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4
24. 교환 법칙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교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연자성이라는 좋은 사람이 찾아온 것과 균형을 맞추려는 것처럼 반갑지 않은 놈들이 찾아온 상태.
복장을 맞춰 입은 두 사람이 길을 틀어막은 상태에서 젊은 놈이 내게 물었다.
“이자하 루주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했다.
“아니, 점소이다.”
대답을 들은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흑묘방의 전령인 혁련홍이라 합니다. 윗분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또 흑묘방이냐?”
나는 두 사람의 기도를 살피는 와중에 한 놈이 큼지막한 보자기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자기에 들어있는 것은 특이한 병장기거나, 특이한 암기일 확률이 높았다.
둘 다 아니라면 사람의 머리가 들어있을 터였다.
혁련홍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본 방의 금봉각주(金鳳閣主)께서 보자 하십니다.”
“금봉각주가 누구냐. 보기 싫으니까 싫다고 전해. 금봉이라 그러니까 돈만 밝히는 냄새나는 중년인 같구나.”
혁련홍은 내 막말에도 딱히 반응이 없었다.
나는 사실 금봉각주라는 사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름은 반사웅(潘思熊).
본 적은 없으나 이름은 자주 들었다.
흑묘방의 자금을 몰래 빼돌렸던 것이 감찰에게 발각되어서 오체분시(五體分屍) 당하는 놈이 반사웅 금봉각주였다.
한마디로 돈에 미친 놈이다.
금봉각주는 흑묘방의 이권과 관련된 일을 맡은 사내여서 무공 서열과는 상관없는 흑묘방의 중진이었다. 윗선에 바치는 돈이 많아서 젊은 나이에 각주로 승진한 특이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일양현이 나중에 피해를 입는 것은 모두 이놈의 명령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하를 닦달했기 때문에 그 수하들이 연쇄작용으로 힘없는 자들을 쥐어 짜냈으니까.
흑도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인물이라는 것은 수완이 잔인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반사웅은 흑묘방의 일과 상관이 없는 살인청부업으로도 돈을 축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래저래 욕먹는 짓은 모조리 다 하는 놈이 바로 반사웅이었다.
흑도에는 이런 놈들이 즐비해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혁련홍이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살수를 보내지 않고 초대를 한 것이니 거절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돌아가고 그다음에는 살수들이 오겠지요. 이자하 루주님.”
혁련홍은 내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스스로 우스웠는지 말을 하는 와중에 피식 웃곤 했다.
“외통수로군.”
“그렇습니다.”
“언제 보자는 거냐?”
“멀지 않은 곳에서 사냥하고 계십니다. 빠를수록 좋겠지요.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함께 출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보자기 안에 든 것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건 뭔데 들고 있나? 보여주려고 가져온 것 같은데.”
“아, 보여드려야지요.”
혁련홍이 보자기를 들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더니 턱짓을 했다. 그러자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보자기를 올려서 안에 들어있는 것을 내보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자들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전풍과 한고욱이었다.
협박용으로 두 놈의 머리를 가져온 모양이었는데, 이런 협박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내 술친구들을 함부로 죽이다니.”
혁련홍이 말했다.
“두 사람이 일양현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면서도 은폐했더군요. 덕분에 상황 파악이 늦어졌으니 이는 큰 죄입니다. 두 사람에게 고문하면서 들어보니 사연이 아주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루주께서는 술만 마시게 했을 뿐이라던데 맞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혁련홍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루주를 살렸습니다. 금봉각주님께서는 그 부분이 재미있다고 하시더군요. 바로 살수를 보내지 않은 것도 루주에게 흥미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죽여야 할 것인지, 보내줘야 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겨우 죽인다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상자를 들고 있는 호위가 갑자기 혁련홍의 어깨를 붙잡더니 경공을 펼쳐서 뒤로 물러났다.
파바바박…….
어찌나 급했는지 발걸음 소리가 요란했다.
혁련홍이 거리를 벌린 다음에 말했다.
“루주님? 저희는 말을 전하러 왔을 뿐입니다. 살기가 정말 짙으시군요.”
“설레발은…….”
나는 두 사람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전풍과 한고욱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여 놓고 나를 부르면 내가 가야 하나? 나는 사지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데.”
혁련홍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꾸했다.
“두려움을 느끼신다면 도망치십시오. 흑묘방과 엮이기 싫어서 도망친 자는 꽤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양현에서 무고한 살생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서로 좋은 일이죠.”
이 말은 즉, 내가 일양현에서 우두머리 행세를 계속하려면 흑묘방에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서 일양현에는 얼씬거리지 않으면 살려주겠다는 통보였다.
“도망치라고?”
혁련홍이 씨익 웃었다.
“예.”
“사내가 그럴 수는 없지.”
혁련홍이 물었다.
“어떻게? 저녁까지 시간을 드릴까요? 아니면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흑묘방은 일 처리가 능숙해서 짐짓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협상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혁련홍이 말했다.
“참고로 저희는 루주와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아쉽군.”
아마도 이제 흑묘방에 소속된 자라면 절대로 나와 술을 마시지 않을 터였다.
흑묘방이 이렇게 나오면 나도 별 방법이 없다.
만나보는 수밖에.
나는 양팔을 벌려서 내 복장 상태를 보라는 것처럼 말했다.
“이런 꼴로 방문하긴 어렵고. 옷이나 좀 잘 차려입은 다음에 함께 가도록 하지. 그래도 흑묘방의 실세라는 분을 만나러 가는데 의복은 제대로 갖춰야지. 지금은 너무 점소이 같아서 말이야.”
혁련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합니다. 점소이 같군요.”
“…….”
“앞장서시죠. 따르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꼬리처럼 매달고선 매화루로 향했다.
* * *
나는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차성태에게 목적지를 밝혔다.
“흑묘방의 금봉각주를 만나고 와야겠다.”
“금봉각주요? 그놈 돈만 밝히는 살인마가 아닙니까.”
차성태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게 지난번에 왔었던 전풍과 한고욱도 죽었더군. 목이 잘렸어.”
“그런데 가시겠다고요?”
“불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거다.”
차성태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혼자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애들 다 끌어모으겠습니다. 전쟁 한 번 하시죠.”
나는 차성태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철이 없네.’
동네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심심한 것은 둘째 치고 국밥 먹을 곳도 없고, 술 먹을 곳도 없고, 병장기 만들 곳도 없어지고, 옷 뺏어 입을 놈도 없게 된다.
숨만 쉬고 있어도 외로운 판국인데 이놈들까지 사라지면 당장 이마에 광마(狂魔)라는 별호를 써 붙이고 다녀야 할 상태였다.
“참아라. 나 혼자 가련다.”
“미치셨습니까? 가면 십중팔구 죽어요.”
차성태가 문득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라도 함께 가겠습니다.”
“진심이야?”
잠시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차성태가 곤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심은 아닙니다.”
나는 차성태의 머리를 오랜만에 후려쳤다.
“주둥아리 하여간, 다녀올 테니 갱생하고 있어라.”
차성태가 문득 자신의 장삼을 벗더니 내게 입혔다. 매번 옷을 뺏어 입었더니 이번에는 순순히 먼저 내주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이것도 아끼는 장삼이냐? 옷이 많네.”
“아끼는 장삼이죠.”
“찢어질 수도 있다.”
“넝마로 만들어도 됩니다.”
나는 차성태의 어깨를 툭 친 다음에 방을 나섰다.
“다녀오마.”
차성태는 포권을 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갱생.”
갱생이라는 말이 무슨 구호처럼 들렸다.
* * *
차성태는 청루로 운영되던 세 기루를 홍루로 변화시켜야 할 임무가 있고.
연자성은 새로운 자하객잔을 만들기 위에 비지땀을 흘릴 시기다.
금철용은 여전히 내게 선물할 병장기인 광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장득수는 오늘도 국밥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할 터였다.
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와중에…….
나는 다시 일인살문(一人殺門)의 문주가 되었다.
각자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법이다.
혁련홍이 복장을 갈아입은 나를 위아래로 살피면서 말했다.
“본래 신수가 훤하셨군. 가시지요.”
“흑도의 끄나풀 여러분, 갑시다.”
“예?”
“가자고.”
혁련홍이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끄응 소리를 내면서 도로 삼켰다. 윗사람의 명령이 데려오라는 것이었으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것이 혁련홍의 입장이었다.
걷는 동안 우리 셋은 대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반 시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호산으로 가는 건가?”
“맞습니다. 방주님이 부르시는 거면 본단으로 가겠으나 지금은 금봉각주님을 뵈러 가는 터라 사냥터 근처의 산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본단은 신원이 불확실한 자들은 아예 들이질 않습니다.”
나는 아는 대로 대꾸했다.
“다른 십이신장 때문에?”
혁련홍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예, 그렇습니다. 역용술에 뛰어난 십이신장도 계시니까요. 이제 보니 강호 사정에 밝으셨군요. 젊은 루주께서.”
다시 산길을 오르면서 내가 말했다.
“객잔에서 술을 팔다 보면 이런저런 소식을 많이 듣게 돼.”
혁련홍이 피식 웃었다.
“객잔 점소이가 어찌 십이신장의 소식을 알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그나저나 흑묘방에 소속된 자가 개인 산장을 가져도 되나?”
“안 될 게 있겠습니까? 흑묘방에 들어가시기도 전에 가지고 계시던 산장이었으니까요. 사냥을 좋아하셔서 곳곳에 산장을 가지고 계십니다.”
“부자였군.”
“부자시죠. 저희도 그래서 편합니다. 수하들을 불러 모아서 고기도 구워 먹고, 하루 정도 마음 편하게 쉬고 싶으실 때는 산장에 머무르십니다.”
“흑묘방주가 알면 좋아하겠군.”
금봉각주는 나중에 흑묘방주에게 죽는 놈이라서 빈정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혁련홍이 피식대면서 말했다.
“그런 말씀은 각주님 앞에서 자제하십시오. 성격이 불같은 분이라…….”
성격이 불같다고……?
나도 혁련홍처럼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금봉각주의 개인 산장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터였다.
혁련홍의 말대로 휴가처이기도 하고, 처리할 놈들을 데려와서 파묻거나 소각시키는 장소이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뜯어낸 자금을 숨겨 두는 비밀 전장일 가능성이 컸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야 이해하지 못할 일이겠으나 흑묘방은 흑도다.
거기에 속한 놈들이 별의별 해괴한 짓을 벌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 시진 정도를 속보로 걷고 나서야 산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중앙에 높은 철문이 세워져 있고, 그 철문에서 이어지는 담벼락은 넝쿨에 뒤덮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산장이라기보다는 절벽을 등지고 있는 요새에 가까워서 철문만 넝쿨로 가려 놓으면 안가(安家)나 다름이 없었다.
확실히 구린 일을 처리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혁련홍이 철문 앞에서 보고했다.
“혁련홍, 복귀했습니다. 이자하 루주를 데려왔습니다.”
안쪽에서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철문이 열렸다.
혁련홍을 따라서 안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산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고, 넓은 중앙 자리에는 모닥불이 있었다.
그 모닥불 옆에 의자에 앉아 있는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보였다.
첫인상만 봐도 자비심이 전혀 없는 인간이라는 게 아주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