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62
162
77.34살 새내기(2)
“네? 마탑이요?”
절름발이 여자 안지민은, 갑작스러운 아리의 취업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다시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다리가 이래서, 어딜 가든 적응을 잘 못해서요······.”
안지민은 본래 발목이 멀쩡할 때는 식당 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같은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던 남편과 눈이 맞아서, 결혼도 하기 전에 애를 가졌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딸만 남게 되자 앞날이 막막해졌다.
-그래도 초율이는 다른 자식들처럼 키워야지······.
안지민은 그래서 하루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딸이 다른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도록,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뜻대로 순탄히 흘러가도록 나두지 않았다.
-발목이······.
지하철에서 하차하던 중,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떠미는 바람에 그녀는 넘어져 발목이 접질러버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처음에는 걸을 만했다.
통증도 그리 심하지 않았고, 2-3일 정도 지나자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거 같았다.
하지만.
-아, 이거 왜 이렇게 욱신욱신거리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발목을 절게 되었고, 이미 병원에 갔을 때는 3달이 지나서였다.
-이미 만성이시네요. 이런 건 수술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시면서 재활운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일을 쉬면 당장 생계가 위급해졌기 때문에 안지민은 통증이 올라와도 이를 악물고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발목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져 갔다.
-이거 너무 상태가 심각한데요? 수술한다고 해도 철심을 박아서 발목을 고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네???
의료보험지원도 끊겨서, 병원 가기도 꺼려졌던 안지민은 결국 최악의 상황이 되어서야 다시 병원에 갔고 거기서 다시 충격적인 소릴 들었다.
발목관절고정술.
그것은 발목관절이 더 이상 제기능을 못한다고 판단하여, 아예 발목을 고정시켜 버린 채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가게 하는 수술이었다.
수술비만 해도 자그마치 1300만 원이 넘었고, 만약 의료보험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4천만 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당장 그럴 돈이 없었던 안지민은 결국 앓아누웠고, 죽을 날만을 기다렸다.
한데, 딸의 기도 덕분에 하늘에서 돈 다발이 날아왔고 안지민은 병을 회복하면서 그 돈으로 딸에게 맛있는 음식도 시켜서 먹이고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결국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돈은 몇 달 만에 순식간에 전부 사라졌고, 안지민은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제 딸래미 유치원 보낼 돈밖에 남지 않았다. 안지민은 오늘부터 딸을 위해 끼니도 대부분 굶어야 했다.
“발목 걱정은 하지 마세요. 오래 서서 하는 일이 아닌, 대부분 앉아서 하는 일이 될 거예요. 그리고······.”
아리는 안지민의 발목 상태가 많이 심각한 것을 눈여겨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느꼈다.
‘발목이 저 정도로 부었다면, 통증도 엄청날 거야······.’
안지민의 발목은 봉와직염에 걸린 발처럼 염증이 번져서 퉁퉁 불어 있었다.
아리는 그녀의 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탑에서 지민 씨의 발목을 치유할 수 있도록 제가 한번 연락을 넣어 볼게요.”
“하지만, 저는 의료보험을 못 내서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가 없는데요······.”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마탑 직원들을 위한 복지서비스 차원에서, 직원에 대한 의료비는 전액 무료로 지원해주거든요.”
“정말요? 제가 정말 마탑에 취업할 수 있는 건가요?”
“네. 물론이죠.”
아리는 이미 마탑 계열사 중 하나의 실질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그룹에 낙하산 하나 꽂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아리는 마탑 쥬얼리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그 누구의 청탁도 받지 않고 정당한 공채를 거쳐 직원들을 채용해왔다.
친척이나 지인들의 부탁도 모두 거절했었는데, 오늘 처음 보는 여자한테 마음이 끌려서 덥석 낙하산 채용을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이렇게 두 눈 뜨고 본 이상, 그냥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아리는 안지민의 상황이 딱하게 생각되었다. 게다가, 안지민의 딸인 초율이도 벌써 실프와 절친이 되어 둘이서 딱 붙어서 같이 유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나도 지민 씨와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솔직히 아리는 갑작스럽게 실프가 생기면서, 주변에 조언받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본래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많이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가까운 지인 외에는 실프의 존재 자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육아적인 애로사항 같은 걸 자유롭게 얘기할 사람이 너무 절실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건가······?’
그녀의 마음속 깊은 무의식의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발로일지도 몰랐다.
“만약 취업시켜주면, 정말 열심히 할게요. 정말이에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네. 일단 오늘 입학식 끝나면, 같이 병원부터 가요.”
“마탑 병원이요? 거긴 예약이 엄청 많이 밀려 있다던데.”
“괜찮아요.”
아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박태진 사장님. 저 최아리입니다.”
-아, 최 사모님께서 웬일로 제게 전화를······?
사실 박태진과 아리는 서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박태진은 아리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네, 제가 아는 지인분께서 발목을 다쳤는데요··· 치료 시기를 놓쳐서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아아, 그러셨습니까?
-어이, 김 간호사! 빨리 오전 진료 다 취소하고, 발목 수술 준비해. 그래, 다 오후로 미루거나, 아니면 내일로 미뤄! 이건 명령이야!
수화기 너머로 박태진의 고함이 크게 넘어왔다. 아리는 생긋 미소지으면서, 박태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최 사장님. 오전 시간대 비워놨으니까,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십시오. 발목 아프시다던 지인분을 오늘 바로 치료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 사장님.”
-하하하. 뭘요.
“그럼 이따 뵐게요.”
-네, 사모님.
뚝.
“이제 됐죠?”
“고··· 고맙습니다.”
안지민은 눈물을 글썽글썽거리며 아리의 손을 맞잡았다.
“오늘 처음 뵙는 사이인데,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리 씨.”
“아뇨, 뭘요. 마침 실프가 친구가 없었는데, 초율이가 실프와 함께 놀아줘서 제가 더 고마운 걸요. 나중에 실프가 초율이네 집에 놀러 가도 되죠?”
“네? 저, 그건······.”
안지민은 초율이의 친구에게 자신의 판잣집을 보여줬다가 창피를 당한 적이 있어서 갑자기 주저했다.
아리도, 아차 싶었던지 곧 말을 정정했다.
“나중에 초율이를 아예 저희 집으로 초대해도 되죠?”
“아, 네. 그럼 너무 감사하죠. 괜히 부담드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부담은 무슨요. 오히려 실프가 놀 친구가 너무 없어서 외로워하던 참이었어요.”
“그렇군요······.”
아리는 이참에 안지민을 위해 집도 하나 새로 사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지민 씨가 엄청 부담감을 느끼겠지······.’
이미 마탑에 낙하산으로 취업시켜 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였다. 아무리 아리가 수천억 원의 개인 재산이 있어도,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었다.
‘일단 그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결하도록 하자.’
아리는 오늘 육아에 대해 깊고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서 매우 기뻤다.
게다가, 실프의 새로운 친구까지 생겨서 더더욱 기뻤다.
*
“우리 전자공학부는, 첨단 기술 분야인 전자 기술에서의 산업 수요에 고급 인력을 배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향상에 기여하는 것에······.”
‘하······.’
나는 입학식과 점심을 끝마치고, 곧바로 강의실에서 반도체소자 및 집적회로 분야에 대한 전체적인 개론을 들었다.
신입생 대표로 선서까지 하고, 한국대 총장의 훈화 말씀에다 다른 대학 총장의 훈화 말씀까지···.
거의 초·중·고 12년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그 얘기를 다시 반복해서 들으니 너무 지겨웠었다.
한데.
‘오늘은 좀 일찍 집에 보내주면 좋겠다······.’
다시 내가 앞으로 공부할 분야의 개론을 듣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저절로 잠이 쏟아졌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신체적인 생리 현상은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었지만, 나는 요새 내 몸을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거의 물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었다.
‘지수하고 수연이가 나랑 같은 과일 줄이야······.’
저번에 따로 지수에게 과를 물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나랑 같은 과 동기가 됐다.
‘오늘 강의 끝나고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고 했었지······.’
그런 자리에 나 같은 꼰대가 끼면 많이 재미가 없어질 텐데, 지수와 수연이가 하도 졸라대서 일단 가기로 해놨다.
“우리 학교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모토로 2020년부터 새로운 학저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인공지능·나노생체전자시스템공학 과목 교수인 유하은 교수는 쌍꺼풀 없는 눈이 인상적인, 동양적인 미가 돋보이는 미녀 교수였다.
‘면접 때 봤던 교수군···.’
내가 이 과의 교수님이 마음에 들었다고 칭찬했을 때, 귀엽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던 교수였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과목 내에서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는 A코스.”
“······.”
“그리고, 일반적인 허들을 모두 재끼고, 재능으로 모든 것을 씹어먹는 H코스”
“오오오······.”
유하은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입을 주시했다.
유하은 교수가 설명하는 것은, 4년 전부터 바뀐 한국대학교 학점 이수 과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A코스는 그냥 일반 코스에요. 아까 말했다시피, 지금껏 해왔던 방식과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H코스. 즉, 헬(Hell : 지옥) 난이도 코스는 조금··· 아니, 많이 다릅니다.”
유하은 교수는 보드마카를 들고선, 화이트보드에 A코스 과정과 H··· 헬 난이도 코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빼곡이 적어나갔다.
“A코스는 일반적인 방식처럼 수업에 다 참여하고, 정해진 학점을 꾸역꾸역 채우는 제도입니다. 그건 말 그대로 모험을 피하는 일반 학생들이 하는 방식이니깐요.”
“······.”
“하지만, H코스는 다릅니다. 진짜 모험을 원하는 탐험가라면 자신의 학교 인생을 걸고 한번 도전해볼 만한 코스죠.”
보드마카에 적힌 내용을 얼추 읽어보니, 확실히 일반적인 대학 생활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보였다.
‘각 과목의 교수들이 요구하는 특별 레포트만 작성해서 통과되면 수업이나 시험 같은 게 모두 면제되는 코스이군······.’
나는 유하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유하은 교수의 설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참 쉽죠? 수업이나 시험 같은 거 다 재껴도 A+··· 아니, 역대 없었던 S급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다니.”
“S······”
학생들은 S학점이라는 말에 입을 떠억 벌렸다.
역대 모든 대학을 통틀어도 A+가 최고 학점이었지, S급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도,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한국대에선 더더욱.
“하지만, 결과는 쉬워 보여도 그 과정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유하은은 화이트보드 맨 밑에 당구장 표시를 적으며, 추가적인 주의사항을 나열해나갔다.
“만약 H코스를 신청해놓고 교수가 내준 특별 과제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꿀꺽···”
강의실 안이 학생들의 침 꼴깍 소리는 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그 학생은 졸업 유보 없이 곧바로 퇴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