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35
6월이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하던 사람들의 수도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길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던 ‘기득권층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은 잘못됐다’는 피켓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물론, 새벽그룹에 대한 질타와 여론이 안정되기 시작한 이유는 더위 때문이 아니다.
새벽그룹의 2대회장이 된 이정인은 취임하자마자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개를 숙이며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아끼지 않고, 형이 지은 죄를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겠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새벽그룹으로서의 전통성을 버리고, 루미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래봤자 쇼에 불과한 일이거늘.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병인이 사형을 선고받고, 새벽그룹의 경영진이 대거 바뀐 데다, 이제는 그룹의 이름까지 바꾸었으니 사람들이 집회를 벌여야 할 이유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때마침 매스컴은 톱스타들의 열애사실을 잇달아 보도하고, 유명 연예인의 마약혐의를 보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켰다.
회귀 전이었다면 모를까, 이병인이 일으킨 테러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던 은하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개입을 느낄 수 있었다.
“…쐐기라면 하나 더 있고.”
이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지점에서, 선녀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정부 탈환전을 발표했다.
의정부를 탈환해보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몬스터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샀다.
이병인의 테러가 두 달가량이 지난 사이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장, 저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게 있어! 우리 저기 가보자!” “어휴, 최은혁 네가 또…. 이런 자리에서는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모르니?”
그래서 그런지 앨리스그룹의 직계에 편입된 정하양의 생일파티에는 정재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 시기에 재벌가의 파티가 매스컴에 보도되었다가는 여론에 좋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 시기일수록 정재계 인사들은 서로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를 필요로 했다.
하양의 생일파티가 취소되지 않고, 명동 새벽호텔에서 YH호텔로 연기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 생일파티를 이런 자리로 이용하다니….”
은하는 접시에 음식을 담으러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사전에 친한 이들끼리 해피니스에 모여 조촐하게나마 생일파티를 하기는 했지만, 친구의 생일을 이런 목적으로 이용하는 민준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양은 작년에 앨리스그룹의 직계가 되었다.
그녀는 앨리스그룹의 직계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얼굴을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들의 세계도 플레이어의 세계와 하등 다르지 않다.
“근데 하양아. 너 걷는 거 엄청 예쁘다. 어떻게 걷는 거야?” “요새 걷는 법도 새로 연습했어. 이렇게, 등을 펴고 이런 식으로 걷는 거야.” “등이랑 허리가 아플 것 같아.”
얕보이는 순간 물어 뜯긴다.
하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일파티의 주인공답게 남들보다 눈에 띄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동작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작년부터 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민지와 서나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구두가 불편한 두 사람은 동작이 익숙지 않는지, 뒤뚱거리며 그녀를 뒤따랐다.
“다행이네. 겁먹지 않은 것 같아서.” “뭐가? 하양이?”
“하양이 말고 누가 있겠어.” “민지랑 서나가 있어서 편한 거겠지. 나라도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생일파티에 있고 싶지 않은걸.”
포크를 입에 문 은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이 맞았다.
민준식은 낯을 가리는 하양을 걱정하여, 그녀와 친한 아이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아이들이 그녀의 파벌이라는 명목상으로.
민지와 서나가 하양의 곁에서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예법이 익숙지 않아, 행여 실수라도 할까 그녀를 따라다니는 이유도 컸지만.
“그나저나 사람 정말 많이 왔다.”
“넌 입에 문 포크부터 빼고 말해. 격식을 차리는 자리는 아니라지만 여기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는 행동은 하는 거 아니야.” “그으래? 대장이 그러라니까 뭐…, 응, 알겠어.”
은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회장은 거대한 생일케이크가 놓인 테이블을 기준으로 양분할 수 있었다.
한쪽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과와 음식이 진열된 공간이었다.
앨리스그룹의 계열사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계열사, 기타 사업체의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레스와 슈트를 입은 아이들 중에는 이 자리에 익숙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익숙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친구들을 이끌고 연회장을 돌아다니는 하양을 힐끗거리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그녀를 향하는 시선에 담긴 감정은 다양했다. 관심을 보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적의를 보이는 시선도 있었고, 다가가려 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무시하려 하는 시선도 있었다.
다른 한쪽은 그녀의 생일파티를 이유로 연회장에 들어선 정재계 인사들이었다.
샴페인 잔을 쥔 사람들은 서로 그간의 동향을 묻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앨리스그룹의 직계가 된 하양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었지만, 현 시국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조심해. 누가 시비라도 걸면 대들지 말고, 그냥 참아. 정 못 참겠다 싶으면 나한테 말하고.”
“…역시 대장이야. 난 대장이 참 좋아.”
“오글거리게 왜 이래.”
그나저나 많이도 모였다.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본 은하는 저 멀리서 음료를 받는 하양을 바라보았다.
현재 앨리스그룹은 적극적으로 포션시장을 개척하면서 급격히 힘을 키우고 있었다.
선녀정부에서는 앨리스그룹이 포션시장을 독점 아닌 독점을 하도록 내버려두었고, 플레이어들은 이제 신종포션만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신종포션이 기존의 포션이라는 개념을 대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앨리스그룹이 새벽그룹으로 인해 개편될 재계서열에서 높은 위치를 점유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앨리스그룹과 연을 맺기 위해 모였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앨리스그룹의 위상은 드높이 솟았고, 단 한 명뿐인 앨리스그룹의 재벌3세 정하양에 대한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 하양이 주변에 여자애들이 모여 있는데?”
“그러네. 우리도 슬슬 가자.”
은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인 파티가 불편했다.
하양의 생일파티만 아니었더라면, 집에서 은애와 놀면서 편히 쉬었을 것이다.
하양의 주변에 모인 아이들을 상대할 생각으로 한숨이 나온 그는 은혁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허, 참. 쟤네는 가만히 서서 뭐하고 있는 거야?
하긴, 쟤네가 할 수 있는 게 없기는 하지.
민지와 서나는 병풍이었다.
하양의 주변에 모인 아이들은 자신들을 소개하는 한편, 두 사람이 모르는 화제로 대화를 교묘하게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마냥 서 있는 것밖에 못 할 수밖에.
“오늘 옷 정말 예쁘다. 어디에서 디자인한 거니? 나비가 꼭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아 참, 소개가 늦었지? 미안해. 나는 YH그룹의 최예진이야.”
“…응, 안녕. 나는…, 앨리스그룹의 정하양이야.”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아이들.
연푸른 꽃장식이 가미된 머리핀을 한 소녀가 대뜸 하양의 손을 붙잡았다.
처음 보는 그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지라 하양의 반응은 얼떨떨해했다.
그나마 상대가 YH그룹의 직계라는 소리를 듣고, 그녀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고 있었다.
뭐야. YH그룹의 직계잖아?
한편 두 사람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아이들 사이에 파고든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는 갤럭시그룹 회장 최윤한의 여동생이 이끄는 재계서열 6위 YH그룹의 직계였다.
YH그룹은 사업부문이 겹치던 새벽그룹이 몰락한 이후, 재계서열이 가장 크게 개편될 그룹이었다.
은하로서도 섣불리 끼어들 수 없는 상대였다.
웬만한 계열사나 사업체의 아이들이라면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개입할 수 있다지만, 직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지만.
최예진의 목적은 정하양과 친교를 맺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하양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도록 능청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하양이, 이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네.”
상황에 따라서는 무례를 범하더라도 하양을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정재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카페의 아이였다 재벌가에 들어온 하양을 곱게 보지 않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 파티는 앨리스그룹에서 주최한 자리였다.
파티의 주인공과 주최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대놓고 그녀를 무시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아직 재벌가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하양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터.
뭐,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은하는 연회장 구석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주시했다.
시시때때로 그녀를 곁눈질하는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하양의 흉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들 역시 이 자리에서 대놓고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나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뛰어난 그녀는 다가오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지 좋지 않은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오히려 걱정해야 할 사람은 하양이가 아니라 서나인가.
병풍처럼 서 있는 서나는 꼬리를 축 늘어뜨릴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민지야 무시당할 바에는 자신이 무시하겠다는 투로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서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아이들이 보내는 시선에는 아인에 대한 호기심과 멸시감이 담겨 있었으니까.
재벌들의 세계나 플레이어의 세계나 흠을 잡힐 여지는 주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서나는 아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트집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천대받는 아인을 무시하는 편견도 있었고.
하양도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예진을 비롯한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느라 서나를 위로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서나는, 데려오지 않는 게 좋았으려나.
서나도 몰랐을 것이다.
재벌들의 생리를 모르는 그녀가 아이들로부터 대놓고 무시당할 것이라고는.
고개를 숙인 채, 드레스자락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 되겠다. 저기서 데리고 나오는 게 좋겠다.
은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야, 최은혁, 너 갑자기 어딜…. 그래, 너 참 대단하다.”
서나를 보고 있었던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별안간 뛰쳐나간 은혁이 서나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이다.
“가자.”
“어? 어어?”
“저기 맛있는 거 있어.”
은하는 서나를 데리고 나가는 은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예법도 모르는 두 사람이 연회장을 벗어나는 게 불안하기는 했어도, 두 사람을 따라갈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대신 은하는 씩씩거리던 민지를 손짓으로 불렀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를 발견한 민지가 투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서나는 좋겠다.”
“왜, 너도 손잡고 데리고나와 줬으면 좋겠어?”
팔짱을 끼며 씩씩거리는 민지.
은하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민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필요, 없거든요! 나 아니면 하양이는 누가 지킨다고.”
“나도 데리고 나갈 생각 없었어.”
“흥!”
제법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겠지만, 민지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은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러 일부러 장난을 쳤다.
그때였다.
“어? 뭐야? 왜 쟤네들이 갑자기 길을 비키는 거야.”
고개를 돌렸던 민지가 하양의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길을 여는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하도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큰 남자아이가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아이들이 만들어낸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은하는 얼굴을 보자마자 상대가 누구인지 대뜸 알아차렸다.
회귀 전 플레이어였던 그가 남자아이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었다.
“네가 정하양이야? 길거리에서 들어왔다던?”
남자아이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가 데려온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 대놓고 비웃기까지 했다.
“몇 살이야?” “…11살이요.”
하양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 역시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눈치였다.
“2살 차이밖에 안 나네.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내가 누구인지는 알지?”
하양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아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
“귀엽게 생겼네. 저런 애들이랑 다르게….”
하양의 눈이 커졌다.
남자아이가 손을 뻗어서는, 허락도 받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이 숨을 삼켰다.
저 난봉꾼 새끼가 진짜.
상대는 재계서열 9위에 해당하는 그룹이자, 플레이어 업계를 주름잡는 단군그룹의 후계자 홍진우.
그는 미래에 난봉꾼으로 알려진 망나니였다.
단군그룹의 3대회장이 되는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해 별의별 스캔들을 일으키고, 무마시켰다.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어는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모질게 대했고, 마음에 드는 이성 플레이어들을 자기 멋대로 주무르고 다니기도 했다.
“야, 저 사람 뭐야? 왜 다들 눈치만 보고 저러는 거야? 하양이 데리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알고 있어.”
은하 역시 홍진우에게 좋은 감정을 품지 않았다.
녀석은 안개꽃 파티를 창설할 때에도 방해공작을 가했으며, 이유정을 겁탈하려하기까지 했다.
아카데미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녀석은 자신의 힘으로 이유정을 굴복시키고, 약을 탄 술을 먹여서는 강간미수에 준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때 그가 정신이 몽롱한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영원그룹 유도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안개꽃 파티의 창설은 물 건너가고, 홍진우를 죽도록 팼던 그는 온갖 죄를 뒤집어쓰고 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번 생에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 저 새끼. 성격 하나는 어릴 때부터 그대로였던 거구나.” “어? 너 지금 무슨 소리…, 야, 너 무섭게 왜 그래?”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하양이 데리고 나올 테니까.”
저 자리에서 홍진우를 상대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최예진과 정하양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예진은 하양이 홍진우가 저지른 무례를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호기심을 보이는 눈치였고, 하양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와. 재미있는 게 엄청 많아서, 분명 즐거울 거야.”
“새, 생각해볼게요.”
“생각이고 자시고…, 내가 말하면 그냥 예 하고 놀러오라고.”
은하는 아이들 사이를 헤집고, 하양에게 손을 뻗었다.
홍진우가 멋대로 만지고 있던 손을 뿌리쳐서는, 그녀를 잡아끌었다.
“으, 은하야?”
“너 지금 뭐하는 짓….”
“너 괜찮아?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홍진우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피할 수 없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은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양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양의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연기하며 이 자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사실 몸이….”
하양도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가 은하가 건넨 말에 답하려던 때였다.
“야. 너 뭐하는 녀석인데, 내 앞에서 이딴 짓이야?”
홍진우가 두 사람이 나아갈 길을 막고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허, 참. 누가 망나니 아니랄까봐.
적당히 피할 수 있는 자리였건만.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힌 홍진우는 무례를 저지른 그를 가만 두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뭐,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마침 전에 얻은 마법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살기를 드러내, 눈에 힘을 주었다.
“은하야….”
하양이 불안한 듯 손을 잡았다.
은하는 뒤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괜찮아.”
내가 이딴 녀석한테 굽힐 것 같아?
홍진우를 따르는 아이들도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기죽을 리 없었다.
공포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스킬 No. 001 스티지안…
그가 마법을 구현하려던 때였다.
“─그 애가 왜?”
아이들이 만들어낸 길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걸으며.
한서현이 차가운 시선으로 힐난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