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ed Genius hacker RAW novel - chapter (91)
91 Re: North Korea(6)
분노가 극에 달하여 더 이상 화낸다는 감정마저 한계를 넘기면 사람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월미도를 기점으로 CCTV 서버와 네트워크를 점거하여 지켜보는 희도의 주머니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띠리리리!
국정원 요원들이 월미도 주변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희도의 휴대폰이 울렸다. 국정원장 최진헌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 정찰총국 리무혁이 협상 이야기를 시작했네.
“뻔뻔하군요. 그리고 어리석고요.”
– 정 청장, 흥분하지 말게.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최진헌의 말에 희도는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적어도 그의 목소리는 흥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바람에 되레 분노로 마음이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랄까.
“리무혁에게 전하십시오. 이놈들이 살아서 북한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 ……그게 말일세.
착잡한 듯 말을 꺼내는 질질 끄는 듯한 이야기에 희도가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는지 물었다.
“그렇게 답답하게 대꾸하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 주십시오. 리무혁에게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
– 리무혁이 말한 게 아니라, 자네가 보내온 사진과 신상 정보를 직접 털어 본 걸세. 저들은 북한군이 아니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북한군이 아니라니? 분명 북한에서 밀입국한 루트를 통해 움직인 것을 파악했는데.
그동안 깊게 활용하지 못했던 스킬이 희도의 눈을 통해 발동되었다.
[화이트해커 스킬, 해커의 눈 발동!]– ‘김태영’의 개인정보를 탈취합니다.
희도는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해진 자신의 시야를 통해 CCTV 모니터 속 김태영을 바라봤다.
이름 : 김태영
나이 : 30
직업 : 무직 >> 대한민국 불법 체류자
주소 : 없음
이메일 : 없음
휴대폰 번호 : 없음
.
.
싫어하는 것 : 리무혁
특이 사항 : 근 24시간 내에 신분이 소멸됨
– 직업, 주소, 이메일 등 기본적인 신상 정보가 소멸되었습니다.
“……리무혁을 아는데, 무직? 그런데 갑자기 불법 체류자라, 공사 치고 자빠졌군.”
해커의 눈을 통해 바라본 김태영이라는 작자의 신상 정보는 여러 가지 단서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김태영이라는 작자가 행한 이 납치 행각이 리무혁의 지시가 아닐 거라는 것.
둘째는, 납치 행각에 대한 보고를 들은 리무혁이 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김태영에 대한 신분을 ‘삭제’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이 되는군. 북한의 정보를 리무혁이 꽉 틀어쥐고 있을 테니 몇 명쯤 흔적을 지워 버려도 아무도 모를 테지.’
셋째로, 리무혁에게 김태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이밀어도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라는 것 역시 눈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르고, 희도의 중얼거림을 들은 최진헌은.
– 그게 무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제게 리무혁과의 핫라인을 연결시켜 주십시오. 되도록이면 다른 이들이 엮이지 않는 선에서 둘이 승부를 보고 싶네요.”
– ……그리함세.
정진호가 납치된 데에는 국정원 요원들의 실수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최진헌은 희도의 요청에 별다른 말없이 들어주었다. 국정원에다가 이 문제를 가지고 걸고넘어지면 무능력한 정보기관이 되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물론 희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심 찔린 최진헌의 철저한 준비 과정을 통해 리무혁과의 핫라인이 연결되었고 희도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랜섬웨어 복호화라, 아주 대단해. 그걸 정말 당신이 만들었나.
처음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랜섬웨어 복호화라는 이야기를 꺼내 드는 것을 보니, 사족을 제하고 목적 위주의 간결한 이야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렇다만.”
어디서나 흔히 들어 볼 법한 목소리지만, 묘한 쇳소리가 섞여 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희도였다.
– 크립토락커, 워너크라이……. 제법 돈이 되던 녀석들이었는데, 같은 한민족이라는 이름 안에 살고 있는 친우가 이렇게 등 뒤에서 칼을 꽂아도 되겠소? 그리 좋지 않은 그림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북한은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한민족이라, 친우라. 표현이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군요. 거기다 등 뒤에서 칼을 꽂는다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오. 후후.”
– 용맹하구려, 남조선의 영웅은. 그런데, 그 용맹함이 남조선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소?
리무혁의 알 수 없는 말에 희도는 흔들리지 않은 채, 가감 없이 말했다.
“무엇이, 어쨌건 간에 당신과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내 가족을 건드리고 외교적인 담판이 아닌 불법 밀입국을 통한 무력행사라니.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 기래. 그건 그렇고, 지금 이러는 시간에도 남조선은 꽤나 위험한 시기에 처한 것 같은데 괜찮은 것 맞소?
위험한 시기?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희도가 눈매를 좁히며 운을 떼려는 찰나에.
“청장님!”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놓은 공간에 뛰어 들어온 국정원 요원이었다.
그 탓에 핫라인을 off로 전환시키고 그를 쳐다봤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했을 텐데요.”
“아, 아!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를 드려야 한다는 상부 명령이 있었습니다.”
‘국정원장님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희도의 모습을 본 요원이 급히 자신의 스마트폰 기사와 동시에 태블릿 PC를 통해 뉴스를 확인시켜 주었다.
급격히 커지는 희도의 눈동자.
「방글라데시, 신형 ICBM을 한반도를 향해 겨냥. 대상은 누구?」
「태국, 핵 추진 잠수함 출격!」
「미국 위성에 찍힌 ICBM 겨냥 목표는 남한으로 추정되고 있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는 인터넷 뉴스와 더불어.
갑작스러운 전개에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희도는 다시 한 번 직감했다.
“이런 미친 새X가!”
국정원 요원이 있건 말건, 희도는 핫라인을 다시 연결시키며 소리를 질렀다.
– 후후후.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동남아한테 이리도 표적이 된단 말임매. 이래저래 어쩔 수 없게 되었구만 기래. 물론 내 이야길 잘 들어서 서로의 타협점을 찾게 되면 우리가 또 같은 한민족으로서 방글라데시와 태국에게 잘 이야길 해 볼 수도 있고 말이야.
핫라인 너머로 들리는 리무혁의 목소리에 희도의 이마엔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리무혁이 방글라데시와 태국을 이용하는 것인지, 실제 신형 ICBM을 해킹하여 궤도를 바꾼 것인진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봐, 리무혁.”
– 이제 말할 마음이 생긴 겐가.
희도의 반응에 리무혁이 대꾸했다.
“내가 랜섬웨어 카드 하나만 들고 움직인 것 같아 보이나?”
– 후후. 이 시간에 머리를 제법 쓰는 것 같은데, ICBM이 당도하기 까지 남한에게 시간이 별로 안 남은 걸 기억해 두라우.
그의 말처럼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그래서 희도 역시 카드를 들이밀었다.
먼저.
“국가보위성 출신의 김태영이 널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나?”
첫 번째 카드였다. 현재의 상황은 모른 채, 그저 월미도에서 리무혁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 김태영이라는 카드.
– 김태영?
전혀 누군지 모르는 눈치,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그의 태연한 말투에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리무혁, 발뺌해도 소용이 없다.”
희도는 그렇게 말하고는 리무혁과의 핫라인을 잠시 꺼 버렸다.
* * *
“후후, ICBM에 직격을 당하건, 복호화 시스템을 내뱉건. 어떤 선택을 해도 공화국의 승리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리무혁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다이어그램 메신저였다.
‘이 시간에, 누구지?’
흘깃, 확인함과 동시에 리무혁은 자칫하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김태영과의 모든 메신저를 삭제시키고 차단시켰는데, 그에 대한 메신저가 새롭게 터널링된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메시지를 보낸 건…… 김태영이 아니야!’
김태영과 특작 요원들의 영상이 CCTV 화면으로 녹화된 것뿐 아니라 그간 김태영과 리무혁이 주고받았던 내용이 리마인드되어 복구되었다.
거기다 리무혁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음을 상대측에서 깨달은 건지.
「보고 있나, 리무혁.」
정희도였다.
“……으아아아아!”
메시지에 화병이 날 것 같은 리무혁이 답답함을 그대로 터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절대 해독이 불가능하다 했던 랜섬웨어를 복호화하질 않나.
절대 비밀을 보장한다는 다이어그램의 해시 암호화 체계까지 깨뜨리고 해킹하고 들어오다니.
리무혁 역시 다이어그램을 직접 복호화하기 위해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으나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다이어그램은 현존하는 최고의 연락 수단이다. 절대 들킬 염려 없다.’
정찰총국의 리더답게 몇 번이나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움직인 리무혁은 확신에 찬 마음으로 다이어그램을 써 왔으며, 더더욱 비밀스러운 내용들을 담고 있었는데.
그간 해킹 조직을 움직일 때도 다이어그램을, 랜섬웨어를 활용하기 위해 타 국가 사이를 침투할 때도 다이어그램으로 명령을 지시했다 보니, 졸지에 해킹을 당한 리무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씨이바아아아알!! 종간나 새X! 이대로 죽여 버리갔어!”
협상이고 뭐고 이젠 뒤가 없다. 날아가는 ICBM 미사일로 남한에 있는 정희도가 죽지 않으면 그간 쌓아 온 리무혁 자신의 모든 공적은 날아가게 생겼다.
김정운의 오른팔이라 불린 리무혁의 인생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터.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리무혁은 전심전력으로 희도가 다이어그램을 통해 침투해 오기 시작한 북한의 네트워크에서 전면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절대적으로 막아야만 하는 필사적인 리무혁과, ICBM이 대한민국에 떨어지기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정희도의 절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태국과 방글라데시, 다른 국가를 이용해 방산 미사일까지 이용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부분만큼은 인정하마, 리무혁.”
카오스를 상대할 때도 이만큼이나 스케일이 크진 않았다.
과연 그는 거침이 없었고 몰락해 가는 자신을 구제할 방법이 이 미사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에 희도가 북한을 침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또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근시안적인 시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
북한에 목매달 이유가 없다. 희도는 랜섬웨어 복호화 시스템을 태국과 방글라데시 측에도 넘겨주게 되면서 미리 백도어를 심어 놨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미사일 시스템과 같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아주 약간’의 문자와 데이터의 변경으로도 오폭을 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잘 가라, 리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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