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정말 다행히도 소금 모래 폭풍을 피할 동굴이 지척에 있었다.
아마 이 근육질 미중년 할아버지가 생존을 위해 파놓고 머물던 땅굴인 듯했다.
할아버지를 침낭에 눕히고 사첼백에서 기력 회복 포션과 영양 환단을 꺼냈다.
“할아버지. 정신 좀 차려보세요.”
“끄으…… 으으…….”
의식이 없는 듯했다.
신음만 흘러나오는 입안으로 포션을 흘려 넣고, 환단을 집어넣었다. 삼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우음……!”
우물우물! 쩝쩝! 꿀꺽!
“……엄청 잘 드시네.”
포션 다섯 병과 환단 열 개가 할아버지의 배 속으로 사라졌을 무렵이었다.
미중년의 긴 속눈썹이 떨리기 시작했다.
“으음…….”
“정신이 드세요, 할아버지?”
“너는…… 에, 엘테아?!”
역시 아빠와 내가 만든 포션이라 그런지 효과가 끝내줬다.
조금 전까지 죽어가던 할아버지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엘테아! 역시 살아 있었구나!”
“어, 어어……. 저기요?”
할아버지는 눈물을 왈칵 터뜨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이쯤 되자 당황스러운 한편 몹시 궁금해졌다.
대체 엘테아가 누군데?✠아론제이크 히스펜릴은 온몸의 근육을 떨며 전율했다.
13년 전에 가출했던 딸의 흔적을 찾아 던전에 들어온 지 두 달째.
소금 모래 폭풍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앞에 딸이 있었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의 딸이.
“엘테아! 그간 얼마나 고생했기에 이렇게 어려진 것이냐!”
“어, 음, 저기, 저 엘테아 아닌데.”
“뭐?”
히스펜릴 공왕은 여자아이를 다시 살폈다.
난처해하는 얼굴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열 살 정도의 어린이. 가출할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그의 딸이 아니다.
“저는 아일렛이라고 해요.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아요, 할아버지.”
“…….”
히스펜릴 공왕의 어깨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그래, 엘테아일 리 없지.
애써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어지는 속을 달래본다.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공왕은 아일렛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쩜 저리 엘테아와 닮을 수가 있지?’
괜한 의심마저 들었다.
혹시 마계의 사막이 만들어낸 삿된 신기루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그를 현혹시키려는 마족의 수작……!
“할아버지, 샌드위치 드실래요? 제가 만든 건데.”
“……!”-아, 아버지, 쿠키 좀 드시고 일하세요. 너, 너무 맛있어서, 혼자만 먹기 아까워서…….집무실로 찾아와 진저맨 쿠키를 내밀던 어린 엘테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꼬, 꼭 먹고 싶구나.”
“네, 여기요!”
“허읍, 흐읍, 끕, 크흑! 맛있구나. 정말 맛있어…….”
“정말요? 더 드세요! 많이 드세요!”
실제로 굉장히 맛있었다. 얼마 전에 그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연금술사 로델의 환단과 비슷한 맛이 나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다 근육을 배신하고 미식에 눈을 떠버릴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 되게 오래 굶으셨나 봐요.”
“열흘 굶었지.”
저탄고지를 따질 상황이 아니기에 빵도 야무지게 다 해치웠다.
“열흘이나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내가 여기 들어온 게 두 달쯤 되었을 거다. 가지고 온 식량은 진즉 다 떨어지고 마수를 잡아먹어서 버텼지. 다행히 사방에 소금이라 간을 하니까 먹을 만은 했어.”
“어, 음, 생존력이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폭풍 지역에 들어오고 나서부터가 문제였다. 좀체 잡아먹을 마수가 보이질 않더구나. 방향 감각까지 잃고 말이야.”
“고생 많으셨어요, 할아버지.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제가 출구 게이트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게요.”
공왕은 잠시 허허, 하고 웃었다. 쪼끄만 어린아이가 자신을 호위라도 하겠다는 듯 당차게 말하지 않는가.
현시점 대륙 최강자인 이 아론제이크 히스펜릴 공왕을.
‘요 녀석 참, 나중에 크게 되겠군.’
잠시 할아버지 미소를 짓다가 정색하고 말했다.
“아가야, 호의는 고맙지만 난 던전을 나갈 생각이 없다.”
“네?”
“이 폭풍만 뚫으면 보스존일 게야. 거기 내가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페리도트 같은 연두색 눈이 끔뻑거렸다. 그것마저 엘테아를 떠올리게 하여 공왕은 가슴이 저미는 통증을 느꼈다.
‘엘테아……. 정말 여기 있는 것이냐? 혹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아이가…… 이 던전에 묶인 네 영혼인 것은 아니겠지?’
졸지에 지박령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아일렛이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요?”
“13년 전에 사라진 딸아이다.”
“아…… 따님이…….”
분위기가 급격히 숙연해졌다. 아일렛이 괜한 걸 물었다고 사과할까 싶어, 공왕은 큼큼 헛기침을 하고 말을 덧붙였다.
“딸이라고 해도 너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다. 살아 있다면 너만 한 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겠지.”
“그렇군요.”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까 아닌 것 같다.”
“네?”
“너만 한 딸만 있었겠느냐. 너보다 두 살쯤 더 많은 아들도 있었을 거다!”
“아, 네…….”
갑작스레 과몰입하여 자기 딸을 애 둘 있는 유부녀로 만드는 공왕이었다.
아일렛은 공왕의 상상력이 더 뻗어가기 전에 적당히 정리했다.
“아무튼 제 엄마뻘이란 말씀이시네요.”
“그래, 그렇지.”
대화의 흐름 때문일까. 문득 공왕은 엘테아를 몹시 닮은 여자아이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크흠, 넌 어쩌다 어린애가 이런 던전에 들어온 게냐?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저희 엄마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고 흐뭇해하는데.
“걱정 안 하실걸요. 6년 전에 가출해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흠칫.
“가, 가, 가출?”
“네.”
괜한 주제를 들쑤셨다!
공왕이 수습할 길을 찾지 못해 버벅거리는 사이, 불퉁한 음성이 이어졌다.
“저희 엄마는 애 둘이랑 남편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어요. 그래서 아빠가 홀몸으로 저희를 키우시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하셔야 했죠.”
“…….”
“뭐, 오빠 말로는 우리에서 탈출한 가축 잡으러 호미랑 쟁기 들고 외출했다가 실종됐다는데……. 제가 봤을 때는 그냥 가출이에요.”
“미, 미안하다.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게 했구나.”
아일렛은 활짝 웃었다.
“아니에요. 저는 어릴 때라 딱히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는걸요. 없는 사람 치면서 살아왔으니까 괜찮아요. 음…… 제 하소연을 들어주셨으니 할아버지도 하셔도 돼요.”
“응? 나?”
“어쩌다 따님을 잃어버리신 거예요?”
“…….”
공왕의 단단한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을 꺼냈다.
“내 딸도…… 가출이다.”
“앗.”
“그, 그렇지만 다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해서 딸애가 가출한 거야!”
“어쩌다가요?”
“그건 말이다…….”
이어진 히스펜릴 공왕의 이야기는 로판 가족후회물 한 편의 서사와 맞먹었다.
공왕이 젊었던 시절, 사랑했던 평민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가문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상처만 준 뒤 이별하게 된다.
수년이 지난 뒤 공왕은 그녀가 죽었단 소식과 함께 이별 당시 배 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는 대륙의 고아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간신히 딸아이를 찾아냈으며, 그게 바로 엘테아였다.
사랑하는 여인이 남기고 간 어린 딸. 당연히 잘해주고 싶었고 그럴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젊은 공왕은 당시 무뚝뚝하고, 냉엄하며, 요령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자기도 딱히 받아본 적 없는 부모의 사랑을 딸에게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딸의 얼굴만 보면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연인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사람이 혼자 아이를 낳고 고생하다 눈을 감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딸에게 엄마의 몫까지 보상해 주면 죄책감이 좀 사라질까 싶었다.
그래서 젊은 공왕은 결심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 그러니까 가문을 주기로.
아일렛이 잠시 말을 끊고 물었다.
“헉! 할아버지, 귀족이었어요? 남작? 자작?”
“흠흠.”
“설마 백작이에요? 우와!”
“뭐, 중요한 게 아니니 신경 쓸 것 없다.”
“네, 백작님.”
“백작이라니, 됐다. 그냥 할아버지라 부르려무나.”
“네, 할아버지.”
적당한 각색으로 정확한 신분을 숨긴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공왕의 의도는 좋았으나 방식이 문제였다.
그의 가문은 교육 방식이 몹시도 엄격한 편이었고 8년이나 평민으로 살아온 엘테아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리하여 엘테아의 후계자 교육은 전례 없이 엄격해졌다.
수많은 선생들이 어린아이에게 검술과 학문을 주입시키고자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들들 볶아댔다.
그리고 가주로서 공왕은…….-너는 이제 히스펜릴의 공녀다. 공녀에 걸맞은 처신을 하도록 해라.진저맨 쿠키를 가져온 딸애에게 했던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아니, 차라리 여기까지면 다행이었을 것을.
조금이라도 빨리 딸아이를 ‘공녀답게’ 만들려는 욕심에, 기어코 이런 말까지 했다.-사용인들이 보고 있다. 격식 없이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삼가라.이쯤에서 아일렛이 한마디했다.
“세상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뭐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기에 그렇게까지 하냐는 비난의 눈빛이 똑똑히 읽혔다.
공왕은 심장에 큰 타격을 느꼈으나 기왕 시작한 이야기니 꿋꿋하게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라니. 잠시만요. 레몬 탄산수 좀 꺼내고요.”
“그래. 아무튼 어느 날…….”
죽은 연인과 똑 닮은 소녀가 나타나 자기야말로 공왕의 친딸이라고 주장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