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마지막 전투(5)
바알군의 후방에서 열린 게이트에서, 지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원 연합군의 지원 병력이 해일처럼 밀려 나왔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을 넘고도 멈추지 않았다···.
“부대표!”
게이트에서 가장 먼저 뛰어나온 백창수가 대인을 보자마자 덥석 끌어안았다.
“몸은 좀 괜찮은 겐가!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컥! 대표님 때문에 지금 숨을 못 쉬겠습니다만···.”
근육질의 팔과 가슴에 짓눌린 대인이 하얗게 뜬 얼굴로 대답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러니, 이제는 모두 짜고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하하! 우리가 왔으니 이젠 걱정할 것 없네!”
대인에게서 떨어진 백창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창수의 호언장담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계로 넘어오는 연합군 병력은 한 명 한 명의 수준이며 장비들까지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대인이 아는 얼굴들이 속속들이 게이트를 넘어와 도착했다.
“부대표님!”
“팀장님!”
“임대인 님!”
백영희와 화이트하우스 길드의 초인들, 아쉽게 결사대에 포함되지 못한 신주쿠 레인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연을 맺은 초인들, 다른 차원에서 대인에게 은혜를 입은 종족들까지.
그 중에는 아쉽게 결사대에 들지 못한 실력자들도 있었고, 백창수처럼 어쩔 수 없이 지구에 남아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동료들만 사지로 보내야 했던 미안한 마음들이, 지금 마계에 도착한 이들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우둑, 우두둑.
백창수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자네가 우리를 빨리 불러주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대인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저 오늘, 빠른 퇴근 기대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이제부턴 우리에게 맡기게.”
씩 웃은 백창수는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병사들을 향해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터트렸다.
“제군들!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우오오오오오!”
무기를 하늘 높이 치켜든 병사들이 세상을 찢어놓을 것처럼 함성을 터트렸다. 사기는 최고조였다.
백창수는 직접 선두로 나서며 외쳤다.
“전군―돌격하라!”
10만에 달하는 차원 연합군이 바알군의 후방을 공격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바알의 군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막아라! 놈들을 막으란 말이다!] [가, 갑자기 연합군 놈들이 왜···!] [끄아아아아악!]연합군이 바알의 군대를 허물어뜨리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바사고는 아무런 말 없이,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전황을 뒤집어놓은 연합군의 지원군을 바라보았다.
선두에서 날뛰는 백창수를 필두로, 연합군은 바알군의 후방을 분쇄하고 있었다.
앞뒤로 포위당한 바알의 군대는 허둥지둥 대며 빠른 속도로 궤멸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아군이 곧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바사고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임대인.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나···.]차원 연합군의 지원군이 온다는 사실을, 바사고는 방금 전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여긴 마계잖아. 웬만한 인간은 이곳에서 생존조차 힘들다고.
-지원? 상황에 따라서 몇백 명 정도는 더 올 수도 있지만, 대규모 병력이 넘어올 일은 없을 거야.
-우린 병력이 얼마 안 되지만 한 명 한 명이 최정예지. 더 이상 충원이 안 되는 병력이라고. 함부로 낭비할 수가 없으니 아껴야지.
대인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합군의 지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어느새 그 말을 믿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합군의 추가 지원이 없어도 아가레스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했고, 연합군의 결사대 100인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으니까.
나중에는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니바니바의 군대가 합류하면서 반란군 내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뭔가에 홀린 것만 같군. 정신을 차리니···.’
원래 바사고가 데리고 있던 군대는, 이제 보잘것없을 정도로 숫자가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전부 계획된 거였단 말이지···. 크크크.]바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애초에 신뢰를 가지고 맺은 동맹은 아니었다.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언젠가는 서로를 배신할 거라는 계산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다만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이, 마왕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임대인···.]바사고의 스산한 시선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대인을 향했다.
방금 전까지 싸우고 있었던 가미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발밑에 깔려 있는 쓰레기에게까지 신경을 쓰기엔, 지금 바사고의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사, 살려주게···. 나는 어쩔 수 없이 바알의 편에 붙었을 뿐이야···. 존재 맹약을 했기에 어쩔 수 없었어···.]바사고의 발밑. 사지가 뜯겨나간 가미긴이 고통스럽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게! 내 이마에 자네의 낙인을 찍어도 좋네! 하인처럼, 아니 노예처럼 부려주게!]가미긴은 필사적으로 빌었다.
마계 서열 4위의 마왕. 그러나 소멸을 앞둔 상황에서는 하찮은 마수와 다를 바 없이 살고 싶었다.
-그워어어어어어!
쓰러져 꿈틀대는 어보미네이션을 본 드래곤이 꽉 눌렀다. 마왕성끼리의 싸움도 바사고의 압승이었다.
[내 노예라···.] [얼마든지 부려주게! 아니, 부려 주십시오!] [······.]바사고는 비굴하게 비는 가미긴을 가만히 내려 보았다.
사실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미긴의 이마에 새겨진 바알의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말은 즉, 현재 바알의 격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걸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사, 살려···!]-콰드득!
바사고는 가미긴의 심장을 부숴버렸다.
***
[상황이 좋지 않군. 뛰어난 검사여. 더 이상 너와 어울릴 시간이 없어 안타깝구나.]마르바스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천무극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강자의 오만이 깔려 있었다.
“클클···. 건방진···.”
천무극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으로, 검을 지팡이 삼아 서 있었다.
온몸에 구멍이 뚫리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베인 상처도 여럿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상처가 가득했지만, 천마의 눈빛과 기세는 여전히 형형했다.
‘겨우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았거늘···.’
반면, 마르바스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모습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은빛 갑주 위로 흠집들이 여럿 보였지만, 놀랍게도 갑옷을 관통한 상처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마르바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는 나와 대등한 검술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내 갑옷을 뚫지는 못하는구나.]“클클···. 그 갑옷···.”
마르바스를 감싼 갑옷은 그의 마왕성이었다.
마계에서 가장 단단한 갑옷이었기에, 극에 달한 천마의 검으로도 뚫지 못했다.
‘저 갑옷만 없었다면.’
잠시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천무극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이 가진 신병이기를 탓하는 것은 천마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스윽.
마르바스가 검을 들어 천무극을 겨냥했다.
[훌륭한 검사에 대한 예의로, 내 최고의 검술로 그 생명을 거두겠노라.]“클클···.”
천무극은 부들거리는 팔로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 공격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여기까지인가···.’
삶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이미 100년을 넘게 살았다. 마음속 깊게 응어리졌던 한도 제자 덕분에 풀지 않았던가.
“후우···.”
마음을 편히 먹자, 손에 쥔 천마검이 놀랍도록 가볍게 움직였다.
천무극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 목을 가져가려면, 네놈도 목을 걸어야 할 것이다.”
[풋. 끝까지 주제를 모르는군.]동시에 두 자루의 검이 움직였고, 찰나의 순간 그들의 신형이 교차했다.
-푸화아아아악!
천무극의 가슴이 사선으로 갈라지며, 그가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졌다.
털썩.
쓰러진 천무극의 몸이 희미하게 움찔거렸다.
[···마지막에 피했다고?]표정을 굳힌 마르바스가 뒤로 돌아설 때였다.
툭.
검을 들고 있던 그의 오른팔이 팔목에서부터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여유롭던 마왕의 표정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평소 귀족적인 말투와 행동을 보여주는 마르바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만큼은 극도로 싫어했다.
[인간 따위가!!!]마르바스의 검이 쓰러진 천무극을 향해 거칠게 휘둘러졌다.
“클···.”
간신히 눈만 뜬 천무극이 그 검을 멍하니 쳐다볼 때,
-까가가강!
한 자루의 도가, 한 자루의 창이, 그리고 한 자루의 검이 교차하며 마왕의 공격을 막았다.
[또 뭐냐!]마르바스가 갑자기 끼어든 자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너희들···.”
반면 천무극은 익숙한 세 사람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 형. 우리가 좀 늦었구려.”
[버러지들! 꺼지지 못해!]-까가가강!
검성이 마르바스의 공격을 잠시 막는 동안, 신창과 도왕이 천무극을 챙겨 뒤로 물러났다.
“지원군이 온 덕에 여유가 생겨서 곧바로 이리로 왔습니다.”
신창이 천무극의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여하튼 혼자서 저놈을 상대하겠다고 나설 때부터 내 이리될 줄 알았다니까. 덕분에 우리는 잔챙이 마왕들을 처리하기가 수월했소만.”
곰만 한 덩치의 도왕이 투덜대며 천무극을 일으켜 세웠다.
언제 받아왔는지, 그는 천무극의 상처에 최상급 포션을 처덕처덕 발랐다.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를 천무극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너희는 물러서라!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할 테니···.”
그러자 도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 형. 설마 파천검제 그 아이에게 이야기 못 들은 거요?”
“···무얼 말이냐?”
갑자기 제자의 별호가 나오자, 천무극은 그 와중에도 궁금해서 물었다.
도왕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미팅은 4:4란 말이외다! 우리 셋에 천 형까지 해서 넷이지!”
“그게 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도왕이 도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곧장 마르바스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숫자가 안 맞는단 말이오! 만약 그쪽 처자들이 기분이 상해서 취소라도 하면 어쩔 거요!”
“······.”
그게 지금 마왕과 싸우는 상황에서 할 말인가.
그러나 도왕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고, 그의 도에 맺힌 강기는 어느 때보다-정마 대전 당시보다도 더-강맹했다.
“그러니 이 마왕 놈은 함께 때려잡아야 한단 말이오!”
-콰콰콰쾅!
“어휴. 이놈아···.”
“형님···.
검성과 신창이 부끄러움에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아니 왜? 사내가 여인을 좋아하는 것이 뭐 어때서! 잘 돼서 새장가 가겠다는데!”
그러나 도왕의 얼굴 두께는 고금제일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천하의 천마마저 헛웃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클클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굳었던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그깟 미팅 때문에 천하삼절이 자신을 도우러 왔겠는가.
“클클. 알았다. 내 반드시 너희와 그 미팅이라는 것에 나가야겠구나.”
“잘 생각하셨소이다!”
네 명의 절대고수는 수십 년 동안 맞춰본 것처럼 완벽한 합격진을 이루었다.
그 안에 갇힌 마르바스의 표정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이런···.]그 이후에 벌어진 싸움은, 훗날 4:4 미팅에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되어주었다.
***
“이겼다-!”
웬디는 쓰러진 아몬의 몸 위에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마계에서 가장 거대한 마왕은 세 개의 머리를 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클클. 이쪽도 다 끝난 모양이군.”
천무극과 천하삼절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천무극의 손에는 마르바스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임대인은···. 어디 있지?]바사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연합군의 간부들 몇 명이 바사고를 예의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인이 릴리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전투는 연합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바알의 군대는 궤멸했다. 10좌에 속한 마왕들 중에서도 가미긴, 마르바스, 아몬을 잡는 데 성공했다.
“아가레스랑 부에르는 놓쳤지만, 어차피 그 정도로 전황에 큰 영향은 없을 거예요.”
아가레스는 연합군의 지원군이 나타나자마자 가장 먼저 도망쳤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같은 편의 마왕들조차- 일이었기에 연합군은 아가레스를 놓치고 말았다. 부에르도 비슷한 경우였다.
“미안···.”
릴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가레스를 놓친 것 때문이었다.
대인이 릴리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꼬맹이. 네 탓 아냐. 그리고 일단 넌 좀 자야겠다.”
“응···.”
스르륵.
대인의 몸에 기댄 릴리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자면 어떡하냐.”
작게 한숨을 내쉰 대인은 릴리를 번쩍 안아 들었다.
등을 몇 번 쓸어주자, 릴리가 “우웅···.” 거리며 대인에게 더 파고들었다.
‘이럴 땐 아직도 영락없이 애라니까.’
대인은 릴리의 등을 토닥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대인이 뭔가 대단한 연설이라도 할 거라고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
대인은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시야의 끝에, 하늘을 뚫고 자라난 거대한 나무가 불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곳에 바알이 있다.
“여러분···.”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대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빨리 끝내고 퇴근합시다.”
마침 쏟아지던 폭우가 그쳤고, 연합군은 진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