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03)
203_[외전] 싸움 구경(2)
프랑스의 다툼이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종교 전쟁이었다.
여왕이 뿌린 불화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위그노들과 가톨릭의 다툼은 연일 격화되었다.
프랑스의 민생은 날로 어려워졌고, 세금 부담은 소금도 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민중들은 특권층과 기존 질서에 대한 미움을 키웠고, 위그노가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성장하는 위그노는 기존 질서의 위협이었다.
‘그다음부터야, 내가 움직일 필요도 없었지.’
스노우볼이 굴러가듯 사태가 굴러갔다.
위그노 교도가 가톨릭에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기즈 공작은 위협적인 위그노 교도를 참살한다.
위그노는 그런 공작을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원한이 원한을 낳으며, 불화가 번져나갔다.
‘앙리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프랑스의 국왕 앙리.
그는 타협을 모르는 자였다.
위그노에게 강경한 대처를 일삼던 자.
솔직히 말해, 여왕은 그의 대처가 고마웠다.
덕분에 프랑스의 내분이 더욱 격화되었으니까.
그러나, 그 약발도 이제는 효력을 다했다.
앙리, 그가 앓아누워버리고 만 것이다.
“마상 시합 중 입은 부상이라고 했던가?”
“그렇지요, 이거 참. 마상 시합을 금지하던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프랑스의 강건하던 기사 왕이 그 꼴이 되다니.”
스티븐 주교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여왕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억하는 역사에서도, 앙리는 시합으로 다쳤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가.’
여왕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앙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소문으론 오늘내일하는 모양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소문이니 믿을만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당장 정무를 보지 못하는 상태임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권력을 잡은 것은 역시?”
“그야 카트린 드 메디치이지요. 왕이 죽으면, 그녀가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맡을 테니까요.”
주교의 대답에 여왕이 작게 인상을 썼다.
역시, 알고 있지만 내키지 않는 담이었다.
카트린 드 메디치.
이탈리아에서 시집온, 존재감 없던 왕비.
그 여자는 종교개혁에 온건한 입장이었다.
더 정확히 말해, 자신이 종교 갈등을 통제하고, 그로서 프랑스 왕실의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
위그노를 어느 정도 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데···.’
기껏 일으킨 불이 이대로 꺼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주교, 역시 답장을 보내야겠어.”
“그 편지에 말입니까?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주교가 여왕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발신인, 로베르 드 후아티에라고 적힌 편지.
편지에 작성된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로베르 드 후아티에.
그는 왕이 총애하던 정부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현 권력자는 왕에게 천대받던 정실부인.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지.’
로베르는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건, 써먹어 볼 만한 이야기였다.
“자, 주교.”
여왕이 주교에게 말했다.
“쓸데없이 아이들 간의 다툼을 막으려는 선생을 없애고, 이 불씨를 더더욱 키워보지 않겠나?”
“그것참, 악당 같은 이야기로군요.”
새삼스러운 이야기였다.
언제부터 영국이 선역이었단 말인가.
여왕은 씨익 웃고, 로베르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했다.
[살려주지. 대신, 매국노가 되게나.]너무나도 노골적인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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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지.”
로베르가 조용히 경악하며, 편지를 구겼다.
여왕이 적은 첫마디를 읽은 직후에 말이다.
“아무리 급해도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상황이 이리 급하지만 않았다면,
로베르도 그런 편지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 프랑스 정계는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암살당한 기즈 공작으로 대표되는 강경파.
위그노를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었다.
지금은 기즈 공작의 아들이 파벌을 이끌고 있다.
다음은, 메디치 왕비로 대표되는 온건파.
위그노를 인정해주고, 타협하려는 이들이다.
내심은 위그노를 이용해 세력을 구축하려는 자들.
마지막은, 부르봉으로 대표되는 위그노들.
나날이 커지고 있는 위협적인 신생 세력이었다.
‘우리 후아티에 가는 강경파에 속하지.’
문제는, 메디치 왕비가 노리는 건 기즈 공작이 아니라, 그간 그녀를 천대한 후아티에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기즈 공작이 후아티에를 지켜줄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직 왕의 총애만을 믿고 성장한 가문이었다.
이대로라면, 가문이 그대로 멸문할지도 몰랐다.
로베르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너무 급해 영국에까지 편지를 보내고 말았건만, 어리석은 결정이었나.”
여왕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린 선택이었다.
그에게 매국노가 되라니, 그럴 리 없지 않나.
로베르, 그는 이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었다.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나?
왕비가 후아티에를 누르려고 한다면, 방법은?
“···뭐라고 했는지 정도는, 확인해보는 것도.”
로베르는 서서히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껏 답장을 써준 여왕 아닌가.
읽어보지도 않는 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최소한, 말은 끝까지 확인해야지 않겠나.
서서히, 로베르는 구긴 편지를 다시 펼쳤다.
어디까지나 확인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러나 이미 편지를 다시 읽기로 결정한 시점에, 그의 패배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해는 말게, 정말 나라를 팔라고 종용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오히려, 프랑스를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제안이라네.]‘그러면 대체 왜 매국노라고 표현했단 말인가?’
로베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편지를 훑어보았다.
그 대답은 다음 문단에 적혀 있었다.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은, 영국은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네.]여왕은 말했다.
프랑스 정계에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그랬다간, 프랑스와 다투게 되지 않겠냐고.
‘음···.’
그러니, 나설 수 없는 영국을 대신해 로베르가 영국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한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매국노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영국의 국익과 프랑스의 국익이 꼭 다른 것은 아니다.
급진적인 메디치 왕비의 개혁이 꼭 프랑스의 미래에 도움이 되란 법은 없지 않나?
그리고 왕비의 개혁은, 로베르의 가문에는 반드시 나쁘게 작용할 것이다.
여왕은 말했다. 로베르를 친애한다고.
그러니, 그를 구하고자 말하는 것이라고.
‘아이를 낳았다고 하셨던가, 꼭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편지로군.’
하지만, 그 위력은 틀림없었다.
마치 어미에게 안긴 아이처럼,
로베르는 속절없이 편지에 빨려 들어갔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네. 모든 건 영국이 도울 테니, 그대는 그저 왕비의 계획을 사전에 입수해 강경파에게 넘기면 될 뿐이라네. 그러면, 훼방을 놓는 것은 그들이 알아서 해줄 테니.]여왕은 상세한 계획을 설명했다.
로베르에 대한 위협은 적고, 프랑스의 국익을 크게 해하는 것 같지도 않은 계획이었다.
몇 번이고 편지를 읽은 끝에.
로베르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만히 있다가 죽을 바엔 움직여야지.”
로베르에겐 중대한 결심이었다.
여왕은 이미 짐작한 결정이었지만 말이다.
굳건히 국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엔,
로베르는 그렇게 심지가 굳지 않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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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영국은 프랑스에 사절을 보냈다.
“저희의 여왕 폐하께선, 프랑스와의 동맹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하십니다.”
“동맹이라니?”
“에스파냐에 맞서,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영국의 요청을 받은 프랑스가 신대륙에 군을 파견하는 동맹 말입니다.”
“아, 아아. 그 동맹이 어떻다는 겁니까?”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마땅히 영국군도 프랑스와 함께 신대륙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언제든 군을 출병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시며, 자세한 내용은 이 서신에 담겨 있습니다.”
때아닌 영국의 제안은 프랑스 정계에 떨어진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재정 위기를 겪는 프랑스에서 그나마 탄탄한 젖줄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아메리카였다.
그런데 이런 신대륙 권한을 나누자니?
그것도 힘 한 푼 안 들이고?
“말도 안 됩니다! 앙리 폐하께서 쓰러진 상황을 노리는 것이 괘씸하군요!”
“틀림없이 왕비께서 적당히 양보하시리라고 여기는 게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만만히 보니 저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한들, 영국이 동맹을 버리기라도 하면 손해 보는 것은 우리입니다.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해요!”
“아니, 지금 영국이 우리 손을 놓을 수는 있겠습니까?”
“영국에 적당히 대가를 주어야지요. 구체적으로는···.”
대처하기가 까다로운 영국의 제안에, 수일이 넘는 국무회의가 이어졌다.
왕비와 대신들의 시선이 온통 국무회의로 쏠린 것이다.
바로 그때가, 로베르가 노리던 기회였다.
“앗! 로베르 각하께서 어찌 이런 곳에?”
놀란 눈을 뜬 병사에게, 로베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고 온 서류가 있어, 가져오려고 왔다네.”
“아, 그런 거라면 시종을 보내-.”
“아니,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네.”
로베르가 강경하게 나오자, 병사는 고민하다가 이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대로 버티기엔 로베르의 이름값이 만만치 않았다.
‘좋아, 여기까지는 예상대로군.’
국무회의로 사람이 대거 비어버린 내성 안.
로베르는 더욱 깊숙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영국의 첩자가 알려준 정보대로,
이 시각 궁전의 경비는 상당히 소홀했다.
얼마 안 되는 경비도 로베르를 의심하진 않았다.
세기의 협상가, 로베르 아닌가.
영국의 여왕을 속이고, 베네치아를 설득한 로베르.
파리의 대극장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걸리는 상황에, 누가 그를 의심하겠나.
게다가 궁전 대부분 사람은 국무회의로 정신이 없는 상황, 그러니 로베르는 순조롭게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와중에 얼굴이 팔리긴 했으나, 로베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괜찮아. 설령 내가 서류를 훔친 것이 들키더라도, 일단 훔치고 난 뒤엔 얼마든지 발뺌할 수 있다.’
어차피 가문이 걸린 상황 아닌가.
로베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머지않아, 그는 왕비의 집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빠른 심장 박동을 느끼며,
로베르는 서류를 찾아 방을 뒤졌다.
‘빠, 빨리.’
정신없이 서류를 뒤지던 중.
그의 눈에 ‘화해 계획’이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건가!’
로베르는 재빨리 서류를 품에 넣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이제 빨리 나가기만 하면-.’
로베르가 막 안심하려던 찰나.
안심이 너무 빨랐던 것일까.
“경? 그곳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는 낯익은 사람과 맞부딪혔다.
몽고메리 백작, 왕비의 파벌로 알려진 자였다.
“구, 국무회의는 어쩌고 이런 곳에-.”
채 말도 끝내지 못하고 떠는 로베르에게.
몽고메리 백작이 태연히 말했다.
“왕비께서 피곤을 호소하셔서, 오늘 회의는 일찌감치 끝났습니다. 그러는 경께선 왜 이곳에?”
인제 보니, 백작의 뒤엔 다른 이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온건파로 유명한 면면.
그들의 눈초리는 무척 따가웠는데,
로베르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후아티에니까.’
“제 질문에 답하셔야지요. 왜 경께서 이곳에 있습니까?”
“두, 두고 간 서류가 있어서···.”
“그런데 왜 손에 서류 없나요?”
“그것이···!”
로베르가 대답을 망설이던 그때.
너무나 긴장했던 탓이었을까.
-툭.
어설프게 품에 넣어둔 서류가 품으로 빠져나왔다.
“아, 거기에 있었군요.”
몽고메리 백작은 의심 없이 서류를 집어들었다.
“제가 주워드리겠습니다.”
백작이 서류를 줍는 것을 보며,
로베르의 정신은 아찔해졌다.
‘맙소사, 이딴 실수를 저지르다니.’
여왕의 방에서 서류를 훔쳐 오던 게 들켰다.
근위병에게 걸린 것도 아니고, 고작 복도에서 마주친 아무것도 모르는 귀족에게 겁먹어서.
저도 모르게 서류를 떨어뜨려서 들켰다.
그의 목이 저잣거리에 걸리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을까.
“자, 잠깐만···! 이 서류는?”
몽고메리 백작의 경악성을 들으며,
로베르는 정신이 아찔해져 눈을 감았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보니, 서류를 돌려 읽는듯했다.
그 서류를 빼앗을 기력조차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
슬며시 일어나 눈을 들어보니,
서류 앞에서 경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로베르는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서류의 내용에 꽂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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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로베르는 잘하고 있으려나.’
여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왕자와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애들이 싸웠어요.”
“그러니?”
“그래서, 싸우는 애들을 막게 위한 계획을 세워 봤는데요.”
“그래? 뭔데?”
“서로서로 손잡고 뽀뽀하라고 하는 거예요!”
귀여운 말에, 참을 수 없어진 여왕이 해리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깜찍한 계획이구나, 그렇지만 그렇게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
“왜요?”
“강제로 뽀뽀한다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싹틀 리 없잖니. 오히려 서로를 더 싫어하게 되면 모를까.”
“으음···”
“너무 실망하진 마렴. 그래도 열심히 고민했구나.”
여왕은 아이의 귀여운 계획에 웃어주었다.
‘이 나이대만 할 수 있는, 순진하고 귀여운 상상 아니겠어?’
영국의 여왕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
성인인데도 이 같은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암살당한 기즈 공작의 아들, 앙리 드 기즈 소공작과 암살범 찰스를 키스하게 하자고? 정녕, 이게 메디치 왕비가 서명한 계획이란 말인가?”
왕궁의 복도에서 너나할 것 없는 경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