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판데모니움(4)
대인이 그대로 소년의 목을 부러뜨리려는 순간, 소년의 몸이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파앗!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난 소년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정신지배가 통하지 않는 거지?]소년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르만의 보석이 지닌 속성은
소울이터는 이 보석의 힘을 100% 끌어낼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러나 대인에게는 그 힘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스르릉.
대인은 아공간에서 천마검을 빼 들었다.
“네 능력이 왜 나한테 안 통하는지 궁금해?”
[···이해할 수 없다. 신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한, 이 고유결계 안에서 내 지배를 거역할 수 있는 존재는 없는데.]소울이터는 ‘영혼’을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존재다.
먹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배하고, 그 기억을 읽고, 원하는 형태로 ‘왜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여기에 이 가진 힘, 성역 안에 펼쳐진 고유결계에 그 힘까지 더해졌다.
어지간한 마왕이라고 해도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권능.
그런데 어떻게 인간 따위가···.
“궁금해? 왜 네 능력이 나한테 안 통하는지. 그건 말이야···.”
[······.]대인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해줄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소울이터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는 순간,
“···너 같으면 알려주겠냐 이 멍청한 새끼야!”
대인은 바닥을 박차고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보랏빛 궤적이 소년의 목을 노렸다.
휘익!
그러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순간이동으로 하늘 높은 곳으로 이동한 소울이터가 대인을 내려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유치한 수법을 쓰는군.]“그 유치한 수법에 화가 잔뜩 나신 것 같은데?”
씨익 웃은 대인은 천마신갑을 활성화하며 신형을 하늘로 솟구쳤다.
촤라락!
그의 등에서 날개가 자라나 힘껏 위로 날갯짓했다.
순식간에 둘의 눈높이가 같아졌다.
대인은 천마검을 들어 소년이 쓴 왕관을 겨냥했다.
“신 좋아하네. 남의 영혼이나 빨아먹는 기생충 주제에.”
그러자 소년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그 위로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내가 널 힘으로 제압하지 못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나?]정신지배를 택한 것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될 소중한 육체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소울이터는 그 명백한 사실을 대인에게 새겨주기로 결심했다.
[조금 망가지더라도 고쳐서 쓰도록 하지.]그 말과 동시에, 소울이터의 몸에서 동시에 두 종류의 힘이 폭발했다.
-화르르르르륵!
-파아아아아앗!
소년의 왼손에는 활활 끓어오르는 암흑이, 오른손에는 눈부신 신성력이 흘렀다.
양쪽 손에서 시작된 암흑과 빛이 소년의 몸을 타고 올라가서 정확히 반씩 장악했다.
치지지직···!
한 몸에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마기와 신성력이 동시에 흐르면서, 뒤섞이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다.
그 여파로 소년의 육체는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소년은 두 눈에서 빛과 어둠을 동시에 폭사하며 대인에게 날아갔다.
[똑똑히 보아라! 진정한 신의 힘을!]-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대인의 몸이 수백 미터를 튕겨 날아갔다.
간신히 허공에서 멈춘 대인은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이건··· 예상치를 좀 많이 벗어났는데.”
대인은 미래의 릴리가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소울이터의 능력을 예측했다.
그러나 지금 소울이터가 보여주는 힘은 대인의 예측을 한참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나불거리던 입이 이제야 조용해졌군.]“······.”
대인이 긴장한 것을 눈치챈 소울이터가 기분 좋게 웃었다.
찌이이익.
더 이상은 소년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존재의 입이, 좌우로 더 길게 찢어졌다.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대검이 하나씩, 그의 양손에 하나씩 쥐어졌다.
대인도 방심하지 않고 아공간을 열어 샬리트와 창천신검을 꺼냈다. 천마검 하나만 가지고는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분열검.”
허공에 나타난 두 자루의 검이 수십, 수백 자루로 분열했다. 수백 자루의 검이 소울이터의 전신을 노리고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강기가 맺힌 공격이었다.
-콰콰콰콰콰쾅!
반경 수 킬로미터 범위에서 빛과 어둠이 폭발했다.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다루는 소울이터의 힘은 가공했다. 대인이 쏟아낸 검우(剑雨)도 그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소울이터의 공격도 대인에게 쉽사리 유효타를 주지 못했다.
대인의 무공은 이미 무림에서 한 손에 꼽히는 경지였고,
그게 대인이 가진 전부도 아니었다.
“초월의 별 활성화.”
[초월의 별이 활성화(2단계)됩니다.]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다양한 기능이 제공됩니다.] [아직 일부 기능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모든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격이 높아져야 합니다.]초월의 별이 활성화된 순간, 대인은 아공간 속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신의 보석’들을 보관해둔 보석함.
대인은 그 안에서 을 꺼내 갑옷의 가슴 부분에 갖다 댔다.
“신성한 얼음. 장착.”
[아이템 등급 확인. 사용을 승인합니다.] [‘신성한 얼음’이 가지고 있는 옵션이 초월의 별에 추가됩니다.] [경고! 사용자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단시간 내의 사용을 권장합니다.]가슴에 박힌 보석에서 시작된 새하얀 선이, 핏줄처럼 갑옷 전체로 퍼져나갔다.
쩌저저적―!
칠흑처럼 검은 천마신갑 위로 얼음 결정을 닮은 무늬가 순식간에 덧입혀졌다.
“후우···.”
잠시 후, 대인은 어둠과 빛을 기묘하게 뒤섞인 갑옷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울이터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어이 우주 기생충.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그 입은 없어도 될 것 같군.]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콰콰쾅!
충돌의 여파로 결계의 내부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의 힘을 빌린 대인의 공격에는 무시무시한 냉기가 깃들었다. 강기가 휘몰아칠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에 대응하듯, 소울이터의 몸에서 뿜어지는 어둠과 빛도 점점 더 강해졌다.
마치 생명 그 자체를 연료로 불태우듯 맹렬하게.
천재지변처럼 이어지던 충돌과 파괴가 멈춘 것은, 그 연료가 모두 소진되었을 때였다.
푸욱.
“······.”
소년은 자신의 가슴 깊숙이 박혀 든 검을 멍하니 내려 보았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며, 온몸에 들끓던 마기와 신성력도 빠져나갔다.
그리고 소울이터도 빠져나갔다.
“아···.”
소년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몇 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날의 풍경들.
엄마 아빠와 함께 보러 갔던 축제.
소년은 길을 잃고 울고 있었다.
부모님을 찾아주겠다던, 낯선 이가 내민 손.
‘안 돼! 그 손을 잡지 마!’
그 손을 붙잡고 도착한 장소.
알 수 없는 동굴, 그곳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밤새 울면서 애타게 엄마를 찾던 밤들.
한 명씩 사라지던 친구들.
수술대에 누워서 바라본 천장.
그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어른들의 환희에 찬 목소리.
‘성공이야! 하나의 몸 안에 악마의 심장과 천사의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 녀석은 앞으로 악마와 천사의 힘을 동시에 다룰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부작용으로 오래 살지는 못할 거다.’
‘부작용만 없앨 수 있다면, 불의 아이 못지않은 괴물인데···’
‘결국 실패작이란 소리지.’
소년은 소울이터를 위해 만들어진 그릇 중 하나였다.
수많은 릴리 중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릴리는 구원받았고 소년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
“······.”
그제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심장을 찌른 남자를 올려봤다.
투구를 내린 대인은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년은 그에게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 고통을 끝내주셔서요.
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생했다.”
푸스스스···.
소년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대인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하늘 위, 거대한 먹구름처럼 생긴 영체가 불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이 빛나고 있었다.
소울이터의 본체다.
[네가 순순히 육체를 포기했다면, 그 아이는 조금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그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대인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스윽.
그저 조용히 검을 들어서 놈을 겨눈다.
본체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놈을 끝장낼 차례다.
“장난은 그만하자고. 더 이상 그럴 기분 아니니까.”
서늘한 살기를 내뿜은 대인이 하늘로 신형을 솟구치려고 마음먹은 순간,
“뭐? 설마···.”
잠시 후 대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예민한 감각 안에, 새로운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발소리는 크지 않았다. 작았다.
일부러 소리를 죽인 것이 아니라, 소리 자체가 작고 가벼웠다.
“이런 미친···.”
대인은 자신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숫자는 다섯.
전부 방금 전에 죽은 소년과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나의 사도들이 만들어낸 역작이지.]자부심 가득한 목소리.
하늘 위에 있던 소울이터는 어느새 흩어지고 없었다.
그 대신 대인을 포위하며 걸어오는 소년 소녀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전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불의 아이 만큼은 아니지만 잠재력도 상당히 뛰어나지.””
한 소년의 손에서 불꽃이 치솟고, 한 소녀의 몸에서는 시퍼런 스파크가 튀었다. 다른 한 소년은 피부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고, 허공에 몸을 띄운 채 날아오는 소녀가 있었다.
아이들의 입가에 전부 똑같은 의미의 비웃음이 맺혔다.
““전부 하나씩 결함이 있는 실패작이지만, 이 아이들 모두 불의 아이의 형제라고 할 수 있다.””
“······.”
대인은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는 소년 소녀들을 한 명 한 명씩 바라봤다.
이내 그의 시선이 한 소녀에게서 고정됐다.
쩌적, 쩌저적-.
한 걸음 한 걸음, 하얀 맨발을 내디딘 순간마다 바닥에 서리를 남기며 걸어오는 소녀.
“······.”
머리카락은 푸르다 못해 백발에 가깝게 탈색돼 있었고, 눈동자는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깡마른 몸이다.
‘저 애는···.’
웬디. 릴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
미래에서 온 릴리가 주고 간 자료에서 보았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아저씨. 만약 웬디를 만나면···. 죽여줘. 그 애는 이미···.
대인은 미래의 릴리가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쓴 내용을 떠올렸다.
그 말이 진심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애만큼은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는데···.’
대인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웬디를 바라봤다.
웬디가 이곳에 나타난 걸 보면, 필립이라는 녀석은 결국 실패한 모양이다.
‘이제 죽이는 수밖에.’
이미 소울이터가 몸 안에 들어갔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놈을 몸 안에서 강제로 뽑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꼬맹이. 미안하지만 이 이상은 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결심을 한 대인이 검을 고쳐 쥘 때였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대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건···.’
““마지막으로 항복할 기회를 주지. 네가 항복한다면, 이 다섯 아이는 죽지 않는다.””
소울이터가 지껄이는 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었네.”
웬디의 목에는, 대인이 필립에게 건네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소울이터는 아직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