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6)
6화
✠연구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한밤중에 깨서 보니 다락방 침대 위였다.
게다가 곁에는 연금술사님이 불편한 자세로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연금술사님의 손을 무슨 1등 당첨 복권마냥 꼭 잡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애처럼 응석을 부린 모양새라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연금술사님을 깨워서 주무시러 가게 한 다음 이불 속에 파고들었다.
끄엉. 쪽팔려서 잠이 안 왔다.
한참 그렇게 이불을 발로 차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이대로 시간을 소모적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잠도 안 오는 김에 세구회를 독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동이 터오는 새벽에 완결까지 읽은 내 감상은…….
‘다시 봐도 엔딩이 미쳤네.’
저기요, 작가님. 한 캐릭터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기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네?
진심으로 작가에게 따지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원작을 다 읽었으니 미루어두었던 전직을 결정해야 했다.
‘역시 힐러가 답이다.’
전에 설명했듯이 이 세계관은 신성력을 각성한 힐러가 귀한 편이며, 여기에 높은 힐량과 빠른 힐 속도를 갖춘 전투 힐러는 더더욱 귀했다.
오죽하면 타인에게 관대한 주인공이 쓸 만한 힐러 좀 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겠는가.
주인공과 똑같은 고구마를 퍼먹을 수는 없었다.
목마른 자가 직접 사이다 뚜껑을 까야 하는 법!
나는 장래희망을 ‘쓸 만한 힐러’로 정했다.
어제 미리 구매해 둔 ‘전직 패키지(전투)’를 사용했다.[ ‘전설적인 성녀의 영혼’을 선택하여 신성력을 각성하기 위한 조건 퀘스트가 발생합니다.]뭐? 퀘스트가 있어? 역시 거저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천 일 새벽 기도
매일 새벽 5시~7시 사이에 성당, 교회, 신전 등의 장소에서 신에게 진심과 정성을 담아 기도를 올릴 것 (0/1,000)
참고: 1일 1회 제한이며, 3일 연속 거를 경우 처음부터 재시작한다.]‘헉!’
매일 빠지지 않고 해도 3년 가까이 걸리는 퀘스트였다.
횟수 조건이라서 초고속 성장의 가호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저 우직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가지. 연속 이틀까지는 기도를 빼먹어도 퀘스트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곳 길레트 백작성 안에 예배실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 지금은 여섯 시였다. 후다닥 예배실로 가서 오늘치 기도를 드리고 주방으로 출근하면 될 것 같았다.
지도가 표시해 주는 길을 따라갔다. 예배실은 백작성의 본관 1층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선대 백작 부인, 그러니까 대부인이 신앙심이 깊은 터라 본관을 개축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세대교체가 일어나고부터는 사용하지 않아 방치되었다.
“어후, 먼지.”
아예 없는 장소인 셈치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앞으로 계속 쓸 공간이니 내 소중한 호흡기관을 위해 청소를 해두기로 했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고 곁방에서 청소 도구를 꺼내왔다.
어린애의 몸인데다 예배실이 워낙 넓어 며칠에 걸쳐서 나누어 해야 할 것 같았다.
대충하고 기도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
“…….”
음……. 뭐라고 기도하지?
퀘스트 내용 중 ‘진심과 정성을 담아 기도’라는 대목을 한참 노려보았다.
애초에 나는 무신론자였다.
현실 속의 신도 믿지 않았는데 소설 속의 신을 믿으라고 하면 갑자기 그게 될 턱이 없었다.
그러니 진심과 정성을 따지기 전에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부터가…….
‘아니, 잠깐. 사후세계도 경험한 마당에 이제는 아니지. 내가 아는 신이 있잖아?’
그것도 무려 다수다. 나는 즉시 그 신들을 불렀다.
“빙의 관리국의 신님들! 신성력 좀 주세요!”
띠링![ ‘새벽 기도’ 진행 중. 현재 진행률 5%.]된다, 된다!
본격적으로 진심과 정성을 담아보기로 했다.
“빙의 관리국의 신님들, 아, 이러니까 너무 기네요. 줄여 부를게요. 빙의신님들, 듣고 계시죠? 아, 진짜 빙의신님들 때문에 갑자기 팔자에도 없던 빙의를 하게 되었잖아요. 하여간 잘 살고 있었던 평범한 소시민을……. 아, 잘 살고 있진 않았구나.”
자연스레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 집 판 돈이랑 아빠 오빠 교통사고 보험금하고 합의금을 죄다 큰집에 뺏긴 걸 생각하면 아직도 분해요. 그뿐이게요? 겨우 독립해서 나오고서도 큰집이 저를 들들 볶아댔죠. 그 많은 돈 다 쓰더니 매주 저한테 전화해서 돈 있냐고 물어보고, 전화 안 받으면 저 예전에 살던 반지하 원룸까지 찾아오고.”[ ‘새벽 기도’ 진행 중. 현재 진행률 20%.]하소연이 되어가는데도 진행률이 착실하게 올랐다.
계속해야지.
“나중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큰아버지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하길래 받아버렸거든요. 목소리 듣고 ‘큰아버지’하고 불렀더니…….”
빙의신님들, 고구마 먹을 준비 하시길.
“우리 사이에 무슨 정 없이 큰아버지냐고 아빠라고 부르라는 거예요. 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고서 한다는 말이 뭐였게요? 자기 딸이 휴학하고 편입 시험을 준비하는데 학원을 이쪽으로 다녀야 하니까 저더러 데리고 살라는 거 있죠. 뭐 저의 하나뿐인 자매니까 제가 언니로서 잘 챙겨줘야 한다나 어쩐다나.”
끝이 아니다.
“그 외에도 또 무슨 말을 했더라? 아, 맞아요. 애 공부하느라 굶을까 걱정이니까 저더러 출근하기 전에 아침밥 꼭꼭 챙겨 주라는 말도 들었죠. 심지어 ‘네 동생 국 없으면 밥 못 먹는 거 알지? 뭇국에 소고기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서 끓여줘’ 이러는데 정말……. 화나서 그날 당장 호주산 소고기 등심 1kg 사서 저 혼자 다 구워 먹었어요. 되게 맛있었죠.”[ ‘새벽 기도’ 진행 중. 현재 진행률 65%.]츄릅, 소고기 생각에 흐를 뻔한 침을 다시 빨아들였다.
어느새 두 손을 모으던 자세는 다 흐트러져서 나는 예배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있었다.
“아마 조금 더 있었으면 사촌 여동생이 짐 싸서 제 원룸에 막무가내로 쳐들어왔을걸요. 아, 끔찍하다. 그 꼴 안 보고 죽어서 다행인가.”
슬슬 기도를 마무리하기 위해 긍정적인 면을 찾고자 했다.
“솔직히 전생의 삶에 미련 별로 없어요. 그래서 빙의자 적성 검사가 높게 나왔나? 뭐, 아무튼…… 보니까 빙의자 서포트 시스템이란 게 참 잘 되어 있더라고요. 잘만 하면 생명 보험금으로 이쪽 세계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도 있을 것 같고.”
이쯤에서 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무엇보다 가족이 생긴 게 좋아요. 보니까 여기 연금술사님이랑 프린츠가 진짜 우리 아빠랑 오빠를 좀 닮은 것 같더라고요.”
누가 듣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괜히 쑥스러워졌다.
나는 높은 예배 의자 위에서 괜히 발을 동당거렸다.
한참 그러다 새벽 기도 진행률을 확인해 보니 80%였다. 아직 더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나는 눈을 부릅떴다.
“제가 죽었으니 원룸 보증금 또 큰아버지네한테 갈 거잖아요! 아, 화나!”
끝까지 그 집안에 좋은 일만 해주고 간 셈이다.
어째서 누군가의 인생은 다른 누군가의 착취 자원이 되는가. 세상 참 불합리하다.
그런데 그때였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그 원룸 보증금은 빙의 생명 보험 계약금으로 쓰였으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아앗?”
예상치 못한 의사소통에 깜짝 놀라는데 메시지가 떴다.[ ‘새벽 기도’가 완료되었습니다.] [ 천 일 새벽 기도 (1/1,000). 22시간 15분 뒤 퀘스트 진행 가능.] [ ‘전설적인 성녀의 영혼’ 패키지와 ‘진심과 정성을 다한 기도’ 효과에 의해 특수 보상 ‘신의 응답’이 발생합니다.] [ 당신이 지정한 ‘빙의 관리국 소속 신들’ 중 일부가 반응합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자신이 만든 S급 세계에 빙의한 당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기도에 응답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당신의 기도를 확인했으나 헌터물에 넣을 100층 탑을 설계하느라 바빠서 일단은 읽씹하기로 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옆에서 기도를 같이 봤으나 탑의 각층 난이도 밸런스가 엉망이라고 지적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뭐지, 이 상황은? 내 기도가 메시지처럼 저쪽에 전달되는 거야?
그렇다면 이것은…….
‘서, 성좌물!’
웹소설 고인물답게 빠른 상황 파악을 마쳤을 때였다.
내게 큰 관심이 있다고 한 신이 큰집의 근황을 알려주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사촌 여동생은 결국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매일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으로 보아 편입은 글렀다고 말합니다.]“어, 음, 걔는 4수도 그렇게 망해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요.”[‘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큰아버지는 아는 동생의 추천으로 탈모 치료제 개발 회사 주식에 올인했는데, 그게 작전주라서 다 말아먹고 화병으로 드러누웠다고 말합니다.]“하, 원체 한탕주의가 심한 분이라 한 번 크게 데일 줄은 알았죠.”[‘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큰어머니는 그 주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투자처라고 권해서 직접 목돈을 받아 챙겼다가 사기죄로 고소당했다고 말합니다.]“분명 받아 챙긴 돈은 다 써버리고 수중에 없으시겠죠. 저희 아빠 오빠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외식하고 쇼핑하던 습관을 못 고치는 분이니까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원룸 보증금이 원수에게 넘어가지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착실하게 패가망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로써 전생의 미련은 완결까지 보지 못한 웹소설과 웹툰 정도만 남은 건가.
삶을 회고하는 그때 의아한 메시지가 떴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