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나는 신이 아니다.
전 광명우사, 혈교주는 여전히 늙은이에게 쫓기고 있었다. 떨쳐냈다고 생각하면 따라오고, 따돌렸다고 생각하면 불쑥 등장했다.
너무 황당해서 수십 년 간 전문적으로 경공과 추적만 수련한 늙은이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혈교주는 경공만 놓고 보면 자신도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늙은이가 더 빨랐다. 그런데도 잡히지 않은 이유는 그나마 늙은이가 주변에 피해를 안 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백도였다.
하지만 인질을 잡거나 번화가에 숨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늙은이만 자신을 추격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번화가에 숨으면 흑도가 덤비고, 지저분한 곳에 숨으면 거지들이 나타나서 공격했다.
그러니까 대체로 숨을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늙은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내심이 깊은 모양인지 아무런 말없이 기다렸다가 계속 등장했다. 그러니까 인질극도 통하지 않고, 어딘가에 조용히 숨어 있어도 결국에는 소용이 없었다.
화산에서 한참이나 멀어졌다가.
다시 화산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늙은이와의 추격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몇 차례나 붙었는데, 예상되는 결과는 패배였다.
수준 차이가 극명했다면 혈교주가 죽었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패배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 때마다 도주했다.
황당하게도 내공이 늙은이에 비해 조금 더 부족하고.
늙은이의 검법 또한 고명한 수준을 넘어서 황당할 정도로 강했다.
문제는 혈교주가 검을 반납한 터라 훨씬 불리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한 수가 뒤처지고, 병장기도 없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도중에 교도도 만났으나 지금은 광명우사가 아니라서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혈교주는 떨쳐내는 것을 포기한 채로 다시 화산, 그러니까 하오문주 등이 있었던 장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천하에서 이 싸움을 중재해줄 사람이 하오문주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도 많지 않았다.
검을 구해서 다시 맞붙고 싶다는 정도랄까.
괜찮은 장검이 없으면 도저히 못 이길 상대라서 그랬다. 패배해서 퇴각하는 것 같은 일마조의 병력도 봤으나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그제야 혈교주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혈교주이긴 하지만 아직 충성스러운 교도가 없고, 마교 출신이지만 이제는 교도가 아니며, 백도의 늙은이를 비롯한 거지와 흑도까지 나타나서 죽자 사자 달려드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친구, 동료, 상관, 부하가 없고 사방이 적만 있는 철저한 외톨이 상태.
이때, 혈교주는 지평선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자마자 먼지를 일으키면서 그곳으로 질주했다. 방향만 봐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마차였다.
‘찾았구나.’
생각해보니까 이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뒤에서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남에게 피해를 주려느냐? 인질극이 하오문주에겐 통했을지라도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확인했을 텐데?”
혈교주가 달리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늙은이. 이제 인질극은 하지 않아. 더 쫓아오면 네 제삿날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경고했다.”
혈교주는 속도를 더 끌어올려서 지평선에서 봤던 무언가를 향해 질주했다. 잠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가 맹렬하게 달리자 이제 점점 따라잡을 수 있었다.
혈교주가 쫓고 있는 것은 시커먼 마차였다.
마차의 속도도 비현실적으로 빨랐는데, 혈교주는 그보다 더 빨랐다.
결국에 시커먼 마차를 따라잡은 혈교주는 잠시 마차와 나란히 달렸다.
한참을 나란히 달리고 나서야 창문의 차양이 걷어지더니 무뚝뚝한 표정의 사내가 혈교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사내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에 혈교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오.”
마교주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쁘게 사는구나.”
“내가 꽤 대단한 것을 알아냈는데 들어보시겠소?”
“말해라.”
“나도 꽤 많은 무공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나를 뒤쫓는 늙은이의 무공을 파악할 수가 없소. 출신은 당연히 백도. 무림맹일 가능성이 크지. 오래전에 본 용모파기와 다르긴 하지만 총군사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데.”
“생각해보시오. 교주는 늘 임소백이 신검의 무학을 이어받았으리라 추측했으나 직접 확인해보셨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임소백과 붙으면 이렇게 도망가진 않을 것 같군. 그게 무슨 의미겠소? 내가 이런 식으로 도망치려면 교주나 천악, 거지 놈. 그리고 우리가 끝내 파악하지 못했던 신검의 제자밖에 없을 것 같은데. 교주, 어떻게 생각하시오.”
교주가 말했다.
“멈춰라.”
맹렬하게 달리던 마차가 이내 멈췄다.
혈교주는 멈춘 마차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여태 자신을 따라오던 늙은이를 쳐다봤다.
공손심은 미간을 좁힌 채로 시커먼 마차에서 내리는 사내를 바라봤다. 당장 혈교주를 공격하려다가, 갑자기 가부좌를 트는 혈교주의 표정도 이상하고 마차에서 내리는 사내의 분위기도 이상해서 그저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마차에서 내린 마교주가 공손심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신검의 제자냐.”
공손심은 그제야 사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대답했다.
“제자라고 부르신 적은 없으나 나는 늘 사부라고 생각했지.”
혈교주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이봐, 늙은이. 따라오면 네 제삿날을 확인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거늘.”
혈교주가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사내에게 말했다.
“마교주, 혼자 상대해도 되고. 함께 상대해도 무방하오. 편할 대로 하시오.”
마교주는 이 말을 무시한 다음에 공손심에게 말했다.
“내내 임소백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째서 여태 숨어 있었지?”
공손심이 대답했다.
“임 맹주도 제자가 맞다. 그뿐이겠는가? 나도 제자고, 다른 자들도 제자다. 맹원 모두가 신검의 제자였다.”
마교주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혈교주를 바라봤다.
“이놈을 그렇게 바쁘게 쫓는 이유는?”
공손심이 혈교주와 마교주를 번갈아 가면서 노려봤다.
“통천방에서 아녀자들과 아이까지 인질로 잡았던 놈이다. 그릇된 무공을 익혀서 나중에 입마에 빠질 확률도 매우 크다. 그때가 되면 얼마나 많은 인명이 다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교주, 방해할 참인가?”
마교주가 대답했다.
“전대 교주는 네 사부에게 죽었다. 네가 한번은 나를 찾아왔어야지.”
공손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대를 무슨 이유로 찾아간단 말인가?”
마교주가 말했다.
“내가 무림맹에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았겠느냐?”
공손심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황당하구나. 어쨌든 보호해줄 생각이어도 혈교주는 죽여야겠네.”
혈교주가 웃었다.
“가능하겠느냐?”
공손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늙은 몸이네. 실패하면 죽으면 그만이야. 신교 교주, 방해하지 말게. 혈교주를 죽이고 여력이 남으면 그대에게도 도전하겠네.”
공손심의 말에 마교주가 슬며시 웃었다.
“그럴 필요 없다.”
“…….”
마교주가 공손심에게 말했다.
“화산으로 가자. 타라.”
혈교주가 잔뜩 놀란 표정으로 마교주를 바라봤다.
“뭐?”
마교주는 당연히 공손심이 동행하리라고 믿는 모양인지 먼저 마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화산에 합류할 혈교주를 막으려던 모양인데 어차피 내가 다시 화산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렇다면 자네도 쫓아오는 수밖에 없겠지. 어떻게 가든 마찬가지이니 마차에 타라. 혈교주는 뛰어오도록.”
혈교주가 외쳤다.
“뭐야? 내가 타야지!”
마교주는 철저하게 혈교주의 말을 무시한 채로 공손심에게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묻도록 해라.”
공손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교주가 자신을 곱게 보내줄 사내도 아니고, 도망을 친다고 해서 좋을 일도 없었다. 그의 말대로 혈교주와 화산에 가면 공손심이 직접 나선 일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셈이라서 그렇다.
공손심은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올라타서 소문의 삼재이자 마교의 교주를 아주 가까이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출발하겠습니다.”
이내 마차가 출발하자, 바깥에서 혈교주가 무어라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쫓아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공손심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혈교주가 이대로 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상황이었던 것. 하지만 혈교주는 끝내 마차를 뒤쫓아오고 있었다.
마교주가 공손심에게 말했다.
“할 말이 많을 텐데.”
그제야 정신을 조금 차린 공손심이 마교주에게 말했다.
“교주, 무언가 좀 이상하군.”
“무엇이.”
“나는 사실 무림맹의 총군사였소.”
“알고 있다. 공손심.”
“알고 있었군. 그간 책상머리에서 수도 없이 나만의 바둑을 두었는데 근래에는 계속 백도가 이겼소.”
“예전에는?”
“예전에는 공멸이었지. 솔직히 말하면 교가 더 우세했소.”
“그게 왜 바뀌었나.”
공손심은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차양을 젖힌 다음에 따라오고 있는 혈교주를 바라봤다. 혈교주가 눈을 부릅뜬 채로 노려보기에 도로 차양을 원위치에 놨다.
공손심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하오문주가 강호에 개입한 이후로 그렇게 되었소. 이상한 일이지. 하오문이 단체로 치면 무척 약한 편인데, 정신 나간 문주가 사방팔방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소.”
“그런데.”
“내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두 명 있소. 문주와 교주요. 내가 두는 책상머리 바둑에 의하면 이제 교주의 세력은 연합에 많이 밀리는 형국이오. 무림맹을 적대하던 흑도의 기세가 많이 수그러들었고. 제천맹주는 오히려 친분을 쌓았소. 듣자 하니 개방 방주도 한 차례 구했다더군. 그뿐인가? 늘 마도와 백도를 이간질해서 하나의 강력한 단체가 지배하는 천하를 견제하려던 서생들마저도 어느 정도 문주와 친분을 쌓았소. 이제 교가 전력을 다해도 백도나 무림맹을 무너뜨리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오. 방관하는 세력들마저도 문주의 편에 설 가능성이 커서 그렇소.”
마교주는 턱을 괸 채로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알겠으니 더 말해보라는 태도인지라, 공손심의 말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나는 더더욱 두 사람을 이해하는 게 어렵소. 가만히만 있어도 이제 마도천하는 오기 어려운 상황인데 문주는 그대에게 도전한 상황이고. 당신은 또 그것을 수락해서 화산으로 가고 있소. 내가 이것을 어찌 이해해야겠소?”
교주가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가.”
“들어보시오. 아무리 문주가 강호 역사상 유례없이 빠르게 강해진 사내라고 하더라도 교주 당신을 이기리라 보진 않소.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지. 이것이 이해하기 힘든 첫 번째. 두 번째는 당신이오. 이대로 화산에 가면 당신 또한 위태로운 상황이오. 개인의 무력은 당신이 뛰어나겠지만 다른 고수들의 합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의 행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한 사람은 패배할 확률이 높은 싸움에 도전하고, 한 사람은 이기고 나서도 어쩌면 살아서 복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는데…… 이렇게 화산으로 가고 있지 않소?”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자(三者)의 위치에서 냉정하게 잘 바라보는군. 네가 생각하기에 이상하겠지만 결국에 바깥사람이 보기엔 전부 이상할 것이다. 이미 화산에는 일부 고수를 보냈다. 은거하던 일마조라는 사내도 보냈고. 돈 밝히는 신임 좌사도 보냈지. 너희 백도가 주장하던 대로 정당한 싸움이 벌어졌을까. 아니면 종종 너희가 보이던 위선대로 추잡한 싸움이 벌어졌을까. 그것을 보고 결정하마. 네가 지적하는 합공 또한 모를 일이다. 천악을 비롯한 십여 명이 단체로 나를 공격한다고 한들…….”
“…….”
교주가 공손심을 쳐다봤다.
“너희 중에 몇 명이 살아있겠느냐?”
“음.”
“백도, 흑도, 서생을 총망라한 고수 대부분을 내가 지옥으로 끌고 가면. 그때도 백도와 교의 싸움에서 한쪽이 우세할 수 있을까. 없다. 내가 있는 이상, 전력은 밀린 적이 없다.”
공손심은 위축되는 분위기를 느꼈으나, 그래도 말로 한 번 이기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임소백이 남아 있소.”
책상머리 바둑을 두는 심정으로 한 수를 두자, 교주가 받아쳤다.
“나도 대공자를 남겨 뒀고, 둘은 이미 한 차례 붙어봤다. 대공자의 말로는 무승부라고 하던데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라서 믿지 않는다. 그래도 임소백보단 젊으니 금세 따라잡겠지.”
공손심은 교주의 말을 곱씹다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쩐지 화산의 매화장에서 마도의 고수들이 비열한 방식이나 생사결에 의해 죽었으면, 교주가 그대로 갚아줄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교주의 생각을 넌지시 물어봤다.
“교주, 무모하게 도전하는 문주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근래 교주에게 이런 식으로 도전하는 사내는 없었소.”
“총군사, 내가 어찌 알겠나? 나는 신이 아니다. 다만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주는 강하다. 아마 자네가 만났던 시기와 내가 본 시기는 좀 다른 것 같군.”
“그렇소? 좀 예전이긴 한데.”
교주가 바깥에서 전령처럼 따라오는 혈교주의 경공 소리를 들으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저놈과 비교하더라도 약한 사내는 아닐세.”
여태 혈교주를 추격하던 공손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요?”
공손심이 알기로는 자신보다 약하고, 혈교주보다도 약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든 대화를 엿들은 채로 따라오던 혈교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보다 약한 사내는 아니다. 아주 염병할 놈이지.”
이번에는 공손심이 바깥에 있는 혈교주에게 물었다.
“왜 염병할 놈인가?”
혈교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무공을 하나 가르쳐줬는데 그것을 익히려다가 심마(心魔)가 왔다. 거짓으로 가르쳐준 것 같진 않은데……저 정도 잔머리면 일부러 제대로 가르친 것 같기도 하고.”
공손심은 막상 혈교주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마교주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말을 해석하면, 하오문주가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서 그것을 익히려다가 혈교주에게 심마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자 마교주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렸다. 미친놈이니 상대하지 말라는 뜻 같아서 공손심은 헛기침을 한번 내뱉었다.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