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하여간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많아.
살면서 나는 지금처럼 편한 마음으로 운기조식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흘 차에 접어들면서 내 내부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때때로 무척 추웠고, 으슬으슬 떨기도 했으며, 이러다가 얼어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엄습할 때도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때때로 꿈을 꾸는 것과 흡사해서 꿈보다 더 생생한 환각을 보여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환각이 생생하다는 말은 언뜻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무공을 익히다 보면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에 진입할 때가 있다. 이것이 그저 느낌에 그치면 좋으련만 나는 실제로 추웠다.
마치, 빙공으로 적을 괴롭히기 전에 내가 먼저 한빙지옥에서 벌을 받는 느낌이랄까.
환각 속에서 나는 두 발이 먼저 얼어붙었고. 그다음에는 허리까지 차오른 눈을 밀어내면서 설산의 정상을 향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른다.
이럴 때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돌풍을 동반한 눈보라를 맞으면서 눈, 코, 입이 얼어붙은 채로 걷기만 했다.
이런 경우에 섣불리 금구소요공의 도움을 받거나 편한 길을 찾아서 오르면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얼어붙은 채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당연히 고생길을 택해야 한다.
지독하게 춥고, 적당히 외로운 데다가 오만가지 형태의 걱정과 공포가 뒤섞이고 있었지만 나는 때때로 웃으면서 올랐다.
나는 눈보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설산을 반나절이나 더 기어 올라가서 드넓은 설원의 고원에 도착했다. 공기가 희박해서 숨을 쉬는 게 만만치 않았으나 바람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빙공의 경지가 한 단계 더 오른 것이라 예상해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월영무정공 현월(弦月) 경지의 끝자락에 도착한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만월(滿月) 경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 금구소요공처럼 경지가 세세하게 분리된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초계(超鷄) 단계와 금구(金龜) 단계를 합친 것만큼 광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차가운 설원의 고원에 대자로 누운 다음에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동시에 현실에서 눈을 뜬 다음에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내 호흡을 따라서 차가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나는 눈을 뜨려다가 눈꺼풀이 찢어지는 기분을 맛봤다.
실제로 전신에 빙공의 여파가 있었던 모양인지 온몸이 축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겨우 눈을 떠보니 근처에서 사대악인이 전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씨벌. 깜짝이야.”
“…….”
속이 철렁했다.
아직 현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색마, 귀마, 검마와 같은 마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들이 전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는 와중에 귀마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문주, 괜찮나? 주화입마에 빠진 줄 알았네.”
“그럴 리가. 괜찮아.”
주화입마는 전생 광마 시절에 충분히 겪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색마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별말 없이 돌아섰다. 검마가 고개를 한번 끄덕인 다음에 말했다.
“고생했네.”
나는 세 사람의 표정을 확인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분명히 어두워졌을 때 운기조식을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해가 중천에 뜬 모양인지 사방이 훤했다.
“이번 운기조식은 얼마나 걸렸지?”
내 물음에 귀마가 대답했다.
“하루 반나절쯤 걸렸네.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얼어 뒤질뻔했다. 운기조식도 적당히 해야지. 나처럼 무식하게 하면 안 돼.”
귀마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제 씻고 오게나. 그럼 당분간 운기조식은 끝인가?”
“회복해야지. 씻고 온다.”
전신을 휘감은 축축한 느낌 때문에 나도 버틸 수가 없었다. 객잔 뒤에 가서 씻으려는데 주방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려서 잠시 안을 확인해봤다.
삼복이 요리를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문주님, 일어나셨습니까? 아, 주무신 건 아니었지. 점심 준비하고 있습니다.”
“확인.”
나는 그대로 뒷문으로 나가서 옷을 훌러덩 벗은 다음에 우물로 향했다. 미리 받아 놓은 물을 휘저어보니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 * *
탁자 두 개를 이어붙인 다음에 검마, 색마, 귀마, 삼 공자, 삼복과 내가 둘러앉아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삼복이 차린 밥상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삼복이 없었으면 우린 다 굶어 죽었을지도 몰라.”
색마가 말했다.
“설마 굶어 죽었을까?”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굶어 죽었다. 전부 음식 사러 가기 귀찮다고 여기서 버티고 있었겠지. 아니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다가 맛없어서 뒤졌거나.”
귀마가 웃으면서 밥을 먹다가 말했다.
“자네 음식 솜씨가 그렇게 개판인가?”
나도 젓가락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예전에 어떤 손님한테 국수를 말아줬는데 한 젓가락을 먹더니 그릇을 내게 집어 던지더군.”
귀마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뭘 어떻게 해. 날아 차기를 한 다음에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웠지.”
“하하하하하하…….”
삼복이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자, 다들 삼복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삼복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 저만 웃죠.”
“…….”
“죄송합니다.”
나는 사실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참은 김에 계속 참았다.
“밥 먹자.”
“예.”
근엄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던 검마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누가 이겼나?”
“우리 동네 전문 용어로 서로 쫄았다는 말이 있소. 같이 때리다 보면 적당 선에서 싸움이 멈추는 거지. 생각해 보면 국수 한 그릇 때문에 싸운 건데 그릇을 던진 것은 그놈 잘못이고 맛없게 만든 것은 내 잘못이니 적당히 넘어가는 거지. 아무리 꼴통들이라도 국수 때문에 살인 사건이 벌어지진 않소. 거기까진 아니야. 요약하자면, 비긴 것으로 할까? 이렇게 끝난 셈이지.”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기는 싸움도 있었군.”
나는 밥을 먹으면서 검마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소. 슬슬 광명검을 탐내는 정신 나간 놈들이 올 때가 되었는데.”
검마가 말했다.
“광명검을 회수해라. 이것은 아무래도 표면적인 명령이고. 속뜻은 옛 광명좌사를 죽이라는 것이겠지.”
색마가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그렇습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의 함정임을 아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오는 놈들이 있을 테고. 결국에 인간은 공을 세우려 하기 때문이지. 어떤 놈은 일대일 대결을 원하겠지만 이들이 뭉쳐서 일단 난장판으로 싸울 수도 있다. 가장 뒤늦게 나타나서 마검만 탈취한 다음에 돌아가려는 놈도 있을 테고. 이번 기회에 교의 중심으로 진출해서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동맹 가문의 지원자도 있을 테지. 그러니까 이것은 교주가 내게 떠넘긴 청소나 다름이 없다.”
귀마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이것이 어째서 청소요?”
검마가 대답했다.
“좌사는 그냥 교주가 임명하면 돼.”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삼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차피 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교주님의 마음에 달렸소. 어느 날 처음 보는 사내를 데리고 와서 지금부터 이 사람이 좌사라고 소개하면 그 사람이 좌사인 것이오. 누가 그 결정에 반박하겠소?”
나는 여기까지 들은 다음에 검마에게 물었다.
“교주가 심심한가?”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검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떤 의미인가?”
“그러니까 이렇게 싸움을 붙여놓고 교주가 구경하러 올 가능성은 없느냐는 이야기요. 삼 공자가 더 잘 알려나?”
삼 공자는 제 아비의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많이 예상할 것 같으면 오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할 것 같으면 오시겠지. 나도 모를 일이라서 예측할 수 없소.”
나는 검마를 바라봤다.
“선배는 어떻게 예상하시오.”
검마가 대답했다.
“오지 않을 것 같다.”
“어째서.”
검마가 사대악인과 삼 공자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직 너희를 다 죽일 마음이 없을 것이다. 이번 결과가 그저 궁금한 정도겠지. 명확한 것은 교주가 이곳에 오면 다들 어설프게 행동하지 말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낫다. 아마 오지 않을 테지만 내 말을 유념하도록.”
검마가 도망을 치라고 권유했으면 도망치는 것이 맞다.
나는 간단하게 답했다.
“알겠소.”
밥을 다 먹어가는 시점에서 문득 검마가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바깥에 손님이 왔군.”
“벌써?”
우리는 설거지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동시에 일어나서 삼복이를 남겨둔 채로 나갔다.
* * *
천리객잔에서 조금 널찍이 떨어진 좌측의 공터에 마차 세 대가 도착하더니 사람들이 내리면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리에 있는 한 사내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하오문주님, 저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잠시 이곳에 임시 막사 좀 설치하겠습니다.”
마차 뒤에 달린 수레에서 막사를 칠 수 있는 각종 도구와 뼈대가 되는 목재들을 꺼내더니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야전 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일부는 막사 앞에 기둥을 세우더니 그 위에 햇빛 가리개를 설치하고 그 밑에 탁자, 의자를 놓고 문방사우(文房四友)까지 올려놓았다.
나는 검마에게 물었다.
“마교에 심판이 있소?”
“없네.”
“기록이나 관찰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고수는?”
“내가 알기로는 없네.”
“동맹 세력인가 보네.”
나는 사대악인들을 객잔 입구에 내버려 둔 다음에 홀로 뒷짐을 지고선 막사를 설치하는 자들에게 다가갔다.
“……수고가 많다.”
막사를 설치하던 자들이 동시에 동작을 멈추더니 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하오문주를 뵙습니다.”
나는 손을 절도 있게 내저으면서 마도 세력의 같잖은 예의를 물리쳤다.
“확인.”
일꾼들의 얼굴과 피부의 색을 바라보니 땡볕에서 농사를 짓고 왔는지 다들 까무잡잡했다. 더군다나 전부 외공을 혹독하게 수련했는지 막사를 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나는 실력이 있어 보이는 삼십 대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어디서 이렇게 싸움 소식을 듣고 귀신같이 몰려온 것이냐?”
사내가 대답했다.
“저희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저희가 가장 먼저 도착할 줄은 몰랐습니다. 문주님.”
“너희가 어느 세력인데?”
사내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렇구나. 수고해라.”
“예.”
“막사 안을 구경해봐도 될까?”
사내가 이제 막 기둥 위에 덮개를 씌우고 있는 막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얼마든지 보셔도 좋습니다.”
나는 막사도 구경하고, 깃발이나 문양, 가문의 문장 같은 것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마차의 모양과 일꾼들의 허리에 있는 검의 형태도 면밀하게 살폈으나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증거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오지랖이 넓은 동네 청년처럼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묵묵하게 일하는 일꾼들의 동작과 표정을 잠시 바라봤다. 나는 숨을 죽인 채로 이들의 호흡 소리까지 구별해서 듣고 있다가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에게 말했다.
“……백의서생이 구경하러 온다더냐?”
나는 허리를 숙인 채로 일을 하던 한 놈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을 보고. 다른 놈이 곁눈질로 나를 바라봤다가 급히 시선을 돌리는 것도 확인했다. 내 질문에 대답하는 놈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질문에…….
순간적으로 대답하는 놈이 아무도 없다면, 침묵이 곧 대답이다.
나는 책임자를 향해 다시 물었다.
“구경하러 오겠다는 거냐? 싸우러 오겠다는 거냐? 확실히 해라. 내가 너희를 이 자리에서 이유 없이 다 죽일 수는 없잖아.”
그제야 한 중년인이 탁자 위에 문방사우를 정리하다가 일어섰다.
“문주님, 당연히 싸우러 오시는 게 아닙니다. 교의 연락을 받았는데 사정을 알아보니 전 광명좌사의 일행 중에…….”
일꾼 중 한 명이 나지막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시끄럽다.”
“예.”
등을 돌린 채로 막사를 잇는 끈을 말뚝 같은 곳에 두르고 있었던 사내가 대답했다.
“구경하러 오시는 것이니 저희를 죽일 필요까진 없습니다. 문주님. 저희는 말을 많이 할 경우에 혀가 뽑힐 수 있으니 문주께서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희들 혀도 소중하지. 혀가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지. 맛도 보고 말도 하고. 혀를 뽑는다니…… 어우, 끔찍해라.”
나는 일꾼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낄낄대면서 웃다가 계속 이리저리 일부러 기웃댔다. 다들 내가 가까이 다가와서 구경할 때마다 더워서 그런 것인지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모를 땀을 이마에서 흘리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마군자(魔君子)가 마도 출신임을 알고 있었다. 물론 마교의 동맹 세력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지금 마도의 종주는 마교주일 테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이곳을 한참 구경하다가 천리객잔으로 돌아가서 맏형에게 말했다.
“선배, 중립을 표방하는 구경꾼 세력이 온 모양이오.”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인가?”
“일전에 말한 백의서생이 되겠소. 와, 소름.”
나는 순간 팔뚝을 비볐다. 사대악인과 삼 공자가 나를 바라보는 와중에 내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천리객잔의 지분을 백의서생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네. 어쨌든 마지막 주인이 도살자였는데 내가 뺏은 거니까. 설마 객잔을 뺏겠다고 온 것은 아니겠지?”
나는 이렇게 말을 해놓고도 예상이 조금 엇나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아닌 모양이다.
색마가 막사를 설치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서 사부에게 물었다.
“사부님, 지금 다 죽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둬라. 저 정도 고수들을 일꾼으로 뒀다면 어쨌든 구경하러 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일부러 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예.”
우리는 각자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막사를 설치하는 일꾼들을 구경하면서 방금 먹었던 밥을 소화했다.
나는 이를 쑤시다가 말했다.
“하여간 세상에 미친 새끼들 많아. 으이구, 미친놈들.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