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쓸데없는 인기를 얻었다.
나는 검마가 복귀하는 것을 보면서 제왕비무전은 현재 절반 정도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
무제와 검왕이 임소백에게 도전하지 않은 채로 비무를 잘 마쳤기 때문이다.
목적을 거의 달성한 셈이다.
어차피 도왕은 전날에 임소백과 대화를 충분히 나눈 상태고. 권왕은 본래 독립적인 인간인 데다가 맹주 자리에 관심이 없는 사내다. 그것은 제자인 이군악도 마찬가지. 이들은 오히려 그냥 순수한 무인에 가깝다.
남은 것은 남궁세가의 검제인데…….
비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 언제 나설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제왕비무전을 내가 전부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소백이 직접 나서서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검마가 조용히 돌아와서 앉는 동안에도 우리는 일단 입을 닥치고 있었다.
유일하게 색마가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사부님, 고생하셨습니다.”
검마는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괜히 왼쪽 팔에 관한 것도 묻지 않았다.
더군다나 검마가 본래 십삼 호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살짝 무거웠다.
만약 마교를 나와서 검마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본 적이 있다면 그것 또한 검마의 어두운 면에 일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납치하는 과정에서 다 죽었을 테니까.
“…….”
사실 이런 순간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잠시 그냥 닥치고 있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훌륭한 태도로 비무를 해준 군검왕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는 비무 도중에 넋을 놓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맏형을 점잖게 기다려줬으니 말이다.
다음 비무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공손월이 어딘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신북오호의 도수(渡水) 공자께서 하실 말씀 있습니까?”
관중 속에서 얼굴 허연 놈이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까 누가 이겼느냐고 질문한 사내도 저놈 같다. 모여 있는 곳을 둘러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오호가 백의서생 쪽에 많이 앉아 있었네.’
어쩐지 작명의 분위기도 서생들의 제자와 좀 어울려 보였다. 백의서생은 처음부터 오호에 속한 고수로 추정되는 사내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전생에도 백의서생은 백도에 깊숙이 관여했었다는 뜻이 된다.
도수 공자가 말했다.
“제왕 선배들의 비무 잘 봤습니다. 이 후배가 감히 한 말씀을 올리자면, 오늘 이 자리에는 신남의 육룡과 신북의 오호라 불리는 후기지수 대다수가 모여 있습니다. 언젠가, 맹주님의 언급으로 신남의 사룡은 비무 한번 없이 육룡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참에 군웅들 앞에서 후기지수 최강이 과연 누구인지 가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제 비무 한두 번을 진행하면 곧 날이 어두워집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맹에서는 식사 시간이 매우 규칙적이고 그것은 손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공손월은 임소백을 쳐다봤다.
“맹주님?”
임소백이 도수 공자를 쳐다봤다.
“후기지수 최강이라…… 자네 형인가?”
“제 형님은 이미 나이가 서른을 넘어 후기지수로 불리는 시절이 지났습니다. 저 또한 궁금해서 이 기회에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돌려 말하지 말고, 자네가 생각하는 후기지수 최강은 그럼 누구인가?”
도수 공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접니다.”
임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등평(登萍)과 도수 형제가 오호에서도 특히 강하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다. 언젠가는 후배라 불리던 자들이 제왕이 될 것이니 이 또한 중요한 비무겠지. 비무대로 올라오게.”
도수 공자가 임소백에게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이름이다. 둘을 합치면 경공의 경지를 종종 뜻하는 등평도수(登萍渡水)라서 그렇다.
경공의 경지를 별호로 삼았기 때문일까?
나는 등평도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쾌당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서생 쪽의 제자라면 당연히 후기지수 중에서도 최강 자리에 근접했을 터였다.
그리고 내가 광마로 한참 활동하던 시기에는 오호가 유명하지 않았다.
아마 무슨 일이 있어서 싹 다 죽은 모양이다. 마교에게 죽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임소백에게 붙잡혀서 죽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놈들의 운명까지는 나도 일일이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후기지수 최강이라고 선언한 도수 공자가 비무대에 오르자 옆에 있는 색마가 중얼거렸다.
“최강이 본인이라니, 지랄하고 있다.”
이때, 도수 공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마가 제자에게 말했다.
“약한 것 같지는 않다. 성격이나 말투는 실력과 무관할 때가 있으니 저것 자체가 의도적일 수도 있고.”
색마가 조금 놀라더니 다시 비무대 위를 주시했다.
“아, 그렇습니까?”
문득 나는 임소백과 눈을 마주쳤는데 이상하게도 맹주는 여기에 모인 자들 대부분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는 것을 굳이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든 포용하려는 태도로 비무를 주관하는 분위기랄까.
비무대에 오른 도수 공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육룡 중에서 도전해도 좋고. 오호에 속한 고수가 도전해도 좋소. 해가 지기 전까지는 결판을 내봅시다. 하오문주께서 올라오시겠소? 듣자 하니 그대가 오룡이라고 하던데.”
“오룡(五龍)?”
내가 오룡이란 말이냐?
어감이 상당히 불쾌하다. 마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자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안 중요한 인물이 된 느낌이랄까.
색마가 옆에서 나를 비웃었다.
“오룡이란다…….”
나는 황당한 마음에 색마를 바라봤다.
“그럼 네가 육룡(六龍)인데?”
“아이, 씨…….”
나는 도수 공자를 쳐다봤다.
“도수 공자는 본인이 후기지수 최강이라고 생각하시오?”
“내 형님을 제외하면 그렇소.”
“내가 보기엔 후기지수 서열 십육 위쯤 하는 것 같은데 먼저 내려가시는 게 어떻겠소.”
도수 공자가 나를 노려봤다.
“……십육 위?”
“육룡과 오호를 더하면 열한 명이고. 권왕의 제자를 포함하면 열두 명. 내가 모르는 고수들을 두세 명 더하고 나면 당신이 십육 위 정도겠지. 이것도 좀 잘 쳐준 거요.”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비무대에 있는 도수 공자도 함께 웃었다.
“하오문주.”
“말씀하시오.”
“소문을 듣자 하니 헛소리에 유난히 정통하시다 들었는데 명불허전이군.”
“교류도 없었는데 어찌 아시는지 신기하군. 조사를 많이 하셨나?”
“떠들지 말고 냉큼 올라오시오.”
“후기지수 최강 자리는 애초에 몽랑과 이군악이 다투고 있으니 나는 올라가지 않겠소.”
나는 후기지수 전체를 도발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다.
도수 공자가 냉소를 머금었다.
“몽랑은 알겠는데, 이군악은 대체 누구요?”
감히 나를 비무대로 끌어내려 하다니 이는 실로 시건방진 생각이다. 저런 놈들과 투덕거리기 위해서 수련한 내가 아니다.
도수 공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군악이 대체…….”
도수 공자는 내뱉던 말을 멈춘 다음에 불쑥 일어난 사내를 쳐다봤다. 권왕 옆에서 조용히 비무를 구경하던 이군악이 큰 덩치를 드러내자 산이 솟은 것처럼 보였다.
이군악이 비무대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용이니 호랑이니 하는 별호가 너무 유치하군.”
바보는 솔직한 사내여서 생각을 그냥 입 밖으로 내뱉었다. 도수 공자가 이군악을 도발했다.
“누가 유치한지 가려봅시다.”
이군악이 비무대로 향하려는데 권왕이 입을 열었다.
“제자야.”
“예, 사부님.”
“너는 어제 몽랑에게 패했다. 들어보니 다소 억울한 면이 있는 것 같지만 패배는 패배다. 앞서 겨룬 선배들의 비무에서 무얼 배운 것이냐?”
이군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제가 패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몽랑이 올라가서 후기지수 최강 자리를 놓고 겨루는 게 맞다. 너는 아직 배울 것이 많아. 얌전히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와, 나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생 권왕 이군악이 저렇게 얌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이군악이 자리에 도로 앉으면서 말했다.
“나는 어제 풍운몽가의 몽랑에게 비무에서 패했으니 나서지 않겠소.”
삽시간에 군중의 이목을 받게 된 색마가 잘난 척이 듬뿍 담긴 재수 없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후후.”
도수 공자가 짐짓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색마에게 말했다.
“몽 공자, 올라오시오. 그대가 최강이라는군.”
색마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발자국을 움직였다.
이때, 불길하게도 검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자야.”
“예, 사부님.”
나는 무언가가 반복되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면서 사부와 제자를 번갈아봤다.
‘뭐야, 이거. 뭔가 불길한데?’
검마가 색마에게 말했다.
“네가 진정 후기지수 최강이 맞느냐?”
색마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알기로는 백응지에서 문주에게 한 번 패배하고, 우리가 머물던 숙소 앞에서도 문주에게 당해서 바닥에 누운 것으로 아는데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꿈이었던가…… 저 이군악도 네게 패했다고 자중을 하는데 네가?”
어?
색마도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그게 꿈은 아마 아니셨죠.”
“그렇다면 네가 비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이냐?”
색마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하하……그게, 예. 저는 나서지 않겠습니다.”
색마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맏형이 대체 왜 이러지?
검마가 나를 쳐다보면서 답을 알려줬다.
“오늘따라 주변에 보기 드문 미인이 많아서 뽐내고 나대려는 심정이 마음에 가득하다. 오늘 같은 비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마음가짐이야.”
“아하.”
색마와 나는 검마의 말을 동시에 이해했다. 나는 그렇다고 쳐도, 색마 새끼마저 고개를 끄덕대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맏형이 정확하게 지적을 한 모양이다.
사실 나는 제왕과 겨루려고 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비무대로 향했다. 이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해봤다. 갑자기 주변에서 환호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터졌다.
“……음?”
나는 멈춰서 주변을 둘러봤다. 수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무림맹 병력 대부분이 박수와 환호성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야, 놀랍네.’
이거야말로 꿈인가?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내 새끼들에게 인기가 많아진 것일까.
참 쓸모없고, 쓸데없는 인기였다.
그래도 흥이 제법 올랐는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임소백마저 웃음을 애써 참는 표정으로 내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손을 대충 몇 번 흔들면서 환호성에 답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거 대충하고 그만 좀 합시다.”
참으로 낯이 뜨거운 순간이었다.
‘이보게들, 내가 전생 광마란 말이다.’
나는 무림맹의 뜨거운 환호성을 내내 받으면서 비무대에 겨우 도착했다. 그사이에 온갖 외침도 섞여 있었다.
남악에서 문주님과 함께 싸웠습니다, 하는 외침도 있었고.
저는 동호로 문주님의 지원을 나갔었습니다, 하는 외침도 있었다.
나는 이런 말을 듣자, 어쩐지 부끄럽고 어색한 마음이 갑자기 싹 사라졌다.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함께 싸웠던 자들이 관중에 다수 섞여 있었다.
‘그것참, 기분 이상하구나.’
맹원들은 나를 전우(戰友)로 대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 있는 구검대의 장산마저 내게 손을 흔들어대고 있어서 기분이 더욱 묘했다.
공손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북오호에 속해서 명성을 얻은 도수 공자와 맹주님의 언급으로 신남육룡에 포함된 하오문주의 대결입니다. 두 분에게 단목검을…….”
나는 맹원이 가져오는 단목검을 건네 받은 다음에 도수 공자를 쳐다봤다. 도수 공자는 정말 여유로운 표정으로 단목검을 살피다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이곳에 분명 육룡에 속한 백리한, 서문단, 남궁휘 공자까지 계신데 어찌하여 하오문주가 육룡의 최강자로 나서는 것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오? 벌써 육룡끼리는 서열을 정하셨소?”
나도 도수 공자의 말에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게.”
서문세가에서 한 사내가 말했다.
“위씨세가의 위무결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신남육룡의 첫째 자리는 하오문주가 맞소.”
도수 공자가 사내를 바라봤다.
“단 공자, 사실이오?”
서문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결 아우는 농담을 잘 하지 않는 사내라서 맞을 거요. 도수 한서광 공자, 오히려 그대가 정말 오호의 첫째 가는 고수인지가 궁금하군. 맞다면 이 자리에서 오호와 육룡의 우위를 정하게 될 거요.”
뜬금없이 서문세가의 대공자가 도수 공자의 본명을 밝히자, 내 비무 상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다물었다.
강호에 꽁꽁 숨겨놓은 비밀은 별로 없는 것일까.
세가에서도 오호가 누구인지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수 공자가 내게 물었다.
“하오문주, 준비되셨소?”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뻔뻔한 어조로 답했다.
“아직.”
“기다릴 테니 말씀하시오.”
나는 도수 공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생각해보니까 이놈이 서생의 제자라면 강호에서의 위치를 고려해봤을 때 도살자보다 강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문득 백의서생의 표정을 확인했는데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러 가지 들뜬 마음, 무림맹의 환호성, 제왕들의 비무, 지켜보는 관중과 침묵하고 있는 백의서생까지.
이 모든 것을 백지처럼 깨끗하게 지운 후에 비무 상대인 도수라는 인간을 다시 쳐다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상대는…….
신북오호.
서생의 제자.
그 사부가 백의서생은 아닌 것 같다는 직감.
자신이 후기지수 최강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함과 경박함.
무림맹이라는 장소.
뜻하지 않게 실력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된 백의서생까지.
나는 준비를 마친 다음에 도수에게 말했다.
“준비 됐소.”
함정은 내 오만함에도 있었다.
눈앞의 도수(渡水)가 강적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깨닫는 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