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25
25
13.블록버스터(2)
“안녕히 가세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아리 씨.”
“저도 오늘 즐거웠어요. 선물도 고맙고요.”
“그럼 잘 가세요.”
“네. 이따 연락할게요.”
부우우웅.
아리가 손을 흔들며 차를 몰고 떠났다. 그녀가 픽업도 해주고, 집까지 데려다준 덕분에 나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텔레포트가 더 빠르긴 하지만, 아리의 성의가 고마웠다.
‘아무튼 경찰서에서 연락이 다 오다니, 별일이네······.’
경찰 전화만 아니었어도, 오늘 라면각 나왔는데 짭새 때문에 다 망쳤다.
과연 조사받으러 가면 경찰이 도대체 어떤 질문을 할지, 참으로 궁금했다. 가령, ‘너랑 태풍이랑 무슨 상관이냐? 번개랑 좀 친한 사이 아니냐?’와 같은 정신 나간 질문은 하지 않겠지.
‘일단 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그건 내일 걱정하자.’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도 아닌데,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아무리 캐봤자 나올 건덕지는 없을 테니까.
*
다음날.
“후······.”
군포경찰서 강력계 3반 반장 박원국.
그는 어제부터 밤샘 야간 당직을 하며, 군포 재해사건을 열심히 파헤치고 있었다. 아직 퇴근도 못 했다.
딸칵, 딸칵.
-군포 경찰서, 커미션 의혹에 대해 “기자 양반, 증거도 없이 소설 쓰지 마라.”며 기자 폭행! 막 나가는 경찰들, 과연 커미션은 없었는가?
-군포 경찰서에서 사건 은폐 정황 발견! 주한보석방 내 모든 귀금속들이 도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자연재해로 사건을 덮으려고 해······.
현장 점검이 끝난 후, 보도자료를 돌렸는데도 언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내뱉은 말에 보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떡밥을 강화해 더욱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감히 기자들에게 그런 건방진 말을 해? 감히 형사 따위가? 어디 한 번 좆 돼 봐라.’하는 심보였다.
“개 같은 놈들······.”
타닥, 탕탕탕!
저벅, 저벅.
그는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내려친 후, 복도를 나왔다. 비상구 계단엔 탁 트인 흡연실이 있었다.
칙, 치익.
“후······.”
기레기들이 싸질러 놓은 기사를 한 개, 한 개씩 읽어나가던 그는 혈압이 올라 키보드를 때려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그놈들은 그냥 하이에나야. 배를 채우기 전까지 무조건 물어 뜯는,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지.”
허공에 대고, 누군가에게 항변하는 것처럼 박원국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의 생각엔 선동당하는 개돼지들보다 그것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이 더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아무튼 어떻게든 수습하지 않으면 내가 죽게 생겼단 말이지······.”
이미 계장을 포함한 윗선에선 자신을 갈아버리려고 단단히 벼르는 중이었다.
15년 형사 생활하면서 대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내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지······.’
이건 이제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경찰과 조폭 같의 불미스러운 커미션이 없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현재 백석파 괴멸되었지만, 아직 그 배후 세력은 드러나지 않았다.
‘조직에선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어떤식으로든 화제를 돌리던가, 꼬리를 자르려 들 것이다.’
박원국은 두려운 생각 때문에 저절로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이대로 있다간 분명 그 뒤의 배후세력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보스의 명령대로 용의자들을 들쑤셔보는 수밖에 없다.’
뒤집어씌울 사람은 몇 명 있었다.
첫 타겟은 이준혁.
죽은 백석파 놈들의 미확정 시신 부검 결과, 이준혁이 보석방을 빠져나온 시간과, 놈들이 사망한 시간이 거의 일치했다.
게다가 이준혁이 현재 신분이 말소되고, 15년 만에 다시 복구한 정황도 이번에 알아냈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정황상 의심스러운 알리바이가 한둘이 아녔다.
‘의심 가면 일단 파보면 되는 거지. 뭐라도 나오면 좋은 거고, 안 나오면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거고······.’
박원국은 씨익,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야외 재떨이에 비벼껐다. 그리고 다시 조사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 이준혁 씨?”
“네.”
박원국은 조사실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이준혁을 발견하고 몸을 움찔했다.
아직 오전 10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도착하다니?
그것도 평일에.
박원국은 방금 전까지 했던 음흉한 생각을 들킨 사람마냥,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일단 반갑습니다.”
“네.”
박원국은 컴퓨터 책상에 앉으며, 작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
나는 차분한 눈빛으로 형사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는 정수리가 듬성듬성한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형사는 곧바로 질문 세례를 이어나갔다.
“어제 전화한 대로, 군포 재해 사건과 관련해서 이준혁 씨께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물어보세요.”
“일단 이준혁 씨. 15년 동안 어디 있다 오신 겁니까?”
“실종신고 된 거 말입니까? 그거 해외로 원양어선을 타러 가서 그렇게 됐습니다.”
“원양어선이요?”
“네.”
“근데 왜 신분까지 모조리 말소되었죠?”
“고등학생 때부터 무작정 외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행정 절차를 갖추지 못하고 갔던 것 같습니다.”
“흠······.”
저 형사의 눈빛에서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5년 동안 배를 탔다기엔 그렇게 까무잡잡하진 않은데······.”
“최근 1년 동안은 배를 안 탔습니다.”
“그렇군요, 뭐 아무튼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깐.”
형사는 자신의 책상에 있던 사건 파일철을 뒤적뒤적하며 추적인로 질문을 던졌다.
“이틀 전 11시경에 금정동에 있는 주한보석방에 들리셨죠?”
“그랬었죠.”
“그때 무엇을 팔로 보석방에 간 겁니까?”
“작은 금반지를 팔러 갔었죠.”
“금반지요?”
“네. 제 어릴 적 돌잔치 때 받았던 반지인데, 집이 많이 어려워져서 팔려고 했었죠.”
“근데 안 판 건가요?”
“팔았어요. 주한보석방에 안 팔았을 뿐이죠.”
내 말에 형사가 눈을 빛냈다.
“왜 안 팔았죠?”
“가짜라고 하더라고요.”
“음······. 그런데 다른 데선 진짜라고 하던가요?”
“네. 그래서 60만원에 팔았어요.”
“어디서요?”
“서울에 있는 보석방이요.”
“가는 도중에 누구 만난 사람 없습니까?”
“누굴 만나요?”
이준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경찰이 흘러가듯 질문을 던졌다.
“조폭 같은 거 안 만났어요?”
“조폭이요?”
“이준혁 씨가 나간 시간 대에 군포에서 활동하는 백석파 조직원들이 떼몰살 당했거든요.”
“그런가요? 전 그런 사람들 만난 적 없는데요? 그냥 지하철 타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음, 그렇군요.”
형사의 얼굴이 질문을 하면 할수록 점점 짜증으로 물들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별다른 물증도 없었고 알리바이라는 것도 참 억지스러웠다.
그 시간 대에 나만 바깥에 활보한 것도 아니고,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만 혐의를 지을 수도 없었으니까.
형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심한 듯 나직히 입을 열었다.
“이준혁 씨. 혹시 아···. 아닙니다.”
뭔가 나랑 이 사건을 억지로 엮으려는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조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어떻게든 끼워맞춰 보려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 읽어볼까······.’
오히려 형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더 답답했다.
-마인드 리딩(Mind reading)
나는 독심술 마법을 펼쳐 형사의 생각을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에이, 씨발. 그놈들은 왜 나한테 이런 걸 떠미는 거야? 자연 재해를 뭐 어떻게 하라고? 좆같은 깡패놈들. 흑천파 개새끼들.
‘흑천파?’
나는 형사의 생각에서 이상한 조직의 이름을 듣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 새끼들이 만약 나까지 제거하면 어쩌지? 입 막음을 하려 들 텐데······.
형사는 무언가 이상한 조직과 연결된 놈인 것 같았다. 꼬리니 뭐니······. 단순 조폭과의 커미션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이준혁 이 새끼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별다른 혐의는 없는데. 휴······.
형사는 차마 내게 이번 자연재해와 당신이 연관이 있느냐?라는 말을 뱉어내는 걸 몹시 꺼려하는 듯했다.
통화 내용이나 조폭들과 만난 영상 자료라도 있으면 몰라도. 마땅히 증거자료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정황이 이상해도 그냥 자연재해로 가닥을 잡자. 어차피 윗선에서도 최대한 조용히 묻으라고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괜히 들쑤시다가 큰일 만들지 말고, 차라리 이런 식으로 덮어버리는 게 낫지.
형사는 스스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이준혁 씨에겐 사실 별다른 혐의가 없네요. 태풍이나 번개도 사실상 자연재해고. 기자들이 이상한 자극성 기사만 남발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소환할 필요도 없었는데. 아무튼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뭘. 공무를 처리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형사는 일단 이번 사건이 미심쩍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사망한 거로 처리해서 가닥을 잡아나갔다.
조서도 아주 형식적으로 꾸몄다.
본래 의심스러운 정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것저것 캐물으면서 지면을 채워나가겠지만, 이번엔 특별히 그가 대충 꾸며서 조서를 완성했다.
나는 빨간색 인주를 엄지에 묻혀 조서에다 지장을 찍었다. 조사가 다 마무리됐단 뜻이었다.
“조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혁 씨.”
“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보세요.”
“그때 같이 보석방에 갔던 여자는 누구인가요?”
“제 여동생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
“후······.”
나는 군포경찰서를 나오자마자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혹시나 나보고 자연재해에 대해 추궁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왔는데 기우였다. 물론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튼 내가 죽인 백석파 놈들 뒤에, 흑천파라는 이상한 조직이 있는 모양이네.’
이름 자체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놈들 또한 조폭 세력인 것 같았다. 경기도 권역의 형사 반장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걸 보면, 보통 놈들은 아닌 듯싶었다.
드르륵.
-발신자 : 최아리
나는 아리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네, 아리씨.”
-조사 끝나셨다는 문자를 봤어요.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그냥 형식적인 조서만 꾸미고 끝났어요. 저한테 억지로 뒤집어씌우거나 하진 않더라고요.”
-참 다행이네요. 혹시나 경찰이 억지를 쓰면 저라도 나서서 증인을 서려고 했거든요.
“하하,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입 발린 말 아니에요.
아리는 장난스러운 내 대답에 토라진 듯, 콧소리를 냈다.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서 씨익 웃었다.
“당연히 그렇겠죠. 고마워요.”
-네. 그리고 어제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죠?
“무슨 약속이요?”
-블록버스터요.
“그게 뭐죠?”
-아이 참, 준혁 씨의 차후 플랜을 스몰에서 블록버스터로 상향하기로 했잖아요.
“아하. 그랬죠.”
-볼일 끝났으면, 저희 가게로 바로 오세요. 소개 시켜 드릴 사람이 있어요.
“네, 지금 바로 지하철 타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통화를 종료하며 경찰서 뒤편의 으슥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지하철은 무슨.
순간이동하면 되는 것을.
나는 아리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텔레포트를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