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0
악당
기둥을 확인하자마자 샤엘을 보았다. 샤엘은 방금 전처럼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진 것이 그 이유였다.
ㅡ이게 어찌 된 상황일까요⋯! 한 해도 아니고, 일주일 동안 1,204번의 키스라니!
진행자의 말과 함께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진행자의 말대로 기둥에는 ‘1,204’라는 수가 새겨져 있었다.
‘뭐지?’
기둥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그건 아닐 거다.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진행자가 망가지지는 않았으리라고 말하기도 했고.
ㅡ두렵습니다. 하루에 172번의 키스라니⋯.
계획이 틀어지지 않았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ㅡ믿지는 않지만, 이렇게 해서 제국 최고의 연인이 탄생했습니다! 1,204번의 키스라니.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제국 최고의 연인일 겁니다.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와 샤엘은 보상을 받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나는 샤엘에게 상황을 물을 수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부터 왜 제 시선을 피하는 건지도 알려 주셔야겠습니다.”
샤엘은 침묵을 유지했다. 새빨개진 얼굴 때문에 그녀에게 더 캐물을 수도 없었고.
‘잠깐, 설마?’
근래에 샤엘은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것을 기점으로 샤엘은 수많은 키스 요구를 멈추었다.
‘사실 멈춘 건 아니지만.’
그 요구는 나도 받아줄 수 있을 정도였다. 원래의 샤엘이라면 몇십, 몇백의 키스를 요구했을 테니까.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입술이 무언가 이상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쩐지 잘 때마다 모기가 윙윙거리는 것 같더라니.”
“입, 닫으세요.”
샤엘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어쨌든 샤엘 덕분에 내가 이득을 본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나중에 제대로 놀려 줘야겠지.’
샤엘을 향해 씨익 웃음을 지어준 뒤에 앞을 보았다. 데네스 아니덴이 오고 있었다.
행사의 보상 때문이었다. 역시, 데네스는 행사를 돕고 있었다.
‘묘약을 쉽게 가져갈 수 있겠네.’
원래라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 텐데. 데네스는 굳이 묘약을 들고 혼자 왔다. 데네스와 했던 내기가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소원을 들어주는 내기. 요컨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지 않은 데네스의 꼼수였다. 덕분에 묘약을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거다.
“하, 하하. 설마 일주일 동안 1,204번의 키스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샤엘이랑 워낙 사이가 가까운지라. 당연한 일입니다.”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내보이던 조소는 사라지고,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귀족들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소원을 들어주기도 해야 할 테고.
“우선 이게 행사의 보상입니다. 솔직히 이게 진짜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랑의 묘약이라더군요.”
“가져가면 되는 겁니까?”
“이상한 곳에서 쓰일 수도 있는 묘약이니, 여기서 바로 마시시면 됩니다.”
지금이 바로 내기의 소원을 사용할 때였다.
“여기서 마시기는 싫으니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안 됩니다. 여기서 마셔야만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내기에 대해서 잊으시지는 않았겠지요.”
데네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 얼굴은 그와 반대로 웃음을 지었고.
“그럼,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크윽⋯⋯.”
“그건 그렇고. 이거로 끝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살벌한 조소를 지으며 데네스를 보았다. 과거, 악녀였던 샤엘이 줄곧 지어내고는 했던 조소였다.
쿵!
“해야 할 것이 더 있지 않습니까?”
“미, 안합니다. 그때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빠른 사과에 감탄이 나올 정도. 데네스를 더 괴롭히고 싶었으나,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아직까지도 수치심을 지우지 못한 채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엘을 데리고 나왔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계획이었다. 마침 시계도 적절한 때를 가리키고 있었다.
‘샤엘과 갈 수는 없으니, 샤엘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한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샤엘을 지켜줄 상대가 보였다. 바로 제스펜 공작이었다.
“에란, 샤엘. 놀랍군. 설마 나와 에넬라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1,204번의 키스라⋯⋯.”
“⋯하, 하하. 우연입니다. 운이 좋아서 이겼습니다.”
“우연으로 일주일 동안 1,204번의 키스를 하지는 않지.”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하다. 옆에 있는 샤엘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제스펜 공작에게 샤엘을 맡겼다.
다행히도 아즈벨 가문의 마법 시연이 곧이고, 바슬렛 가문 역시 내가 필요했기에 아무런 변명도 없이 떨어질 수 있었다.
심지어 통제의 반지를 풀어낼 수도 있었다. 바슬렛 가문의 관리를 위한, 샤엘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제 마탑주와 황태자를 만날 때였다. 지겨운 싸움의 종착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마탑주와 황태자가 가져온 짐을 아래에 내려 두었다. 내가 시켰던 대로 그들은 어려운 재료를 가져왔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일이 제 생각대로 되겠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 치료제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그런데⋯⋯ 더 필요한 게 있습니다.”
그들이 얼굴을 구겼다. 싱싱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막과 추운 지방을 다녀왔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무척 힘들겠지.’
그들의 꼴을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미 클리에 때문에 몸이 안 좋았을 그들인데, 피로를 참아가며 혹독한 지역에 다녀왔으니까.
“우선 이 주스를 마시면서 듣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니 마탑주와 황태자는 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빠르게 컵을 건네받은 그들이 주스를 들이켰다.
암시장에서 샀던 물과 과일로 만든 주스였다. 생각을 느리게 하는 물과, 인내심을 약하게 만드는 과일.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정화의 이슬을 아주 살짝 넣은 주스이기도 했다.
묘약을 바로 먹인다면, 설령 정화의 이슬을 다 넣더라도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까.
“이거, 꽤 맛있군. 그래서 치료제는?”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본을 읽었다. 꽤 그럴싸한 소리들을 모아 두었기에, 그들은 납득하며 내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이제 주스의 효과가 나타났겠지.’
워낙 많은 말을 들은 탓에 목이 마르기도 할 테고.
그제서야 나는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꺼냈다.
바로 행사를 이기고 보상으로 받은 사랑의 묘약이었다.
“목이 마르신 것 같은데. 이 술을 나눠 마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나는 안 마셨다. 그러나 온갖 피로와, 이상한 효과의 주스를 마신 그들은 내 제안을 의심도 하지 못하고 묘약을 들이켰다.
마탑주와 황태자는 묘약을 들이키자마자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잠에 빠졌다.
계획은 성공했다. 아주 완벽한 성공이었다.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마탑주와 황태자의 마력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너무했나?’
아마 아닐 거다. 황태자가 지니고 있는 무기들과, 마탑주가 챙기고 있는 마도구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일이 수틀렸다면 나를 죽이려 했을 거다.
‘거기에, 아즈벨가의 마법 공연 예약을 보니 마탑주와 황태자의 이름이 있었지.’
내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아즈벨 가문은 참혹한 끝을 맞이했을 거다.
그때의 마탑주는 제스펜 공작을 이기지 못했으나, 지금의 황태자와 마탑주는 꽤 강했으니까.
여하튼 계획은 성공했다. 그러니 원작 여주인공인 클리에를 만날 때였다.
* * *
황태자의 주머니에서 꺼낸 금패를 지니고 황궁으로 왔다. 금패를 보여주자, 황실의 기사들은 의심도 못 하고 내게 문을 열어 주었다.
목적지는 확고했다. 클리에가 있을 병실이었다. 기사들의 안내로 쉽게 올 수 있었다.
‘노크를 할 필요도 없겠지.’
끼이이익!
일부러 세게 문을 열었다. 공작가 공자님치고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허나 들리는 것은 없었다. 클리에는 대낮부터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 약을 제대로 먹지 않은 탓에 아직도 열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시끄러운 소음에도 잠에서 깨지 않았을 테고.
‘편지?’
클리에의 옆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마탑주와 황태자가 읽으라고 둔 것처럼 보이는 편지였다.
당연히 나는 편지를 읽어 보았다.
“하.”
내가 치료제를 만들지 못한다면, 나를 죽이고 아즈벨가로 가서 귀걸이를 찾으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나를 죽이라는 내용은 없었지만. 편지에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이상한 짓들이 나열되어 있었기에, 죽이라는 명령과도 똑같았다.
‘이거 어쩌나? 이미 늦었는데.’
귀걸이를 찾고 싶었다면, 남주인공들이 멀쩡할 때 미리 알려 줬어야지.
집착은 심했어도, 유일한 편을 믿지 못한 탓에 클리에는 모든 걸 실패했다. 나로서는 이득이었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이제 일어나지?”
쿵!
전등을 키고, 클리에가 일어나도록 책상을 두드렸다. 드디어 클리에의 눈이 뜨였다.
“황태자님⋯⋯?”
밝은 환경 탓에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 클리에가 말한 것이었다.
큰 소리로 자신을 깨웠다는 것이 짜증이 나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황태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뱉는 가식적인 목소리.
나는 그 이중성을 깨부술 것을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어쩌나? 이제 마탑주와 황태자는 너한테 안 와.”
네가 실컷 이용해 먹는 남주인공들은⋯⋯.
‘로맨스 판타지말고, 다른 장르 찍으러 갔거든.’
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서 마탑주와 황태자에 대한 생각을 지운 채로 클리에를 보았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썩어가는 클리에의 표정을 확인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이 지어졌다. 악녀였던 샤엘이 지어내고는 했던 웃음이었다.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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