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65
“클랜 생활은 좀 어떠니? 이제는 입단한 지도 1년이 지났으니까 나름 적응이 된 거 아니야?”
“어느 정도 적응되기는 했지만…. 일이 많은 건 똑같아서 요새도 많이 힘들어.”
평창동, 시리우스그룹 본가 저택.
한서연은 몸소 정문까지 나와서는 반갑게 은아와 은애를 맞이했다.
은아 역시 오랜만에 만난 그녀를 기쁜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한서연은 대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아버지의 그룹경영을 돕고 있었고, 은아는 레귤러스클랜에 입단한 이후 일에 치여 살았으니까.
서로가 바빠 도무지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너한테 늘 말하는 거지만, 거기서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으면 속으로 끙끙대지 말고 나한테 바로 알려줘. 레귤러스클랜이 앨리스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예 손을 못 대는 것도 아니거든.”
“엄한 사람은 있어도 못살게 구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난 혜림 언니 이기도 한걸. 서연이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대도.”
“그럼 다행이고. 하긴 레귤러스가 바보가 아니고서 널 괴롭히려 하진 않겠지.”
한서연은 곧장 시리우스의 온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은아는 은애의 손을 잡고 따라가며 그녀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정말 아쉽다…. 만약에 창해클랜이 아직 건재하고 있었다면 은아 네가 거기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인데 말이야.”
“음…. 어쩌면 그랬을지도?”
“에이, 어째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인 것 같은데?”
“이거는 어쩔 수 없어. 창해클랜이 워낙 오래전에 해체되어서 그렇게 상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걸.”
이내 한서연이 아쉬워하는 어조로 운을 뗐다.
창해클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꼽히던 클랜은 시리우스그룹에게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었다.
이제는 제1차 의정부 탈환전 이후 여러 이유로 국민들의 지탄을 맞고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지만.
이후 시리우스그룹은 어느 클랜도 적극적으로 후원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하나를 전속으로 두지 않고 마나관리기구 등급으로 A를 받은 클랜들과 정기 계약을 맺었을 뿐.
“그러고 보니 시리우스그룹은 계속 특정 클랜과 전속 계약을 하지 않고 여러 클랜을 후원하려는 거야?”
문득 생각이 미친 은아는 서연에게 질문했다.
앞서나가던 서연이 한숨을 쉬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도 전속 클랜을 만들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이렇다 할 만한 클랜이 없는 게 문제야. 가능하다면 S등급을 받은 클랜을 뽑고 싶은데 다들 이미 다른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는 중이고, A등급에도 고만고만한 클랜밖에 없으니까.”
“아, 하긴 그렇겠다.”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다수 클랜은 저마다 다른 그룹에게 후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재계 2위로 통하고 있는 시리우스그룹이 격이 낮은 클랜을 전속으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시리우스그룹이 자신의 격을 낮추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속 클랜을 두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리고 전속 클랜이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야. 이놈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관리해야 하고, 얘네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잘못해서 우리한테도 튈 수도 있거든. 그건 반대로 걔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
“이상적인 전속 계약이란 신뢰가 밑바탕으로 깔린 기브 앤 테이크야. 갑도 을도 없는 관계인 거지. 근데 이게 현실적으로 되게 어렵거든.”
“아하하….”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한서연.
일개 클랜원에 지나지 않은 은아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은아는 적당히 호응을 하며 한서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분산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언제든 후원관계를 끊을 수 있어서 사전에 우리한테 튈 피해를 막을 수 있고, 클랜들은 우리 그룹의 전속이 되려
저희들끼리 경쟁을 하면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까.”
이윽고 온실 문 앞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쥔 한서연이 뜸을 들이며 말을 잇는다.
“─이제 슬슬 전속 클랜을 둘 때도 되기는 했지만 말이야. 안 그러면 규모가 큰 사업 같은 데에는 참가를 할 수 없으니까….”
나직이 중얼거린 한서연.
두 사람을 남겨두고 고민에 빠진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내 싱긋 미소를 지은 한서연이 문고리를 돌려 온실 문을 열었다.
“우와─!!”
“시리우스의 온실에 온 걸 환영해. 조금 전에도 말했던 이야기이지만 은랑화를 키우기는 쉽지 않을 거야. 우리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거든. 온실에 겨우 두 송이밖에 피지 않아 연구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푸른색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뜸 온실 속으로 뛰어든 은애는 한서연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결국 한서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한서연은 안전을 생각해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아는 것처럼 망설이지 않고 달리는 은애를 향해 소리쳤다.
“─혹시라도 은랑화를 꺾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그 꽃이 보기와 달리 꽃을 꺾은 사람의 몸에 기생을 하는 놈이거든!”
“…뭐!? 그건 진작 말해줬어야지! 은애야, 같이 가!”
은랑화.
달빛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꽃은 꽃을 꺾은 사람의 신체에 기생하여 체내 마나를 흡수한다고 한다.
억지로 떼려 하면 꽃은 말라죽고, 그러지 않으면 숙주가 죽을 때까지 평생 기생을 한다고도.
한서연이 뒤늦게 꺼낸 소리를 들은 은아는 당연히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허겁지겁 어딘가로 사라진 은애를 쫓아 뛰는 것도 당연했다.
한편 은애는─.
“─괜찮아! 걔네들은 언니 말처럼 그렇게 나쁜 애들이 아닌걸!”
“노은애! 나랑 같이 가자니까!?”
노은애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녀에게 식물은 친구나 다름없었으니까.
☆
내년이면 벽해수도 졸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3학년이 되고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공방을 세우는 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이에 은하가 슬쩍 의견을 보탰다.
공방은 무조건 강북 일대가 아니라 강남 일대에서 세우라고.
사당역이면 나쁘지 않지.
이 위치라면 한강도 멀리 있어서 편재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을 테고 강남을 지키는 코쿤이 바로 근처에 있기까지 하니까.
그리고 서울 침공이 일어나게 되면 강북 지대의 인프라가 부서지니까.
동작구 사당역 일대.
지하철에서 내린 은하는 류연화와 벽해수의 공방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방문한 적이 있던 그는 길을 헤매는 일 없이 걸어가는 중이었다.
“코쿤 근처에 있는 땅은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
한편 류연화가 묵묵히 따라가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강남 일대를 수호하는 코쿤이 있는 서울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으니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만 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해수 형은 지금 업계가 주목하는 마에스트로니까…. 시리우스그룹이 해수 형을 다른 데 뺏기지 않으려고 힘을 쓴 거야.”
“아, 하긴 그렇기는 하겠다. 아직 마에스트로로 활동하려면 멀었는데 벌써부터 플레이어들이 예약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아.”
“해수 형이 그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대단하지?”
현재 벽해수는 여러 클랜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만큼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외팔이 마에스트로가 이번 삶에서는 극명할 정도로 대조되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은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응,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은하 넌 아주버님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그런 그를 마치 어린애를 대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는 류연화.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은하는 점잖은 체를 하려 했다.
그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스리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다 그녀가 벽해수를 어떤 말로 불렀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아, 여기야. 도착했네.”
은하는 태연한 척 화제를 돌렸다.
때마침 벽해수의 공방에 도착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신축 건물.
시리우스그룹이 벽해수를 위해서 마련한 공방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 형이 클랜에는 들어가지 않고 개인으로 활동하겠다고 했으니까.
벽해수의 실력이면 어느 클랜이든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숱한 제의를 거절하고 개인으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벽해수다운 선택이기는 했다.
클랜에 입단하게 되면 웬만해서는 클랜에 입단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무기를 제작하지 못할 테니까.
벽해수는 그럴 바에는 자신이 직접 공방과 상점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을 상대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이에 시리우스가 벽해수의 선택을 거의 쌍수를 들 듯이 환영을 했고.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는 거야?”
“해수 형이 나는 거리낄 필요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된다 했거든.”
1층은 벽해수가 특정 플레이어를 고려하지 않고 제작한 디바이스를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2층은 벽해수의 작업실이었고.
은하는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는 점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공방에 입장하지도 않았는데 열기로 후끈거렸다.
굳이 이 많은 방 중에서 벽해수가 있는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깡 깡 깡
망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면 될 뿐이었으니까.
은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 앞에 섰을 때쯤, 안쪽에서 들려오던 망치 소리가 멎었다.
마침 작업이 끝난 모양이었다.
“해수 형, 나 왔어.”
“오, 은하 왔냐!”
은하는 몇 번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 만들어낸 듯한 검을 확인하던 벽해수가 밝은 얼굴로 그를 반겼다. 그러면서 땀을 뚝뚝 떨어뜨린다.
은하는 망치를 두드리지 않고 사는 벽해수를 떠올릴 수가 없어서 피식 입가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벽해수는─.
“─제수씨,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혹시 우리 은하가 제수씨 속 썩이고 그런 건 아니죠?”
“오랜만이에요, 아주버님. 아니요,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헝겊으로 잿더미가 묻은 손을 닦은 벽해수가 그 손을 내밀었다.
류연화는 살가운 얼굴로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여야지.
제수씨라느니, 아주버님이라느니.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은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몇 번 보다 보니까 이런 상황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이다.
☆
“가끔 냉정하게 생각하면 말이야, 은하 넌 대체 이런 재료를 어디에서 가져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매번 네가 가져오는 재료 때문에 얼마나 놀라는지 모를 거야.”
벽해수는 은하가 공방으로 가져온 척사 다뉴조문경을 보고는 감탄사를 흘렸다.
아카데미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던 거울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금 거울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가 이 거울을 만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정말. 아, 제수씨도 한 번 볼래요?” “저는 집에서 보고 왔어요.” “집? 누구 집?” “…은하 집에서.”
“지금 둘이서 뭘 하고 온 거야?”
“지금 한테 매우 실례되는 말을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형, 지금 너무 흥분한 것 같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아티펙트를 보고 흥분한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은하에게 한 소리를 들은 벽해수가 표정을 바꾸며 연화에게 사과했다.
은하는 척사 다뉴조문경을 살피고 잔뜩 흥분한 벽해수를 혀를 차면서 쳐다보았다.
회귀 전에도 벽해수는 무기를 보면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기는 했다.
하긴 이 형이 흥분할 만도 하지.
주인인 나도 흥분했었는데….
은하는 시선을 돌려 작업대 위에 올라와 있는 재료들을 살폈다.
졸업식 대련에서 류연화에게 받은 디바이스 창 파편.
적색던전 아카데미 히든 피스에서 발견한 아티펙트 석가여래좌상.
일본에서 얻은, 을지등급에 속하는 디바이스 토츠카노츠루기.
마지막으로 척사 다뉴조문경까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재료가 질이 장난이 아니라서…. 내가 몇 달 전부터 이것들을 어떻게 잘 다룰 수 있을까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지 아냐?”
“괜찮아. 형이라면 할 수 있어.” “근거 없는 기대는 부담스럽거든. 하…, 내가 이걸 제대로 다룰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안 할 거야?”
“…그건 아니지.”
벽해수가 척사 다뉴조문경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차례 자리를 떠난 그가 도면을 몇 장 가져왔다.
도면에는 각 재료를 어떻게 다룰지 빼곡히 기재되어 있었다.
“일단 은하 너도 알겠지만 저걸로 검 한 자루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짓이야.”
“그렇지.”
은하는 벽해수의 말에 동의했다.
하나하나 법칙.
하나의 아티펙트나 디바이스에는 하나의 마법만이 깃드는 법칙이다. 따라서 두 개의 마법이 깃들어 있는 아티펙트로 디바이스를 만들게 되면 두 가지 마법 중 하나가 사라진다. 운이 나쁠 경우에는 두 가지 마법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었고.
하나하나 법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사전에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둬야만 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이 깃들어 있는 척사 다뉴조문경, 토츠카노츠루기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인 거지.
새로운 검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검은 가시나무를 포함하여 총 다섯.
그중 마법이 깃들어 있는 재료는 두 가지였다.
무식하게 다섯 재료를 사용했다가 두 가지 마법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두 가지 마법 전부가 사라질 수도 있는 판이었다.
아니면 다섯 재료를 전부 사용해 검을 만들 생각이라면 어느 마법을 남길지 계획을 짜든가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이왕에 만드는 거, 검을 두 자루로 만드는 건 어떨까? 네가 예전에 나한테 방어용으로 맹고슈도 사용한다고 했었잖아.”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은하는 한 자루가 아니라 두 자루를 만들기로 했다.
애초 그는 이전 삶에서도 이도류를 주로 사용하고는 했었다.
이번 삶에는 이도류를 사용할 만큼 처절한 전투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리고 몸도 거의 완성됐고.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라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몇 번 구르다 보면 예전처럼 감각이 돌아올 거야.
앞으로 몇 년 뒤에 일어날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도류를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하기는 했다.
그리고 마침 적당한 시기가 찾아와 검을 두 자루를 만들게 되었다.
은하는 벽해수에게 맹고슈와 한손직검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되는데 어떤 재료하고 어떤 재료를 섞어서 어떤 검을 만들 거냐는 거지. 잠깐 기다려봐….”
벽해수가 도안 몇 장을 들췄다.
그러고는 은하에게 도안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한손직검의 도안.
다른 하나는 맹고슈의 도안이었다.
“주로 방어하는데 쓰일 맹고슈는 토츠카노츠루기를 베이스로 삼는 건 어떨까? 토츠카노츠루기의 특성이 칼날에 닿은 마법을 저장한 다음에 네가 원하는 때에 사출하는 거니까 공격을 막아야 하는 맹고슈랑 꽤나 어울릴 것 같은데.”
“다른 재료로는 뭘 사용하게?”
“제수씨의 창 파편이 나을 거야. 토츠카노츠루기의 철이 워낙 좋아서 제수씨의 창 파편을 더해서 칼날을 보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은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벽해수의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은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은하는 다른 이유로 해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만.
이전 삶에서 온태양의 구국의 검은 석가여래좌상과 척사 다뉴조문경…. 그 외에 몇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디바이스야.
그걸 고려하면…. 두 아티펙트는 상성이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은하가 내린 판단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벽해수가 다음으로 설명하는 도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한손직검의 도안.
검은 가시나무를 메인으로 삼아서 석가여래좌상과 척사 다뉴조문경을 조합하자는 내용이었다.
“─좋아, 이렇게 하자.”
“…정말 생각한 것 맞아? 찬찬히 생각해보는 건 어때.”
“어차피 이번 학기 내내 계속 이거 생각만 하고 있었어. 생각은 진즉에 다 했지. 이렇게 하자.”
“나, 원…. 그래, 알았다.”
은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벽해수는 어처구니가 없어하면서도 더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조합이기도 했으니까.
“일단 키랑 팔 길이부터 재보자고. 몇 달 사이에 또 큰 것 같으니까 새로운 검을 만들 때 참고해야지.”
벽해수가 줄자를 가져왔다.
은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자신의 신체를 재도록 했다.
벽해수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검을 제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 될 테니까.
“그럼 언제쯤으로 예상하는데?”
“음…. 방학 끝나갈 때쯤이려나? 내가 때가 되면 연락을 줄 테니까 너무 보채지 말고 기다려.”
“알았어.”
검은 가시나무도 반납해야 했다.
은하는 검은 가시나무를 대체하는 목검 하나를 챙기며 한숨을 쉬었다.
가능하면 빨리 검이 만들어지기는 바랄 뿐이었다.
아, 참. 창 파편을 녹이는 데에는 연화 누나 힘이 필요한데….
그러다 은하는 그동안 잊고 있던 류연화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 가만히 서 있던 류연화를 찾았다.
류연화는 새삼 충격을 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나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연화가 그녀답지 않은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검이 만들어지는 대로 나하고 한 판 하지 않을래? 하고 싶어.”
“…어?”
“나는 네가 이도류를 쓴다는 소리, 지금 처음 들었어.”
“…….”
“다시 해, 대련. 한 판 하자.”
류연화의 눈에 호승심이 인다.
이상하게 그녀의 주변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는 듯했고.
불길로 항시 뜨거워야 할 공방이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야, 이러다 용광로 불 꺼지겠다. 얼른 대련하겠다고 답하란 말이야! 아니, 싸울 거면 너희 집에나 가서 싸울 것이지 왜 내 공방에 와서….”
옆에서 벽해수가 은하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앞에서는 류연화가 강요하고 있고, 옆에서는 벽해수가 강요하고 있다.
“─네….”
결국 은하는 두 사람에게 시달리며 대답해야 했다.
마음속으로 어떻게든 더는 그녀와 대련을 하지 않을 이유를 궁리하기 시작하며.
나중에 해수 형한테 개학 직전에 검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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