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99
선력 24년.
노은하는 29세가 됐으며, 어느덧 클랜을 창설한 지 9년이 넘어갔다.
국내에서 제일가는 클랜.
세상 사람들이 그리 부르던 소리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누구도 판도라클랜을 함부로 평가절하하지 못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 판도라클랜으로 입단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리고 그해 3월─.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오늘부터 판도라클랜에 입단하게 된, 노 어베니어라고 합니다! 선배님들과 함께 싸울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플레이어들이 정식으로 판도라클랜에 입단했다.
그중 필기 성적은 영 꽝이었으나, 실기 시험에서 월등한 성적을 거둔 노 어베니어도 있었다.
190이 넘어가는 덩치를 자랑하는 그는 클랜원들 중에서 가장 컸다.
여성 클랜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를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쟤가 나이를 먹게 되면 브루노 아저씨처럼 된다는 말이지?”
강시형은 자신보다 30cm나 더 큰 어베니어를 보며 혼잣말했다.
덩치에 비해 순진하고 어려 보이는 가디언이 몇십 년 후에 브루노처럼 변모할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작년 실습 이후로 1년 만에 성장한 어베니어를 보고 감탄했다.
“너 키 몇이야?” “저요? 198cm요!!”
“”””…….””””
약 2m.
알고 보니 30cm 차이가 아니라, 40cm 차이였다.
강시형은 괜히 물어보고 좌절했다.
한편 클랜원들 또한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쌍둥이들은 더했다.
“언니, 언니. 그럼 키가 2m란 거는 거기도 크다는 거 아닐까?”
“어머, 대박. 나중에 한 번 확….” “너희는 제발 입을 다물고 살아라. 신입들이 보고 있는데 그런 소리나 하고 있을 거야?” “아야! 클랜로드! 신입들이 있는데 이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맞아! 저랑 동생이 머리에 혹이 콩 난 거 안 보여요? 위엄이 없어 보이게 뭐람….” “한 대 더 때려줄까? 아니면 그냥 입이나 다물래?” “입술 지퍼 찍.” “나도 찍. 근데 동생, 찍 소리가 꼭 토끼가….” “시형이가 찍찍 하는 것 같다고? 어머, 요사스러워.” “저것들은 왜 가만히 있는 날 걸고넘어지는 거지?” “저것들을 아주….”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클랜으로 통하게 됐건만, 쌍둥이들의 의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어디 그녀들뿐인가.
클랜에 쌍둥이 자매나 진파랑 같은 클랜원들이 득실거렸다.
“야! 너 지금 내 욕했지!?” “저 형은 감은 좋아요.”
어디선가 진파랑이 소리쳤다.
은하는 진파랑의 외침을 무시하고 신입 클랜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차려 자세를 취했다.
막 클랜에 입단해서 그런 것인지 군기가 잘 정립되어 있었다.
어베니어도 이전과 다르게 이제는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있었다.
은하는 긴장해 있는 그들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다들 잘 들어왔어. 앞으로 너희는 3개월 동안 교육계를 맡은 선배들과 고문들의 밑에서 구르게 될 거야. 그렇게 연수가 끝나는 대로 제각기 특기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곳으로 발령되게 될 거다. 그러니 게으름은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올해 판도라클랜에 입단한 신입은 어베니어를 포함해서 15명.
또한 타 클랜에서 판도라클랜으로 이적한 플레이어는 5명이었다.
총 20명이 입단한 셈이다.
그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는 대로 제각기 필요로 하는 파티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이중 성적이 저조한 사람 5명은 의정부로 보내지게 되겠지.
온 국민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열심히 일하는 중에도 경기 북부의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판도라클랜도 경기 북부 개발에서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뒤, 의정부가 완전히 국민들에게 개방되는 시기가 오면 그곳에 세 번째 클랜회관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기 북부에서 일할 클랜원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판도라클랜은 신입들 중 일부를 의정부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매년 계속되리라.
물론, 어베니어는 예외였다.
“그리고 어베니어.”
“어, 형! 아니, 클랜로드.”
“너는 정해진 업무가 끝나는 대로 초과 업무 있는 거 알지?”
“네, 팍팍 굴려주세요!”
“”””…….””””
클랜원들이 혀를 내두르는 가운데.
어베니어는 실실 웃었다.
예외적으로 어베니어는 담당하는 업무가 정해져 있었다.
하백련의 호위사였다.
“일과가 끝나고서 나랑 대련하고 가는 것도 잊지 말고. 네가 정말로 백련이를 지킬 수 있을지 내가 직접 확인해볼 거야.”
회귀 전에 란 이명으로 불렸던 딜러.
어베니어의 재능과 실력을 잘 아는 은하는 하백련의 호위사로서 그가 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재학했을 때, 알음알음 제2의 나라고 불렸다고 했나?
그 말이 마냥 틀린 것도 아니지.
다음 황금세대의 대표 주자.
은하는 어베니어와 함께 따라오는 수식어구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판도라클랜의 미래가 참 밝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클랜.
그 간판은 향후 십 년 동안에는 어디를 가지 않을 것이다.
☆
신입들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기술고문 브루노, 마법고문 신서영은 그들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일어나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마법을 캐스팅하는 도중에 캐스팅을 해제하면 어떡하니? 한 번 마나를 몸밖으로 끌어냈으면 의식의 끈을 놓는 한이 있어도 뭐라고 해야지.”
아카데미 교관으로 있을 때와 달리 마법고문이 된 신서영은 무서웠다.
그녀는 은하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클랜원들을 죽도록 굴렸다.
때로는 은하도 그녀의 교육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정도다.
“아빠, 서영 누나 화났어?”
“화난 거 아니야.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지.”
“서영 누나 무셔….”
이날은 웬일로 여유로웠다.
그래서 은하는 심심하다고 보채는 노유성을 데리고 신입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괜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신입들이 구르는 모습은 노유성의 교육에 좋지 않은 듯했다.
특히 노유성은 자신을 귀여워하던 신서영이 싸늘한 얼굴을 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근데 유성아, 서영 누나야? 원래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서영 누나가 서영 누나랬어!”
“그 누나는…. 나한테도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고 어떻게 애한테도….” 지금 뭐라 그랬니? “…….”
은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훈련장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을 조종하는 것에 능한 그녀가 그와 노유성의 말을 듣지 않았을 리 없었다.
은하는 움찔했다.
저 멀리서 신서영이 웃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노유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서영 누나 일 방해하지 말고 그만 나가자. 자, 빠빠이 해야지.”
“서영 누나, 빠빠이.”
은하는 훈련장을 나서기로 했다.
노유성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먼 거리에서도 인사 소리를 들은 신서영이 바람을 보내왔다.
그래, 유성이도 빠빠이.
노은하에 대한 인사는 없었다.
아무래도 삐진 모양이었다.
이에 은하는 손을 모아 사과하고, 훈련장을 나섰다.
노유성을 데리고 밖에서 산책할까 생각할 때였다.
“아, 판도라 클랜로드. 안녕하세요. 유성이도 안녕?”
“아, 은하 오빠. 유성이도 있네?”
“누나들 안녕!”
하백련, 프리시스 메모리를 만났다.
하백련이 프리시스 메모리로부터 교육을 받는 날인 듯싶었다.
은하는 두 사람을 보고 반겼다.
특히 노유성은 프리시스 메모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누나 보고 싶었어!”
“어머, 그러니? 고마워.”
“유성아, 나는? 프메 언니한테만 그런 소리 할 거야?”
“누나도!”
노유성이 불쑥 프리시스 메모리의 다리에 매달린다.
그러자 그녀는 후후 웃기만 하고, 하백련이 질투한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어때요? 제 아들 귀엽죠?”
“그러게요, 귀엽네요. 제가 아이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이 아이한테는 끌리네요.”
프리시스 메모리가 미소 짓는다.
이내 그녀가 긴 장갑을 낀 손으로 노유성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노유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그나저나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판도라 클랜로드가 초등학생일 때, 덕수궁에서 만난 게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인데…. 어느새 어른이 돼서는 아이까지 생기고 말이에요. 그것도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
“하하, 그러게요.”
프리시스 메모리의 말대로.
시간의 흐름이 참 빨랐다.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어느 것 하나 바뀐 구석이 보이지 않네.
은하는 생각했다.
그 시절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제는 시간의 흐름이 묻어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프리시스 메모리는 은하가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다.
마치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 같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그녀 혼자 시간이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
은하는 그 생각에 주목했다.
” 님.” “네, 왜 그러세요?” “마녀님의 마법으로 시간을 멈추듯 어떤 상태를 그대로 고정시키는 게 가능한가요?”
“음….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는 대상이라면 거의 무한정으로 시간을 멈출 수 있기는 하죠. 생물체라면 대상의 마나 저항 능력에 따라서, 효과의 지속 시간이 다를 테고요.”
“…….”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가요?” “지금 시간 되세요?”
“백련이의 교육이 있긴 한데….”
“급한 일이에요? 그럼 저는 그렇게 급한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오빠 볼일 보세요.”
“고맙다, 백련아.”
시험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은하는 하백련에게 허락을 구하고, 곧장 의 기프트 보유자들을 집합시켰다.
어쩌면 유정이의 눈을 고칠 수가 있을지도 몰라.
은하의 기대가 부풀었다.
그길로 그는 신입들을 훈련 중이던 신서영을 호출하고, 기도를 올리던 이리야, 간만에 데이트를 나가려던 노은아를 호출했다.
☆
이유정이 이번 삶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회귀 전에 의 기프트를 사용한 대가라 할 수 있었다.
은하는 어떻게든 그녀가 눈을 뜰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치료 능력에 일가견이 있는 이리야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같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은아에게도 이유정의 치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땅치 않았다.
‘셋째 천사님의 눈에 자연계에서나 볼 법한 술식이 들어 있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술식의 구조를 읽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에요.’
‘맞아. 술식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 자연계의 술식이라도 풀지 못할 건 없을 거야. 하지만 나랑 리야 언니는 저 방대한 술식을 풀기 힘들어. 그리고 술식의 구조가 인지한 순간 바로 바뀌어버리는데, 이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두 사람은 이유정의 눈에 새겨진 마법을 풀지 못했다.
차은우, 여우비가 가세해도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두 사람은 술식의 양에 압도되어 과부하를 앓을 정도였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유정이 눈에 있는 술식을 보고, 이해하고, 장시간 읽을 수 있으려면 의 기프트를 보유한 사람만 가능하다는 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은하가 신서영에게 마법고문을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했다.
당연히 신서영은 마법고문이 되고, 은하의 부탁을 받아 이유정의 눈을 살핀 적이 있었다.
‘인지하는 순간에 구조가 바뀌는 술식을 고정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신서영은 그렇게 평했다.
다른 두 사람도 동의했었다.
이유정의 눈을 뜨게 하는 방법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진전을 보일 수 없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술식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 거지?
그게 가능한가?
은하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세 사람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내심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다.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
그리고 이유정이 그들의 주저함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고마워, 하지만 나는 괜찮아.’
눈을 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유정은 어릴 때부터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체념하는 한편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고치려 하는 시도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기민하게 분위기를 파악한 그녀는 쓸쓸히 웃으며 화제를 끝마쳤다.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은 상처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유정은 그날 이후로 자신의 눈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꺼려했고, 이에 은하는 섣불리 나설 수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은하의 시도는 툭하면 흐지부지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이유정의 눈을 고칠 수 있다.
은하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신화를 현현해, 세계 의지가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거지?”
“그렇죠.”
이유정, 이리야, 노은아, 신서영.
그리고 프리시스 메모리, 하백련.
은하는 집무실로 그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신서영은 은하의 설명을 듣고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 그녀도 머리를 굴렸다.
“불가능할 건 없겠어.” “네, 제가 봤을 때도 그러네요.”
“해볼 만할지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이내 신서영, 이리야, 노은아, 프리시스 메모리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은하가 즉흥적으로 제안한 계획에 끌리고 있었다.
백서진에게 신화를 전수받게 되며, 내 신화는 이제 이 나라 한정으로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됐어.
그러니 세계 의지라도 내 세계에서 유정이 눈을 고치려는 것을 제대로 막지 못할 거야.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은하가 신화를 현현한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이유정의 눈에 깃들어 있는 술식의 시간을 멈춘다.
그리고 이리야, 노은아, 신서영이 그녀의 술식을 풀어버린다.
“””괜찮은 것 같은데?”””
처음에는 난처한 기색을 보여주던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계획은 성립됐다.
이제 이유정의 허락만 떨어지면 될 뿐이었다.
“신화를 현현하면…. 은하 네 몸에 무리가 가는 거 아니야? 나는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는데….”
“무리하는 거 아니야. 현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정말이지? 거짓말하는 건….” “안 해, 걱정하지 마.”
은하는 이유정의 손을 꼭 잡았다.
사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신화는 현현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신화의 격이 크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은하는 이유정을 배려해 걱정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음….”
“그리고 유정이 너, 한 번이라도 유린이 얼굴 보고 싶다고 했잖아.” “…….”
“나는 네가 우리 딸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혹시나 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상처받는 것은 아닐까.
이유정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은하는 그녀를 설득했다.
어떤 말로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던 그녀는 딸아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생각을 바꿨다.
“부탁드릴게요. 도와주세요.”
결국 이유정은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 모두 이유정이 눈을 뜨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신화 현현
리바이벌
그리하여 이유정의 눈을 뜨게 하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은하는 클랜회관을 영역으로 두고 신화를 현현했다.
타임 앵커리지(Time Anchorage)
프리시스 메모리가 이유정의 눈에 마법을 발동했다.
시간 상태를 고정하는 마법.
그녀의 마법이 성공했다.
자연계의 술식이 변화를 멈췄다.
“할 수 있어.”
노은아는 곧장 그녀의 눈에 깃든 술식을 풀기 시작했다.
신서영, 이리야도 가세했다.
세 사람은 땀을 흘려가며 빠르게 눈을 움직이고, 손을 놀렸다.
술식이 하나하나 풀어진다.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어때?”
술식이 모두 풀렸다.
그때쯤 은하는 신화를 거두었다.
그러고는 이유정의 눈을 살폈다.
“아….” “”””…….””””
말이 되지 않고 떨어진 소리.
이유정이 입을 뗐다.
그녀는 입을 벌린 채로 말을 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물기가 가득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여, 전부….”
“”””……!!””””
“이게 보인다는 거구나.”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유정이 손을 뻗어서는 조심스레 은하의 뺨에 손을 얹는다.
“아…! 은하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다들 정말 고마워요!!”
그 순간, 은하는 이유정에게 대뜸 달려들었다.
이유정이 당황하든 말든.
은하는 흥분에 겨워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
이유정이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소식을 들은 클랜원들은 하던 일을 모두 팽개치고 이유정을 보기 위해 은하의 집무실을 찾았다.
“뭐!? 유정이가 앞이 보인다고!? 축제다! 연회다! 오늘은 내가 크게 쏠 테니까 거하게 마시자!” “와! 와! 이슬 먹는다! 기쁜 일에는 역시 술이 최고지! 근데 어디 봐! 유정유정!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난장판이 벌어졌다.
클랜원들은 이유정에게 제 얼굴을 비추기 위해 북적거렸다.
“아하하….”
이유정은 처음 보는 얼굴에 상당히 낯설어하고 있었다.
게다가 은하가 그녀를 놔주지 않고 꼭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유정이 당황하잖아. 다들 나중에 오도록 해. 괜히 유정이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는 듯.
은하는 이유정을 끌어안은 상태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클랜원들이 야유했다.
“하여간…. 엄청 기쁜가 보네. 하긴 나도 이렇게 기쁜데, 은하 마음은 얼마나 기쁘겠어.”
노은아는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장시간 술식을 풀기 위해서 일한 보람이 있었다.
하루가 다 지나버리고 말았지만, 이유정이 눈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했다.
“응?”
그러다 멈칫했다.
노은아는 무심결에 손을 들었다.
“…….”
손이 반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손뿐만 아니었다.
두 팔이 반투명했다.
“이건….”
피곤한 것은 아닌 듯싶었다.
노은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은하가 그녀를 불렀다.
“누나! 얼른 이리로 와. 유정이가 누나 얼굴 보고 싶대.”
“어? 으응, 그래! 지금 갈게!”
노은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때쯤 그녀의 두 팔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니까….
아직 은하에게는 말하지 말자.
유정이가 앞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저렇게 좋아하는데, 괜히 은하한테 걱정 끼칠 수는 없잖아.
별일 아닐 것이다.
노은아는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즐거운 시간을 망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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