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도박꾼의 노래
강자가 침묵하면 약자도 침묵에 동참하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동방연과 구경하는 자들의 입을 모조리 닥치게 만든 다음에 땅에 떨어진 평군사의 쥘부채를 주웠다.
펼쳐 보니 하얀 부채에 핏물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나는 부채를 느릿느릿하게 펄럭대면서 주변을 한차례 둘러봤다.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이 한심한 새끼들.”
어쩐지 내가 내뱉은 말은 경기장을 맴돌았다가 내 가슴에도 꽂혔다.
“나도 한심했지.”
문득 동방연을 바라보니, 놈은 조금 전에 펼친 내 공격에 당해서 왼팔을 지혈하고 있었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에 이곳의 도박꾼들이 다 알고 있는 노래의 첫마디를 단조롭게 읊었다.
“도박장에서 삼십 년을 보냈다.”
“…….”
평군사도 종종 불렀고, 도박사들과 돈이 떨어진 놈들, 빚쟁이들, 구경꾼들, 근처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종종 부르던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검은 머리로 패를 붙잡아 흰머리로 패를 내려놓았네.”
관객석에 있는 도박꾼들이 다음 소절을 부르면서 대꾸했다.
“힘들게 번 돈 많이도 갖다 바쳤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읊조렸다.
“힘들게 번 돈 많이도 갖다 바쳤다.”
부채로 이놈 저놈 가리키면서 노래를 이어났다.
“내 돈뿐이랴?”
도박꾼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럴 리가 없지.”
“친구 돈, 친척 돈까지 어찌 그렇게 망설이지 않고 뿌렸더냐? 오랜만에 집에 오니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고. 벽장에 감춰놓았던 돈 꺼내 도박장으로 향하는데. 동네 사람마다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구나.”
도박꾼들이 끝 소절을 따라불렀다.
“만나는 사람마다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구나.”
나는 쥘부채를 쥔 채로 가만히 서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내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도박하다 죽었다고 전해 다오. 도착하기도 전에 오늘따라 유난히 패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아직 살아있는 나락회의 떨거지와 눈을 마주치면서 후렴구를 반복했다.
“오늘은 운이 좋겠지.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
도박꾼들이 내 선창을 따라불렀다.
“오늘은 운이 좋겠지.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
노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본래의 목소리로 도박꾼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지 않을 거다.”
“…….”
“여기는 오늘부로 문을 닫을 거니까 병신 같은 놈들은 그만 이제 돌아가라. 장사 끝났다.”
나는 아무 말을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석과 나락회의 떨거지들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꺼지라고. 개새끼들아!”
순간 나는 나락회의 무인 한 명에게 달려가서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엉덩이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꺼지라고 이 새끼야. 문 닫았다는 소리 못 들었어? 한심한 새끼들.”
내가 두세 명을 마구잡이로 패면서 욕을 하자, 그제야 중독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 쓰레기 새끼들, 집이 있으면 집에 가고 집이 없으면 동냥이라도 하면서 밥 벌어먹어라. 가장 늦게 가는 놈부터 손모가지를 끊어주마.”
나는 뭉그적거리는 놈들에게 달려가서 다시 한번 엉덩이를 걷어찼다.
퍽!
땅바닥을 구른 놈이 벌떡 일어나서 도망을 치자, 살아남은 나락회도 해체됐다.
쥘부채를 흔들면서 주변을 구경하자, 남아 있는 놈들이 거의 없었다. 이곳에 쌓아둔 재물이 많아서 도저히 떠날 수 없는 도박장 관계자들일 것이다.
나는 객석에 홀로 앉아 있는 도박왕 구양복을 바라봤다.
“너 이제 망한 것 같은데?”
구양복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봤다.
“수하들이 전부 덤비면 나한테 이길 줄 알았나? 내가 사기도박이라고 했냐, 안 했냐. 동방연, 어떻게 생각해. 춘약 먹고 비실대던 놈들 때려잡다가 나 같은 놈 만나니까 느낌이 새롭지 않아?”
객석에 있는 구양복이 입을 열었다.
“이봐, 젊은이. 여기로 오기 전에 곧장 남명회(南明會)로 서찰을 보냈다.”
“아, 남명회.”
“방해하는 놈이 있어서 앞으로 상납이 어렵겠다고 말이야. 간단한 서찰이지만 남명회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볼 거다. 내가 그간 줬던 돈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네가 여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면 이곳의 돈이 전부 네게 흘러갈 것이라 예상했나?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결국엔 흑도(黑道)에게 가로막히게 되어 있어. 그것이 내가 겨우 이 도박장으로 만족하면서 살았던 이유다.”
구양복이 객석에서 망우초를 입에 물더니 허연 연기를 내뿜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놈.”
나는 부채를 손바닥에 내려쳐서 접은 다음에 동방연에게 집어던졌다.
쐐애애애액!
막 지혈을 끝낸 동방연이 쌍검을 교차해서 부채를 막아냈을 때, 나는 흑묘아에서 칼과 불꽃을 동시에 뽑아내면서 전방으로 그었다.
염화향을 머금은 도기가 동방연의 상체를 비스듬하게 잘라낸 다음에 뻗어 나갔다.
푸악!
화들짝 놀란 나락회의 간부 세 명이 북, 동, 남쪽으로 흩어져서 도주했다.
저놈들은 여태 무슨 자신감으로 남아 있었을까? 아마 객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구양복을 믿었던 모양이다.
나는 흑묘아를 집어넣고, 동방연의 쌍검을 주워서 동쪽으로 던지고, 이어서 남쪽으로 던졌다.
두 자루의 검이 도망자의 몸을 관통한 다음에 벽에 꽂혔다.
북쪽으로 도망간 놈이 객석으로 솟구치더니 구양복에게 말했다.
“회주님, 피하시죠!”
갑자기 일어난 구양복이 피하라고 권한 간부를 붙잡아서 당기더니 다짜고짜 머리를 붙잡아서 의자 위에 내려쳤다.
퍽! 퍽! 퍽! 하고 세 번을 부딪치자, 간부의 몸이 의자 아래로 허물어졌다.
구양복은 이미 시체가 된 수하를 발로 차면서 언성을 높였다.
“누가 도망치라더냐!”
나는 공중으로 가볍게 뛰어올랐다가 구양복이 소리를 버럭 내지를 때쯤에는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시체를 폭행하던 구양복은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동작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구양복이 말을 하면서 돌아섰다.
“자하객잔이라 그랬던가…….”
내게 건네는 질문과 동시에 구양복의 쌍장이 쏟아졌다. 나는 구양복의 장력을 튕겨내지 않고 양손을 뻗어서 장력을 겨뤘다.
제법 오랫동안 익힌 구양복의 장력이 내 장심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장력을 겨루면서 예전처럼 그를 불러보았다.
“구양 아저씨, 나는 당신이 인심이 좋은 사람인지 알았어. 원래 도박장이 잘 되려면 주인장 인심이 좋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구양복은 장력을 쏟아내는 중에도 눈이 커지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연히 처음 보는 놈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너 누구야?”
하지만 곧 죽을 놈의 의혹을 해소해 줄 마음은 없었다.
“객잔 점소이.”
구양복은 나를 이곳에 있었던 점소이로 이해할 것이다.
나는 염계의 기로 구양복의 장력을 모조리 불태우듯이 밀어낸 다음에 흡성대법으로 전환해서 구양복의 내공을 단전에서부터 뽑아냈다. 구양복이 처절하게 쏟아내는 비명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구양복의 얼굴이 생기를 빨린 사람처럼 변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급히 손을 거뒀다.
바닥으로 허물어지듯이 주저앉은 구양복은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지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남명회가…….”
“남명회고 나발이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인심 좋은 구양 아저씨는 유언 없어?”
죽음을 직면한 구양복은 갑자기 미친놈이 된 것처럼 내게 물었다.
“개평은 없느냐?”
“없어. 이 새끼야.”
그대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가 찍어서 구양복의 숨통을 끊었다.
퍽!
“개평은 지랄.”
나는 텅 빈 관객석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비무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다들 잘 들어라. 자하객잔 주인장의 승리다.”
나는 객석의 난간에서 혼자 박수를 보내면서 걷다가, 횃불을 뽑아서 놈들이 버리고 간 종이 뭉치에 불을 붙였다. 도박사들의 이름과 금액 같은 것이 적힌 종이 뭉치였다.
화르륵!
둘러보다가 불이 잘 붙는 곳에 횃불을 던지고, 다른 횃불을 뽑아서 구양복의 시체에도 불꽃을 선물했다. 불이 붙은 의복이 구양복의 시체를 휘감았다.
가는 곳마다 불을 지르는 사내, 그것이 나다.
횃불을 집어 던지면서 돌아다니자 삽시간에 경기장 이곳저곳에 불길이 번졌다. 어차피 관객석에는 목재가 많아서 이내 거대한 화로처럼 들끓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을 거닐면서 도박꾼의 노래를 혼자 불렀다.
도박장에서 삼십 년을 보냈다.
검은 머리로 패를 붙잡아 흰머리로 패를 내려놓았네.
힘들게 번 돈 많이도 갖다 바쳤다.
내 돈뿐이랴?
친구 돈, 친척 돈까지 어찌 그렇게 망설이지 않고 뿌렸더냐?
오랜만에 집에 오니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고.
벽장에 감춰놓았던 돈 꺼내 도박장으로 다시 향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구나.
내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도박하다 죽었다고 전해 다오.
도착하기도 전에 오늘따라 유난히 패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오늘은 운이 좋겠지.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
도박장을 불태우고, 노래를 부르고 이 모든 것이 흡족하여 나는 웃음을 길게 뽑아냈다.
흥에 겨워서 경기장으로 훌쩍 몸을 날린 다음에 시체도 불태우고 꿈에서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불길을 퍼뜨렸다.
흑묘아를 뽑은 다음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칼춤을 췄다. 흑묘아에 삼매진화를 휘감아서 뿌려대자,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불길이 불꽃을 집어삼키자 부동명왕이 강림한 것처럼 일대가 뜨겁게 타올랐다.
나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잠시 넋을 놓았다.
이렇게 강력하고, 아름답고, 무자비한 불꽃의 힘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불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따끈따끈한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의 별을 한 손에 쓸어 담아 나를 추격하던 교도들의 머리에 불비를 내리고 싶구나. 가는 곳마다 말소리가 멈추고, 검으로 산을 가르는 자들을 발아래 두고, 삼재라 불리는 고수들의 뺨따귀를 후려치는 사내, 그것이 나다. 아직은 아니지만. 아, 뜨거워라.”
벌떡 일어나보니 주변이 온통 불바다였다.
“…….”
회귀했다가 불에 타죽는 사내,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흑묘아를 수직으로 그어서 전방에 도풍을 쏟아냈다.
쐐애애애앵!
불길이 좌우로 갈라졌다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나는 제자리에서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투계의 공력을 주입해서 문파마다 하나씩 있을법한 일도양단(一刀兩斷)을 오랜만에 전방으로 쏟아냈다.
불길이 양 갈래로 찢어지면서 흩어지고, 그 너머에 있는 관객석까지 통째로 갈라지더니 칼자국으로 만든 길이 활짝 열렸다.
나는 도박꾼들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서 만들어 낸 불지옥을 칼로 양단을 낸 다음에 빠져나왔다.
나는 불에 탄 경기장을 뒤로 한 채 난장판이 된 도박꾼들의 마을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밤이다.”
여기저기서 야단법석을 떨고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쳐댔다.
“불이야!”
그 말에 내가 단조로운 어조로 대꾸했다.
“불놀이야.”
“불이야!”
“불놀이야. 어?”
나는 문득 뭔가를 깜박한 사람처럼 경공을 펼치면서 달려나가서 봉황 귀빈실 근처에 도착한 다음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백 소저! 흑 소저! 거기 있소?”
나는 낄낄대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서 “불이야.”를 외치고 있어서 혈도에 찍힌 여인들은 지옥에 누워 있는 마음일 것이다. 봉황 귀빈실 안에서 무어라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막사의 휘장을 젖히고 들어가서 침구를 향해 물었다.
“거기 있소? 없나? 없나 보군.”
“여…여…여…기….”
침대에서 아혈이 덜 풀린 채로 내지르는 비명이 처절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춤을 추면서 침구로 다가갔다.
“저녁 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여기 있나?”
나는 침상의 발을 홱 젖힌 다음에 백소아와 흑소령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처 울어서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막사 바깥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내지르면서 이동했다.
“불이야!”
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백소아와 흑소령을 노려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불놀이야.”
이내 백소아와 흑소령이 눈을 까뒤집더니 동시에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