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44
◈ 44화
부서져 가는 폐건물.
건물의 그림자를 엄폐물 삼아 조심스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주역에서부터 케이를 쫓아 은밀하게 이동을 거듭해 온 컴퍼니의 현장 팀.
팀장 윤병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긴 용케 던전이 되지 않았군.”
서울에서 테마파크로 유명한 ‘로테월드’는 여기저기 망가진 흔적은 있어도, 던전 특유의 분위기는 풍기질 않았다.
그건 조금 신기한 일이었다.
드림 사이드의 던전화는 대개 ‘랜드 마크’를 위주로 우선 발생하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종종 아무도 없는 하수구에도 던전이 발생할 수도 있었고, 누구나 있을 법했던 놀이동산도 던전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던전화를 어찌 예측할까.
모든 건 ‘시스템’이 결정한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서 시작되는 일인데.
윤병구는 그렇게 대충 생각을 정리하며 폐쇄된 놀이동산을 지그시 노려봤다. 중요한 건, 케이의 행적이 이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들어간 게 확실한가?”
“네. 정보원에 따르면 그들은 이동 던전 ‘달리는 유령열차’를 무력으로 차지하고, 곧바로 이곳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도통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솔직히 D급 던전을 무력으로 빼앗았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다음 행보가 ‘아크’가 아닌 폐쇄된 놀이동산이라는 것도 의문이었다.
이곳에서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적어도 이곳 ‘로테월드’는 대단히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도리어 이곳은 컴퍼니 내부에서도 금지로 삼는 곳이 아닌가.
윤병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은 버뮤다 구역이다.”
“……네에?”
그의 팀원 중 하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윤병구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버뮤다 구역만큼은 접근해선 안 된다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질문을 한 건 그때였다.
“실종 다발 구역…… 맞죠?”
버뮤다 구역.
일종의 싱크홀 같은 곳으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갑자기 쑥 바닥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함정.
특히, 이 근처에선 ‘던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버뮤다 구역은 아직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실종되는 특수한 구역을 사람들은 ‘버뮤다 구역’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이곳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자는 아직 아무도 없기 때문이지.”
실종자는 말이 없고, 죽은 자는 더더욱 고요한 법.
추측하기로는 ‘드림 사이드 2’만의 고유 콘텐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병구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그곳으로 케이가 들어간 것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나?”
아직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버뮤다 구역’으로 케이가 들어갔다는 건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케이가 누군가.
비록 적이지만, 자타공인 최고의 플레이어로 손꼽히는 자였다.
그런 자가 스스로 자기 죽을 길을 골라서 들어간다? 윤병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케이는 이곳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버뮤다 구역도 사실은 드림 사이드 1에서 나왔던 콘텐츠였던 거지.’
윤병구는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케이가 가진 강대한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작 ‘헬 난이도’를 클리어했다고.
드림 사이드 1에서 보여 줬던 그 막무가내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할 순 없었으니까.
분명 숨겨 둔 무언가가 더 있는 것이다.
‘케이, 그놈은 드림 사이드 1에서도 이런 구역을 모조리 독식한 거야!’
윤병구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면서 입을 열었다.
“이 안에 무엇이 있든 케이에게 뺏겨선 안 된다.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사수해야만 해.”
그의 팀원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선뜻 윤병구의 말을 따르고 싶어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케이를 뒤쫓느라 심력이 많이 소모된 상황.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려니 더더욱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별수 있을까.
까라면 까는 수밖에.
“진입한다.”
짧게 명을 하달한 윤병구는 빠르게 놀이동산의 입구를 넘어섰다. 그의 팀원들도 별다른 말을 하질 못하고 그 뒤를 따라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문턱을 넘은 순간.
바글바글.
빰, 빰빰! 빠아암!
“엄마! 얼른! 얼르은!”
“바이킹 줄이 짧다는데? 달려!”
“어머, 이건 찍어야 해. 뭐 해?”
그들을 둘러싸고 등장한 무수한 사람들의 행렬에 저마다 침음을 삼켜야 했다. 우중충한 날씨가 갑자기 맑아진 건 둘째로 치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광경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투욱!
어린아이 한 명이 윤병구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모로 보이는 자가 달려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했다.
“죄송합니다.”
“…….”
“종영아, 뛰지 말라고 했잖아.”
우는 아이를 달래며 새로 솜사탕을 사러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팀원들도 식은땀을 흘리며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문득 질문이 들려왔다.
“……팀장님, 제가 보는 게 현실이 맞나요?”
아마 맞을 것이다.
가까이 높이 솟은 로테타워나, 우후죽순 솟아난 빌딩 숲은 그가 기억하는 서울이 분명했으니까.
문제는 그 서울의 기준이 적어도 세 달 전의 세계라는 점이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기 전의 평범한 세계.
평화롭던 서울.
“……일단 상황을 파악한다.”
“네.”
윤병구는 팀을 이끌고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들의 복장과 기세가 살벌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쉽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믿기지가 않는군.”
“허…….”
탄식이 절로 나오는 로테월드를 쭉 둘러보던 그들.
문득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팀장님? 이거 최하나 아닙니까?”
“맞군. 무대 쪽인 것 같은데.”
윤병구는 노랫소리를 따라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음악은 점점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주변은 모조리 정적에 휩싸였다.
“……정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윤병구는 팀원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걸린 검의 손잡이를 꽉 쥔 그는 나지막이 침을 삼켰다.
[……지직!]어디선가 기계음이 들렸다.
동시에 밝기만 하던 주변 풍경이 싹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로테월드는 ‘밤’이 되어 있었다.
“…….”
더는 놀랄 기운도 없었다.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윤병구는 한쪽 구석에서 슬슬 모습이 선명해지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였다.
윤병구는 빠르게 외쳤다.
“전투 준비!”
훈련된 팀원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어 빠르게 각자의 위치에 섰다. 하지만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무수한 몬스터의 떼는 소름 끼치는 아성을 토해 냈다.
“……이 많은 몬스터들이 대체 어디서.”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갑자기 엄청난 빛이 터지더니, 윤병구와 팀원들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떠야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몬스터들이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크아아앗!
“……공격!”
윤병구는 검을 내지르며 몬스터와의 전투를 개시했다. 단번에 목이 날아간 오크를 필두로 주변을 둘러싼 몬스터들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이래봬도 이들은 컴퍼니에서도 정예로 손꼽는 현장 팀.
세 달간 숱한 시련을 넘나들며 쌓아 온 위기 대처 능력은 어디 가질 않았다.
그들의 경험은 서울의 그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허억……!!”
천천히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인영을 본 윤병구와 그의 팀원들은 통나무처럼 몸이 굳어야만 했다.
그건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로테월드에서 보았던 기이한 현상.
갑자기 몬스터가 떼로 나타난 상황.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당황스러울 수는 없으리라.
윤병구조차 뇌 정지가 온 상태에서.
‘말도 안 돼…….’
터무니없는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만 했다.
***
그 시각.
다 무너질 것만 같은 도로 앞으로 한 사람이 쓰러질 듯이 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차림.
피로 떡 진 머리를 흔들며 달린 사내는 어느덧 그의 심장, 머리, 배 위로 붉은 점이 겨누어진 걸 깨달았다.
레이저 포인트였다.
“허억…… 허억.”
그는 힘없이 푹 주저앉았다.
멀리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
“대답해라. 인간인가?”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어둠 속에서 하나둘 군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견착 자세로 천천히 접근한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사내를 경계하며 재차 물었다.
“누구냐?”
“…….”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쏠 수밖에 없다. 정체를 밝혀라.”
총구가 그의 이마를 툭 치자, 사내는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훤히 드러난 그 얼굴을 플래시로 비춘 군인 중 한 명이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모두 총구 내려!”
“네?”
“김훈 플레이어시다!”
빠르게 다가간 그는 주머니에서 지급받은 HP포션을 꺼내어 김훈의 입에 흘려 넣었다. 다행히 빈사 상태는 아니었는지, 차츰 빛을 발하며 김훈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곧, 김훈이 부르르 떨면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으음…….”
“정신이 드십니까?”
“……여긴?”
“아크입니다. 괜찮으십니까?”
김훈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멍한 눈으로 자신을 부축한 군인을 올려다보던 그가 화들짝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뭐? 아크라고?”
“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로 아크의 3구역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확실했다.
‘……성공했어.’
김훈은 몇 번 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군인을 올려다봤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전…… 본부에 무전을 해야 해.”
“네?”
“얼른!”
부랴부랴 무전기를 가로챈 김훈은 곧바로 상부로 연락을 넣었다. 짧은 기다림 끝에 상부에서 답이 돌아왔다.
[김훈 플레이어라고?]“네. 수신자는 누구십니까?”
[나한석 대위다.]나한석 대위.
그의 상사인 김강렬 대위와 동기였다.
“나 대위님이셨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나한석은 침착하게 답했다.
[그래. 한데, 김훈. 자네는 김 대위의 예하 부대에 소속된 플레이어로 기억하는데. 아닌가?]“그렇습니다.”
[살아 있다니 다행이군.]김훈은 낮게 숨을 정돈하더니 말했다.
“김강렬 대위님의 전언이 있습니다.”
김훈은 잠시 목이 타는지 옆을 돌아봤다. 눈치 빠른 군인이 수통을 건네자, 그는 물을 꿀꺽꿀꺽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버뮤다 구역으로 알려진 로테월드는 예상대로 하나의 거대한 함정으로 추정됩니다. 현 시점에서 던전의 흔적은 찾았으나, 등급은 최소 D급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D급 던전이라고……?]“네. 어쩌면 C급일지도 모른다고도 하셨습니다.”
[……뭐?]김훈은 보고를 계속 이어 나갔다.
“전 공간 이동 스킬을 갖고 있어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고립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멀쩡할 겁니다.”
김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지원 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원 팀은 플레이어가 아닌 군인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절대 고레벨 플레이어는 로테월드로 진입해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한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지? 어째서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지도 말했나?]“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김강렬 대위님이 말하시길, 아무래도 이곳에 적용되는 특수한 상황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억?]김훈은 로테월드를 거닐던 수많은 몬스터의 떼를 떠올렸다. 터무니없지만, 그곳엔 수십의 몬스터가 공존하고 있었다.
“김강렬 대위님은 절대 상위 플레이어가 와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기억’이 곧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허…….]그때 무전 너머로 한숨이 들려왔다. 나한석은 낭패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젠장, 큰일이로군.]“네?”
문제는 그 지원 팀의 플레이어가 최소 랭킹 12위에 다다르는 ‘클라크’와 랭킹 1위였던 ‘케이’로 추정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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