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마지막 전투(1)
마계 & 차원 연합군의 동맹 회의가 끝난 후.
연합군 막사 내부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저씨!”
마계토끼 인형을 벗어던진 릴리가 곧바로 대인에게 달려들었다.
“헉!”
그 순간 마계에 온 이후로 가장 큰 위협을 느낀 대인은 파천신보를 펼쳐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달려오는 릴리의 속도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퍼억!
“컥···! 너 나 죽이려고 작정했지?”
살짝, 눈앞이 노래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대인의 가슴에 대롱대롱 매달린 릴리가 그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당겨보고 꼬집어대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밥 제대로 안 먹었지!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나 지금 쓰러지면 그건 무조건 너 때문인 줄 알아. 일단 좀 떨어져 봐.”
“아직 안 돼. 진찰 중이니까 가만히 있어!”
“아 됐다니까. 쬐끄만 게 잔소리는···.”
대인은 왼팔에 매달린 릴리의 이마를 꾸욱 밀어내면서-그러나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지만 대인의 수난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아빠!”
릴리보다 한 박자 늦게 뛰어온 웬디가 대인의 오른팔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클클. 이놈아. 이 스승이 보고 싶지 않았느냐!”
두 팔이 봉쇄된 제자를 천무극이 우람한 두 팔과 가슴으로 꽉 끌어안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대인이 컥컥대며 말했다.
“마왕이 아닌 같은 편한테 죽게 될 줄이야···.”
대인이 한참 더 엄살을 떨고 나서야 다들 떨어져 나갔다.
“아무튼 아까는 잘했어 꼬맹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는 익숙한 손길에 릴리가 “헤헤” 웃었다.
대인이 아브락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스. 결계는?”
“걱정할 것 없어. 이 안은 바알도 못 훔쳐봐.”
삼자 동맹 회의가 끝난 후, 바사고가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수많은 마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사고는 마왕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그 반대급부로 니바니바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회의 중 대인도 은근히 니바니바를 편들었고, 그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사고에게 전음을 보냈다.
-겨우 이런 걸로 동맹을 망칠 순 없잖아? 우선 바알부터 처리해야지. 저 단순 무식한 토끼한테 잠깐만 맞춰 주자고.
[······.]바사고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고, 회의는 결국 니바니바의 주도하에 진행됐다.
하지만 그 니바니바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대인이 전음으로 불러준 것이었으니, 사실상 마계의 반란군 전부가 대인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사고 그 자식이 순순히 물러날 리는 없지만···. 아직 제거하기엔 쓸모가 남았으니까.’
대인은 막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고생했어, 고생하셨어요.”
그는 릴리, 웬디, 아브락사스, 천무극과 차례대로 눈을 마주쳤다.
쉽지 않은 임무였을 텐데, 네 사람은 대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 주었다.
특히 릴리의 성장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넌 대체···. 내가 안 본 사이에 뭘 먹고 다닌 거야?”
아브락사스에게 기대하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건 예상 범위를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다.
‘설마 기세로 바사고한테 전혀 안 밀릴 줄이야.’
대인은 니바니바가 만만치 않다는 모습 정도만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릴리는 아예 바사고와 대등한 수준의 힘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앞으로의 일이 조금 더 편해졌다.
“엣헴!”
두 손을 허리에 척 얹은 릴리가 한껏 뻐기는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불꽃 대마왕이라고 불러!”
“대마왕 같은 소리 하네.”
대인은 피식 웃으며 릴리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통통했던 볼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제법 대견했다.
“헌데 제자야. 릴리가 반란군의 주도권을 쥐었으니, 이참에 바사고 그놈은 제거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천무극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바사고를 대체할 릴리가 있으니, 나중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바사고를 미리 제거하자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멤버가 모였으니···.”
“바사고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명령 체계를 획일화하는 것이 이후 전투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말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바사고는 쓸모가 있어요.”
바사고는 마계 최고의 마법사.
쉽게 당해주지도 않을뿐더러, 전투가 벌어지면 현재 아군에게도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워낙 성격이 조심스러운 놈이라 기습은 안 통할 거예요. 온몸에 결계를 수십 개씩 펼치고 다니는 놈이니까.”
대인의 특성을 최대로 사용해도 암살이 가능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저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아가레스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바사고를 제거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대인은 바사고가 바알의 마왕성에 펼쳐진 결계를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스도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결계를 풀 수 있겠지만···. 우리한테는 이제 여유가 별로 없으니까.’
최소한 그때까지는 바사고가 필요하다.
“아저씨. 내가 가서 그 해골 마왕 해치우고 올까?”
릴리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대인은 픽 웃었다.
“됐다니까. 아직은···.”
“아깐 봐준 거였거든.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아저씨가 진짜 싸우는 건 안 된다고 해서 비슷하게 맞춰줬어.”
“···뭐?”
이 꼬맹이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더 놀라게 할 생각인 건지···.
대인은 릴리에게 그럴 필요 없으니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후, 모두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상황이 좀 급해지긴 했습니다.”
대인은 아브락사스가 알아낸 바알의 ‘마계수 융화 계획’에 대해서 설명했다.
세계 자체와 융화된다는 미친 계획.
일반적으로 그런 짓을 하고 자아가 유지될 리 없지만, 바알이 뭔가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아브락사스가 여기에 설명을 보탰다.
“만약 바알이 마계수와 융화하는 데 성공하면, 우린 그 즉시 지구로 도망쳐야 해.”
“그 정도로 강해진단 말이오?”
누구보다 호승심이 강한 천무극이 굵은 눈썹을 꿈틀댔다. 그는 바알과 한번 붙어보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아브락사스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하고 말고가 아냐. 이 세계 자체가 우리의 적이 된다고. 밟고 있는 땅, 들이마시는 공기까지. 마계에서 태어난 존재라면 세계의 의지에 거부할 수 없어. 마왕급 정도야 저항이 가능하겠지만 나머지는 불가능해. 말 그대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을 얻는 거지.”
“전지전능이면 전지전능이지, 그거에 가까운 건 뭐야?”
대인의 질문에 아브락사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예상만 할 뿐이지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정말 바알이 그 정도의 힘을 얻게 된다면, 연합군이 이곳까지 와서 고생한 모든 일이 허사가 될 터였다.
뿐인가. 바알은 차원을 장악한 힘으로 다시 지구에 헬게이트를 연결시킬 것이고,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앙이 지구를 덮칠 것이다.
“···상황은 들으신 바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을 최대한 앞당겨서 바알을 쳐야 합니다.”
모두를 둘러보는 대인의 표정이 보기 드물게 굳어 있었다.
연합군은 지금까지 무리해서 싸우지 않았다.
바알, 아가레스, 바사고가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하고, 마계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켜 전력 자체를 줄어들게 유도했다.
‘그래서 아군의 피해도 거의 없었던 건데···.’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는 우리도 희생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올 겁니다.”
대인의 말에 막사 안에 모인, 결사대 수뇌부에 표정에 긴장이 어렸다.
어떤 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던 임대인이 표정을 굳힌다는 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란 이야기였으니까.
꿀꺽.
이제부터는 정말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
사실 대인도 긴장하고 있었다.
미래에서 온 릴리가 경고한 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마계로 넘어가서 벌인 전쟁에서 무리한 싸움을 여러 번 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싸우지 않았어.’
-특히 바알과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가 치명적이었어. 영혼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었으니까.
‘바알과 직접 싸울 생각도 없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바알을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킨 후 최정예 전력으로 레이드 할 계획이었다.
‘알면서 또 당하면 그게 병신이지.’
-그때 입은 손상은 어떤 차원의 포션으로도, 아티팩트로도 고칠 수 없었어. 버티는 게 전부였는데···. 아저씬 그걸 치료했다고 모두한테 거짓말을 했어. 사실은 아니었으면서···. 참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랬다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인은 의아해하면서도 차근차근 다가올 미래에서 죽지 않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그때 준비한 것들은 여전히 유효했고, 아직 남겨둔 것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괜한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 대인은 애써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지는 말자고요. 결국엔 다 잘될 겁니다. 제가 방금 또 미래를 봤거든요.”
그건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예!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입니다.”
“예언자님은 저희만 믿으세요!”
“반드시 당신을 안전하게 지구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대인이 ‘미래를 봤다.’고 말하자 결사대원들의 표정이 풀렸다. 제대로 된 사정을 아는 몇 명만이 표정을 살짝 굳힐 뿐이었다.
“···걱정 마 아저씨. 내가 옆에 있으니까.”
릴리가 옆에서 눈을 빛내며 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피식 웃은 대인은 그런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럼 내일 있을 전투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볼까요.”
그 이후에도 회의는 길게 이어졌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의견을 내놓았고, 토론하고, 수정하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대인이 그 모든 의견을 듣고, 수렴해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대충 이렇게 정리하고···.”
회의를 끝낸 대인은 왕구호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구호야. 대표님한테 온 연락은?”
왕구호는 지구에 있는 연합군 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쪽도 준비가 다 끝났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고 하셨어요.”
대인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금방 연락드린다고 해.”
***
다음 날, 동맹을 맺은 두 마왕의 군대는 바알의 마왕성을 향해 전진했다.
물론 그 길은 뻥 뚫려 있지 않았다.
[왔느냐···!]오래된 석상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아가레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쿠구구궁!
아가레스는 한 번의 발 구름으로 지진을 일으켰다.
선두에서 달려가던 마족들을 우르르 넘어지고 뒤따라오던 아군에 의해 짓밟혔다.
-콰직! 콰지직!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적의 선두를 향해, 아가레스가 거친 포효를 터트렸다.
[바사고! 그 겁쟁이는 어디 있느냐!]그 순간, 적진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구쳐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가레스가 눈을 부릅떴다.
[너는···!]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불꽃이 그를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쾅!
마계와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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