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한빙지옥에서 탈출하셨다고요?
춥다. 춥다. 춥다. 춥다. 춥구나. 춥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부터는 순수한 고통이 이어졌다. 쓰린 고통과 마비되는 고통이 겹쳤다. 무감각한 것은 감정적으로 두렵다. 하지만 나만 고통스러운 건 아닐 테지. 이 복잡한 고통마저 희미하게 느껴질 무렵부터는 숨이 막혔다. 입에 대롱을 물고 얼어붙었으면 숨이라도 제대로 쉬었을 텐데 나는 그렇게 계획적인 사내가 아니다. 춥고, 아프고, 숨이 막히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의식까지 희미해지는 거 같아서 속으로 웃었다. 흐흐흐, 흐흐흐, 흐흐흐, 흐흐흐흐흐흐, 흐흐흐. 계속 웃어야만 의식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랑 같은 처지에 놓인 백야와 팔노야를 비웃었다. 내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이지만 망령들에게 가해지는 추위는 죽은 자들의 복수다. 꼴 좋다. 꼴 좋아. 아직 내가 살아있으니까 망령들도 살아있을 것 같아서 설의(雪衣)를 풀 생각이 없다. 설의를 풀겠다는 생각을 해보니까 그간 고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하지만 원래 고독했으니 괜찮다. 이따위 빙공에서 풀려나는 방법은 백스물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두 가지는 염계와 자하신공이다. 하지만 자하신공은 이성의 영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염계를 떠올렸을 때 맞잡은 손에서 갑자기 온기가 느껴졌다. 상대도 내공으로 발악하는 모양이다. 와, 이건 좀 대단한데? 이 망령들도 사람 새끼였단 말인가?
“…….”
이 망령들은 내가 살겠다고 사람의 온기에 기대는 사람인 줄 아나 본데 사실 나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같이 얼어 죽으면 될 것이지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내 절기를 너희가 녹이겠다고? 녹여서 뭐 하려고. 무공도 모르는 사람들을 죽여대면서 마교주에게 충성이나 바치는 삶을 이어나가겠다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천옥에 고여 있는 얼음물을 두레박으로 끌어올려서 나부터 뒤집어쓴 다음에 붙잡고 있는 늙은이의 손에 차가운 냉기를 계속 전달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된 놈일까. 한빙지옥도 슬슬 익숙해졌다. 망령들이 나를 언제든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여유롭게 따라오던 그 순간부터 이 여정은 지옥행이었다. 흐흐흐흐흐흐. 소리 내어 웃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눈에서 눈물 같은 것이 빠져나오기 전에 얼어붙는 느낌이 났다.
아…….
처음 물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어떤 멍청한 놈이 물에 빠지면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물귀신이 붙잡는다고 했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눈을 부릅뜬 채로 물속을 둘러봤었다. 물귀신 대신에 생각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빛줄기를 따라서 올라간 다음에 깊은 물에서 빠져나왔던 때를 기억한다. 지금은 비록 빛줄기도 보이지 않고 수심도 제법 깊은 상태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물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둔탁한 것이 내 몸을 강타했다.
어떤 놈이 날 때렸지?
가만히 있었더니 날 얼어붙은 병신으로 보고 있나? 그제야 내가 붙잡고 있는 놈들 이외의 망령이 주변에 있었고. 사대악인이 달려들어서 싸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검마, 고집스러운 귀마, 염병할 색마…….
지옥에서 나가서 도와줘야 하나?
사실 공력의 차이는 있지만, 나만큼 잘 싸우는 사람은 드물다. 우습게도 나는 일월광천 덕분에 광마 때처럼 싸운 적이 드물다. 어쨌든 검마와 색마는 광명좌사까지 올랐던 사내들이고, 귀마도 다른 악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강자였다. 지켜보면 계속 성장하는 사내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은 상태일까? 아직 모르겠다.
나는 얼어붙은 상태에서 지진을 맞이하는 것처럼 흔들렸다. 죽이는 게 먼저냐, 살리는 게 먼저냐 묻는다면 일단 살리는 게 우선이다.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에서 금구소요공의 운기조식으로 전환해서 염계를 끌어올렸다. 얼어붙은 혈도 위에 불꽃으로 된 길을 상상했다. 그다음에는 정신을 반쯤 잃었다. 빗속에서 추던 막춤이 떠올라서 불꽃으로 된 길을 걸으면서 몸을 움직이다가 불꽃이 달라붙은 검을 휘둘렀다.
단전을 녹이고, 오장육부로 진격한 다음에 심장을 불태웠다. 다음은 가슴을 쑤기고, 목을 관통한 다음에 얼굴을 뒤덮고 있는 무표정한 감정을 불꽃으로 녹여냈다.
좀 웃고 살자.
혀를 녹이고 굳어 있던 이빨을 망치로 두드리자 불꽃이 피어올랐다. 막혀 있는 코에는 목검을 쑤셔 넣으면서 고통이 밀려들었다. 코가 이렇게 아픈 곳이었나? 끔찍한 고통보다 호흡이 더 절실해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이것은 마치 코피가 흐르는 콧속에 다시 젓가락을 찔러넣는 느낌이었다. 얕은 호흡으로 공기의 질을 확인한 다음에 독이 없는 것을 느끼자마자 두 눈에 불꽃을 담았다. 눈꺼풀이 찢어질 것 같아서 억지로 뜨진 않았다. 두 눈에 불꽃을 담는 방법을 알았던 거 같은데 무엇이었지?
분노…….
얼어붙은 눈물을 분노로 녹였다. 한차례 전초전을 치른 다음에 단전에 신호를 보낸 다음에 단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성화(聖火)를 끄집어냈다. 이것이 내 안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이기를 기원하면서 성화를 치켜든 다음에 몸의 경중을 살피면서 제운종을 펼쳤다.
나는 불꽃을 손에 든 채로 극골, 기해, 하완, 중완, 거궐, 중정, 선기, 천돌, 염천을 전령처럼 돌파해서 백회혈에 성화를 내려놓았다. 이내 정수리가 뜨거워지면서 뜨거운 김이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 안 돼! 이러다가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니겠지? 제발……내 성격에 대머리는 답이 없다. 정수리가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저절로 눈이 떠졌다.
“……!”
귀에서 이명이 발생하더니 괴상한 고통 속에서 나머지 오감이 깨어났다.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이 각자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기능을 되찾고 있었다. 이래서 인생은 고통인 모양이다. 본래 주어졌던 기능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고통스러웠다.
‘어?’
눈앞에 있는 백야의 몸이 먼저 들썩이고, 팔노야의 몸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살아있네. 보통 늙은이들이 아니다.’
이놈들도 내공을 쏟아내면서 전신을 녹여내려는 모양이었다. 나보다 공력이 심후했던 것일까. 아니면, 교주에게 줘야 할 살아있는 내공을 두 사람도 몰래 취했던 것일까. 내 염계에 의해서 망령들도 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먼저 늙은이들을 붙잡았던 손을 풀어냈다.
갑자기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백야의 정수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별 차이 없이 팔노야의 정수리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강호인의 몸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장심과 백회혈이었던가? 보통 노마두들이 아니었다.
이런 늙은이보다 행동이 느리면 죽게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압박했다. 나는 한빙지옥에 먼저 입성했다가…….
불꽃을 두른 채로 탈출을 시도한 다음에 입구에서 대기했다. 몸을 녹여내는 와중에 목검으로 천천히 손을 뻗어서 붙잡고, 들러붙어 있는 칼집의 내부도 염계로 녹였다.
백야와 팔노야도 정수리가 뚫린 것처럼 희뿌연 연기가 솟구쳤다. 나는 굳어 있는 입을 벌린 다음에 먼저 웃었다.
“흐흐.”
나는 발검 자세를 유지한 상태에서 칼날을 뜨겁게 달궜다. 순간, 백야와 팔노야가 동시에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주시했다.
눈빛을 교환하는데 오만가지 심정이 오고갔다.
한빙지옥에서 어렵게 빠져나오셨다고요?
그렇다면 이제 염계지옥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궈진 목검, 녹아내리고 있는 빙공, 망령의 눈빛을 노려보다가 백야와 팔노야가 전신에서 빙공을 터트리는 순간에…….
목검을 뽑았다.
서걱!
불꽃이 휘감긴 칼날이 지옥에서 이제 막 탈출한 백야와 팔노야의 목을 동시에 날렸다. 두 개의 목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땅에 떨어졌다.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위태롭게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
얼어붙은 시체가 주변에 가득했다. 무언가가 희뿌옇게 움직인다고 생각한 순간에 눈앞에 등장한 흑의인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장력이 무척 거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굉음이 귀를 때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직 공중을 날고 있었다. 세상이 거꾸로 된 상태에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흑의인이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께서 등장하신 걸까. 대체 어디서 이 밤의 끝을 붙잡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까 내가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나를 흡수할 수 없었을 터였다. 지금이 적절한 등장이다. 어느새 다가온 흑의인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데 평소보다 약간 느린 동작임을 내가 인지했다. 고수에겐 내 동작이 더 느릿하게 보일 터였다. 목검을 걷어낸 흑의인이 우장을 내질렀다.
좌장으로 받아치자 손바닥이 들러붙었다.
흑의인의 반대 손이 내 목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미련 없이 검을 놔버린 다음에 목 근처에 온 흑의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순간, 공력을 폭발하듯이 일으키자 서 있던 대지가 움푹 파이면서 기파가 퍼져나갔다.
흑의인의 손이 점점 전진하더니 내 목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
흑의인 너머로 달빛 아래에서 새롭게 등장한 적의인 무리와 사대악인들이 맞붙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흑의인의 복면을 벗기고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순간 아래에서 발차기가 들어와서 균형을 잃었지만 나는 좌장과 오른손으로 흑의인을 붙잡았다. 삽시간에 하늘이 기울어지더니 땅에 부딪히자마자 굴러다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불쌍한 새끼.”
순간 박치기가 날아와서 나는 맞대응을 했다. 가만히 박치기를 처맞으면 코나 이빨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내밀어서 이마를 부딪쳤다.
퍽!
권왕의 체술을 떠올린 나는 흑의인의 양팔을 붙잡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제운종을 펼쳤다. 공중에 함께 뜬 상태에서 오른팔을 잡아당겨서 방향을 튼 다음에 흑의인을 바닥에 깔아뭉갰다. 손목을 꺾는 시늉을 하다가 박치기로 흑의인의 면상을 들이박았다.
퍽!
순간, 오른손에 담은 공력을 모조리 백전십단공으로 전환했다. 흑의인의 시커먼 옷이 파지지지직- 소리와 함께 타들어 가더니 맨살이 드러났다. 소매가 날아가자 불에 달궈진 흉측한 피부와 마문(魔文)이 드러났다. 이어서 어깨 부위가 뇌기에 소멸하더니 얼굴을 뒤덮고 있는 복면 일부가 타들어 갔으나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좌장에서는 이상하게도 내공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도 천옥흡성대법을 펼쳐서 막아내자 큰 위협은 받지 못했다. 다만 내공은 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고, 외공은 내가 조금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대로 목을 짓눌러서 죽이려는데 붉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근처에 내려섰다. 나는 적이라고 판단하자마자 흑의인을 들어 올려서 무엇인지도 모를 공격을 막았다.
콰아아아아앙!
장력에 밀려나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상황을 파악했다.
“…….”
등을 강타당했던 흑의인이 일어나자, 붉은 장삼을 입은 사내가 부축했다. 표정과 분위기, 장삼에 수 놓인 얇은 실타래를 보자마자 한 사내가 떠올랐다.
“광명우사(光明右使)?”
광명우사로 추정되는 사내는 내 말을 무시한 다음에 흑의인에게 말했다.
“물러나자.”
흑의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찌 물러납니까?”
광명우사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적이 더 있다. 이곳에 합류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어서.”
이때, 공중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백의서생이 근처에 등장해서 광명우사를 바라봤다.
“혈마(血魔), 어딜 내빼려고. 승부를 마저 내야지.”
“다음에 이어서 하세.”
광명우사가 흑의인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로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백의서생을 향해 손을 한 차례 휘둘렀다. 백의서생이 화들짝 놀라더니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났으나, 정작 공중에서 날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허장성세에 속아서 후퇴한 백의서생과 그제야 눈을 마주쳤다.
“그걸 속네.”
“…….”
백의서생은 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얼어붙은 곳을 주시했다.
“네 짓이냐?”
나는 함께 둘러보다가 아직 싸우고 있는 사대악인을 발견하자마자 경공을 펼쳐서 합류했다. 도중에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주운 다음에 몇 걸음을 더 걷다가 멈춰서 왼손을 바라봤다. 손바닥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상태였는데 독공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백의서생을 바라봤다.
“월영무정공 때문에 죽다 살았다.”
백의서생이 뒷짐을 진 채로 다가오더니 턱짓으로 사대악인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일단 합류해.”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