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07
최근 몸이 이상하다.
이상하게 아랫배가 땡기고.
달콤한 음식에 손이 간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워낙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당분이 당기는 것일까.
하백련이 가져온 사탕에 손을 뻗던 한서현은 멈칫했다.
너무 많이 먹었다.
자제해야 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사탕에 못박혀 있었다.
“하나만, 더….”
결국 그녀는 감정과 타협했다.
손을 뻗어 사탕을 하나 더 먹었다.
체중이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최근 몸이 자신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생리도 안 한 지가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한서현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다가 의문을 품었다.
아무래도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조만간에 병원에 가봐야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서현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건, 그 주에, 시가 사람들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어? 뭐지? 응? 뭐지? 뭐야? 응? 어라? 어? 어어…?”
“은애야, 왜 그러니?”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중.
한서현은 제일 먼저 군만두로 손을 뻗었다.
이상하게 군침이 돌았다.
그런데 그때, 노은애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가족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고.
어머니가 대표로 물었다.
그러자 은애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까부터 기분 탓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여기에는 없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있어. 이 방에 있는 식물의 소리는 아닌 것 같고….”
“어디 쥐라도 숨어 있는 거 아냐? 노은애 네 기프트도 참 별나구만. 쓸데없는 소리는 듣지 말라니까?”
“파랑아, 밥 먹고 있는데 꼭 그런 소리를 해야겠니?” “파랑 오빠, 언니, 좀 조용히 해줘. 그리고 파랑 오빠가 말하는 소리는 안 들리니까 걱정 말고.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소리는….”
“”””…….””””
은애의 시선이 한서현에게 향했다.
한서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는 기프트를 사용해 노은애의 감정을 엿보았다.
저 색은 대체 뭐지?
노란색에 가까운 계통.
의미심장한 색이었다.
당황함, 놀라움, 기쁨.
그런 감정이 전해지고 있었다.
한서현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깡!”
“삐삐!”
그러다 한서현은 자신의 무릎 위에 깡이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에는 불닭이도 있었다.
은애가 혹시나 환수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한서현은 군만두를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군만두가 맛있었다.
그러자 노은애의 눈이 반짝였다.
“응, 틀림없어. 서현 언니, 한 번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어디 아픈 것 같니?”
“은애야,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서현이 몸에 안 좋은 거라도 있는 거야? 갑자기 병원은 왜….”
은애는 미소를 지었고.
한서현은 여전히 의문이었으며.
은하는 깜짝 놀라 한서현의 상태를 살피기 급급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제야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얼굴을 했다.
“서현아.”
“네, 어머님.”
“내일 나랑 같이 병원에 가보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네?”
“뭐야? 엄마까지 왜 그러는 거야? 뭐 짐작가는 데라도 있는 거야? 심한 거면 엘릭서라도 꺼내서….”
“아, 설마….”
은하가 심하게 당황하든 말든.
노은아를 시작으로 이제 가족들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한서현도 그제야 가능성을 깨닫고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은하도 눈치챘다.
“뭐야? 왜 그래? 첫째 제수씨가 뭐 살이라도 찐 거야? 하긴, 요즘 엄청 먹는 것 같기는 하…, 커헉…!!” “파랑 오빠, 좀 조용히 해.”
“노, 노은애, 너! 쥐방울 만한 게 걸핏하면 꼬리를 잡아당기고….”
“파랑 형, 은애 누나 괴롭히지 마. 자꾸 그러면 내가 형 혼….”
“아, 아서라. 주먹 집어넣어라, 너.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노은애 저 쥐방울이 나한테 먼저 공….”
“처음에는 주먹.”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날, 진파랑과 어베니어를 빼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짐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한서현은 어머니와 산부인과를 찾았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축하해요. 임신하셨네요. 이제 12주째에 접어든 것 같아요.”
“거봐, 내 말이 맞지?”
“…제가, 임신했다고요?”
“네, 여기 보이시죠? 작기는 해도, 아기집이 만들어진 거 보이죠?”
의사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한서현은 초음파 사진을 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
한서현이 임신했다.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고.
클랜원들도 모두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은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현이가 임신했다고?
서현이가 임신했다고?
…….
머릿속에서 그 말만 맴돌았다.
은하는 한서현의 임신을 기뻐하며, 집무실에서는 뱅뱅 도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기쁜 일이기는 한데….
좀처럼 믿겨지지 않네.
실감이 들지 않았다.
한서현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녀와 결혼했으니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리란 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막상 현실이 되니, 갑작스럽기만 했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라라?”
오늘도 불닭이와 깡이는 한서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집무실에는 은하와 라라밖에 없었다.
은하가 막연히 중얼거리자.
자신이 태어난 꽃에 앉아 있던 라라가 호기심을 보이며 날아왔다.
“라라라?”
“걱정해줘서 고마워.”
라라가 뺨을 톡톡 두드린다.
은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아빠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내가 과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잘, 못할 것 같은데….
이제 아버지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과연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은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태어날 아이와 한서현에게 미안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한─.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좋아할 수 있을까.
은하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싫어했다.
만약 자신이 태어나는 아이마저도 좋아하지 못할까 무서웠다.
“라라라♪”
“…고마워.”
그런 그의 마음과 다르게.
라라는 마치 기운을 차리라는 듯이은하의 뺨을 만졌다.
그녀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은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라라도 아이였다.
그럼에도 은하는 그녀를 좋아하며, 곧잘 귀여워해주고는 했다.
“라라라♪”
이내 라라가 어깨에서 내려와서는 은하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녀가 조그마한 몸으로 영차영차 은하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 가자는 거야?”
“라라라♪”
자신을 따라오라며.
라라가 보챈다.
은하는 순순히 따라주었다.
이윽고 그녀가 데려간 곳은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집무실, 한서현이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라라라!”
“아, 클랜로드, 어서오세요. 웬일로 라라랑 같이 오셨네요.”
“어, 샤키라 누나. 일은 잘 되가? 서현이는?”
한서현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그녀의 비서 역할을 하는 샤키라가 은하를 반겼다.
라라에게 이끌려서 들어온 은하는 어정쩡한 어조로 물었다.
“안에 계세요. 이참에 클랜로드가 행정관님께 말씀해주세요.”
“뭐라고?”
“이제 임신도 하셨는데, 쉬엄쉬엄 일하시라고요. 밑에 사람들도 많고, 뭣하면 사람을 더 고용해도 되니까 혼자 다하실 필요가 없다고요.”
“…서현이 일이 그렇게 많아?”
“어느 클랜로드가 여유로운 이유는 내정을 담당하는 행정관님이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주의할게. 알았어, 말해볼게.”
샤키라가 생긋 웃었다.
은하에게는 적지 않은 압박이었다.
결국 그녀의 압박에 고개를 끄덕인 은하는 한서현을 만나러 갔다.
라라는 따라오지 않고, 샤키라와 놀려는 모양이었다.
“─왔니?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없고….” “그럼?”
“그냥, 보고 싶어서.”
한창 집무 중이던 한서현.
그녀가 은하를 반겼다.
진지한 얼굴로 서류를 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사르르 녹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릎에 앉아 있던 깡이가 내려왔다.
“마침 잠시 쉴까 하고 있었는데, 나랑 같이 쉬자. 샤키라 언니한테 부탁해서 다과 좀 가져오라 할게.” “깡!”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그래, 그러자. 쉬면서 일해야지.”
한서현이 인터폰으로 샤키라에게 다과를 주문했다.
이내 은하가 소파에 앉자, 그녀가 어깨를 붙이며 옆에 앉았다.
불닭이, 깡이가 다가와서는 그녀의 무릎과 어깨를 차지했다.
그녀가 조심스레 배를 만졌다.
“이 애들은 알고 있었나봐.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얘네가 툭하면 네 옆에 있으려고 한 이유가 있던 거였네. 어디 아픈 데는 없지?”
“너는 맨날 보면 그 소리니?”
“먹고 싶은 건?”
“너.”
“…어?”
“장난이야. 달달한 게 당기네. 애가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달달한 것만 찾으려고 하는 것 봐.”
“배, 만져봐도 돼?” “네가 뭐 허락 맡고 만져야 하는 사람이니? 네 애야. 마음껏 만져.”
“응.”
은하는 조심스럽게 한서현의 배를 쓰다듬었다.
잘 모르겠다.
이 뱃속에 자신의 애가 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좀, 신기하네. 이 배 안에 어떻게 들어가 있는 거지?” “그렇지? 나도 신기해. 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게 말이야. 알아보니 임신했다는 게 티가 나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한다는 모양이야.”
“네 배가 부풀면 신기할 것 같아. 아, 그리고 일은 그만하는 게 어때? 태교에 집중하는 게….”
“아직은 일할 수 있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게다가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 아니니?” “…….”
“판도라클랜이 경기 북부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때에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잖니.”
“…괜히 일을 벌렸네.”
“그렇다고 포기할 거니?”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래, 그러면 안 되지. 그랬다면 이 아이도 실망했을 거야.”
한서현이 은하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두 사람은 그대로 샤키라가 다과를 가져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저 과자, 먹여줘.”
“어떤 거? 이거?”
“응, 아기가 먹고 싶대.”
한서현이 웃는다.
은하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모든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불안하지?”
“…….” “사실 나도 불안해.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한서현은 감정을 볼 줄 알았다.
자신의 감정은 진즉 파악했으리라.
은하는 그것을 깨닫고는 한서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할 게 없어. 누구나 다들 불안할 거야. 있지, 은하야.”
“응.”
“내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가 있을까? 너희 어머니 같은?”
“넌 될 수 있어.” “그럼 너도 좋은 아빠가 될 수가 있을 거야.”
“…….”
“만약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면, 그때는 나한테 혼나야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렴.
너는 아이가 태어날 때 기뻐하면서 맞이하면 되는 거야.
한서현이 그를 다독였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미 아이는 키우고 있었네. 그것도 이렇게 큰 애를.”
“내가 네 애야?”
“이러고 있으니까 애지. 올해 말에 아이가 태어나게 될 텐데, 그때도 나한테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을래?”
“그럼 안 되지. 노력할게.”
“그래, 같이 노력하자. 너도, 나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잖니?”
“응.” “어떤 애가 태어나면 좋겠니? 딸? 아들?”
“둘 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그래, 건강하게만 나오면 되지.”
막연한 불안.
알 수 없는 미래.
한서현은 은하가 품고 있던 감정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은하는 그녀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그녀와 즐겁게 앞으로 만들어나갈 가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태명도 제대로 짓지 않았네. 어떤 게 좋을까?”
“태명? 음, 건강하게 자라달라는 의미에서 튼튼이나 튼실이는….”
“병원에서 12주째라 알려줬을 때 생각해보니까, 아마 그때 임신한 게 아니었을까 해.”
“응? 태명 얘기하다가 갑자기 웬 그때를 얘기하는 거야? 그때가 왜?” “그때, 네 집무실.”
“…어, 그랬지.”
“그런 의미에서 오피스(Office)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미안, 내가 잘할게. 그러니 우리 태명은 그렇게 짓지 말자.”
한서현이 장난스럽게 키득거리고.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린 은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가 사정사정 부탁했다.
“좋아, 그럼 튼튼이로 하자. 부디 튼튼하게 태어나렴.”
은하를 한창 놀리고.
한서현은 태명을 정했다.
☆
임신 15주차로 접어들자.
한서현의 배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배가 부풀어 올랐다.
나 지금 여기에 있다고.
앙증맞은 배가 말하는 듯했다.
클랜원들은 한서현의 배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척 보기에도 그녀가 임신했다는 걸 인지하게 된 클랜원들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하고는 했다.
“이 안에 네 아이가 있어.” “응, 알 것 같아.”
한편 한서현도 배가 부른 이후로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은하와 함께 있을 때는 그의 손을 자신의 배에 가져가며,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 안에 네 아이가 있어.
그 말은 그가 아버지가 될 것이라 말해주는 듯했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정이 붙는 것 같았다.
차츰 태어날 아이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졌다.
은하도 어서 아이가 태어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떻게 하지.
매구 토벌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력 21년 5월.
선녀정부는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후기 의정부 탈환전을 개시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판도라클랜도 준비하고 있었다.
토벌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격한 훈련에 들어가 있었다.
“…….”
은하도 마찬가지였다.
밤중에 훈련장을 찾은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영약을 손에 쥐고 있었다.
벨페고르의 내단이었다.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은하는 처음에는 내단을 먹으려는 생각이 없었다.
필시 마인으로 거듭나게 할 영약.
대신에 잘못될 경우에는 몬스터로 변모하게 될지도 모르는 영약.
지금도 충분히 강한데, 위험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은하는 내단을 먹지 않고, 매구와 전투를 치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게 되면….
서현이랑 배 안에 있는 아이하고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걔네가 나 없이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여기에서 패배하면 그 가정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니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구 토벌전이 다가오면서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먹어, 말아?
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내단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면서 내단을 먹고 난 이후에도 걱정해야 했다.
성공적으로 마인이 된다고 해도, 과연 그때 자신은 온전히 노은하란 인격체를 유지하고 있을 것인가.
“…….”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함.
매구에 대한 두려움.
은하는 그 앞에서 갈팡질팡했다.
바로 그때였다.
“─은하야? 훈련하러 온 거야?”
“아, 연화 누나.”
류연화가 나타났다.
류연화도 밤중에 훈련하러 온 모양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은하는 류연화가 부르는 소리에 퍼뜩 깨어났다.
그녀가 다가왔다.
“손에 쥔 건 뭐야?”
“아, 이건….”
그때 류연화의 시선이 벨페고르의 내단으로 향했다.
그녀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은하는 황급히 내단을 감추려다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그녀에게는 이 내단의 존재를 대강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언도 받지 않았던가.
이 누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 이후로 시간이 흘렀다.
류연화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은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그녀에게 손에 쥔 내단을 보여주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해? 단숨에 힘을 강화해주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던 영약의 이야기.”
“응, 기억해. 이게 그거야?”
“맞아. 이거야.”
“한 번 봐도 돼?”
“자, 여기.”
은하가 내단을 내밀었다.
류연화는 내단을 찬찬히 살폈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묘하네. 이게 뭔지는 몰라도, 강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아.”
“누나도 느껴지는구나.”
“그리고 위험한 느낌이야.”
“응, 맞아. 위험한 거야.”
“이걸 먹을 생각인 거니? 혹시…. 매구 때문에?”
“그럴까 생각하고 있었어…. 나도 이제는 홑몸이 아니잖아.”
“…….”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약해졌다.
은하는 자조하며 말했다.
류연화는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은하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을 꺼냈다.
“─이걸 먹고도, 아무 부작용 없이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럴 수 있길 빌어야지.”
“그럼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
“마음이 확고히 서 있지도 않는데 이런 걸 먹었다가는…. 내 생각에는 심마(心魔)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아. 이 내단은, 내가 봤을 때는 충분히 그럴 위험성을 가지고 있어.”
몬스터에게서 낮은 확률로 나오는 내단은 자생하는 영약에 비교해서 강한 힘을 함유하고 있다.
대신 부작용이 심했다.
내단에는 몬스터의 독기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단을 먹게 되면 몬스터의 독기와 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정신이 버티지 못해 심마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벨페고르의 내단인 만큼…. 아마도 강력한 독기를 품고 있겠지.
자신의 기프트는 세뇌 공격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심마는 달랐다.
세뇌 공격이 아니었다.
외부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심마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기프트가 발동해 자신을 구해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더더욱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신할 수 없다면 먹지 마. 아주 작은 불안이라 해도, 모르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법이니까.”
류연화의 지적이 맞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먹어서는 심마에 잡아먹힐 뿐이었다.
그녀에게 내단을 돌려받은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역시 먹는 건 미뤄둘게.”
“응, 먹지 마. 네가 그걸 먹어서, 잘못되는 건 싫어.”
“…고마워.”
“응. 그리고 그렇게 걱정하지 마. 네가 그것을 먹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강하니까.”
류연화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듯한 눈빛.
은하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클랜원들도 모두 강해졌다.
작년에 매구와 싸웠을 때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누나만 믿을게.”
“응, 나만 믿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나는 그냥 클랜에 남아서 전력을 보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꼭 이길 거니까 그럴 필요 없어. 무엇보다, 너랑 같이 싸우고 싶어.”
“…그래, 알았어. 잘 부탁할게.”
어쩌면 손에 쥔 내단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시험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포기해 힘을 얻을 것이냐.
그대로 인간으로 남을 것이냐.
언젠가, 선택을 내려야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건지, 은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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