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구도로 흘러가면 백도가 계속 밀릴 것 같다. 서생들과 마교가 먼저 붙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말이다. 묘하게도 백의서생이 은근히 말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천악과 나 둘 중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음.”
생각해보니까 백의서생과 내가 없었더라면 천악과 개방 방주는 예전처럼 삼일 밤낮을 싸웠을 터였다.
개방 방주는 백도가 밀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정작 본인이 백도의 최대 전력이라는 점은 까먹은 것일까. 이렇게 위기를 넘겼으니 전생처럼 크게 밀리진 않을 터였다. 서생 쪽이 다시 개방 방주를 없애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나는 개방 방주에게 조언했다.
“임 맹주나 저와 종종 연락하시면 앞으로 큰일은 없을 겁니다.”
개방 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을 주기 싫었는데. 그렇게 하마. 그나저나 무공은 천악이 더 뛰어나지만, 백의서생이 군사 역할인 것 같더구나. 속을 알 수가 없는 자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가 맞을 겁니다.”
문득 개방 방주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자하야, 차라리 내 내공을 네게 모두 줄 터이니 네가 다음 싸움을 감당해보겠느냐?”
나는 바로 대답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싫습니다.”
“왜? 내공은 삼재와 겨뤄도 밀리지 않을 것인데.”
“신체도 격이 있습니다. 그릇이 터집니다.”
“너는 참 이것저것 잘 터지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반복 수련으로 확장 공사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빨리 강해지면 고수가 늘어나는 것이니 그게 더 이득입니다. 두 명을 한 명으로 줄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개방 방주가 진지한 어조로 내게 물었다.
“혹시 그런 생각도 무학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저는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중입니다. 대단한 무공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객잔에서, 골목에서, 길거리에서 싸움질부터 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시작한 거 중간을 건너뛰는 법 없이 제대로 올라가겠습니다.”
개방 방주가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웃었다.
“좋다. 좋은 생각이야. 나도 사실은 밑바닥부터 올라갔는데 중간에는 많이 건너뛰었지. 그래서 다음 경지가 힘든 것인가. 모르겠구나.”
솔직히 나라고 개방 방주의 내공이 왜 부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것이 아니다.
방주가 약해지면 개방의 거지들은 어떡하라고?
나는 하오문을 보살피는 것도 못 하고 있다.
우리는 다리로 다시 복구해서 노신을 찾았다. 여전히 다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싸운 흔적은 남아 있었다. 핏자국, 떨어진 병장기, 부서진 돌멩이들이 보였다.
다리를 넘어서 살피다가 노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생의 잔당과 싸웠던 모양인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거지처럼 앉아 있었다.
“…….”
노신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면 아마 백의서생의 상위권 제자와 맞붙었을 터였다. 가까이서 보니 노신의 피가 아니라 서생 일당을 때려죽이면서 튀었던 피가 얼굴에 잔뜩 묻은 상태였다.
나는 방주에게 물었다.
“선배님, 이야기 좀 하시겠습니까?”
끼어들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지금은 피하는 게 맞다.
개방 방주가 나를 바라봤다.
“가려고?”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신개가 내 등을 두드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주가 제자에게 걸어가는 것을 잠시 바라봤다. 노신과 눈을 마주쳤으나, 노신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주와는 어차피 이미 정신적으로 결속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헤어져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터였다.
이제 개방을 공격하는 무리는 나를 공격하는 무리로 간주할 생각이다. 천악이 돌아간 데다가 무림맹이 합류할 수도 있어서 큰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는 갑자기 혼자 먹고 싶은 게 떠올라서 정처 없이 걷다가 간판도 없는 반점으로 들어갔다.
밥, 내장 볶음, 술을 시킨 다음에 기다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개방이 일양현 근처에 지부를 만들었으니 나도 개방 근처에 하오문 지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새삼스럽게 개방도 규율이 엉망이지만.
내가 만든 하오문도 사실 개판이다. 아마도 내가 개판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생업을 가진 자들을 하오문에 포함시킬 생각이라서 문파처럼 빠듯하게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 성격을 안다.
꼼꼼함이 없다.
제대로 된 문파는 나중에 제자에게 맡기고. 하오문은 그냥 내 성격대로 개판으로 놔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귀찮아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장 볶음을 먹으면서 밥 한 공기를 해치우자.
반점 입구에서 누군가가 등장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문주님, 여기 계셨군요.”
나는 무림맹원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하셨소?”
무림맹원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직 못 먹었습니다. 식사 마저 하시고 나오십시오. 다리 쪽에 맹주님이 와 계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저 내장 볶음을 먹었으나, 무림맹주가 직접 달려왔다는 사실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면 엄청 빠른 속도로 진격해서 신개에게 도착한 셈이었다. 물론 이미 사태는 종결됐지만 여기까지 맹주가 직접 온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맹주와 재회하기 전에 술을 마저 마셨다.
신개가 제자와 대화하고, 다시 맹주와도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은 것 같아서 일부러 늑장을 부렸다.
슬슬 일어나려는데 바깥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임소백 맹주와 신개가 반점으로 들어왔다.
나는 혼자 먹고 있다가 걸린 상태라서 손으로 입을 닦았다.
임소백이 내게 물었다.
“문주, 선배님을 놔두고 밥을 혼자 먹었나?”
개방 방주가 나를 쳐다봤다.
“그거 못 기다려서 혼자 먹었나? 나도 아까 배고프다고 했을 텐데. 다시 앉아라.”
나는 임소백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한 다음에 도로 앉았다. 이제 보니 임소백의 옆머리에 흰머리가 조금 늘어 있었다.
나는 주방을 향해 주문했다.
“밥 세 그릇. 내장 볶음은 대자로. 술도 한 병 더.”
“알겠습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 새삼스럽게 돌아보자, 눈앞에 삼재와 무림맹주가 반점에 앉아 있었다.
‘아이, 깜짝이야.’
순간, 날 잡으러 온 고수들처럼 느껴졌으나 그건 아니다. 전생의 정신적인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무림공적은 옛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무림맹주라는 이름이 주는 본연의 압박감은 여전했다. 아마 많은 책임을 가진 이름이어서 그럴 터였다.
“맹주님, 잘 지냈습니까?”
임소백이 나를 바라봤다.
“자네는?”
“저는 여기저기서 싸우느라 바빴습니다.”
임소백이 웃었다.
“나도 놀지는 않았네. 선배님.”
“응?”
임소백이 개방 방주에게 물었다.
“어쩌다 인연이 닿았습니까?”
“소식이 많이 들리기에 찾아갔었네.”
“선배님이 직접이요?”
“그래.”
임소백이 신기하다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그제야 점소이처럼 두 사람 앞에 잔을 놓은 다음에 술을 따랐다. 나도 이제 제법 무공이 강해지고, 하오문도 이끌고 있고, 명성도 제법 퍼지는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눈앞에 삼재와 무림맹주가 있어서 또 점소이였다.
‘내 팔자야.’
나는 술을 따른 다음에 물었다.
“아, 노신 형은 어떻게 됐습니까?”
신개가 대답했다.
“맹주가 와서 길게 이야기하진 못했는데……잠시 무림맹으로 보내기로 했네.”
“예?”
신개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지에 어울리지 않아. 죄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이 나쁜 것도 아니고. 맹주에게 배울 게 많을 거야. 부담인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임소백이 고개를 저었다.
“노신이면 환영이죠. 경공도 빠르고, 무공도 강하니까……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맹에는 나름대로 법이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너무 큰 죄를 지으면 선배님에게 알리지 않고 원칙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예.”
나는 대화를 들으면서 역시 무림맹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놈이 들어가면 뻔하다. 상관 폭행죄 같은 것으로 강호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뇌옥에서 활약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터였다.
우리는 그제야 나온 내장 볶음을 맞이하면서 젓가락을 다시 붙잡았다.
“제가 살 테니 드세요.”
맹주와 개방 방주가 젓가락을 비비더니 내장 볶음을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서로를 바라봤다.
맛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젓가락을 깨작대면서 두 사람이 밥 먹는 것을 구경했다.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내가 접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밥을 아주 맛있게 잘 먹는 사내들이었다.
개방 방주가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아까 천악과 잠시 겨뤘네.”
무림맹주가 “끅.” 소리를 내더니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맹주에게 술을 따라준 다음에 어서 마시라고 손짓했다.
술을 마신 임소백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래서 부르신 겁니까?”
“나름 위기였는데 싸우다가 보니까 이상하게 마무리되었네.”
“예.”
임소백이 갑자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또 터트렸나?”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사레가 들렸다. 개방 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도 알고 있었구나.”
“예. 알죠.”
나는 무림맹주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이 술맛은 뭐랄까. 내장 볶음이 살짝 섞인 웅장한 맛이랄까. 백도제일고수와 무림맹주가 다녀간 반점이라서 간판을 파격적으로 바꿔도 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무림맹주도 다녀간 내장 볶음 맛집 정도?
나는 미리 일어나서 음식값을 계산한 다음에 다시 앉았다. 바깥이 약간 소란스러웠으나 어차피 맹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을 게 뻔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까.
개방 방주도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고.
무림맹주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고생한 사람이라서 나는 주둥아리를 최대한 닥친 상태에서 술을 따라주고, 물도 따라주고 시중이나 들었다.
잠시 후에 개방 방주가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다.”
“일어나실까요?”
방주가 맹주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바쁠 텐데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하네.”
임소백이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별일 없었으니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행군했더니 몸도 풀고 좋군요.”
나는 무림맹주도 다녀간 내장 볶음 맛집에서 나와서 선배들과 바깥을 주시했다. 예상대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맹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명의 사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침착한 맹원들과는 표정도 달랐다.
딱 봐도 범죄나 저질렀다가 무림맹에 쫓겼을 것 같은 못된 놈들이 나란히 서서 감히 백도제일고수와 무림맹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임소백이 말했다.
“검마, 자네까지 달려오다니 놀랍군.”
검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색마와 귀마는 임소백에게 포권을 취했다.
“맹주님.”
이렇게 보니까 개방의 고수들도 섞여 있었다. 사대악인은 개방의 연락을 받아서 이제 도착한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이 악인들은 개방 방주를 알아볼 것인가. 존재감이 하도 없어서 다들 무림맹주만 쳐다보고 있었다.
개방 방주가 임소백에게 물었다.
“검마라니? 내가 아는 검마인가.”
“그럴 겁니다. 마교에서 스스로 나온 검마입니다.”
그제야 개방 방주가 놀란 표정으로 검마에게 말했다.
“자네가 옛 좌사인가?”
검마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개방 방주를 바라봤다.
“누구시오?”
개방 방주가 대답했다.
“나 예전에 그 교주 놈이랑 싸웠던 사람일세.”
검마, 귀마, 색마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개방 방주를 바라봤다.
“…….”
전혀 못 믿는 눈치여서 내가 나섰다.
“개방의 방주님이시다. 삼재의 일원이시고.”
악인들, 어서 오고.
순간 이 세 악인은 꼴에 강호인이랍시고 연신 눈알을 굴리면서 개방 방주의 기도를 살폈다. 알 수 있는 게 없을 터였다. 실력 문제가 아니라 방주는 내려놓음의 미학을 완벽하게 터득한 사내라서 그렇다.
이제 보니까 개방 방주는 일부러 존재감을 지운 상태에서 세 사람의 표정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소름……시험 중이네?’
내가 먼저 당해봤기 때문에 개방 방주의 의도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검마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백도의 삼재셨다니 반갑소.”
역시 검마다운 인사가 흘러나왔다. 다음!
귀마가 포권을 취했다.
“방주님, 후배는 육합이라 합니다.”
삼재 앞이라서 선생이라는 칭호를 일부러 뺀 모양이다. 다음!
색마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선배님, 풍운몽가의 차남 몽연이라 합니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식적인 인사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썩을 놈.
그제야 개방 방주가 활짝 웃으면서 달려온 사내들을 둘러봤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하오문주를 도우러 왔군. 문주와 잘 어울리는 후배들이야. 자네 지인들이지?”
방주의 말에 무림맹원을 포함한 맹주, 개방 방주, 거지들, 사대악인들이 전부 나를 바라봤다.
“예.”
방주가 내게 물었다.
“의형제들인가?”
“뭐 의형제까진 아니고요. 그냥 술친구들입니다.”
“술친구라고 하기엔 다들 한 성질 하게 생겼는데? 실력도 좋고.”
“그렇습니까?”
나는 문득 무림맹주와 눈을 마주쳤다가 쓸데없는 말을 내뱉었다.
“……다들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무림맹주가 눈을 껌벅이다가 대답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내 속을 알까?
사고를 많이 치다 보면 무림맹주 앞에서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쩐지 내가 나중에 맹주보다 강해져도 이런 기분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삼재와 무림맹주가 한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사대악인들도 말이 없었다.
나는 이 악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죄가 많은 자들은 대체로 이렇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