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1
21. 정이 없네.
빗소리를 들으면서 뜨거운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 그토록 세차게 퍼붓던 빗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다시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복도가 이전보다 조용해지더니 이어서 아래층에서도 잡다한 소리가 잦아들었다.
“…….”
내 오감과 경험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분위기를 자연스럽지 않은 ‘정적’에서 감지했다.
‘기습인가?’
정말 기습이라면 병장기도 없는 알몸의 상태에서 방문자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루가 조용한 것은 애초에 비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누군가를 부르거나 병장기를 가져오라는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로 욕조에서 기다렸다.
굳이 조씨 삼형제와 환도쌍귀를 죽인 시점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흑묘방은 아닐 것이다. 수금하는 놈들이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흑묘방의 고수가 찾아올 가능성은 적었다.
그렇다면 일양현 내부다.
이화루, 시화루에서 칼을 잘 쓰는 이인자들이 떠올랐다.
내가 예언자라서 이렇게 명확하게 아는 건 아니다.
다만 미래를 알고, 일양현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 얼추 다 알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이것은 예측이라서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중이었으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복도에서 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욕탕의 문이 열렸다.
나는 욕탕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냐?”
동네 놈들이니 당연히 아는 얼굴이다.
이화루의 송우금과 시화루의 유준구.
여기에 차성태를 더하면 아랫놈들이 ‘태금구’라 싸잡아 부르는 기루의 영가이자 지배인들이다.
내가 벌거벗은 몸으로 욕조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송우금과 유준구는 일언반구도 없이 칼을 쥔 채로 달려들었다.
그 짧은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고 죽이는 강호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벌거벗은 상태인 데다가 병장기도 없었지만…….
욕조가 있었다.
손날에 염계의 기를 끌어올리자마자, 욕조에서 뜯어낸 판자를 두 자루의 목검처럼 양손에 움켜쥐었다. 동시에 기파를 터트리면서 욕조의 물과 부서진 욕조의 잔해를 송우금과 유준구에게 튕겨냈다.
사방팔방으로 부서진 욕조의 잔해와 물이 송우금과 유준구에게 쇄도했다.
이어서 나는 나신의 상태로 욕조에서 뜯어낸 목검을 휘둘렀다.
두 명 모두 차성태만큼은 싸우는 놈들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병장기의 우위는 놈들에게 있었다.
내가 휘두른 목검이 송우금의 칼에 잘렸을 때, 나는 왼발로 송우금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이어서 유준구의 칼을 고갯짓으로 피하면서 그의 손을 목검으로 후려쳤다. 배를 얻어맞은 송우금이 새빨갛게 된 얼굴로 내게 다시 달려들고, 유준구는 칼을 놓친 다음에 아예 육탄전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처럼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거리를 유지했다.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물러나면서 목검에 염계의 기를 주입하면서 허공에 무차별적으로 그었다.
부앙! 소리가 들릴 때마다 판자로 만든 목검이 송우금과 유준구의 면상을 베고 지나갔다.
목검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나무 널빤지인지라 나는 여러 번의 공격을 적중시킬 생각으로 서 있는 두 놈을 난자하듯이 베어냈다.
삽시간에 예닐곱 번의 공격이 놈들의 얼굴과 상체, 팔을 긁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핏물이 터지듯이 솟구치면서 욕탕에 흩날렸다.
이놈들의 시체가 다른 놈들에게 경고가 되길 기원했다.
나는 두 놈이 죽을 때까지 널빤지를 휘둘러서 피범벅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너덜너덜해진 널빤지를 집어던졌다.
동시에 선 자세에서 널빤지에 베이고 있었던 놈들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금세 욕탕에는 새빨간 피가 흘러서 경사로를 따라 하수구에 모여들었다.
송우금과 유준구는 욕탕에서 자신들의 핏물에 잠겨서 죽은 상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한 자루 주운 다음에 알몸으로 욕탕을 빠져나가서 복도를 걸었다.
“성태야…….”
‘이놈들이 차성태와 합을 맞췄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은 죽었거나 혹은 이놈들의 수하들이 차성태를 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 입는 것을 까먹은 내가 알몸으로 돌아다니자, 복도에 있던 시비가 비명을 지르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시비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옷 좀 가져와라. 아무거나.”
“예.”
나는 여러 개의 방을 지나치면서 둘러보다가 말했다.
“손 부인은 어디 있나? 손 부인…….”
뒤쪽에서 시비가 어딘가에서 찾아낸 바지를 들고 달려왔다.
“바지만 찾았어요. 이거라도 먼저…….”
나는 시비가 가져온 바지를 입으면서 물었다.
“너는 손 부인, 못 봤어?”
“예.”
“눈치 빠른 것이 숨었나.”
사실 손 부인이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도망을 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내가 한가롭게 목욕 중이라는 이야기를 손 부인이 고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 부인부터 찾아다녔다.
덜덜 떨고 있는 시비를 바라보면서 내가 웃었다.
“손 부인이 정이 없네. 그렇지?”
“아, 예. 그렇습니다.”
나는 바지만 입은 채로 칼을 들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차성태가 죽었다면 차성태를 죽인 놈들을 다 찾아내서 죽일 생각이었고. 아직 살아있다면 가서 도와줄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송우금과 유준구는 기습을 택했을 것이다.
수하들은 내게 협조하고 있는 차성태에게 보내고, 저희들이 그래도 대장들이라고 단 두 명만 내게 온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바깥에 나와서 비에 젖은 길을 걷고 나서야 신발도 안 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와중에 바지가 자꾸 흘러내렸다. 잠시 칼을 땅에 박아 둔 다음에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대충 여미었다.
“차성태.”
내공을 담아서 부른 다음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자하객잔 방향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리고 있었는데 어조를 보아하니 욕지거리에 가까웠다.
나는 칼 한 자루를 쥔 채로 경공을 펼쳐서 자하객잔으로 향했다.
* * *
골목길의 담벼락에 등을 대고 있는 차성태는 얼굴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왼손에 쥔 단검을 붙잡고 있는 놈의 목에 대고, 오른손에 쥐고 있는 직도를 포위하고 있는 놈들에게 내밀고 있었다.
차성태가 무언가를 씹는 것처럼 말했다.
“준구가 시키드냐? 이 병신들아…….”
차성태를 포위한 자들은 아직도 열 명이 넘었다. 소몰이 당하듯이 한적한 자하객잔 방향으로 떠밀려서 오는 동안에 일곱 명을 차성태가 죽였으니, 차성태는 놀랍게도 총 십칠 대 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차성태의 직속 수하들이 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다.
환도쌍귀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이화루의 떨거지들과 이동하는 도중에 기습을 받았기 때문에 이화루의 떨거지들도 변심하듯이 돌아서서 차성태를 공격한 상황이었다.
확실히 이 동네는 이렇게 개판이다.
충분히 조심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이는 차성태의 실책이었다. 차성태가 평소에도 자신이 송우금과 유준구보다는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하들도 그렇고 본인의 실력도 실제로 그렇긴 했다.
그러나 차성태는 이렇게 많은 적을 홀로 상대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
차성태는 이놈들이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단검을 붙잡은 놈의 목에 박아 넣고, 직도를 휘두르면서 전진했다.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열 명을 빠르게 죽이는 것 이외에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차성태는 상대의 팔다리, 얼굴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공격했다. 자신의 팔이 베이는 와중에도 상대의 얼굴에 칼을 박아 넣고, 발차기에 맞아서 밀려나는 와중에도 바닥을 구르면서 보이는 발목마다 직도를 쑤셔 넣었다.
또다시 비명이 퍼져나갔다.
차성태는 빗물, 피, 흙탕물을 뒤집어쓴 얼굴로 일어나서 괜스레 호통을 한 번 내질렀다.
“들어와 이 개새끼들아!”
어차피 삼류들의 싸움은 기세가 중요하다. 이놈들은 송우금이나 유준구와 같은 대장들이 아니라서 이런 기세 싸움도 효과적으로 먹히는 떨거지들이었다.
이때, 동료애가 전혀 없는 놈이 부상을 당한 동료를 차성태 쪽으로 밀었다. 동시에 명령을 내렸다.
“한꺼번에 쳐.”
떠밀려서 도착한 놈이 차성태의 칼에 가슴이 뚫렸을 때.
나머지 놈들이 박도를 쥔 채로 동시에 달려들었다.
“에이 씨.”
차성태도 바보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났다.
다시 심리 상태가 뒤바뀌었을 때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때, 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인지라 잘 보이진 않았으나 또다시 푹! 소리가 들리더니 한 놈이 고꾸라졌다.
이어서 푸악!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한 개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제야 빌어먹을 점소이의 목소리가 차성태의 귀에 꽂혔다.
“갱생문주, 살아있나? 이야, 대단한데?”
차성태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살려줘!”
차성태는 반가운 와중에도 너무 흥분한 탓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개새끼야.”
* * *
나는 송우금과 유준구의 수하들에겐 별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갱생문주를 죽이려고 했으니 봐줄 수가 없었다. 솎아낸다는 생각으로 대부분 일 검으로 신체 일부분을 자르거나 박아 넣어서 바로 죽였다.
서너 명이 남았을 때, 차성태가 미친놈처럼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합세했다.
내가 칼을 거두자, 차성태가 악에 받친 미친놈처럼 날뛰면서 개인적인 복수를 손수 마쳤다.
푹푹푹! 소리와 차성태의 욕지거리가 잠시 합을 이루었다.
.
.
.
자하객잔 주변에 시체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다.
떨거지들을 죄다 죽인 차성태가 직도를 떨구면서 바닥에 주저앉더니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허억……허억……허억……후우……하아…….”
그러다가 차성태가 나를 위아래로 바라봤다.
나는 바지춤이 흘러내리지 않게 왼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신발은 없었고, 상체는 맨 몸이었다.
누가 봐도 목욕을 하다가 달려 나온 상태였다.
차성태는 내 이런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물었다.
“목욕하다 오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세찬 비가 멈추긴 했으나 흩날리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 목욕 여러 번 하네.”
그제야 긴장이 확 풀린 차성태가 허탈하다는 것처럼 웃었다.
“하아…….”
나는 쥐고 있는 칼을 내밀어서 차성태의 턱에 대고 말했다.
“성태야.”
“예.”
나는 차성태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너도 아직 내가 우습냐. 점소이라서?”
차성태는 사실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차성태를 조금 더 확실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벌어진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