렛은 잡일 하녀가 되었다.
원작에서는 연금술사님과 프린츠만 잠깐 단역으로 등장했다.
기사 수련을 마치고 백작가로 돌아온 망나니는 제 생명의 은인인 주인공을 굉장히 홀대했다.
이때 주인공의 잠자리를 챙겨준 게 프린츠였고, 주인공이 떠나는 날 아침 죄송하다며 포션을 챙겨주었던 것이 연금술사님이었다.
내가 눈여겨 읽은 부분은 프린츠와 주인공의 등장 장면이었다.
프린츠가 주인공에게 가장 깨끗한 방이라며 안내한 곳은 연금술사님의 방이었다.
그곳에 있는 아일렛의 물건들을 발견한 주인공은 여성의 방인가 싶어 당황했고, 프린츠는 이 신실한 성기사를 안도시키기 위해 웃으며 이렇게 말했더랬다.-그건 여동생의 유품입니다. 백작성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던전에 발을 잘못 디뎌서 그만…….후우, 아일렛 로델라인의 미래는 그랬다.
이 망할 길레트 백작성은 터가 몹시 안 좋았다.
성 바로 근처에 버스트가 일어날 던전이 있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백작성이 던전을 밑에 깔고 지어졌다고 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나는 다시 프린츠를 보았다.
오빠라고 해도 고작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망나니 때문에 손과 종아리가 성할 날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자 좀 울컥했다.
손을 뽀득뽀득 씻고 온 프린츠는 기어코 나를 자리에서 쫓아내고 교유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프린츠의 손이 너무 신경 쓰였다.
“연고부터 바르는 게 어때? 아빠한테 가봐.”
프린츠가 기겁하며 허둥댔다.
“안 돼! 그럼 아빠가 걱정하시잖아.”
“아빠는 모르신다구?”
“응. 알면 못 하게 하실 테니까. 나, 난 매 맞아도 상관없거든. 이렇게라도 도련님 수업 듣고 싶은걸…….”
“그래도…….”
“근데 아이, 너 갑자기 왜 모르는 척하고 그래? 내 푸딩 네가 다 먹는 대신 아빠한테 비밀 지켜주기로 했잖아…….”
이미 배 속에 들어간 게 있었다니, 이러면 뭐라 말할 수가 없다.
프린츠가 다시 해맑은 얼굴을 하고서 전했다.
“아참, 아빠는 급한 일이 생겨서 외출하셨어. 백작성과 거래하는 약초 상단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던데.”
“그럼 이따가 같이 연구실에 가서 약 찾아보자. 내가 발라줄게, 오빠.”
빨개진 손이 안쓰럽고, 도와준 게 고맙기도 해서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오빠라는 부름도 오늘 빙의한 사람치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전생의 친오빠도 프린츠와 비슷한 어린 모습으로 기억이 멈춰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돌연 프린츠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아이…….”
“왜, 왜?”
“주방일이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네가 날 오빠라고 부른 거…… 4살 이후로 처음이잖아.”
“응?”
“전에는 나 같은 게 무슨 오빠냐고……. 맹하고 눈치 없어서 같이 있는 것도 싫고, 말 거는 것도 싫다고 했는데…….”
“…….”
아무래도 내 빙의체의 심성은 곱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슴이 좀 먹먹해졌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 음, 맞아. 내가 오늘 주방에서 고생하더니 철든 것 같아. 앞으로 잘 부를게. 지난날은 잊어줘.”
이제는 내가 아일렛 로델라인이니까, 빙의체의 자상한 오빠는 내가 인수한다.
“저, 정말? 무르기 없기다!”
“그래, 그래, 오빠.”
“와아, 진짜로 동생 생긴 느낌이다. 아, 아니, 그렇다고 예전에는 가짜 동생이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좋아서.”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다.
프린츠의 도움으로 작업이 끝났다. 이제 교유기의 나무통을 씻기만 하면 된다.
“자, 다들 일 마무리하고 간식 먹게나.”
주방은 이런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오빠, 우리도 빨리 정리하고 간식 먹자.”
“나, 나도?”
“도와줬는데 당연하지. 안 주면 내 몫 좀 나눠줄게.”
“아이…….”
그렇게 감동인가.
남매애가 일방적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기분에 괜히 내가 다 쑥스러워질 때였다.
“흥, 주방일이 할 만한가 봐?”
잔뜩 꼬인 음성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갈색 머리 여자애가 아까의 하녀장과 똑같은 포즈로 서 있었다.
“넬리.”
넬리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시빗거리를 찾자마자 조그마한 입술이 빈정거렸다.
“어머, 설거지 담당이 된 거야? 불쌍해라. 나는 마님께 내갈 차와 간식을 준비하는데.”
“웅, 수고해.”
“그렇게 설거지만 하다간 손이 조만간 다 트고 까지겠네. 안됐다.”
고소하다는 어투가 좀 얄미웠다.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넬리를 무시하며 할 일을 다 마쳤을 때였다.[ ‘버터 제조 및 뒷정리’ 임무를 완료했습니다. 획득 숙련도를 정산합니다.] [ ‘초고속 성장의 가호’ 혜택에 의해 숙련도 400%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 축하합니다! 레벨 업에 필요한 숙련도를 달성하여 요리 Lv.2를 각성합니다. 이제부터 ‘달콤한 과일 요리’, ‘기본 간식 만들기’, ‘풍미 가득한 차 끓이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오, 빠른 레벨 업!’
더욱 강해진 기분에 흐뭇해할 때였다. 메시지 중에 시선을 잡아끄는 단어가 있었다.
‘흐음, 차 끓이기?’
내 눈이 가느스름해진 채로 빛났다.
이 와중에도 넬리는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뭐, 재주가 없으니 몸이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너희 무식한 남매한테는 이런 잡일이 제격이지.”
“…….”
“얘, 내 말 듣고 있니? 뭘 그렇게 멍청하게 허공만 보고 있…… 꺅!”
빠악!
결의에 차 벌떡 일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머리로 넬리의 턱을 강타해 버렸다.
“야! 무슨 짓이야!”
“우씨, 나도 아파.”
“웃기네! 돌대가리 주제에!”
내가 프린츠의 걱정을 받으며 혹이 난 머리를 만지는 동안 넬리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소란이 이목을 끌어들였다.
“넬리, 경거망동하지 말렴. 마님을 모실 아이가 그리 차분하지 못해서야 쓰겠니.”
“이, 이셀라 님…….”
근엄하게 꾸중하는 중년 시녀는 찻잎을 계량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백작 부인의 다과 담당인 듯했다.
아주 잘됐다. 나는 넬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뭐, 뭐야. 너 왜 그렇게 웃어?”
역시 짐승은 위기를 잘 감지하는 법이다. 잔뜩 움츠러든 넬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차 시중을 드는 시녀가 꿈이랬지?”
“어?”
“거기서 딱 보고 있어.”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짓는 넬리를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래 봐야 꼬맹이라서 씩씩해 보일 뿐이겠지만.
“아일렛 로델라인?”
마침 하녀들 틈에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던 주방장이 나를 돌아봐 주었다.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
“주방장님, 간식 시간에 마실 차를 제가 끓여도 될까요?”
“아일렛, 네가?”
“네. 같이 고생하신 분들께 차를 끓여드리고 싶어요.”
하녀 언니들이 바람을 잡아주었다.
“어머, 아일렛이?”
“아일렛이 끓여주는 차 맛 좀 볼까?”
“네! 언니들한테 맛있는 차를 끓여드릴게요. 맡겨주세요.”
주방장은 무심한 얼굴로 허락해 주었다.
나는 큰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동안 사용인용 홍찻잎을 계량했다. 나무 스툴을 밟고 올라가 선반에서 손을 꼼지락대는 동안 한쪽 뺨에 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넬리가 노려보는 것이겠거니 방심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깜짝 놀랐다.
다과 담당 시녀인 이셀라가 나를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내 단풍빛 홍차가 완성되었다. 나는 낑낑거리며 모두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어머, 향 너무 좋다.”
“이게 우리가 평소 마시던 차라고?”
“믿을 수 없어. 찻잎 바뀐 거 아니지?”
힐끗 본 곳에서는 주방장도 인자한 미소로 차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물론 누가 볼 새라 금방 다시 딱딱한 얼굴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때 이셀라가 주방장한테 다가갔다. 같은 연배인 두 사람은 막역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보게, 페이샤. 나도 차를 좀 맛보고 싶은데.”
“이거 우리 건데.”
“맛만 보겠다는데, 뭐.”
“아일렛에게 허락받아.”
이셀라가 나를 돌아보았다.
전생의 사회 경험을 통해 요구 사항을 알아차린 나는 즉시 차를 담아서 내밀었다.
호로록, 이셀라가 타의 귀감이 될 법한 우아한 자세로 찻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나를 휙 돌아보며 버럭 했다.
“너!”
“……네?”
“멍청한 짓을 했구나!”
내, 내가 뭘 실수했나?
돌변한 이셀라의 태도에 나는 좀 쫄았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잔뜩 웅크리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주방장 페이샤였다.
“이셀라!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차 잘 처마시고 돌았어? 이럴 거면 주방에서 나가!”
“난 지극히 제정신이다, 페이샤. 차 시중을 배워야 할 손이 주방에서 상하고 있으니 멍청하다고 할 수밖에!”
아, 감동의 표현이었어?
나는 안도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놀란 얼굴들이었다. 특히 넬리의 반응이 볼만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셀라가 나를 어떻게 혼낼까 기대감에 차 있던 넬리가 당황해서는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차 시중은 넬리가 배우고 있잖아!”
“넬리는 재능이 없어!”
본의 아니게 공개적으로 재능에 사형 선고를 당한 넬리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이셀라도 페이샤도 넬리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내 왼팔과 오른팔을 하나씩 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일렛 로델라인이라고 했지? 내일부터 항상 이 시간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차 시중을 드는 법을 가르쳐 주마.”
“안 돼. 아일렛은 주방에서 요리를 배울 거라고. 이 아이는 대요리사가 될 재능을 타고났어. 내가 크게 키울 거야!”
“그럼 둘 다 해!”
내 거취가 결정되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넬리.”
“이익!”
나는 정면에 있는 넬리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