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대군사 이자하
개방 방주가 내 앞을 든든하게 막아주는 사이에 삼만팔천오백 가지의 다채로운 전략을 떠올려봤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
과장되게 말하면 이 자리에 갑자기 교주가 등장해서 개방 방주를 돕지 않는 이상은 전력이 밀린다. 그럴 가능성은 교주가 깨달음을 얻어서 개방의 거지가 될 확률과 비슷하다.
문득 나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의 날씨도 맑음.’
개방 방주의 말이 들렸다.
“천악, 오랜만에 만났는데 일대일을 할까. 아니면 다 덤빌 테냐. 무엇이든 상관없다.”
천악서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늘은 그런 자리가 아닐세.”
어쩐지 오늘은 낭만이 섞인 싸움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개방 방주가 내게 말했다.
“……문주는 가지 않고 뭐 하는 게냐? 아직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백의서생이 말했다.
“자하야, 보내준다고 한 적이 없으니 거기 있도록.”
나는 개방 방주의 등 뒤에서 조용히 일월광천을 준비하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잠깐만 비켜보세요.”
방주가 몸을 돌리는 틈에 나는 일월광천을 휘감은 채로 돌진해서 세 명의 서생에게 달려들었다.
개방 방주와 백의서생의 외침이 동시에 터졌다.
“자하야!”
“조심!”
파지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일월광천이 완성되자마자, 깜짝 놀란 서생 세 명이 동시에 내게 손을 휘둘렀다. 나는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획대로 일월광천을 광막으로 전환하자마자 대(大)자 형태로 양팔을 크게 뻗었다.
삽시간에 내가 만들어낸 광막이 일대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도박이야.’
일월광천의 힘을 역천으로 전환한 광막의 빛줄기를 뽑아내서 삼재의 일원인 천악, 전생 악제인 백의서생, 도제를 죽였다는 실명서생의 절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광막의 반투명한 막 너머로 천악의 장력, 백의서생의 지법, 실명서생의 장력이 또렷하게 보였다.
굉음도 들리지 않았는데,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역천(逆天)의 광막에 부딪힌 서생들의 절기가 각자의 주인에게 되돌아가는 중이었으나, 내 몸도 폭풍에 떠밀린 것처럼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순간, 공중에서 개방 방주의 손이 내 팔목을 붙잡고 나는 개방 방주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나는 개방 방주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어당긴 다음에 묻지도 않은 채로 방주를 등에 업고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대군사(大軍師)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삼만팔천오백 가지의 전략 중에서 일단 줄행랑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뛰어나고,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의도적인 계획이다.
다음 계획은 달리면서 실행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역천의 광막이라는 희대의 절기를 서생들에게 노출한 게 끔찍할 정도로 안타까웠으나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등에 업힌 개방 방주에게 주둥아리를 털었다.
“방주님!”
“왜 갑자기 도망치는 게야!”
“방주님은 살아도, 제가 싸우다가 죽어요. 일단 제 이야기 잘 들으세요. 노신 걱정부터 좀 집어치우세요. 제자 때문에 방주님의 마음이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노신은 일단 안 죽습니다.”
“죽지 않겠나?”
역시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 죽어요! 저놈들, 방주님을 죽인 다음에 노신을 압박해서 노예처럼 부릴 겁니다. 그럼 개방이 넝쿨 채 굴러옵니다. 왜 죽이겠습니까? 개방을 장악하면 천하를 두고 다툴 때도 마교나 무림맹에 비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부터 안 밀립니다. 노신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절 걱정하세요.”
“그건 알았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뛰어야 하느냐? 내가 더 빠른데.”
“……잠시 업혀 계세요.”
“왜?”
“내공 아끼세요.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앞서 경공을 배울 때와 달리 방주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상태. 내가 지금 제운종을 쓰는 것인지, 기존에 익혔던 경공을 펼치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뒤섞어서 기존에 없었던 경공으로 달리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질주했다. 일부러 건물 뒤로 달려서 방향을 감추고, 담벼락이 보이면 그 뒤로 넘어갔다. 돌아가서 숨고, 질주하다가 돌아가고, 방향을 계속 뒤바꿔서 최대한 거리를 벌린 다음에 개활지에서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나는 거의 반 각을 앞서 달리다가, 기분이 싸늘해져서 방주에게 물었다.
“……벌써 따라옵니까?”
개방 방주가 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벌써 오는구나.”
당연히 나도 알 수 있었다. 뒤쪽에서 백의서생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귀신이 따라오는 것 같은 속도였다.
대체 어째서 저렇게 빨리 회복했을까?
광막으로 튕겨낸 절기를 어떻게 막아냈는지는 나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괜히 도망을 선택한 게 아니다.
“선배, 어차피 실명서생은 맹인이라서 이탈할 겁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천악과 백의서생만 따라올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방주가 내 말을 끊었다.
“……실명서생도 가마를 타고 등장했다.”
“예? 방금 가마라 하셨소? 가마는 반칙인데.”
방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인교(四人轎)를 짊어진 경공의 고수들이 실명서생을 짊어진 채로 따라오는데 속도가 제법 빠르구나.”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서생 셋이죠?”
“아직은 그 뒤에 서른 명이 넘는구나.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 천악과 백의서생이 선두로 나섰다.”
나는 전방을 주시하다가 왔던 길을 기억한 다음에 인적이 드문 평야를 향해서 질주했다. 개방 방주가 한결 침착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달려서 싸울 수나 있겠어?”
“제가 지치면 백의서생이나 천악도 호흡도 거칠어질 겁니다. 저는 당연히 선배만 믿고 있지요. 이제 저의 사마의 뺨따귀 치는 전략을 아시겠습니까?”
호흡이 거칠어진 천악과 백의서생에게 극진하게 업어서 모셔온 개방 방주를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거지들의 총대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방주가 웃었으니 됐다. 웃으면 복이 오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호흡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다.
‘아, 이러면 싸해지는데.’
어쨌거나 경공으로 최대한 서생들의 힘을 빼놓은 다음에 호흡과 내공이 멀쩡한 개방 방주를 내려놓아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 첫 번째 작전. 그 와중에 실명서생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겠다는 전략은 실패했다.
사인교가 등장할 줄이야.
개방 방주가 말했다.
“곧 따라잡힌다. 천악과 백의가 엄청 빠르구나. 실명은 계속 뒤처지고 있다.”
내가 주저 없이 도망친 것은 정말 냉정하게 판단해서 서생 셋이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쾌당주가 등장하거나 혹시 다른 서생도 있다면 필패였다. 왜 이런 의심까지 하느냐? 이것은 본능이자, 직감, 육감이다.
“다른 고수는 없습니까?”
“없는 모양이야. 백의서생이 무어라 지시하더니 뒤처지고 있는 병력 일부가 방향을 틀었다. 아마 임 맹주를 막아서 시간을 벌려는 모양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게야? 이쪽으로 가면 평야 너머에 절벽이 나온다.”
나는 달리는 와중에 의식의 흐름대로 대답했다.
“당연히 절벽으로 갑니다.”
이유는 하나다.
절벽으로 뛰어내려도 천악이나 백의서생의 추적은 뿌리칠 수 없겠지만, 실명서생은 따라오지 못할 터였다. 사인교를 떠받친 놈들이 아무리 고수여도 그것까진 무리다.
개방 방주가 뒤늦게 물었다.
“뛰어내리자는 말이야?”
“절벽을 건너든지 뛰어내려야죠. 눈먼 놈이 감히 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하나, 이제 내려줘야겠다.”
나는 등줄기가 서늘했다.
제법 먼 곳에서 “하오문주…….”라는 말이 들렸다가 같은 음색으로 순식간에 근처에서 “제법 빨라졌네?”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개방 방주를 내려놓았다.
신개가 땅을 밟자마자 장력을 쏟아내고.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터지더니, 내가 돌아섰을 때는 이미 개방 방주가 천악과 백의서생에게 장력을 쏟아내면서 이대일의 싸움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있었다. 더 멀리 도망쳤어야 서생들이 지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이 정도면 고수들의 싸움에서 호흡 한 번 정도를 이긴 셈이다. 두 서생이 아무리 뛰어나도 편하게 대비하고 있었던 개방 방주를 압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터였다.
나도 잠시 거친 호흡을 고르면서 싸움을 구경했다.
“…….”
방주는 쌍장에서 싯누런 빛을 내뿜고 있어서 황룡(黃龍)이 날뛰는 것처럼 보였고. 몸놀림이 빨라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에 싯누런 장력은 궤적이 보였기 때문에 용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천악은 머리를 안 감은 미친 호랑이가 날뛰는 것처럼 싸웠다. 언뜻 얼굴이 보일 때마다 이빨을 드러낸 채로 웃고 있었다.
그 와중에 덤덤한 표정으로 싸우고 있는 백의서생의 움직임은 영약을 잔뜩 처먹은 백학(白鶴)을 보는 것처럼 경쾌하면서도 얍삽했다.
‘저 얍삽한 새끼.’
죽을 것처럼 달렸더니 내 예상대로 천악과 백의서생만 도착한 상태. 저 염치 없는 서생 놈들이 다짜고짜 합공을 펼치고 있었지만 내 눈에도 개방 방주가 밀린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좋다. 일단 확인.’
순식간에 세 사람이 보법을 펼치는 곳마다 땅이 움푹 파이더니, 귀청이 터질 것 같은 굉음 때문에 정상적인 호흡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막상 싸움에 돌입하자, 세 사람은 아예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웬만한 고수들은 끼어들 수도 없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개방 방주를 믿지 않으면 대체 누구를 믿으랴?
나는 이대일로 싸우는 개방 방주를 잠시 내버려 둔 다음에 경공을 펼쳐서 거리를 벌렸다가 땅이 약간 움푹 파인 장소를 찾아내서 엎드렸다. 사막에서 돌아다니던 정체불명의 작은 동물처럼 고개만 살짝 내민 다음에 정찰을 시작했다.
“후… 자괴감 어서 오고.”
곧 있으면 실명서생의 사인교가 도착할 터였다.
황보세가의 도제를 죽인 실력이면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내가 주저 없이 도주를 택한 이유는 실명서생이 어쨌든 간에 제천맹주보다도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대일로는 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자괴감과 분노가 밀려들고 있었다.
삽시간에 대략 일만이천삼백 가지의 전략을 떠올려봤다. 병신처럼 내면에서 분노를 끌어내야 자하신공을 원활하게 쓸 수 있는데, 잔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분노라는 감정이 시큰둥해진 병신 같은 상황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만, 내 안의 광마가 나를 돕지 않는 상황이랄까.
‘염병할…….’
나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자마자, 미리 목검을 뽑아서 기습을 준비했다.
‘기습대장 차성태입니다.’
아, 제기랄.
이딴 상황에서 쓸데없는 차성태의 말이 떠오르다니.
어쨌든 지금은 기습대장 이자하가 되어야 하는 순간. 이렇게 보니까 사인교도 엄청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실로 애처로워 보였다.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놈들은 맹인을 가마에 태운 채로 저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너희는 오늘 죽어줘야겠어.’
나는 사인교가 근처를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나면서 낮게 검기를 뿌렸다.
쐐애애애애액!
타점을 낮춘 다음에, 미친놈처럼 검을 휘둘러서 검기를 마구잡이로 쏟아내자 가마 위에 있었던 실명서생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어차피 내가 공격하려던 것은 가마꾼이다.
삽시간에 다리가 잘려나간 가마꾼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널브러졌다. 솔직히 이 정도 검기에 쉽게 당할 놈들은 아니었는데, 아마 저놈들은 노예처럼 살아서 가마를 내팽개치는 게 어려웠을 터였다. 그 찰나에 다리를 잘랐다.
나는 그제야 검을 하단으로 내린 채로 실명서생에게 다가갔다.
가마꾼들이 계속 신음을 쏟아내야만 실명서생의 청각을 어지럽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땅에 내려선 실명서생이 가차 없이 칼을 몇 번 휘두르더니, 흐느끼는 가마꾼들의 목숨을 전부 끊어낸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
눈먼 놈과 눈싸움을 하는 사람, 그것이 나다.
소름…….
시커먼 눈동자가 없는 백안(白眼)이 나를 주시했다.
“하오문주냐?”
혹시나 해서 옆으로 이동해봤더니 실명서생의 고개도 내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변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나가던 검객인데 무슨 일이신가.”
실명서생이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죽을 때도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실명서생이 귀신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목검으로 검풍을 쏟아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일부러 요란하게 땅을 쓸어 담는 듯한 보법을 펼쳐서 흙먼지를 피어오르게 한 다음에 전부 검풍으로 싸잡아서 실명서생을 공격했다.
하지만 실명서생은 칼질 몇 번에 미세먼지를 날리더니 맑은 하늘을 내게 선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좋았어. 제대로 붙어보자고. 그전에 통성명부터 합시다.”
“닥쳐라.”
“개새끼.”
실명서생이 달려드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목검을 우하단으로 내리면서 도망쳤다.
눈이 먼 서생이었지만, 아주 잘 따라왔다.
등 뒤에서 검기가 날아올 때마다 나는 보지도 않은 채로 공중제비를 돌고, 옆으로 돌고, 공중에 뜬 채로 비스듬히 누워서 검기를 피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이 뛰었더니 이것도 제법 힘들어서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내적 갈등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철저하게 이용해야 하는 법.
그냥 계속 도망쳤다.
두 눈을 잃은 사내한테 경공 싸움에서 패배할 내가 아니다.
“서생, 경공부터 겨뤄볼까?”
“일문의 문주가 이런 식으로 도망을 치다니 부끄럽지 않으냐?”
나는 후다닥 도망치는 와중에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끄러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 말은 뭐냐? 뻔뻔하다는 뜻이지.”
나는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면서 열심히 도망쳤다. 무림맹에게도 쫓겨보고, 마교한테도 쫓겨보고, 눈이 먼 사내에게도 쫓겨보는 삼대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 고금을 통틀어서 있었는가, 없었는가.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이 말이야.
절벽으로 도망치다 보니까, 갑자기 근처에서 서생들의 수하가 등장해서 일대를 잔뜩 포위했다. 어디선가 칠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포위당하셨습니다.”
나는 칠겸을 찾아낸 다음에 대답했다.
“일부러 갇혔다. 너는 옛정을 봐서 살려줄 테니 이만 뒤로 빠지도록.”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면서 둘러보자…….
평소에 만나기 힘든 무명 고수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나를 원숭이 보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칠겸이 내게 항복을 권했다.
“무릎을 꿇고 포박을 받으시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노예 대우는 해드려야죠.”
칠겸의 말에 포위망을 구축한 자들이 낮게 깔린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안색을 굳힌 다음에 실명서생에게 말했다.
“서생, 수하들에게 예의를 안 가르쳤나? 내가 너희 적이긴 하나 일문의 수장이다. 밑에 놈들이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실명서생이 칠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했다.
“입조심하도록.”
나는 목검을 집어넣은 다음에 양손을 늘어뜨린 채로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차피 실명서생은 눈이 멀어서 단체전에 불리하다. 수하들에게 맡겨놨다가 원기를 회복하고 있을 터였다.
서생의 수하들은 내 보호막이다. 서서히 오랏줄이 좁혀들 듯이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일만(一萬), 아니 한 가지 수법만을 떠올렸다.
‘통할까? 통해야 살 수 있다.’
나는 색마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빙공으로 여인을 꽁꽁 얼린 다음에 대체 뭘 하려고 했을까?
드디어 내 안에서 월영무정공에서 출발한 차갑고 싸늘한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새롭게 펼칠 절기의 이름이 막상 떠오르지 않아서 의식의 흐름대로 중얼거렸다.
“색마,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