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쉿.
대나찰도 결국 웃었다.
“내 제자가 할 수 있는 말은 확실히 아니구나. 네놈, 면상이나 좀 내보여라. 가면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니.”
이런 말을 들으면 더 벗기 싫어지는 법.
이래라저래라하는 요구를 절대 들어주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나다.
“나는 네 노예가 아니다. 벗으라면 벗는 사람도 아니고. 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벗으라고 지랄이냐. 변태 새끼, 늙은.”
변태 새끼는 허초였고, ‘늙은’이 비장의 한 수였다.
“죽은 놈이나 사부나 사고방식이 병신 같군.”
“끌끌끌…….”
대나찰의 웃는 모습이 제법 혐오스러워서 나는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우, 소름.”
나는 전생에도 많은 사마외도를 만나봤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다가 기괴하게 변한 놈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도 대나찰의 웃음은 보기 싫은 놈들의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듣기 싫었다. 아마 저 웃음 다음에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자주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 나찰이 아니다. 외모와 분위기는 충분히 위협적인 사내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사신장이 전부 나서라.”
나는 사신장이 명령을 받고 일어나기 전에 대꾸했다.
“대나찰, 그렇게 추잡스럽게 살아야겠어?”
“…….”
“사신장이 동시에 내게 덤비면 나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겠다. 참고로 나는 경공이 무공보다 뛰어나다. 천라지망 놀이를 한번 해보자고. 하지만 네가 직접 도전하겠다면 나도 사내답게 일대일 대결을 받아주마.”
하여간, 수하들이 덤비면 도망가고.
적의 대장이 덤비면 싸우고.
내가 생각해도 아귀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 대처였다.
하지만 나는 십이신장들의 포위망은 뚫을 자신이 있었다. 가면 덕분에 이들은 아직 내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중에 복장을 바꾸고, 가면도 어디론가 던지고, 객잔에서 걸레질이라도 하고 있으면 적어도 사신장과 대나찰은 나를 알아볼 수 없을 터였다.
점소이가 점소이로 변장하는 비기(祕器)랄까.
“도주에 성공하면 이번에는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을 생각이야.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연이라도 얻은 다음에 네 앞에 다시 나타나겠지. 천라지망이냐 아니면 일대일이냐? 선택해라. 참고로 네가 일대일을 피했다는 소문은 남화 지역 전체에 퍼질 거다. 내가 좀 말이 많거든.”
나는 낄낄대면서 웃다가 십이신장의 분위기도 살폈다.
강호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신장들이 사부의 죽음을 막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사부 밑에서 오래 버틴 놈들이 정상일 리가 없다.
의외로 대나찰은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잔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그 틈을 놓칠 내 주둥아리가 아니다.
“십이신장도 잘 들어라. 못난 사부가 너희들부터 나서라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 그 와중에 내가 장법을 쓰는지, 칼을 잘 다루는지, 내공은 어느 수준인지, 어떻게 싸우는지, 어떤 단점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물론 내가 너희와 싸우면 그런 장단점이 드러나겠지. 대신에 너희는 흑묘처럼 죽여주마. 늙은 사부 놈이 제자들부터 지옥에 보낸 다음에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러는지 모르겠군.”
문득 나는 말석에 있는 떨거지 신장들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제자들이 전부 젊군. 사부는 저리 늙었는데 말이야. 혹시 너희들 전에도 제자가 있지 않았을까? 황천행 떠나면 가면만 대물림해서 채워놓는 식으로 말이야. 저기 시커먼 소 새끼는 도대체 몇 살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십이신장의 말석인 현축에게 향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체격만 봐도 무공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뻔히 보였다.
“물론 우리 사부께서는 제자의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고 서 있어라.”
나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 내 손도 슬쩍 들었다. 입은 다물고, 손만 들라는 낚시였는데 아무도 낚이지 않았다.
“하여간…….”
대나찰은 여유로운 태도로 손자 놈 재롱 잔치를 보는 것처럼 웃었다.
“정신이 좀 이상한 녀석이 내 제자 행세를 하고 있었구나.”
나는 진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동의한다. 가면은 광증을 악화시키니 다른 사제들도 주의하도록.”
대나찰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하자꾸나. 내가 상대하겠다.”
대나찰은 말을 하는 와중에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사신장들을 슬쩍 둘러봤다.
별거 아닌 눈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대나찰이 나를 직접 상대하고, 싸우는 도중에 사신장이 내게 기습을 하면 곤란한 상황이다.
고로, 내공을 겨루는 식의 정적인 대결을 벌이면 위험하다.
이제야 대나찰의 본질을 약간 알게 되었다. 제법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음흉한 쪽으로 발전한 놈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진표가 더 엉망이 된다.
나 혼자서 대나찰, 백인, 청진, 적사, 백유까지 상대하게 될 테니까.
나는 뒤통수를 한 번 긁은 다음에 백유가 있는 담벼락 쪽으로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허리춤에 있는 흑묘아를 뽑았다.
무서운 기세로 백유를 향해 칼을 휘두르자, 백유가 화들짝 놀라더니 철선(鐵扇, 쇠 부채)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나는 허허실실(虛虛實實) 수법으로 검기를 내보내는 동작만 펼쳤던 상태.
백유가 방어 자세를 취하는 동안에 흑묘아를 다시 칼집에 넣은 채로 땅을 밟은 후 질풍이 뻗어 나가는 것처럼 경공을 펼쳤다.
뒤에서 백인, 청진, 백사가 담벼락 위로 솟구쳐서 넘어오고.
이어서 내게 속았던 백유와 다른 십이신장들도 담벼락을 넘어서 나를 따라왔다.
여기서 다시 심리전.
내가 너무 멀리 도망가면 대나찰 일당이 아예 추적을 포기할 수 있다.
나는 천천히 돌아서서 맹렬하게 달려오는 십이신장들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내가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자…….
경공 대결을 펼치듯이 나란히 달려오던 백인, 청진, 적사도 동시에 멈췄다.
나는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사제들, 사부님은? 아, 이제 나오시는군.”
대나찰이 담벼락 위에 서 있었다.
나는 대나찰을 바라보면서 사신장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제들, 다들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사부를 죽일 테니까. 적당히 호응해달라고.”
귀가 밝은 대나찰에게는 무척 작게 들리는 속삭임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사신장들과 내가 음모를 꾸민 게 아닐까 싶은 분위기랄까. 사실 사신장이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만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나찰이 언성을 높였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거냐!”
“늙은이 새끼 하여간.”
순간, 적사가 먼저 공격을 펼쳤다. 이어서 다른 사신장도 각기 병장기를 뽑으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미리 봐뒀던 우측 골목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내가 경공이 뛰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중원에서 서장까지, 다시 서장에서 절강까지 별 이유 없이 끌려다녔다.
본래 무공이 뛰어난 자들은 이동할 때 답답해서 경공을 자주 펼친다. 광승에 비해 내 실력은 한참 부족했기 때문에 정말 죽어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를 보겠다고 천하를 누비다 보면 경공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거북이 달리고, 꽃향기에 취해 달리고, 심심해서 허공에 낚싯대도 돌려 보고, 목탁을 두들기면서도 달려봤다. 애초에 광승에게서 도망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따라다닌 것도 있다.
사제들의 경공 실력을 확인하려는 의도와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좁은 골목길의 양쪽 벽을 박차면서 공중으로 솟구쳤다.
지붕에 올라서자, 한눈에 남화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마에 손을 댄 채로 일양현을 찾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생각보다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휘파람을 불면서 지붕 위를 뛰어다녔다.
나를 일직선으로 따라오는 것이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후에 지붕 이곳저곳에서 가면을 쓴 사제들이 불쑥 솟아올랐다.
나는 잠시 사제들과 담소를 나눴다.
“다들 고생이 많다. 좀만 참아라.”
참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암기가 날아왔다.
뾰족한 암기, 둥그런 암기, 못생긴 암기, 하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바늘형 암기도 햇빛을 머금은 채로 날아왔다.
내가 이렇게 핍박을 받는 사내다.
이래서 내 꿈의 팔 할 이상이 쫓기는 꿈이다.
나머지 이 할은 미인이 등장하는데…….
꿈은 죄가 아니다.
하여간에 늘 쫓기는 사내, 불쌍한 사내, 밥 먹고 암기나 쳐내는 사내, 사제들에게 쫓기는 사내, 꿈에서도 낚싯대를 들고 있는 승려에게 쫓기는 사내…… 불쌍한 놈, 나란 인간.
꽤 간격이 벌어져 있는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고 있을 때, 단검 한 자루가 쇄도했다.
나는 회전하면서 뽑아낸 흑묘아로 단검을 쳐낸 다음에 내려섰다.
새삼스럽게 하얀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화창한 날이었다.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잘 마르는 날이기도 하다.
“이야, 구름이…….”
나는 암기를 던지는 사제들의 위치, 건물 위치, 빨랫감의 위치, 이 모든 동선을 눈에 담은 다음에 다시 지붕을 넘나들다가 발을 헛디딘 것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공중에서 빨랫감을 낚아채자마자 벽을 박차고, 열려 있는 반대편 창문으로 들어갔다. 창문 사이에 걸리지 않게 몸을 비틀어주는 것은 도주의 기본.
나는 아무도 없는 작은 방의 침상 밑에 흑의장삼과 흑묘방주의 가면을 넣어둔 다음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뽀송뽀송하게, 맑게, 자신 있게.
그 와중에 방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사내놈의 방은 아니었다.
서랍을 연 다음에 여인의 속옷 틈바구니에 흑묘아를 눕혔다.
그렇다고 내가 변태라는 뜻은 아니다.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회수는 나중에 홍 사매가 알아서 할 것이다. 도둑질은 배워서 이런 때 써야 하는 법.
나는 방을 빠져나와서 도둑처럼 거닐다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또 어딜 나가는 게야?”
등을 내보인 채로 베를 짜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이 집에 놀고먹는 한심한 사내놈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대답했다.
“일찍 들어올게요. 할머니.”
할머니가 근심 섞인 어조로 말했다.
“술 좀 적당히 마셔라.”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잔잔한 어조로 대꾸했다.
“예, 할머니.”
잠시 거리 상황을 둘러보다가 맞은편에 있는 객잔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선가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점소이 놈의 시선이 지붕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점소이의 어깨를 툭 친 다음에 자리를 잡았다. 오가는 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바깥 자리였다.
“두강주 있나?”
“아, 예. 잠시만요.”
점소이는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가면 쓴 고수들을 바라보다가 감탄했다.
“우와……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싸움 구경과 주문받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싸가지없는 놈이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두강주와 기본으로 나오는 마른안주를 성의 없이 내려놓은 다음에 다시 두리번거렸다.
나는 두강주를 빈 잔에 따르면서 말했다.
“싸움이라도 났나?”
점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싸움이 났나 본데요. 십이신장이 많이 모였네.”
나는 두강주를 마신 다음에 마른안주를 씹다가,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는 점소이에게 말했다.
“한 잔 마셔.”
“아, 예.”
점소이가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더니 빈 잔을 내밀었다. 나는 점소이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동네가 시끌시끌하네.”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둘은 두강주를 한 잔 시원하게 털어 넣은 다음에 마른안주를 씹으면서 삐딱한 자세로 길거리를 구경했다.
점소이가 안주를 씹다가 돌아다니는 흑도도 씹어댔다.
“저 보세요. 제자들 똥줄 타나 봅니다. 한심한 새끼들, 허구한 날, 저 지랄이네.”
문득 전방에 가면을 쓴 자들이 나타나자, 안주를 씹고 있던 점소이가 자연스럽게 눈을 아래로 깔았다.
“…….”
나는 생존의 대가이자 처세의 달인인 동종업계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사이에 떨거지 신장들이 나와 점소이를 노려보다가 지나갔다. 나는 똥줄이 타들어 가는 사제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사람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돼.”
“맞습니다.”
점소이는 마른안주를 씹다가 어색함이 한 점 없는 태도로 내게 빈 잔을 내밀었다. 손님 술을 자연스럽게 얻어먹는 실력이 노화순청(爐火純青)의 경지에 오른 점소이였다. 점소이 마음은 내가 알기 때문에 술을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가 술을 마신 다음에 속삭였다.
“대나찰이 열 받으면 동네 전체가 조용해져요. 이거 보세요. 벌써 조용해졌네. 아, 어디 가서 말씀하지 마시고 손님만 아세요. 황오 신장이 암살당했다네요.”
나도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녹술이 아니고?”
“아, 맞다. 녹술이었지. 어떻게 아셨어?”
“아까 황오는 지나가던데?”
“아, 그래요?”
문득 점소이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표정에 점점 긴장감이 감돌더니 침을 한 번 삼키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눈치가 정말 귀신처럼 빠른 놈이었다.
나는 점소이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입에 댔다.
“쉿.”
점소이와 나는 시선을 교환하다가 동시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