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가출 사건
우우우우우웅!
서울 종로구 상공에 대형 게이트가 열렸다.
평소 같았으면 신속한 대피가 이루어질 상황. 하지만 오늘은 그 아래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시작됐다!”
“왕이 온다는 데 진짜야?”
웅성웅성.
경찰과 초인들은 물론이고, 바리게이트 바깥에는 일반 시민들도 잔뜩 몰려와 있었다.
찰칵! 찰칵찰칵!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비켜봐! 좀 찍게!”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려고 경찰들을 밀어댔고, 경찰들은 진땀을 흘리며 대열을 유지했다.
방송국에서 나온 리포터들이 앞 다투어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입니다. 잠시 후,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온 종족의 왕과 만날 예정입니다!”
“곳곳에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의 흥분된 모습이 보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로로우 종족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그들은 녹색 피부와···.”
“현장에는 김수호 대통령이 직접 로로우 종족의 왕을 마중 나와 있습니다.”
대부분의 카메라가 집중된 곳에는, 김수호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게이트로 걸어가고 있었다.
거신 김수호.
가장 강력한 중 한 명이자 한국의 수호신.
그의 당당한 모습은 다른 차원에서 온 왕을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한 걸음 뒤에는, 단정한 차림의 아브락사스가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는 통역사 역할이었는데, 뾰족했던 귀는 마법으로 인간처럼 바꿨다.
그럼에도 미녀 통역사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인터넷에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댓글창이 폭주할 지경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리포터의 흥분된 목소리와 함께, 게이트에서 뾰족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역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크기는 300미터에 육박하는 그것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듯, 천천히 지상으로 하강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희미한 안개가, 피라미드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왕의 루벨론입니다.”
내 옆에서 키리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루벨론의 중심부가 열리고 그곳에서 계단이 내려왔다.
쿠웅!
로로우 종족의 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계단이 땅에 닿았을 때였다.
키리가 옆에 있어서 나는 그 감상을 속으로만 말했다.
‘오래돼 시든 브로콜리.’
그 정도 차이 외에는 왕과 키리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로 그들은 생김새가 비슷했다.
로로우 종족을 처음 본 시민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진짜다! 외계인이야!”
“쉿! 말조심해. 이계인이라고 해야지.”
“녹색이나 초록색이나.”
신기해하던 시민들은 이내 박수로 로로우 족의 왕을 환영해주었다. 미리 지구의 매너를 배우고 온 로로우 왕은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김수호 대통령과 로로우 족의 왕이 만나서 악수를 나눴다. 키 차이가 50cm이상 나서 로로우 왕은 미리 준비된 단상 위에 올라서야 했다.
찰칵찰칵찰칵!
수많은 플래시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김수호 대통령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퍼스트 게이트 이후, 우리는 그동안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페이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인 국민들을 쭉 둘러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게이트 너머에 몬스터만이 아니라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은, 저 가이아 대륙의 대현자 악시무스가 이미 우리에게 알려준 이야기입니다.
대현자 악시무스의 이름이 나오자 시민들이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재앙을 미리 알려준 이계의 현자.
악시무스 덕분에 도시가 멸망을 피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 수많은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그 평가를 떠올린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전설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내가 아는 전설들 중에서도, 그렇게 미화된 것들이 수두룩할지 모른다.
김수호 대통령의 연설은 계속 됐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로로우 종족과의 만남은 그 의미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러 종족을 만나 교류하고 발전할 것이며, 오늘은 역사적인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이 서서히 잦아들자, 이번에는 로로우 종족의 왕이 입을 열었다.
“지구인 여러분. 고향을 잃은 우리를 환영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아브락사스가 그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그냥 통역마법을 걸어주면 될 걸, 저게 재밌는 모양이었다.
이어지는 로로우 왕의 말은 김수호 대통령이 했던 것과 비슷했다.
고맙다. 잘 부탁한다. 서로의 문화와 기술을 교류해 상호발전을 이루자 등등.
모여든 시민들은 호의적인 시선으로 로로우 왕의 말을 들었고, 나는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네.”
더 이상 TV를 보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띡-.
내가 TV를 끄자, 내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키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안 보실 겁니까?”
“본격적으로 지루해질 부분이거든.”
잠시 후 양국 정상은 회담장으로 이동할 테고, 회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방송은 온갖 예상과 추측을 쏟아낼 것이다.
“정치전문가들은 너희 왕 신발 색깔만 가지고 1시간은 이야기할 걸. 왜 하필 신발이 빨간색일까요? 지구에 피를 묻히겠다는 야심이 숨어있는 거 아닐까요?”
“에이. 설마요···.”
좀 과장이긴 했지만,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저 방송이 의미 없고 허황될 거라는 건 맞았다.
게다가 나는 회담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
내가 두 종족을 만나게 했고, 물밑 협상은 이미 2주 전에 다 끝났으니까.
지금 TV에 나오는 모습은 국민들은 안심시키기 위한 보여주기 식 쇼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로로우 종족은 한 달 전부터 지구로 넘어와 있었다.
바로 내가 있는 이곳에 말이다.
내가 임시막사 밖으로 나오자, 키리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공사는 잘 돼 가냐?”
“예! 현재 임시 거주지의 80%이상은 완성했습니다. 자체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고요.”
밖으로 나오자, 마치 브로콜리 밭에 온 것만 같았다. 사방에서 녹색 종족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대인님!”
“대인님!”
마주치는 브로콜리마다 전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갔다.
종족의 은인이라고 저러는 건데, 처음에는 일일이 인사해주다가 이제는 귀찮아서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쿠구구궁!
-쿠구구궁!
시선을 멀리 향하자, 도시 외곽을 굴러다니는 시시포스의 바위-루벨론이라는 이름이 아직 이름에 안 붙는다-몇 개가 보였다.
“열심히들 하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통제구역 바깥의 황량한 땅이었던 이곳에, 로로우 족 특유의 단순한 도형을 닮은 건물들이 곳곳에 올라가 있었다.
원, 사각형, 원뿔, 피라미드, 역피라미드 등등.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
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 달 만에 이 정도라니···. 너희 기술력이 뛰어나긴 한가 보다.”
“헤헤.”
칭찬해주는 게 기분 좋은지, 키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도시를 둘러보며 계속 걸었다.
사실 말이 자치구지, 인구가 3천명뿐인 규모를 생각하면 작은 동네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구규모 치고는 면적이 상당히 넓었다.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지.’
지금이야 로로우 족만 사는 자치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온 종족들도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미래의 핫 플레이스가 바로 이곳!
그리고 여기가 다 내 땅이다.
히죽.
너무 노골적으로 웃었는지, 키리가 흠칫 몸을 굳히며 한 걸음 물러서서 걸었다. ···자식이 은근히 기분 나쁘게.
“팀장님!”
“형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웃통을 벗어젖힌 왕구호와 시루떡이 걸어왔다.
점점 더 근육덩어리로 변해가는 두 덩치는, 몸이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니들은 춥지도 않냐?”
“이 친구들 일을 돕다보니 더워서···.”
시루떡이 오른팔의 새 의수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에이션트 서펜트의 비늘과 텐타클의 신축성 높은 재질로 만들어진 의수는 은은한 은빛이 감돌았다.
게다가 몸도 꽤 좋아졌고 말이다. 이만하면···.
“혀, 형님. 제 몸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부끄러운지 시루떡이 팔을 들어 두꺼운 가슴을 가렸다. 그러자 우람한 승모근과 삼두가 강조됐다.
“별거 아냐.”
지난 한 달 동안, 두 덩치는 로로우 종족이 이곳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주변의 몬스터도 토벌해주고, 지구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도 맡았다. 내가 시켜서 한 거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들과 친해진 모양이었다.
아마 이 마을에서 지구인 인기투표를 하면 이 둘이 3번째와 4번째로 뽑힐 거다.
물론 첫 번째는 나다. 아마도?
“그래. 그럼 계속 도와라. 나는 집 좀 보러 가야겠다.”
““예!””
둘의 우렁찬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자치구의 중심부로 향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주변의 독특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물 하나가 지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수천 평에 이르는 부지에 기초공사만 시작된 수준.
하지만 빨리 지으라고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내 집은 천천히 지어도 돼. 대신 완벽하게. 알지?”
“예···.”
키리가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나는 부담 가지지 말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솔직히 집은 급하지 않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길드 숙소도 호텔만큼 편하니까.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 집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집보다 더 중요한 게 먼저지.”
내 집이 지어지고 부지 한편에, 창문하나 없이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컨테이너 건물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육중한 문이 쿠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언제쯤 완성될 것 같아?”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수 미터 높이의 거대한 금속기둥 5개가 원형으로 세워져 있었다.
치직! 치지! 치지직-!
기둥에는 파란색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문자가 빛나며 기둥들 사이로 에너지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가이아 대륙에서 가져온 대부분의 마정석과 아티팩트가 저 기둥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 틈으로 온갖 게이트가 열렸다 닫혔다 반복했다. 1초에도 수십 개 씩, 게이트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명멸했다.
정식 명칭은 ‘디멘션 터미널(dimension terminal)’이지만, 한국 초인들은 다들 차원터미널이라고 부르다 나중에는 그냥 ‘터미널’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15년쯤 지나서, 여러 차원의 마법과 과학기술이 축적되고 쌓인 이후에 완성되는 차원이동 기술의 결정체.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차원이동 기술을 가진 종족을 만난 게 천운이었지.’
차원의 틈을 열 수 있는 로로우 종족의 기술력.
마법에 대해서라면 견줄 자가 없는 아브락사스의 지식.
내가 가이아 대륙에서 가져온 막대한 마정석과 아티팩트.
여기에 미래에서 차원터미널을 이용했던 경험이 있는 내 조언이 더해졌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는 15년 뒤의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올 수 있었다.
비록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몇 달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몇 달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후면, 나는 가이아 대륙이든 무림이든 마음대로 넘어 다닐 수 있게 된다.
···아, 무림은 좀 일찍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거기 일 터지기 전에 말이지.
“좌표를 알면 좀 더 빨리 갈수 있지 않아?”
무림의 좌표라면 알고 있다. 가이아 대륙과 더불어 가장 많이 갔던 곳이니까.
내가 좌표를 알려주자, 키리는 잠시 뭔가를 계산해보더니 말했다.
“그곳으로 한정 지어 준비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준비에 한 달은 걸리겠지만요.”
한 달 뒤라. 그 때쯤에 가면 무림에서 일이 터지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부탁 좀 하자.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
“터미널의 존재는 한 동안 비밀이다.”
키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직접 차원을 넘어 다녀본 녀석이니 그 위험성을 모를 리 없었다.
차원터미널을 이용하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여러 차원을 오가는 대규모 무역이나,
다른 차원의 중요 기술을 훔쳐낼 수도 있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악당이 차원을 넘어 다니는 일도 생긴다.
“···가장 끔찍한 건 전쟁이지.”
자신의 차원을 지배하는 것으로도 만족 못하는 폭군들에게는 뷔페 입장권이나 마찬가지.
실제로 나는 그런 경우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를 발전시킬 수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열쇠.
그러니까 일단은 내가 쥐고 있을 생각이다.
필요에 따라 적당히 써먹으면서 말이지.
“그럼 나가자.”
우리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 건물에서 나왔을 땐,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아저씨~!”
로로우 족 인기투표 지구인 2위-사실 지구인도 아니지만-가 내게 날아왔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꼬맹이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아저씨 있잖아! 말랑이가-!”
꼬맹이는 노란 떡볶이코트에 머리에도 같은 색의 큼직한 리본을 달고 있었다.
손에는 빨간 벙어리장갑을 꼈는데, 두 팔로 한 달 전보다 커진 서펜트 알을 껴안고 있었다.
저거 어째 불안한데.
“그렇게 빨리 날아오다가 떨어뜨리면 어쩌려···.”
아니나 다를까. 서펜트 알이 꼬맹이의 손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안 돼! 말랑이!”
꼬맹이가 비명을 지른 것과, 내가 이형환위를 사용해 서펜트 알을 받아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꼬맹이의 정수리에 별이 반짝였다.
따악!
머리를 감싸 쥔 꼬맹이가 울상을 지으며 날 올려봤다.
“아파···.”
나는 그런 꼬맹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조심하랬지. 말랑이가 뭐 어쨌다고?”
그러자 다시 생각났다는 듯, 꼬맹이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말랑이가 움직여! 만져 봐봐!”
안 그래도 아까부터 들고 있었다. 꼬맹이 말대로, 서펜트 알이 조금씩 내부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슬슬 부화할 때가 된 모양이네.”
“태어나면 달아주려고 이것도 가져왔다?”
꼬맹이는 코트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꺼내서 내게 자랑했다.
자기 것과 색만 다른 핑크색 리본과, 새끼 서펜트에게 입힐 옷, 젖병에, 양말까지.
“뱀한테 양말을 어따 쓰려고?”
꼬맹이는 발이 없으면 꼬리에 씌우면 된다고 억지를 부렸다. 나는 알아서 하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저씨는 안 신나? 좀 있으면 말랑이 태어나는데?”
“신나기는. 키우는 거 귀찮기만 하지.”
“···그래?”
꼬맹이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은 기초공사가 끝난 집을 향하고 있었다.
꼬맹이의 눈이 다시 초롱초롱해졌다.
“우리 집도 빨리 지어줬으면 좋겠다. 내 방은 2층에 있었으면 좋겠어. 침대랑, 간식 상자랑, 말랑이 키울 어항이랑 또···.”
나는 피식 웃으며 조잘조잘 떠드는 꼬맹이를 바라봤다.
그대로 두면 집이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고, 집 안에 뭐가 있었으면 좋겠는지 끝도 없이 이야기할 것 같았다.
괜히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저게 왜 ‘우리 집’이냐? 내 집이지. 누가 너한테 방 준댔어?”
순간 꼬맹이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소리쳤다.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어른이 쪼잔하게 그러는 거 아니야!”
“···이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너 왜 그래. 점심 안 먹었어?”
꼬맹이가 눈꼬리를 사납게 치켜떴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가 뭐 먹보인줄 알아!”
“아니야?”
“멍청이!”
“뭐? 너 이리 와.”
대표님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내가 꼬맹이에게 헤드락을 걸고, 꼬맹이가 불꽃으로 내 머리를 홀라당 태울 뻔한 다음이었다.
지이이잉.
“잠깐, 잠깐 휴전.”
꼬맹이를 놓아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말했다.
“너 좀 있다 두고 봐. ···예. 대표님.”
“흥!”
꼬맹이는 말랑이를 안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혀를 차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꼬맹이가 그대로 가출해 버릴 거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